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22화-의지와 끈기는 닮은 꼴(1) (22/131)



〈 22화 〉22화-의지와 끈기는 닮은 꼴(1)

이규원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규원이었다.
이렇게까지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아니, 놀랍다다 정도로는 표현의 강도가 약하다.

경악?
아니다. 이것도 2퍼센트 부족하다.
그렇다면 속담을 인용하여 표현해 보겠다.
뒤로 자빠져서 코가 깨질 만큼 기상천외한 일이라고.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지금 내 심정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영어에는 훨씬 더 직관적이고 강렬한 문장이 있다.
왓 더 퍽(What The Fuxk).
규원이가  기색을 살피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부장님? 신입 받으셔야죠.”

너 같은 신입은 곤란한데.
나는 냉정함을 되찾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제일고등학교는 현재 동네의 3개 고등학교 중에서 학업 성취도 꼴찌인 상태.

만약 올해에도 성취도 평가에서 꼴찌를 하게 된다면, 타 학교와의 통폐합을 면치 못하게 된다. 한 마디로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처지.
이를 타파하고자 이사장님이 설립한 것이 바로 스터디드림.
이사장님의 의도는 스터디부라는 작은 날개짓을 통해, 학교 전체에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여 성적을 향상시키는 것.

스터디부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부원 3명을  모아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성적이 괜찮은 부원으로.
자,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타임.

이규원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인가?
아니다.
이규원이 과연 면학 분위기 조성이라는 목적에 도움이 될 것인가?
 또한 답은 NO.
그러니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로 했다.

“어디서 바람이 들어오는 모양이군.”

바로 무시하기!
나는 문고리를 재빨리 잡아당겼지만, 규원이의 반응이 한 박자 더 빨랐다. 문틈에 발을 집어넣은 것이다.

“잠까안! 이렇게 모른 체하기야? 키도 나랑 똑같으면서?”
“쳇.”
“오늘 아침에 신입 절찬리에 모집이랬잖아. 그래서 이렇게 왔는데.”

너는 받기 싫으니까 그렇지.

“오늘 장사 끝났습니다. 다른 데 가세요.”

나는 손을 휘휘 내젓고 문을 당겼다.

“아니 왜애? 가입하려고 왔는데.”

규원이가 문 틈새로 손까지 집어넣었다.
나는 나머지 손으로 벽을 짚은 채 문을  세게 당겼다. 그렇게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내가 이렇게 용을 쓰는 동안 윤희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규원?”
“엇! 이 목소리는 설마… 심윤희?”

규원이가 꽤 놀란 반응을 보였다.

“헐, 대박!”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냉담하게 쏘아붙였다.

“부원 꽉 찼어. 돌아가.”
“아까 빈 자리 있는 거 다 봤거든!”

 치도 물러서지 않을 기색이었다. 보기보다 엄청 끈질긴 녀석이로군.
 이마에서 조금씩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한영재.”
“왜?”

되물으면서도 내 시선은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일단 얘기라도 들어보는  어때?”

의외의 발언을 하는 윤희.

“너, 쟤가 어떤 앤지 알잖아?”

수업 시간을 온전히 수면 시간으로 활용하는 녀석.
공부 수준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런데 얘를 부원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절대로  돼. 내가 엄청 가르쳐야  게 뻔한데.”
“맞아!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온 거라구!”

윤희에게  말을 대신 받는 규원이.
윤희가 나에게 바투 다가왔다.

“쓸데없이 힘 빼는 것보단 나아 보이거든.”
“나이스 심윤희!”

규원이가 흥분에 차서 외쳤다. 윤희가 자기 편을 들어준다고 여기는 듯했다.
내가 봤을 때는 아닌  같지만.
윤희가 문을 향해 곁눈질했다.

“계속 이러고 있을 거 아니잖아.”

윤희 말대로다.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 이어가봤자 서로 피곤해질 뿐이다.
나는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우와악!”

갑자기 문이 홱 젖혀지면서 중심을 잃은 규원이. 하지만 양팔을 허우적거린 덕분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규원이가 이쪽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갑자기  빼면 어떡해! 넘어질 뻔했잖아.”
“그래도 안 넘어졌잖아. 그럼 된 거지.”
“허얼. 걱정하는 척도 안 하네.”

내가 왜 네 걱정을 해주니?
나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규원이가 입을 앙다문 채 불만스럽게 쏘아보았다.

“뭐, 일단은 들어와.”

내가 손짓을 하자 규원이가 헛기침을 하고서 부실로 들어왔다. 그 사이 윤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불러들이자고 해놓고 나한테 맡겨버리려 하다니.
규원이는 눈을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며 부실을 구경했다.

“우와.”
“그렇게 놀랄 만한 건 없을 텐데?”

그러자 규원이가 내게 눈길을 던졌다.

“진짜 스터디부 같아.”
“애초에 스터디드림이라고 쓰여 있잖아.”
“그래도 뭔가  있을 줄 알았지.”

대체  기대하고 온 건지 영문을 모르겠구만.
지금 스터디부는 공부하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필요한 것들만 갖춰져 있는 심플한 공간. 이런 공간일수록 집중력을 끌어올리기에 좋다.

“책상도 크네?”

규원이가 책상 앞으로 다가가서 호들갑을 떨었다.

“잘  편하겠…….”
“야.”

나는 규원이의 말을 싹둑 잘라냈다.감히 신성한 스터디부에서  생각을 하다니!

“그래서, 스터디부에 들어오고 싶다는 거지? 지금 당장.”

윤희가 질문을 던졌다.
 의외였다. 윤희가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

“당연하지! 근데 윤희 넌 어떻게 스터디부에 들어온 거야? 혹시…….”

규원이가 말꼬리를 흐리면서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만면에 그려진 음흉한 미소.

“저번에 아니라고 했을 텐데?”
“그치만. 그게 아니면여기  이유가 어디 있어?”

윤희가 눈을 감은 채,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것 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얘가이런 반응을 하면 그 다음에는 안 좋은 말이 나온다.

“다 사정이 있는 법이야. 너는 알 필요 없어.”

하지만 윤희는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규원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차갑게 내뱉었다.
물론 눈치 제로인 규원이는 그러한 분위기를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야, 이규원. 잠깐 나와서 얘기하자.”

나는 규원이를 부실  복도로 불렀다.

“왜? 아까는 들어오라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규원이. 역시나 눈치 없는 애다운 반응이었다.

“그런 있어. 빨리 나와.”

다급하게 손짓하자 규원이가 고분고분 따랐다.
규원이가 나오자마자 나는 얼른 부실 문을 닫았다.

“대체 뭔 얘기를 하려고?”
“간단하게 몇 가지만 물어보려고.”
“좋아. 뭐든 물어 보라구!”

규원이가 자신의 평평한 가슴팍을 주먹으로 쳤다. 조금은 측은(?)해지려고 했지만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정말로 스터디부에 오고 싶은 거야?”
“당연하지! 그래서 여태까지 기다린 거라구.”
“왜?”

여기서 일반적인 대답은 이럴 것이다.
‘혼자 공부를 하려니 너무 어렵다.’
‘공부를 같이 하면 혼자할 때보다 즐거울  같다.’
‘모르는 게 있을 때 마음 편하게 물어볼  있으니까.’ 등등.

적어도 이 중에  가지 대답을 한다면 마음이 살짝 움직일지도 모른다.
규원이가 앞니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었다.

“스마트폰이 필요해서!”
“뭐?”
“그러니까, 스마트폰!”
“그게 왜?”

내가 이렇게 되묻는 이유는, 맥락 없는 단어 때문에 얼른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규원이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내가 가진 것처럼 오래된 기종이었다.

“자, 보이지? 21세기를 살아가는 여고생이 이런 고물 휴대폰을 쓰고 있다구.”
“그래서?”
“불쌍하단 생각이 들지?”
“딱히.”

나도 너처럼 휴대폰을 쓰고 있거든.
규원이가 혀를 끌끌 찼다.

“영재 넌 뭘 모르는구나. 여고생에게 있어서 스마트폰은 필수 아이템이라구! 친목을 다지기 위해. 충실한 여가를 보내기 위해서.”

뜬금없이 스마트폰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강의가 펼쳐졌다.
나는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대충 맞장구를 쳤다.

“여하간! 내 스마트폰 액정이 박살나 버렸는데, 수리비가 15만원이나 나온 거야.”
“꽤 비싸네.”

흥분에 취해서 말하는 규원이.
그러나 나에게는 별 감흥이 오지 않았다. 어차피 나랑 관련 있는 얘기도 아니고.

“그래서 엄마한테 수리비를 받으려고 했거든. 근데 엄마는 내가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쓰니까 안 고쳐주겠다는 거 있지?”

규원이는 그 대목에 이르러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말로만 듣던 모노드라마가 이렇게 눈앞에서 펼쳐질 줄이야.
그나저나 수리비를 주지 않으려고 할 정도면, 하루에 얼마나 붙들고 살았던 거냐.

“그래서 내기를 했다구. 이번 중간고사에서 평균 90점을 받아오면 새로운 스마트폰을 사주겠다고!”
“못 넘으면?”
“그러면  원시적인 휴대폰을 계속 써야 한대…….”

 휴대폰을 보여줄까 하다가 그냥 참았다.
 성격상 그걸로 또 시끌벅적하게 굴 것 같으니까.

“여튼 그게 스터디부에 들어오려는 이유지?”
“응응.”

규원이가 과장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마트폰을 얻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는 목적이 나쁜 건 아니다. 목표가 있으면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법이니까.
다만 규원이의 경우에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그 목적이 달성 가능한가에 대한 여부이다.
규원이처럼 공부랑 담을 쌓은 애가 평균 90점을 받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다.
웬만큼 공부를 하는 애들도 평균 5~10점을 올리기도 힘든 마당에.

“일단 모의고사 성적표 좀 보여줘 봐.”
“알았엉.”

규원이가 비음 섞인 대답을 했다.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규원이는 여태까지 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안을 뒤적거렸다.
입구를 활짝 개방한 탓에 의도치 않게 내용물을 볼 수 있었다.

휴대폰 충전기, 이어폰, 손거울, 너덜너덜한 공책,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천 필통, 그리고 선생님들이 배부한 인쇄물 등.
인쇄물은 하나 같이 꾸깃꾸깃했다. 집에서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놀랍지는 않았다. 수업 태도를 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니까.

“자!”

규원이가 모의고사 성적표를 내밀었다.

“아 맞다.  그거 아직 확인 안 해 봤어.”
“뭐? 성적 확인을  해?”

이번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들 자기 성적 확인 정도는 하지 않나?

“어차피 모의고사는 별로 의미 없잖아.”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말을 말자.”

나는 대충 접혀있는 성적표를 반듯하게 펼쳤다.

언어
수리
영어
사탐
과탐
7
7
7
7
7

감탄이 나왔다. 성적표로 슬롯머신의 세븐을 달성하는 애가 있다니.
8, 9등급보다는 낫지만 그래봤자 도긴개긴이다.

“전부 7등급이네.”
“우와, 나 행운아인가 봐.”

머리에 꽃 단 사람마냥 해맑기만 한 규원이. 진지함이라고는 1그램도 느껴지지 않는 태도.
“7등급인데 아무렇지도 않아?”
“응. 어차피 모의고사잖아.”

나는 이마를감쌌다.
이건 모의고사니까, 로 끝날 사항이 아니다.

“진짜 진지하게 물어볼게. 중간고사 때 평균 90점을 받을  있어?”
“나 혼자서는 당연히 안 되지. 그래서 스터디부의 도움을 받으려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지금 이 상태면 평균 90점 절대로 안 나와.”
“네가 가르쳐주면 할 수 있어.”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그건 내가 가르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냐. 그리고 너만 붙잡고 가르칠 여유도 없어.”

“아침에 홍보할 땐 모르는  뭐든 가르쳐 주겠다고 했으면서.”

홍보를 위해 다소 과장을 했다는 점은 스스로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렇게 0부터 하나하나 뒷바라지해 줘야 하는 애가 찾아올 줄은 몰랐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야 내가 도움을 주지. 네 지금 상태로는 안 돼. 아쉽지만 스터디드림의 부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네 친구들 중에서 공부 잘하는 애한테 배우는 걸로 해.”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정확하게 못을 박자 규원이가 뚱한 얼굴을 했다.

“시간 늦었어. 이만 돌아가.”

하지만 규원이는 발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막무가내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은, 전부 다 공부를 못한다구! 진짜 너밖에 없어서 그래.”
“내가 신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평균 90점을 받게 하는  불가능이야.”
“그럼 이제부터 너는 나의 신이야!”

얘가 이렇게 끈질긴 캐릭터였던가.
나는 상당한 피로감을 느꼈다.

“아니 못 해! 너의 신이 될 생각은 더더욱 없고. 이럴 시간에 빨리 집 가서 공부나 해.”

그렇게 쏘아붙이고 나서 몸을 홱 돌렸다.

“아아. 잠깐만! 영재야아.”

나는 애걸복걸하며 매달리는 규원이를 뿌리치고 부실로 돌아왔다.
문밖에서 규원이가 문을 쿵쿵 두드렸다.
하지만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자 더 이상 두드리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피로에 찌든 한숨이 터져 나왔다.

“초췌해 보여.”

옆에서 윤희가  마디했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몬아미 볼펜을 쥐고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문제집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래도, 확실하게 거절했으니 더 이상 안 들러붙겠지?”
“음, 내 생각엔 이걸로 끝이 아닐 것 같아.”

윤희가 그렇게 말하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진짜로 그러면 곤란한데.

“그냥 내 느낌이야.”

직감이 매우 발달된 윤희가 하는 말이라서, 가볍게 들리지가 않았다.
제발 아니어라!
나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