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어떡해…… 어떡해요.”
나는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노아 선배가 나를 달래듯 다정한 동작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괜찮아, 겨우 한 달인걸.”
“한 달은 30일이에요. 그동안 얼굴을 못 보는 거잖아요.”
내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선배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노아 선배는 애써 웃으며 징징거리는 나를 다독였다. 그러는 자신도 무척 섭섭해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통신구 있댔지? 그걸로 연락해.”
“네에…….”
“하하하.”
우리의 신파극 옆에서, 곧바로 나와 같은 마차를 타고 우리 영지로 가기로 한 글로리아 선배가 승리자의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었다.
그게 꽤나 약이 올랐는지, 우울한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던 노아 선배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한 달이나 있는다며? 완전 민폐 아니야?”
“풉, 혹시 그거 질투? 네가 그래 봤자 나는 30일 내내 케이트랑 한 집에서 부대끼면서 있을 거고요.”
왜 불똥이 자기한테 튀냐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한 글로리아 선배가 한술 더 떠 약 올리듯 혀를 낼름 내밀었다.
이대로 두면 정말 결투라도 일어날 것 같아서, 나는 둘 사이를 몸으로 가로막았다.
“어우, 갑자기 왜 시비예요. 이미 아빠랑도 다 이야기했으니까 괜찮아요.”
“네가 집에서 혼자 쓸쓸하게 숙제하는 사이 나는 케이트 옆에서 알콩달콩…… 우읍.”
노아 선배에게 핀잔을 주는 것과 동시에 나는 계속 얄밉게 종알거리는 글로리아 선배의 입을 막았다.
어느새 검 모양의 인장이 새겨진 마차가 교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쪽을 힐끗거리던 나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
“……꼭, 연락하세요.”
내가 장갑 낀 손으로 선배의 손을 잡고 웅얼거리자 선배는 애써 웃는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안녕.”
선배는 내게 손을 흔들고는 교문 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이 아련해 괜히 눈가를 비볐다.
“자, 가자, 가자, 케이트.”
아직도 노아 선배를 향해 혀를 낼름거리고 있던 글로리아 선배가 내 팔짱을 끼고 나를 이끌었다.
멀어져 가는 유리엘 후작가의 마차를 떨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내게 글로리아 선배가 말했다.
“아직도 우울해? 진정해, 노아스 죽은 거 아니잖아.”
“그냥 방학 같은 거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건 좀…….”
우울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다시 들자 사람들 틈에서 붉은 머리카락이 살랑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걸 좇아 고개를 돌리니 추워서 코끝이 빨개진 아르한이 보였다.
나는 얼른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안녕, 아르한. 오랜만이야.”
“어, 누나.”
붉은 눈동자가 반가움과 놀라움을 담고 있었다.
아르한과 내 손뼉을 짝 소리 나게 맞부딪친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장갑을 꼈다.
“어으, 추워.”
“이번에도 내 마차 타야 하는 건 아니지?”
“뭐래, 이번엔 손님도 있는데 그럼 안 되지.”
아르한이 놀리듯 말하자 나는 장난스럽게 그의 다리를 툭 찼다.
“손님? 누나랑…… 선배?”
손님이라는 말에 당황하던 아르한은 내 뒤에 서 있는 글로리아 선배를 보곤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글로리아 선배도 어색하게 손을 들어 보였다.
“안녕.”
“아, 네.”
“…….”
어색해라.
장갑 안에서 손가락을 꼬물거리던 내가 고개를 돌렸다.
“어, 저기 우리 마차 왔다. 선배, 가요.”
때마침 우리 가문의 마차가 교문을 통과해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쪽을 향해 달려가며 아르한에게 소리쳤다.
“방학 중에 한번 놀러 와!”
“응, 그래. 놀러 와.”
옆에서 글로리아 선배가 어색하게 말을 보탰다.
마부에게 인사를 하고 마차에 올라탄 나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하고 글로리아 선배에게 물었다.
“둘이 싸웠어요? 같은 학부면서 왜 말도 안 해요.”
글로리아 선배는 웬만해서는 누구랑 어색해하는 법이 없는데. 더군다나 아르한이랑 글로리아 선배는 성격도 나름 비슷한 것 같고 말이지. 동족 혐오…… 아니, 동족 어색함 같은 건가.
“원래도 말 잘 안 해. 그냥 좀…… 어색해.”
“둘이 대련하다 아르한이 졌다고 그러던데, 혹시 그거 때문이에요?”
“……그랬었나? 아니, 그건 아냐.”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는 글로리아 선배에게 내가 물었다.
“이상하네요. 쟤 잘생기지 않았나?”
“나는 귀여운 게 좋아.”
선배는 쓸데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걔한테는 미안하지만 걘 귀엽지는 않은 것 같아.”
“……아, 그래요. 잘 전해 줄게요.”
그 대화를 끝으로 피곤해진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마차 안에서 보낸 시간이 한나절을 넘어갈 무렵 창밖의 풍경이 나무로 울창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추위에 나뭇잎도 다 떨어지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였지만.
“우와, 다 나무로 가득해.”
나는 신기하다는 듯 창문 밖을 내다보는 선배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추우니까 얼른 닫으라는 말과 함께.
“그러다 다쳐요.”
나에게 저지당하면서도 선배의 시선은 창문 밖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머쓱함에 머리를 긁으며 물었다.
“이런 곳은 처음 와 보세요?”
“응응.”
글로리아 선배가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를 벗어나 본 적이 없을 테니 물론 그렇겠지. 로웰 왕국으로 유학을 갔었다 해도 신학교는 그곳 수도에 있었을 테니까.
모든 게 다 신기하다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이 참 의외라고 느껴졌다.
나는 턱을 괴고 있던 팔을 내리고 글로리아 선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정말 집에 안 가 보셔도 괜찮아요?”
듣기로는 여름 방학도 로웰 왕국에서 보내다 개학하자마자 바로 아카데미로 복귀한 것 같던데 말이지. 그럼 거의 1년 동안 집에 안 들어간 게 되지 않나?
내 걱정과는 달리 태연한 표정의 글로리아 선배가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 내가 들어가든 말든 아무도 신경 안 쓸걸.”
아, 동생들은 좀 보고 싶긴 하다.
글로리아 선배가 창밖을 내다보며 눈알을 도록 굴렸다.
“그래도 뭐, 통신구가 있으니까.”
“……그럼 됐긴 한데, 그래도 봄 방학엔 가 보세요.”
글로리아 선배는 대답 대신 빙긋 웃기만 했다. 나는 대답 듣기를 금방 포기했다. 알아서 하겠지.
“아, 여름에 왔어야 하는 건데.”
나는 온통 하얀색으로 물든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투덜거렸다.
“지금은 나뭇잎도 다 떨어졌고 추워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거든요. 거리도 사람 없이 텅텅 비었을 테고.”
“괜찮아, 그럼 눈싸움 하면 되지. 나 실내에 있는 것도 좋아해.”
글로리아 선배가 호기롭게 대답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하나로 묶어도 긴 백금색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팍 치고 지나갔다.
“아.”
따가운 뺨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선배가 편안하게 풀어진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마차도 우리밖에 없네, 좋다. 으응, 벌써 힐링되는 것 같아.”
다짜고짜 뺨을 얻어맞은 셈이었지만 그 모습이 좋아 보여서 굳이 뭐냐고 따지지는 않았다.
* * *
마차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멈추었다. 마차에서 내린 글로리아 선배가 숨을 잠시 멈추더니 어느새 새카맣게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기 엄청 조용하고 좋다. 우앗, 저기 별도 보여.”
“뭐, 시골이니까요. 자, 갑시다. 이리 오세요.”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가리키는 글로리아 선배의 어깨를 쭉쭉 밀었다.
대문을 지키던 기사가 내 얼굴을 보곤 문을 열어 주었다. 날이 워낙 추운지라 아무도 안 나와 있을 줄 알았는데, 저택 문 앞에 아빠가 나와 있었다.
“아이, 아빠, 추울 텐데 왜 나왔대…….”
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걸음을 재촉하자, 문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글로리아 선배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 아버님이셔?”
“네, 왜요?”
대충 그렇게 묻자 선배는 입가를 가린 채로 떠듬떠듬 대답을 내뱉었다.
“……잘생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