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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19화-실 없는 마리오네트(3) (19/131)



〈 19화 〉19화-실 없는 마리오네트(3)

“형준아.”

아주머니가 한  더 불렀다.
나는 옆에  있는 형준이를 바라보았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제 어디 갔었니?”

아주머니의 어조가 평온했다.

“학원에서 전화 왔어. 애가 어디 갔냐고.”

책망하는 말에서도 톤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영재네 집에…….”

형준이가 껄끄러워하면서 대답했다.
아주머니의 시선은 형준이를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형준이는 그 눈을 마주하지 않았다.
이 자리가 불편한 듯 형준이의 눈길은 자꾸만 여기저기로 옮겨 다녔다.
나는 운 나쁘게도 다른 집안의 신경전에 끼어든 꼴이 되었고.

“말도 없이… 걱정했잖니.”

아주머니가 한 발짝 다가오자 형준이가 그만큼 뒤로 물러섰다.

“엄마는 학원 빠진 걸  걱정했지?”

아주머니가 경악으로 눈을 치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봐온 형준이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으니까.

“야. 말이 좀 심하잖아.”

행인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지자 나는 형준이의 어깨를 붙잡고 제지했다.
하지만 녀석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형준아. 그게 아니라…….”
“이번에 성적도 떨어졌겠다, 학원도 빠졌겠다. 그래, 엄마가 걱정하고도 남지.”

형준이가 코웃음을 치자 아주머니는 입을 벌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거봐. 엄만 내가 학원 빠진 것만 걱정하고 있잖아.”

빈정거림이 계속 이어졌다.

“내가 어제 저녁을 어떻게 먹고, 어떻게 잤고 이런 건 하나도 안 물어보잖아.”

아주머니가입을 굳게 다물었다.
형준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노기를띠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도를 넘어섰다. 이대로 놔뒀다간 일이 크게 번질 거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야야. 그만하라니까.”

그저 어깨를 붙잡는 정도가 아니라 붙잡은 채로 흔들어댔다.
하지만 덩치 때문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만 하면 내가 사놓은 만화책 다 갖다버리겠다 그러고. 고작해야 학원에서 치는 시험일뿐인데. 그거 점수 조금 떨어졌다고 그러고. 두통이 있었다고 해도 그래. 엄마는 나 못 믿는 거지? 그렇지?”
“…….”

아주머니가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음성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학원 하루 빠졌는데 무슨 생각 들었는지 알아? 엄청 좋더라?  나오는 게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
“형준아.”
“나 이제 아무것도 안 해. 안 할 거야. 성적 때문에 잔소리 듣는 거 신물 날 지경이라고. 학원 뺑뺑이하기도 싫고.”

그것은 말이 아니었다. 형체 없는 칼날이었다.
거기까지 토해낸 뒤 형준이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마주 보는 두 사람.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는 시선의 대치.

더 이상 말릴 수도 없었다. 말리기에는 너무 멀리  버렸다.
문득 시선을 내리자 형준이의 주먹 쥔 손이 보였다. 부르르 떨고 있었다.
거센 감정의 기류를 억제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주머니가 형준이에게 다가와 손목을 잡아챘다.

“형준아. 집 가서 얘기해.”

타협의 여지가 느껴지지 않는 단호한 어조.
형준이는 아주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아들의 손목을 놓친 아주머니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싫어! 안 가. 안 갈 거야!”

형준이가 뒤돌아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아주머니는 앞으로 뻗은 손을 거두지도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약간 벌어진 입에서는 아무런 단어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형준이가 있었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이대로 도망치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
지난번 윤희 때의 경험이, 그런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실례할게요.”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형준이를 뒤쫓아 갔다.
노을이 하늘을 울긋불긋한 단풍빛깔로 서서히 물들이고있었다.



* * *


형준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발이 빨랐다.
보통덩치가 클수록느리지 않나?  저렇게  뛰는 거지.
아니면 단지 내가 유독 느린  수도 있고.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입을 크게 벌린  거친 숨을 토하면서  계속 달렸지만, 거리가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야! 김형주운!”

목청을 있는 힘껏 쥐어짜서 불러도 형준이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야아! 거기 서!”

사력을 다해서 한   외쳐도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질 뿐이었다.
나는 결국 체력적 한계를 맞이하고 말았다.
가로수를 짚은  숨을 몰아쉬는 동안에도, 형준이는 처음의 속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이윽고 녀석이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나는 근처에 있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씨. 더럽게 빠르네.”

거친 숨과 함께 바닥에 대고 한 마디 씹어뱉었다.
시간이 약간 흐르자 호흡이 안정되었다.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당장에 달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었다. 이쯤 하면 형준이도 지쳐서 어딘가에서 쉬고 있을 테니까.

나는 형준이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찾아내기만 하면 진짜 한 대 때려줘야겠네.
노을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형준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녀석 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나는 무작정 앞으로 향했고, 두 블록쯤 걸었을 때 벤치에 앉아있는 형준이를 발견했다.
나는 곧장 녀석의 등짝에 주먹을 꽂았고, 형준이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고개를 틀었다.

“자식. 그렇다고 갑자기 튀면 어떡하냐.”
“…….”

하지만 그것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는 않았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옆에 걸터앉아도 녀석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았다.
문득 시선을 돌리자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가 보였다.
초록불이 들어오자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하는 사람들.

형준이는 멍한 눈으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내 빨간불이 점등되었다. 정지선에서 멈춰있던 차들이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해가 완전히 기울고 저녁때가 찾아오자 가로등에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어둠을 몰아낸 거리. 그리고 각자의 목적지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바삐 움직이는 행인들 속에서 유일하게 멈춰 있는 우리는 그들과는 동떨어진 존재 같았다.
형준이가 잇새로 기나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한심한 짓거리 했네…….”

형준이의 한탄. 그러더니 몸을 돌려서 나와 마주했다.

“영재야. 나 왜 갑자기 도망친 걸까?”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겠지? 나도 모르겠는데.”

형준이가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엄마를  본 순간에 말야, 갑자기 막 화가 치밀더라고.”

나는 어제 형준이와 편의점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학원에서 치른 시험 성적이 떨어지고, 만화책을 갖다버리겠다고 한 것에서 비롯된 갈등.
하지만 근본 원인은 아마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형준이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다.

“나 지금 내 속을 종잡을 수가 없다. 화가 나기도 하는데, 다른 감정도 들어. 섭섭한 느낌도 들고, 불안하기도 하고…….”

횡단보도에 다시 빨간불이 들어왔다.
우리는 여전히 벤치에 앉아있었다.

“화가 나는 것도 엄마한테 그런 건지 나한테 그런 건지… 사람 마음이란 게 이런 건가.”
“어젯밤엔 불안하다고 했으면서.”
“계속, 그래. 사실 놀면서도, 자꾸만 걸리더라.”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어깨를 떨구는 형준이. 나는 그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까 그러면 안 됐는데…….”
“일단 돌아가자.”

형준이가 고개를 끄덕인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 * * *

한참을 걸은 끝에 우리 집에 도착했다.
현관에 들어와서 벽시계를 확인해 보니 벌써 7시를 넘은 참이었다.
슬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모양이었다.
형준이는 여전히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편하게 앉아있어.”
형준이 거실 바닥에 다리를 쭉 뻗은 자세로 앉았다.
나는 부엌에서 냉수 두 컵을 챙겨왔다.
“자.”
“어. 고마워.”
형준이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참 다사다난한 하루구만.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제 어쩔래?”

형준이는 물컵을 내려놓고 천장만 응시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다.”
“학교는?”

형준이가 짤막한 한숨을 뱉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야. 편의점 가자.”

내가 먼저 제안을 꺼내자 형준이가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 지금은 안 땡겨.”
“이 형아가 쏘겠다는데도?”

그러자 녀석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가? 진짜로?”
“응.”

왜냐면 오늘 아침에 받은 오천원 권이 아직 건재하니까.

“나 한 입으로 두  안 해.”

그러자 형준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럼 도시락.”
“아, 그건 좀…….”

바로 두 말하고 말았다. 전 재산을 한 방에 다 쓰는 건 부담이 크다고.

“그럴 줄 알았다.”

다소 기운을 차린  형준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어제 들렀던 편의점으로 갔다.

“내가 골라올게.”

녀석을 바깥 의자에 앉혀놓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내 선택은 졸지마커피와 가놔초콜릿 각각 두 개씩.

“4,600원입니다.”

오천 원 권을 내미는 나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견뎌라. 견뎌야 한다. 친구를 위한 일이다!
거스름돈으로 받아든 400원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녀석에게 졸지마커피와 가놔초콜릿을 건넸다.

“와, 센스 오졌다.”
“칭찬이야?”
“단 것만 사오면 어쩌자는 거냐.”
“포도당이 돌아야 기분 좋아지지.”
“그래 참 센스 넘친다.”

형준이가 실실거리며 캔을 땄다.
나도 캔을 따서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큰돈을 들인 탓인지 뒷맛이 씁쓰름하게 느껴졌다.
형준이가 초콜릿을  입 베어 물고 오래도록 우물거렸다.

“너라면 어떨 거 같아?”
“뭐가?”

너무 포괄적인 질문이라  번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출한다면 말야.”
“글쎄. 난 그럴 일이 없어서.”
“만약으로 가정해서 말야. IF 몰라?”
“만약이라고 해도…….”

나는 생각에 잠겼다. 만약 진짜로 집을 나간다면…….
그러자 한 가지는 확실히  수 있었다.

“돈 없어서 쫄쫄 굶겠지.”
“어휴. 말을 말자.”

형준이가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겪지 않은 일을 생각하는건 어렵다고. 가정을해도 말이지.”

나는 말을 끝내고 캔커피를 들이켰다.
형준이는 자신의 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뛰쳐나오면 잠깐이라도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단 한 순간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나를둘러싼 모든 상황들에서.”
“누구라도 그럴 거야.”

나는 공감을 표했다.

“차라리 누군가가 이게 정답이다 하면서 콕 집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안 일어나지.”
“그치.”
형준이는 곧바로 수긍했다.

“아깐 엄마한테 너무 감정적으로 나갔어.”

형준이가 자조했다.

“엄마한테 그간 느꼈던 서운함이 갑자기 복받쳐왔다고 할까. 솔직히 그러고 나서 스스로에게 너무 놀랐어. 엄만, 이제 나를 아예 믿지 못하겠지?”
“그건 모르는 일이지.”
“하아. 진짜  그랬지…….”

형준이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가 답을 주지 않기에 계속 망설이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거기에 답을 해줄 수 있다.

“이건 알아둬. 나는 너의 이해자가 될 수 없어.”

분명한 어조로 얘기했다. 친구라고 해서 모든 고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제와 오늘 나눈 대화를 통해 형준이가 무엇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신뢰받지 못한다는 느낌, 기분.

아마도 이것이 이번 갈등의 근본 원인일 것이다.
그러니 형준이가 어떤 기분일지도 짐작은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결정은 오로지 네 몫이야.”

친구에게 고충을 털어놓을 수는 있다. 그러나 최후의 결정은 자신이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다.
형준이가 침묵.
선선한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초콜릿 한 쪽을 떼어서 먹었다.

“응… 엄마랑, 얘기해 봐야겠어.”
“그래.”
“영재야. 고맙다.”
“뭘, 친구잖아.”

나는 형준이가 내민 오른손을 맞잡았다. 악수를 끝낸 다음 형준이가 하늘을올려다봤다. 나도 따라서 고개를 쳐들었다.

“언제쯤 별을 볼 수 있을까?”
“한성대 가면 보겠지.”

내 말에 형준이가 한바탕 소리 내어 웃었다.

“아직도 한성대 타령이네.”
“내 인생 목표니까. 한성대 나오고 좋은 직장 구해서 꼭 성공할 거라고.”
“난아직 모르겠다.”

우리는 남아있던 커피와 초콜릿을 마저  먹었다.




* * * *



집으로 돌아왔다.
슬기가 우리들을 맞이하러 현관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형준이에게 기다리라고 한 뒤, 방에서 배낭을 꺼내왔다.

“형준 오빠, 이제 가는 거야?”

슬기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왔다.
“응. 부모님이 걱정하실 테니까.”
형준이가 슬기의 머리를 쓰다듬자 슬기의 표정이 바로 풀어졌다.
우리 남매는 현관에서 형준이를 배웅했다.
형준이가 손을 흔들고나서 돌아섰다. 다사다난했던 주말이 물러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형준이는 스스로 결정을 내린 걸까, 아니면 주변 환경에 떠밀려 결정을 했을까.
그것만큼은 내가 영영 모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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