소설리스트

〈 34화 〉34화-You Only Live Once(3) (34/131)



〈 34화 〉34화-You Only Live Once(3)

어제에 이어 오늘도 폭탄 발언을 하는 규원이.
요즘 얘가  이러지?  잘못 먹었나.
그런 내 속을 알 리가 없는 규원이는 아예 내 옷자락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응? 내일 너네 집에서 하자아.”
“아니, 너답지 않게 왜 그래? 괜히 불안해지잖아.”
“원래 이게 난데에?”
규원이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옷자락을 쥔 손을 계속 움직였다.
“그러니까 너네 집 가서 하자, 응?”
“안 돼! 그리고 이거 좀 놔.”
그렇게 내뱉고 나서 윤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윤희는 우리가 하는 양을 멀뚱히 바라만 보다가 돌연 머리를 옆으로  틀었다.
“저기, 맨살,  보여…….”
나직한 음성. 주변이 시끌벅적한 와중에도 귀에 명확히 꽂혔다.
윤희의 지적에 옷자락을 신나게 흔들던 규원이가 동작을 멈췄다.
덩달아 나는 쑥스러움을 느꼈다.
“오! 진짜네.”
규원이가 옷자락을 확 들어 올렸다.
“야!”
나는 황급히 규원이와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왜애?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아무 잘못 없다는 듯 당당한 태도.
방귀  놈이 성낸다더니만,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네가 이런 일 당하면 기분 좋겠어? 남들 다 보는 데서 맨살 보이면 기분 좋겠냐고.”
나는 언성을 높였다.
“이규원. 방금 일은 네가 잘못했어.”
윤희가 규원이를 쳐다보며 한 마디 보탰다.
순식간에 열세에 몰리게 된 규원이.
나는 혹시나 싶어 곁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우리 테이블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그렇네. 미안!”
미안하다는 말을 왜 저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하는 거냐.
“그래서 영재야. 어떻게 생각해?”
“뭐가? 난 잘 모르겠는데.”
일부러 모른 체 하려고 했으나 규원이는 쓸데없이 집요했다.
“에이, 아까 얘기했잖아. 너네 집 가서 공부하자고. 어때?”
그때 윤희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나도  번 가보고 싶은데……. 너희 집.”
윤희도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었다. 너만큼은 내 편인  알았더니…….
하지만 나는 절대로 얘네들을 집으로 불러들이지 않을 작정이다.
“안 돼.”
강경하고 단호하게 내뱉었다.
“왜애?”
규원이가 되바라진 어투로 물었다.
나는 곧바로 그럴싸한 이유를 나열했다.
“엄마가 집에 손님 오는  엄청 싫어하거든. 청소로 안 해놓아서 엉망이고.”
사실 엄마는 내 친구들이 오는 걸 싫어하지 않지만 일단은 그렇게 둘러대기로 했다.
“하루 정돈 괜찮지 않아?”
쉽사리 물러서지 않는 규원이.
나는 고개를 젓고 말을 이어나갔다.
“더구나 내일은 엄마가 쉬는 날이라서 눈치 보인다고. 게다가 동생이 너무 어려서 시끄럽게 굴면 안 되거든.”
“안 되는 사유가 많네.”
윤희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어렴풋이 배어있었다.
“딱 하루만!  될까?”
규원이가 검지를 치켜세운 채 윙크를 발사했다. 물론 그런 애교 따위, 나에게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안 된다니까 자꾸 그러네.”
“그럼 우리, 가장 민주적인 방법인 다수결로 정하자.”
“너 말귀 못 알아먹지? 안 된다니까.”
규원이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윤희가 규원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만해. 몇 번이나 안 된다고 그러잖아.”
끼어드는 타이밍이 아주 예술이다.
나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규원이를 향해 양팔을 X자로 교차시켰다.
“치.”
그제야 규원이가 고집을 꺾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고비 넘겼군.
“만약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 초대할게.”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적당히 둘러댔다.
“진짜지? 약속이다.”
규원이가 반색하며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한순간 망설였지만 나는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우리는 뒷정리를 하고 가방을 챙긴 뒤 스타박스를 나왔다.
윤희와 규원이는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다. 나는 반대편.
“오늘 고생 많았어.”
윤희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들고 화답했다.
“그럼 내일 공부는 어떡해?”
윤희와 나란히 서 있는 규원이가 질문했다.
“내일은 각자 알아서 하자.”
나는 생각하고 있던 방침을 알렸다.
오늘 내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내일 벌충하려는 속셈도 있었다.
“으으.  혼자서는 집중 잘 못하는데.”
앓는 소릴 내는 규원이.
“원래 공부는 혼자서 해야 돼.”
내 말에 윤희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움직였다.
“그럼 월요일에 보자.”
 인사를 끝으로 우리는 각자 집으로 향했다.

* * *

초등학생 때 왕따를 당했다.
애들이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지나가면서 머리나 어깨 등을 툭툭 치고 다녔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반에서 제일 가난한 집의 아이라는 것.  사실은 학부모들을 통해서 알려진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계신다는 것.
거기에 또래들보다 체구도 왜소했다. 공부도 못하는 건 덤.
당시의 나는 그야말로 약골, 맛 좋은 먹잇감이었다.
계속 당하고만 사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내가 무엇으로 그들을 이길  있을까?
환경도 불리하고, 체격도 왜소한 내가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공부. 공부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책상 앞에 앉는 버릇을 들이자 어느 순간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르기 시작했다.
4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전교 1등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를 괴롭히는 애들이 사라졌다.
부원들과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조금 전에 했던 말을 곱씹었다.
‘만약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 초대할게.’
나는 이 약속을 평생 지킬 생각이 없다. 단지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당히 둘러댄 말일 뿐이니까.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함부로 노출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거의 9시가 다  시각에 집에 도착했다.
“오빠! 오늘 엄청 늦게 왔네.”
슬기는 밥상 앞에 앉아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숙제 잘 돼?”
“전혀…….”
교과서에 얼굴을 파묻는 슬기.
“우리 쌤은 뭐만 하면 숙제, 숙제……. 살기 힘들어.”
최근에 나는 슬기의 숙제를 도와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찌나 조르고 매달리던지. 하지만 2주가 지나자 어떻게든 자기가 해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노력만큼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진척이 어떤지 궁금해서 슬기의 곁으로 다가갔다.
“언제부터 시작했어?”
“음, 한 1시간 전부터?”
그런 것 치고는 여백이 엄청 많은데…….
“오빠! 나  문제만.”
나는 활짝 웃는 낯으로 답해주었다.
“응 안 돼.”
슬기가 곧바로 울상을 지었다.
“저녁은 먹었고?”
슬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부엌에서 반찬도 없이 맨밥으로 배를 채웠다. 오빠로서 동생의 숙제를 방해할 수는 없으니까.
슬기가 눈을 동그랗게 뜬  이쪽을 바라보았다.
“헐. 맨밥만 먹어?”
“어차피 배만 채우면 되거든.”
“나한테 말하지. 엎드려서 해도 되는데.”
우리 슬기가 웬일로 배려심 넘치는 발언을…….
코끝이 시큰해졌지만, 방해해선 안 된다는 내 생각은 확고했다.
“아냐. 숙제나 열심히 해.”
“응…….”
힘없이 답하며 슬기가 다시 몽당연필을 움직였다.
나는 밥 공기를 정리하고 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나만을 위해 공부할 시간이다.

* * * *

한참을 같은 자세로 앉아있다보니 어깨와 등허리가 뻐근하여 잠시 볼펜을 내려놓고 한껏 기지개를 켰다. 하는 김에 목도 풀어주었다. 눈꺼풀도 몇 차례 깜빡깜빡.
안경을 추켜올리고 시선을 내렸다.
알파벳으로 그득한 문제집 페이지와의 눈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엄마아.”
굳게 닫아둔 방문 너머로 슬기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다. 엄마가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중이었다.
“왔어?”
“응.”
엄마의 왼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건 뭐야?”
“내일 아침에 할 거.”
내용물을 살 보니 시금치 한 단과 두부가 담겨 있었다.
내일은 오랜만에 두부 반찬을 먹을 수 있겠군.
비닐 채로 냉장고에 집어넣고 나서 곧바로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슬기가 눈치껏 밥상을 부엌으로 들고 왔다.
“숙제는 다 했고?”
“반 정도 했어!”
“거 봐. 혼자서도  수 있잖아.”
“아냐.  번은 못하겠어.”
슬기가 세차게 도리질을 했다.
“그나저나 슬기야. 지금 이렇게 여유 부려도 돼?”
의미를 모르겠다는  슬기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검지 손으로 벽시계를 가리켰다.
“지금이 11시 15분이니까 늦어도 12시 전까지 끝내야 잘 수 있겠지?”
“버, 벌써 시간이……. 이럴 순 없어!”
슬기가 양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쥔 채 절규했다.
“워워. 진정하렴. 무려 45분이나 남아있는 거니까. 45분.”
슬기의 눈앞에 대고 숫자 4와 5를 손으로 표시했다.
“차, 차라리, 죽, 여줘…….”
“그 정도 갖고 아무도 죽는 소리  한단다.”
나는 슬기의 정수리에 손을 올렸다.
“내일 마저 하면  될까?”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는 슬기.
“과연 내가 널 자게 냅둘까?”
싱긋 웃는 얼굴로 일러주었다. 그러자 슬기가 숨을 삼키더니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으으으. 진짜로 하기 싫은데…….”
볼멘소리를 흘려보내면서 슬기는 다시 숙제를 하러 돌아갔다.
슬기야. 지금은 힘들더라도 이게 다 미래를 위한 일이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바로 좋은 습관을 들여놓는 것이니까.
엄마가 큰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나는 밥상을 들고 거실로 갔다.
“아들 고마워.”
“뭐 이런 걸 가지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엄마가 우리들을 불렀다.
“얘들아.”
나와 슬기가 동시에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 왜애?”
비음 섞인 목소리를 내는 슬기.
“엄마 내일 쉬는 날인데, 가족 나들이 갈까?”
“웬일로 나들이?”
나는 반색하면서 되물었다.
“내일 날씨도 좋다잖니. 공원 가서 개나리랑 벚꽃도 보고, 시장도 가고.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너희들을 너무 못 챙겨준 것 같아서 그래.”
엄마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나들이라……. 나는 생각에 잠겼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가족끼리 나들이를  기억이 없다.
바쁘게 살다 보니 완전히 잊고 있었다.
“와아! 나, 갈래. 갈 거야!”
슬기가 몽당연필을 집어던지며 기쁨을 표출했다.
나도 당연히 찬성이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목구멍에서 그 말이 걸렸다.
헤어지기 직전 규원이가 했던 발언이 떠오른 탓이었다.
‘나 혼자서는 집중 잘 못하는데.’
규원이가 스터디부에 들어온  고작 4일차.
솔직히 규원이가 보이는 열정은 공부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스마트폰에 대한 집착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도 어느 정도는 있어 보였다.
적어도 내 가르침을 받을 때만큼은 눈을 빛내고 있었으니까.
한 번쯤은 믿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쉽지만 가족 나들이는 다음 기회로 미루는 수밖에.
“엄마 미안. 내일은 스터디부 애들하고 약속이 있어서.”
규원이의 그 눈빛에 한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이번 중간고사  평균 90점은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규원이가 보이는 열망이 지속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그게 바로 스터디드림의 부장인 내가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일 것이다.
“에엥? 오빠. 그거 취소해.”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 나들이는 다음에 같이 가자.”
슬기가 대번에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그래. 우리 아들이 그러겠다는데.”
엄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얘기한 애는 입부했니?”
“응. 걔 가르치려고 그래.”
“재밌겠네. 엄마도 그 시절에 애들하고 같이 모여서 공부하곤 했는데.”
나는 과장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재밌긴. 가르치는 입장이라서 힘들어.”
“나중에 뒤돌아보면 재밌는 추억 거리가 될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나중에 한성고로 편입하게 된다면, 엄마의 말마따나 좋은 추억 거리가 되겠지.
"그런데 엄마. 엄마는 내가 형준이 말고 다른 친구를 초대하는  어떻게 생각해?"
"엄마는 네 친구라면 누구든 환영이야.“
"그렇구나."
엄마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걔들을 정말로 데려올 생각은 손톱 때만큼도 없지만.
나는 방으로 돌아와서 곧장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내일도 스타박스에서 공부할래? 어제랑 같은 자리에 1시까지. 되는 사람은 답장 보내줘~」

윤희와 규원이에게 동시에 전송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서 답장이 돌아왔다.

「난 좋아.」
「레알? 무조건 감!」

이렇게나 다를 수가 있구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공부를 재개했다.

* * * *

다음날, 나는 1시 정각에 스타박스에 들어섰다. 이번에는 윤희가 먼저 자리를 잡아놓고 있었다.
“커피 하나 마실래? 내가 낼게.”
“아냐. 괜찮아.”
윤희는 아메리카노를,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너 어제 그렇게 데이고…….”
“저기 물컵에 타서 먹게.”
내가 생각해도 참 기발한 아이디어다.
윤희가 한심한 눈길로 바라보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는 동안 진동벨이 울렸다.
음료를 받으러 가는 중에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꺼냈다.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미안~ 갑자기 지아 언니랑 약속이 생겨썽....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ㅠ」

가장 중요한 인물의 불참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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