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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18화-실 없는 마리오네트(2) (18/131)



〈 18화 〉18화-실 없는 마리오네트(2)

“왜? 가출했다면서?”

보통 가출하는 애들이라면 아예 부모님이 찾지 못하게끔 종적을 감추려고 하지 않나?

“그렇긴 한데…….”

형준이의 목소리가 점점 가늘어지다가 이내 끊겼다. 옆으로 돌아누웠더니 천장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형준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솔직히 학원 쨌을 때도, 뭔가 한편으로는 불편한 그런 기분이었거든.”
“아하.”

그 기분이라면 왠지  것 같았다.
습관처럼 해오던 일을 갑자기 하지 않았을  밀려오는 불안감이나 초조함 같은 것 말이다. 나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공부를 하지 못했을때 느끼곤 하니까.

“그래도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려고 가출한 거잖아.”
“그렇지.  말대로야.”

형준이가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근데 지금은 뭔가 심경이 복잡해.”
“예를 들면?”
“나온 직후에는  느낌이 없었고, 학원을 쨌을 때는 속이 시원했거든. 근데 지금은 이게 잘하는 짓일까 불안한 거야.”
“흐음.”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간의 상식적으로 따져본다면 가출은 당연히 나쁜 행위다.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데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민폐를 끼치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마냥 그렇게 매도만 해야 할 일일까?
각자의 사정이  다른데 무조건 가출한 자녀만 잘못인 걸까.

“네 생각엔 어때?”

형준이가 조심스레 자문을 구했다.

“난 모르지. 가출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대답을 내놓았다.

“하긴, 나도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알겠냐.”

형준이가 이해한다는 의미로 고개를끄덕였다. 그러고는 천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가 잘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아마도 잘못한 거겠지.”

거의 중얼거리는 투였다.

“잘못한 거 같아?”
“좀…….”

답하는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그렇구만.”

나는 천장을 향해 돌아누웠다.
형준이에게는 분명 형준이만의 기준이 있으리라.
나에게도 나만의 기준이 있듯이.

“하아, 어쩌지… 무단결석  번이라도 했다간 학생기록부에 남을 텐데.”
“이미 저질러 버렸는데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그럴 작정이었는데, 지금  마음이 흔들려.”

침음을 흘리던 형준이가 별안간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좋은 대학 가려면 기록부부터 잘 돼 있어야 하잖아. 이것 때문에 나중에 불이익을 당하면, 같은 생각 때문에 자꾸 불안해져.”
“음.”

생각해보니 우리에겐 아직 대학교 입학이라는 중대한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 가면 결국 엄마한테 연락이 갈 테고…….”
“엄청 복잡하네.”
“근데 솔직히 나만 잘못한 건 아니란 말야.”

따지는 어조로 내뱉은 형준이가 자신의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그런 뒤 어깨가 축 늘어질 정도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출했더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다들 마음고생이 많네.”

 말을 읊는 동안 문득 윤희가 떠올랐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니 윤희도 참 고달픈 인생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모르겠다. 복잡한 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

형준이가 투덜거리면서 다시 드러누웠다.

“괜한 소리해서 미안. 사실 좀 갑갑했거든.”
“친구잖아.  정돈 얼마든지 들어주지.”
“고맙다. 진짜 너밖에 없어. 우리 반은 다들 경쟁의식 때문에…….”
“그래도 여자뿐인 반보다는 낫겠지.”

나는 말해놓고 피식 웃었다.

“부러운 자식. 나가 죽어라.”

형준이가 주먹으로 가볍게 내 어깨를 툭툭 때렸다.

“부럽기는 개뿔이. 겪어보면 그딴 말 절대로 못 할 거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에게 장난을 걸었다. 덕분에 밤이 깊어서야 잠들 수 있었다.



* * * *



일요일이 밝았고 눈을 떴을 때는 10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보통 늦어도 9시에 일어나는  감안하면 꽤나 늦게 일어난셈이었다.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다음 옆에서 퍼질러자고 있는 형준이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야 돼지. 빨리 일어나.”

형준이가 대(大)자로 기지개를  켜고 나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뭐래냐, 멸치 주제에.”

눈을 비비면서 악담을 내던졌다.
우리는 피식거리면서 웃은 뒤 방을 나왔다.
슬기는 한창 TV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단정한 옷차림에 자세도 바르게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뻗친 곳 없이 잘 손질해 놓았고.

“슬기 잘 잤어?”

형준이가 아침 인사를 하다가 입을큼직하게 벌린 채 하품을 했다.

“응! 오빠들은 잘 잤고?”
“그럼, 그럼.”

형준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야, 너 세수 좀 하고 와라.  차려놓을 테니까.”
“어 그래.”

형준이가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자 슬기가 자신이 대신 하겠다고 나섰다.
의욕 어린 눈빛을 본 나는 흔쾌히 양보하기로 했다.
화장실에서 나온 형준이가 수건으로 머리를 박박 문지르며 몸서리를 쳤다.

“어우, 물 차갑더라.”
“정신이 번쩍 들지?”
“완전.”
“아침밥 배달 왔어.”

슬기가 들뜬 목소리로 말한 뒤, 우리들 앞에 밥상을 내려놓았다. 오늘 아침은 양파와 감자, 당근이 조각조각 들어간 엄마표 카레였다.
고기가 없는  살짝 아쉽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진수성찬이지.
밥이 좀 더 많은 그릇이 형준이 것인 듯했다.

“오오. 카레! 좋지.”
“따뜻하게 데웠어.”

슬기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와 형준이가 밥상을 사이에 두고 앉자, 슬기가 우리들 사이에 다소곳이 앉았다.

“왜?”

나는 슬기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냥. 심심해서. TV도 별로 재미없구.”

TV에서는 철 지난 개그 프로그램을 재방영하고 있었는데 내가 봐도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단지  이유만으로 여기에 앉은 건 아닐 테지.
슬기의 노력이 가상해서 약간은 도움을 주기로 했다.

“형준아.”
“응?”

고개를 내린 채 밥알을 우물거리던 형준이가 눈만 들었다.
삼백안이라 그런지 순간 눈을 희번득한 것처럼 보였다.

“너 좋아하는 애 있냐?”

옆에서 슬기가 토끼 눈을 하고서 나를 쳐다봤다.

“갑자기 왜?”
“친구끼리 궁금해 할 수도 있지. 안 그래?”
“지금은 없어.”

일말의 고민도 거치지 않고 나온 단호한 답변.

“여친 사귈 생각은 있고?”
“그건대학 가서 해야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같아.”

혹시나 하여 슬기의 기색을 살폈더니 시무룩한 표정에 입술은 오리 주둥이마냥 툭 튀어나와 있었다.
…차라리 물어보지  걸 그랬나.
하지만 가능성이 0이라는 얘기는 아니니까 괜찮을 거다. 아마도.
슬기에게 마실 물을 갖다달라고 부탁했자 슬기는 얼른 물병과 컵을 챙겨왔다.

“저기, 형준 오빠. 가출했다면서. 왜?”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에 형준이가 계면쩍게 답해주었다.

“아 그게, 부모님하고 조금 다퉜거든.”
“조금 다툰 일로 그러는 거야?”

슬기는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가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준이가 나에게 곤란하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슬기야. 그런 건 함부로 물어보는 거 아냐. 알았지?”

나는 슬기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조곤조곤 타일렀고, 슬기는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밥그릇을 깔끔하게 다 비웠다.

“내가 치울 테니까 오빠들은 쉬고 있어!”

슬기가 의욕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자, 형준이가 대견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슬기가 웃는 모습을 보니 아마 이런  노린 모양이었다. 작전 성공이구나, 내 동생아.

“그나저나 계속 집에 있을 거냐?”
“공부해야지.”

형준이가 실소를 터뜨렸다.

“진짜 너답다.”
“공부는 학생의 본분이지.”

형준이는 자신의 머리칼을 긁적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기분 전환이라도 하고 싶은데 오늘은 나가서 놀자. 날씨도 좋은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제도 윤희네 집에 가랴, 갑자기 찾아온 형준이를 맞이하랴, 공부에 손도 못 댔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던 와중에 슬기가 설거지를 하려다 말고 나에게 외쳤다.

“맞다! 오빠! 아침에 엄마가 쓰라고 우리한테 오천 원씩 줬는데 깜빡했어.”
“정말?”

내가 부엌으로 향하자 슬기가 주머니에서꾸깃꾸깃한 지폐를 꺼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도 너보고 놀라고 하시는가보다.”

어느새 따라온 형준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 오랜만에 같이 놀러 갈까?”
“오케이. 오늘은 진짜 하루종일 논다!”

형준이가 팔을 높게 쳐들며 짤막한 함성을 질렀다.

“잠깐만.  전에 씻고.”
“1분 준다. 실시.”

나는 형준이를 향해 중지를 세운  화장실로 직행했다.




* * * *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밖에서 실컷 놀았다.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PC방.
그 곳에서 요즘 유행하는 게임인 배탈그라운드를 했다. 적이 보일 때마다 총을 갈기는데도 이상하게 죽기만 했다.

“한 킬이라도  봐.”

정작 그 말을 하는 형준이도 죽기 일쑤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컴퓨터 게임을 하니 괜스레 흥분되었다.
다음 코스는 코인 노래방이었다.
둘이서 신명 나게 목청을 지른 뒤에 늦은 점심으로 로또리아 햄버거를 먹었다.

그런 뒤 근처의 당구장에도 들어갔다. 우리 실력에 4구나 3구는 무리여서 포켓볼을 했다.
결과는 3:0. 나의 참패였다.
한참을 쏘다니다 보니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다.

“우리 스타박스 가서 잠깐 쉬자.”

형준이의 제안으로 우리는 스타박스로 향했다.
내게는 상당히 비싼 곳이지만 녀석의 발걸음에 망설이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형준이는 카페모카 가장 큰 사이즈. 나는 딸기라떼 보통 사이즈로 주문했다. 계산은 물주님께서 직접 했다.
음료를 받아온 우리는 2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근데 넌 어째 잘하는 게 없냐? 게임은 계속 죽기만 하고, 노래는 거의 돼지 멱따는 소리 같고, 당구는 벽만 잘 맞추고…….”
“나 원래 노는  잘 못하는 사람이잖아. 게다가 너도 별반 다르지 않았거든?”
“적어도 당구로는 널 압살했지.”

형준이의 얼굴에는 승리한 자의 여유가 묻어나왔다.
자식. 공부로는 내가 무조건 이기는데.
우리는 각자의 음료를 빨대로 쪽쪽 빨았다.

“그런데 말야. 어제 물어보려다가 말았던 거 있잖아.”

나는 물고 있던 빨대를 놓았다.

“어떤 거?”
“스터디부 말이야, 스터디부.”
“그게 왜?”
“하아.”

과장스럽게 한숨을내뿜는 형준이. 그러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스터디부에 부원 몇 명이냐?”
“나 포함해서 명.”
“걘 당연히 여자겠지?”

목을 움직여서 긍정의 표시를 했더니 형준이가 검지로 나를 딱 지목했다.

“그러니까, 어제 학교 도서관에서단둘이 앉아서 공부를 했다는 얘기네? 와, 이놈 봐라.”

형준이가 기가 찬다는 반응을보였다.

“또 발동 걸렸구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하나도 없었다고. 말 그대로 공부했다니까, 공부.”

공부라는 단어를 부러 강조했다. 사실은 반나절 동안 윤희네 집에 있었지만.
하지만 사실대로 고했다간 형준이가 한바탕 난리를 칠 테니 숨기기로 했다.

“후. 그래. 친구보단 여자가 중요하지. 인정.”

의외로 쿨한 반응이었다. 발정 난 개처럼 난리 칠 줄 알았는데.
그때옆에서 누군가 알은 척을 했다.
소리가 난 곳을 두리번거리다가 손을 번쩍 들고 있는 규원이를 발견했다.

세상에 이렇게나 반갑지 않은 우연이 있다니.
맞은편 자리에는 앉은 사람은 친구인 듯했다.
규원이가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그냥 거기 가만히 있지 그러냐.

“안뇽. 학교 밖에서 만나니까 신선한 느낌이다.”

규원이는 화사한 톤의 플라워 블라우스에 스키니 차림. 손목에는 팔찌를 차고 있었다.

“누구야?”

형준이가 의문을 표했다.

“같은 반의 A야.”
“A라니! 이규원이라고. 이, 규, 원. 네 이름은?”

형준이에게 시선을 보내는 규원이.

“난 김형준이야.”
“영재 친구지? 반가워.”

서로 악수를 나누고 나서, 규원이는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지아 언니! 얘야, 얘. 제일고 첫 남학생.”

친구인  알았더니 선배였구만.
그나저나 왜 소개를 이상하게 하는 거냐.

“아, 이쪽은 정지아 언니. 우리 학교 2학년이야.”
“안녕하세요.”

일단 선배라고 하니 꾸벅 인사했다. 형준이는 멀뚱멀뚱 눈만 굴리고 있었다.

“안녕? 이름이, 한영재라고?”

규원이가 이미 떠벌리고 다닌 모양이다.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선배, 이런  붙이지 말고 편하게 말해도 돼.”
“아… 그렇게 할게요.”
“좋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악수하자.”

지아 선배가 선뜻 손을 내밀었다. 밝고 거리낌 없는 모습이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나는 선배와 악수를 했다. 말랑말랑한 손의 감촉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참 예쁜 사람이었다.
베이지톤으로 염색한 긴 생머리는 윤기가 감돌았고, 피부도 무척 희고 고왔다. 거기에 왼쪽 눈가에 있는 눈밑점.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지만 몸매가 상당하다는 걸  수 있었다.
하필이면 옆에 비교대상이 있어서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우린 이만 나가보려고. 언니, 이제 가자.”

규원이가 손을 흔들자 지아 선배, 아니 누나도 같이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이 출입문 밖으로 나가자 형준이가 감췄던 흥분을 폭발시켰다.

“와! 그 누나 쩐다. 번호 물어볼 걸.”
“그림의 떡이야. 노리지 마.”

나는 손을 붕붕 내저었다.
우리는한참을 더 카페에서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스타박스를 나서는데  뒤에서 목청이 들려왔다.

“형준아!”

우리는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고, 형준이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엄마?”

형준이네 아주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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