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10화-엉킨 실은 하나씩 풀어야 한다(4)
출입문 문턱을 넘어가려던 윤희가 우뚝 멈춰 섰다. 그러더니 이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라고?”
윤희는 무언가에 세게 얻어맞은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충격받았다’는 문장을 표정으로 구현한 느낌이랄까.
윤희는 어깨가 들썩일 만큼 크게 심호흡을 했다.
“다시 한 번만, 말해줄래?”
“그러니까, 만약 오늘 이사장실로 오지 않으면.”
“그거 말고!”
윤희의 언성을 높였다.
“네 시작노트에 있는 시를 교내 방송으로 낭독하시겠다고…….”
“설마, 영감탱이가 갖고 있었어?”
요동치는 감정을 제어하려는듯 낮게 내리깔린 목소리를 내는 윤희.
하지만 어조에 차마 억누르지 못한 분노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아니. 그건 못 봤어.”
내 대답에 윤희는 역정 어린 한숨을 토해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중얼거림이 잦아들자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시선을 슬쩍 내렸더니 윤희의 두 손이 천천히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 직후,
“이 영감탱이가!”
윤희의 악에 받친 고성이 교실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는 하필이면 지근거리에 있었던 탓에 손으로 귀를 막아야만 했다.
화산.
뜬금없이 그 단어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눈동자만 굴려서 윤희의 모습을 힐끔 쳐다봤다. 정말로, 화산 그자체였다.
씩씩거리던 윤희가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잠깐만!”
그러나 흥분할 대로 흥분한 윤희에게 먹힐 리 없었다. 나는 그 뒤를 얼른 따라갔다.
이사장님의 예상대로 이 폭탄발언은 윤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근데 이거, 괜찮은 걸까?
층계를 밟는 윤희의 발소리가 쿵쿵 울렸다.
저대로 들이닥치면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일단 조금이라도 진정시켜야 했다.
“심윤희!”
“뭐.”
윤희가 나를 쏘아보았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있을 것만 같았다.
이사장님. 이거 완전 역린을 건드린 것 같은데요? 그것도 아주 제대로 말이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일단 숨 좀 고르고 가자. 응? 지금 상태로 가면 안 좋아.”
“네가 뭔데 참견이야. 이건 나랑 영감탱이의 문제라고.”
“삼자대면이라고 했어.”
윤희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어제 얘기를 나눴거든. 이사장님은 현재 너랑 화해하고 싶다고 하셨어.”
그러자 윤희가 헛웃음을 지었다.
“너도 한패구나. 아님 뭐 불구경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됐어. 네가 낄 자리 아냐.”
윤희가 차갑게 쏘아붙이고는 다시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가라고 해서 갈 놈이 아니지.
우리는 이사장실 문 앞에 섰다. 윤희가 나를 흘겨보았다.
“아까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삼자대면이랬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냐구!”
“나한테도 사정이 있거든.”
지지 않고 받아치자 윤희가 더 이상 쏘아붙이지 않았다.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윤희가 아무 예고도 없이 이사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이사장님이 업무를 보다 말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윤희는 지체하지 않고 이사장님에게 다가갔다.
“왔구나.”
“노트, 어디 있어요?”
윤희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노트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걱정 말거라. 여기 있으니까.”
이사장님이 잘 보이도록 노트를 들어 올렸다. 베이지색의 고급스러운 양장 노트였는데 커버의 오른쪽 하단에 ‘심윤희’라고 적힌 네임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빨리 돌려줘요!”
윤희는 이사장님의 손아귀로부터 노트를 잡아채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사장님의 한 발 빨리 양복 자켓 안쪽으로 노트를 숨겼다.
뒤를 돌아보니 아직 이사장실 문이 열려 있었기에 얼른 닫았다.
“윤희야, 할아버지랑 오랜만에 얘기하자꾸나.”
“노트부터 돌려줘요.”
“돌려주면 그대로 나갈 셈이지 않니?”
나는 이사장님의 책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윤희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우선 소파에앉자. 뭐가 좋으니? 커피? 아니면 녹차?”
“왜 내 방을 함부로 뒤졌어요? 변태예요?”
윤희는 경멸감 섞인 표정으로 말을 내던졌다.
나는 윤희의 옆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아랫입술을 짓씹은 채 움켜쥔 두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사장님이 자상한 표정으로 윤희를 응시했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맺혀 있는 응어리를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아뇨. 사과하지 마세요. 지금 그걸 바라는 게 아니니까.”
“윤희야. 네 방에 들어간 건…….”
“변명도 필요 없어요!”
앙칼진 반응이었다. 손대는순간찔러버릴 것처럼.
“시작 노트로 저를 불러낸다? 좋아요. 진짜, 잘 생각했어요. 화해하는 거? 맞아요. 이런 관계 오래 끌어봤자 좋을 거 없으니까. 근데, 결국 다 자기 만족이잖아요. 거기서 ‘나’는 뭐예요?”
윤희는 그러면서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이사장님은 당황한 눈치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걸까.
“…….”
이사장님이 입도 벙긋하지 못하자 윤희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틀 전에 노트가 갑자기 사라지고 내가 무슨 기분으로 지냈는지 알아요? 아니, 알았겠죠. 알고도 했겠죠. 그걸 모를 사람이 아닌데.”
비꼬는 말 하나하나에서 송곳보다 더한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사실 윤희의 말대로였다.
이사장님은 자신이 하는 방법이 좋지 않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윤희가 자신을 계속 피할 것이기에 그런 방법을 택한 것이지만, 예상보다도 더 안 좋았다.
결과적으로 윤희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준 셈이니까.
“윤희야.”
“단지 이번 일뿐이었다면, 화가 나도 넘어갈 수 있어요.”
“이 할아버지가 정말, 미안하구나.”
이사장님이 자켓에 숨겼던 노트를꺼내서 윤희에게 내밀었다.
윤희는 노트를 손으로 탁 쳐냈다. 노트가 입을 벌린 채 바닥에 엎어졌다.
“됐어요! 가지든지 찢어버리든지 맘대로 해요!”
그러더니 윤희가 몸을 홱 돌렸다.
“이기적인 사람.”
그 말을 끝으로 윤희는 문을 세차게 열어젖히고 냅다 뛰쳐나갔다.
갑작스런 전개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장님도 몹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이기적인, 사람이라…….”
먼저 정신을 추스른 이사장님이 의자에서일어나 노트를 집어 들었다.
“어떡하죠?”
이사장님은 대답 대신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뒤 의자에 다시 앉았다.
노트는 양손에 꼭 쥐고 있었다.
마치 귀한 도자기를 다루는 마냥 조심스런 손길이었다.
“나 역시도 오해하고 있었구나…….”
내 귀에 간신히 들릴 정도로 낮은 중얼거림이었다.
삼자대면은 이렇게 파국을 맞았다.
뛰쳐나가버린 윤희. 낙심해 버린 이사장님.
그리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나.
이대로 끝낼 셈이야?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 상태로 내버려 뒀다간 두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말 것이다.
갈등은 풀어야 한다. 풀어내야만 한다.
엉킨 실을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럽게 풀어내듯이.
이제는 중개(仲介)자역을 넘어 중재(仲裁)자역까지 맡아야 하는, 속된 말로 아주 엿같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나는 여기서 더 이상 제 3자가 아니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스터디부는 여전히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일을 정해져 있다.
“이사장님, 꼭 데려올게요.”
이사장님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 * *
나름 호기롭게 이사장실을 나섰다. 하지만 머지않아 내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윤희가 이 학교에서 갈 만한 곳이 어디일까?
무턱대고 우리 반 교실에 들른 직후에 그런 의문이 피어올랐다.
의문만 있고 정답은 보이지 않았다.
수학이라면 문제에 맞는 공식을 찾으면 되고, 영어나 국어는 지문의 키워드와 핵심을 파악하면 된다. 그러나 이건 공부가 아니다.
혹시나 싶어 다른 교실도 확인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아무리 그래도 교무실이나 식당은 아닐 테고.
나는 발품을 팔면서 혼자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문제는 방과 후라서 혼자 있을 만한 장소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구름다리를 건너 별관으로 향했다.
층마다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윤희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처음 대화를 나눴던 장소에도.
설마 집에 가버렸나?
생각해 보니 이사장실에 들어왔을 때 가방을 벗지 않은 상태였다.
정말로 집에 가버렸다면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최후로 밀어 넣었다.
아마 윤희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이대로 집에 가버리면 이 갈등은 절대로 풀 수 없을 거라는사실을.
눈치 빠른 윤희가 그걸 모를 리 없지.
그 외에 평소에 발길이 잘닿지 않는 곳도 둘러보았지만 사람 실루엣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창밖으로 교정을 내다보았다. 부 활동을 하는 몇몇 애들이 간간이 보일 뿐 그게 누구인지 식별하기 어려웠다.
건물 안에서 못 찾았다면 밖에서 찾아보는 수밖에.
우선 바깥에 있는 매점으로 가보았다. 매점은 이미 문을 닫았고, 역시 윤희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운동장으로 내려가 보았지만 허탕이었다.
이제 남은 곳은 건물 뒤편 화단뿐.
만약 여기에도 없으면 어떡하지…….
나는 최악의 가정을 털어내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런 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5시 30분.
“후우.”
이미 여기저기 돌아다닌 탓에 이마는 땀으로 흥건한 상태였다.
“진짜 둘 다 이래저래 사람 고생시키네…….”
나는 소매로 땀을 대충 닦아낸 뒤 뒤편 화단을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설마 여기마저도?
다리에 힘이 풀리려고 했지만 억지로 버텼다. 아직 구석까지 확인해 보지 않았으니 절망하기는 이르다!
나는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방향은 멈춰 선 물레방아에 가려진 반대쪽이었다.
나는 한 발짝씩 천천히 접근했다. 물레방아와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점차 명확해졌다.
울음소리였다.
나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상대를 확인했다. 연보랏빛 머리칼을 지닌 윤희였다.
윤희는 어깨를 떨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항상 시집을 읽고, 혼자여도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없었다.
대신 상처 입은 나약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가가야 했다.
여기서는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으니까.
나는 조심스레 거리를 좁혔고, 윤희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눈가를 닦고 고개를 돌렸다.
“뭐야.”
아까 이사장실에서 보여준 기세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윤희가 코를 훌쩍였다.
“꼴불견이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긴. 맨날 혼자서 당당하게 지내던 애가 이러고 있는데.”
이럴 때에도 여전히 눈치가 빠르구나.
“솔직히 그런 생각도 좀 들었어.”
시원하게 인정했다. 지금 이 장소에서, 거짓은 통하지 않으니까.
“영감탱이가 찾아오라고 했지?”
윤희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그래서 나는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찾으러 간다고 했어.”
나는 단호하게 일렀다.
윤희가 눈두덩을 문지르고 나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맑지 않았다.
한 가지 어휘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의 기색이 내비치고 있었다. 그저 슬픔도 아니었고, 그저 분노도 아니었다.
불긋한 석양이 화단에 색채를 입혀가고 있었다. 고동색이었던 물레방아가 붉게 물들어갔다.
나와 윤희도 불그스름하게 젖어 들어갔다.
“너도 이기적이야.”
많은 말들이 생략되어 있었지만 그 맥락을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가슴을 후비는 말이기도 했다.
여기서 아니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쯤은 윤희가 아니어도 충분히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
“맞아.”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윤희가 손등으로 볼을 닦아내고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나는 다시 입술을 열었다.
“이것도 내 자기 만족이지. 네가 얘기한 그 수수께끼 같은 구절을 푼 것도 어쩌면 나를 위했던 일인지도 몰라.”
윤희가 쓸쓸한 표정을 내비쳤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나에게는 아직 할 말이 더 있으니까.
“나는 이사장님과 너를 화해시키기 위해 여기로 왔어. 너에겐 이것마저 자기만족으로 보이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심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나는 너와 이사장님이 화해했으면 좋겠어!”
이 말에는 거짓 한 점 섞여 있지 않다.
아까 본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 안타까웠으니까.
일순 윤희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바닥으로 눈길이 내려갔다.
고르게 내뱉는 호흡.
다시 눈을 들었을 때는 아까보다 다소 진정된 모습이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뭔데?”
되묻자 윤희가 나직한 음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넌, 나를 필요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