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10/110)

* * *

노아 선배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공부를 종용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요즘 굉장히 우울했다.

보나 마나 선배는 졸업 시험에 좋은 점수로 통과할 것이고 한 달 후면 졸업하겠지. 그럼 나는 노아 선배 없이 무려 1년을 아카데미에서 견뎌야 하는 것이다. 길어야 한 달 못 보는 방학 동안에도 힘들었는데 1년이라니, 이건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어흑…….”

멀쩡히 공부하고 있던 내가 이마를 짚으며 우는 소리를 내자 도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울어?”

“아냐…….”

“울기 직전 같은데. 울지? 우는 거 맞지? 왜 울어?”

“아니라고 했지.”

내가 표정을 굳히고 낮은 소리로 말하자 도라는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펜을 몇 번 움직이다 말고 책을 덮어 버렸다. 지금은 집중이 안 되니 조금 머리를 식힌 다음에 하는 것이 좋겠다. 절대로 공부하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뭐야, 공부 안 해?”

도라가 고개를 이쪽으로 힐끗 기울이며 묻자 내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선배 없이 1년을 보내나 유급해서 2년을 보내나 그게 그거지 뭐.”

“미쳤구나.”

“응, 사랑에 미쳤지.”

“아니, 그냥 돌아 버린 것 같은데.”

도라의 싸늘한 시선을 무시한 나는 서랍을 뒤져 손수건을 꺼냈다. 자수틀에 끼운 하얀 천에 실을 꿴 바늘이 박혀 있었다.

나는 졸업식에 노아 선배에게 선물할 생각으로 몇 주 전부터 손수건에 자수를 놓고 있었다. 아직 졸업 시험도 보지 않았는데 너무 이른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손이 훨씬 느리기 때문에 졸업식 전까지 손수건을 완성하려면 일찍 시작해야 했다.

“……뭐야, 이거 해파리 아니야?”

바늘에 찔린 손가락을 빨아 가며 열심히 수를 놓고 있는데 또 슬금슬금 다가온 도라가 내 꽃 자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려치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장미꽃이거든!?”

이걸 수놓느라 바늘에 찔린 손에서 피가 줄줄 나는 바람에 검술학부 학생도 아닌데 손가락에 반창고를 감고 다니게 되었고, 그걸 본 노아 선배가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단 말이야. 손수건을 주면서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필사적으로 변명했다고. 근데 겨우 만든 내 손수건에 지금 뭐라고?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게 장미꽃보다는 교과서 삽화에서 본 마물의 일종과 닮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마음과 정성이지. 노아 선배도 그렇게 생각할걸.

“해파리 같은데…….”

도라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면서도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도라를 매섭게 째려본 나는 서글픈 기분으로 다시 굼뜬 손을 움직여 수를 놓았다.

하얀 천 위의 해파리…… 아니, 장미꽃이 서서히 형태를 갖춰갔다.

* * *

역시나 이변은 없었고 노아 선배는 졸업 시험을 통과했다. 아카데미 사상 최고의 점수라고 교수님들이 흥분 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복도를 지나다 들었다.

분명 대단한 일었지만 막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노아 선배 말고 누가 수석으로 졸업을 하겠는가.

“우와, 진짜 대단하다. 축하해요.”

나는 책장을 넘기다 말고 놀란 얼굴로 박수를 쳤다.

내가 3학년, 선배들이 4학년이 된 지금도 독서 동아리는 이어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4학년들은 졸업 준비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선배들은 계속 동아리 활동을 했다. 지난 1년 동안 빠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잘 모르겠다. 다들 사람이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차석은 누구예요?”

“나다…….”

내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글로리아 선배가 잔뜩 열받은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젠장, 단 한번이라도 저놈을 이겨 보려 했는데, 그놈의 대륙 전쟁…….”

그녀가 주먹을 쥔 채 이를 갈자 노아 선배가 비웃음을 흘렸다.

“웃었냐, 지금?”

노아 선배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으르렁거리는 글로리아 선배의 목소리 위로 플로라 선배의 낭랑한 목소리가 겹쳐졌다.

“그리고 3등은 나야.”

“와, 선배들이 상위권을 독식하셨네요. 멋지다.”

“케이트 너도 진급 시험 통과했으니까, 내년에 꼭 수석 해.”

글로리아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그건 조금 무리일 것 같다는 말을 삼킨 채 어색하게 웃었다.

“어흐, 드디어 졸업이다!”

글로리아 선배가 탄성을 터뜨리며 책상 위로 엎어지자 플로라 선배가 몸을 살짝 기울이며 노아 선배에게 물었다.

“졸업하면 우리는 바로 신성국으로 같이 갈 것 같은데. 노아 너는 제도로 돌아갈 거랬지? 황실 마법부에 들어간다고?”

“응.”

“마법학부 교수님들 중에 너를 원하시는 분들이 엄청 많던데, 상급 과정을 밟아 볼 생각은 없고?”

“……없어.”

노아 선배는 평소보다 단호한 몸짓으로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들에게 상급 과정으로 끌려간 졸업생들에 대한 괴담은 아카데미 내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었다. 상급 과정에 몸을 담는다는 것은, 교수님의 노예가 된다는 것과 동의어라나.

“그건 그렇고, 우리가 다 졸업하면 케이트는 어떡해?”

플로라 선배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나를 돌아보았다.

글로리아 선배도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게, 다음 주 졸업식에서 우는 거 아냐? 어? 못 달래 준다?”

“안 울어요.”

내가 단호한 태도로 응수하자 글로리아 선배는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다들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통과하셨는데 축하해 드려야죠.”

“오오오오, 케이트! 감동이다!”

글로리아 선배가 장하다는 듯 소리치며 내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노아 선배와 플로라 선배도 기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머리 헝클어져요.”

나는 무뚝뚝하게 말하면서도 글로리아 선배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이제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내일은 선배들의 졸업식이다.

교과서를 정리하던 나는 우울한 표정으로 달력을 바라보았다.

나는 교과서를 책상 위에 대충 올려놓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한참을 뒤척이다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일모레면 선배들은 더 이상 아카데미에 없고, 나는 졸업을 준비해야 하는 4학년이 된다.

그 사실이 이렇게까지 우울할 수가 있나 싶었다. 같은 아카데미 학생이라 매일같이 얼굴을 볼 수 있는 건 좋았는데, 하필 학년이 달라서.

내가 딱 1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노아 선배가 원하는 대로 이름을 불러 줄 수 있고 졸업도 같이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내일모레부터 펼쳐질 일상을 상상해 보았다.

아침에 기숙사 방을 나서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노아 선배가 없다. 수업이 끝나도 나를 데리러 오는 노아 선배가 없다. 주말에도 선배와 놀거나 데이트를 할 수 없다. 손도 못 잡고, 안지도 못 하고 키스도 못 한다.

이런, 생각보다 엄청 구체적이잖아. 새삼 내 일상에 노아 선배의 지분이 많구나. 젠장, 눈물 나올 것 같아…….

“……윽.”

나는 진짜로 목이 메는 것을 느끼며 눈가를 마구 문질렀다.

울면 안 돼. 내일 눈이 부을 거야.

내일이 노아 선배가 아카데미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인데, 괜히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선배들이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이룬 졸업인데 멋지게 보내 줘야지.

힘겹게 울음을 삼킨 나는 코가 시큰거리는 것을 무시하고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이른 잠을 청했다.

* * *

다행히 나는 그때 바로 잠들 수 있었고 퉁퉁 붓지 않은 눈으로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졸업생들 사이에 끼어 있는 은색 머리카락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아련한 표정으로 그쪽을 바라보느라 대머리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의 축사가 끝난 뒤엔 학생회장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참, 지난 해 학생회장은 플로라 선배다.

그녀가 지난 1년간 학생회 일과 독서 동아리 일, 그리고 졸업 시험 준비를 어떻게 병행한 건지는 나도 모른다.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겠다며 동아리 사람들 보고 자길 뽑아 달라고 할 때만 해도 그럼 이 동아리는 사라지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아리 부장도 학생회장도 다 할 생각이었던 거다. 그리고 플로라 선배는 보란 듯이 학생회장이 되었다.

다시 느끼는 거지만 선배는 참 대단한 사람 같다. 정말 열심히 산다.

“그리운 교정을 떠나려니 졸업생 일동 모두…….”

플로라 선배가 매끄러운 목소리로 글을 읽다 말고 잠깐 숨을 몰아쉬었다. 몇 초 후 다시 입을 열어 글을 읽어 내리는 선배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졸업생들 중 몇몇이 눈가를 훔치는 것을 보자 괜히 나까지 눈가가 시큰거렸다.

지루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감동적인 졸업식이었다.

“……어?”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눈가를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그사이 은색 머리카락이 시야에서 사라진 탓이었다.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죄송합니다.”

에코에게 부탁해 준비한 커다란 꽃다발을 양손에 든 채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니는 건 꽤 고역이었다.

노아 선배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니 있을 만한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은 더더욱.

역시나, 내 예상대로 노아 선배는 학사모를 쓴 채 후원에 서 있었다. 후원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하얀 고양이가 선배의 손에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어흠!”

내가 헛기침을 하자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던 선배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케이트.”

“졸업 축하해요, 선배.”

입꼬리가 떨리는 것을 무시한 채 노아 선배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꽃의 이름과 꽃말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면서 아는 척을 하려고 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결국 나는 꽃다발을 받아 드는 노아 선배를 향해 그저 웃기만 했다.

“선배, 이것도…….”

나는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찾은 손수건을 내밀었다. 엊그제 겨우 완성했는데, 여전히 장미꽃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모양새였다. 도라는 완성품을 보고서도 해파리라고 놀려 댔었다.

노아 선배는 수가 놓인 손수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직접 한 거야?”

“네. 선배한테만 주는 거예요.”

시간이 없어서 하나밖에 못 만들었거든요.

내가 흐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 주는 거라고.”

“네.”

“너무 예쁘다, 고마워.”

심미안이 약간 의심되는 발언이었지만, 감격한 표정을 보니 그냥 내가 만들었으니 예쁘다는 소리 같았다. 노아 선배가 손수건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던 나는 아직도 손수건을 꼭 쥐고 있었다.

“선배.”

“……왜 그래?”

내가 잠기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자 근처 벤치에 꽃다발을 내려놓은 노아 선배가 나와 시선을 맞추며 내 얼굴을 감쌌다. 걱정 어린 금색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젠 남학생 기숙사 앞에서 기다려도 선배는 오지 않겠죠.”

참으려고 했는데 기어코 눈물이 터졌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 얼굴을 감싼 선배의 손을 적셨다.

“케, 케이트.”

내가 끝내 눈물을 보이자 노아 선배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이제는 수업 끝나고 같이 복도에 서 있지도 못하고, 교실에 단둘이 앉아 있지도 못하고, 식당에서 같이 밥도 못 먹고……. 흐으윽.”

나는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흐느꼈다.

“지금껏 함께 했던 것들을 다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너무 기분 이상하고 허전해요.

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기쁘게 보내 줘야 하는 건 알아요. 선배의 노력이 보답받는 날이니까…….”

나도 선배를 이렇게 보내 주고 싶지 않은데, 자꾸 눈물이 나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횡설수설 중얼거리며 노아 선배의 옷깃을 잡았다.

선배가 유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줄줄 나는데.

선배랑 함께 지낸 시간이 너무 아쉬웠다.

내가 등신같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을 제법 충격적인 표정으로 바라보던 노아 선배가 입을 열었다.

“……내가 다시 입학할까?”

“으허어어엉.”

아까부터 울먹거리고 있던 나는 대답 대신 아예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내 울음소리가 커지자 선배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나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길바닥에서 눈물 파티를 하는 나와 그 앞에 서 있는 선배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하나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선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꺼이꺼이 울었다. 그 바람에 깨끗했던 교복 셔츠가 내가 흘린 눈물에 형편없이 젖어 들었다. 다행히 선배는 나를 달래느라 눈치채지도 못한 것 같았다.

“크흥.”

호흡이 조금 진정될 무렵 창피함이 나를 덮쳤다.

나는 약간의 훌쩍임과 함께 선배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눈가를 문지르니 조금 따가웠다.

“내 지난 시간에 선배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같이 아카데미에 다녀서 정말 즐거웠어요. 내 학창 시절을 더없는 행복으로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원래 꽃다발과 손수건을 건네면서 멋있게 말해 주려고 했는데. 그래도 지금이라도 기억난 게 어디야.

나는 부끄러움에 중얼거리다시피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노아 선배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선배가 손수건을 한 손에 소중히 쥐고 미소를 지었다.

“네가 없는 이번 봄은 이걸로 버틸 수 있겠다.”

“그럼 나머지는요?”

“봄이 아니더라도 항상 이걸 볼게.”

노아 선배가 내 손을 꼭 쥐고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나는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절박한 표정으로 선배의 양손을 꽉 쥐었다.

“여, 연락도 자주 해요. 나랑 통신도 하고 한 달에 한 통씩 편지도 써 줘요.”

“그럴게.”

내 잡다한 요구에도 노아 선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

노아 선배가 주머니를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검은색의 네모난 케이스였다. 크기가 무척 작은데 뭘 넣는 용도일까? 목걸이는 아닐 테고, 팔찌도 아니고, 반지……?

잠깐, 반지?

“어……?”

눈부시게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눈앞에 둔 내가 멍청한 소리를 내자, 노아 선배가 그 반지보다 더 눈부시게 웃었다.

“케이트, 졸업하면 나랑 약혼해 줄래.”

“이, 이게 뭐야……. 이게 뭐예요.”

나는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또 울어.”

선배가 낮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내 젖은 눈가를 쓸었다.

나는 훌쩍거리며 선배의 손에서 반지를 낚아채 손가락에 끼웠다. 머릿속이 새하얘져 약혼반지를 어느 손가락에 끼는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그냥 아무 데나 끼웠다.

“이건 또, 어, 언제 샀어요.”

“준비한 지 좀 됐어. 아, 무릎 꿇어야 하는데 까먹었다.”

내가 다시 울먹이자 선배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래 봬도 긴장했거든. 다시 꿇을까?”

“됐어요. 그리고 긴장할 게 뭐가 있어요. 내가 승낙할 거 다 알면서.”

그렇게 핀잔 섞인 말을 하는데 눈가에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나는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로 노아 선배를 올려다보았다.

“진짜 좋아해요.”

부드럽게 미소 짓는 얼굴로 선배가 내 젖은 눈가에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그래? 나는 사랑해.”

“그렇게 말하면 제가 뭐가 돼요. 반지까지 받았는데.”

나는 키득거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딱 1년만 있으면 졸업이잖아. 편지도 자주 하고 방학에 만나면 되지.”

내가 아직도 젖은 눈을 한 것이 걱정되는지, 노아 선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너 기다릴게. 그러니까 너도 사랑한다고 해 줘.”

지금 보니 선배의 눈가도 약간 붉어져 있었다. 내 앞이라 간신히 참고 있는 것이 티가 났다.

행복한 표정으로 손에 낀 반지를 바라보던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선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도 선배 많이 사랑해요.”

그렇게 속삭인 나는 흐리게 웃으며 양팔로 선배를 끌어안았다.

익숙하고 따뜻한 품에 파고드니, 아직 2월인데도 전혀 춥지 않았다.

<짝사랑을 끝내는 법>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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