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110)

과연 녹차 케이크는 안 달다 못해 밍밍했다.

그래서 나는 깨작거렸지만 맛있게 먹는 노아 선배를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나는 포크로 푸르죽죽한 색의 케이크를 찍은 뒤 선배의 입가에 들이밀었다.

“아.”

두 눈을 끔뻑거리던 노아 선배가 푸스스 웃으며 입을 벌려 케이크를 받아먹었다.

“흐흐흥.”

한 손에 포크를 꼭 쥔 나는 테이블 아래로 발을 동동 구르며 배시시 웃었다.

분홍색 입술 주위에 하얀 크림이 묻어 있었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그냥 너무 행복했다.

참 신기하다. 선배를 본 지 거의 2년이 되어 가고 이제 우리는 사귀는 사이인데, 어째서 아직도 처음 만난 것처럼 설레는 건지.

케이크를 소화할 겸 거리를 걷다 광장의 시계탑을 보니 12시가 다 되어 갔다.

우리가 손을 잡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레스토랑이었다. 인기가 무척 많은 모양인지 실내에는 자리가 없어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야 했다.

“글로리아 선배가 알려 준 곳이에요. 여기 음식이 맛있더라고요.”

“응, 나도 알아. 전에 몇 번 와 봤어.”

노아 선배가 내게 메뉴판을 건네며 대답했다.

“그래요? 여기 생선이 참 맛있죠. 전 생선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기 건 맛있더라고요.”

메뉴판을 훑던 내가 활짝 웃으며 주문을 마쳤다.

“오늘은 날이 조금 덥네요.”

나는 하늘 높이 뜬 해를 올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눈이 부셔서 고개를 돌리니 이번엔 또 노아 선배가 너무 찬란했다.

“선배 진짜 예뻐요.”

“네가 더.”

“글쎄요.”

높게 묶은 찬란한 은색 포니테일을 바라보며 내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선배는 봄과 여름에는 머리를 묶고 다니다가, 추운 겨울이 되면 풀곤 했다. 예전부터 그 차이를 남몰래 즐기곤 했다. 겨울이 되고 기말고사를 볼 즈음이 되면 머리를 풀고 다니는 청초한 모습의 노아 선배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묶고 다니는 청량한 선배도 좋지만.

“귀걸이는 왜 낀 거예요? 혹시 마정석, 그런 거예요?”

하얗고 가느다란 목 언저리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보석 귀걸이를 빤히 바라보던 내가 물었다.

“아.”

그에 선배는 민망한 듯 피식 웃더니 수줍게 대답했다.

“그냥, 예뻐서.”

생각보다 귀여운 이유였다.

“그렇네요, 예뻐요.”

그랬다. 확실히 파란색 보석이 달린 귀걸이를 한 선배에게선 신비로운 분위기가 났다. 귀를 뚫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단정하고 반듯한 평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뭔가 정말 마법사 같은 느낌.

저기서 더 꾸미다니, 저 정도면 본인이 절세의 미인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참으로 요망하도다.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귀걸이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던 내게 선배가 물었다.

“전에 동그란 안경 쓰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안 써?”

“아, 그건 공부할 때만 써요.”

시력이 안 좋긴 하지만 상시 안경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구나. ……귀여웠는데.”

그렇게 말한 노아 선배는 부끄러운지 애먼 물만 들이켰다.

누가 누구보고 귀엽대.

나는 테이블 너머로 손을 뻗어 선배의 하얀 뺨을 쿡 찔렀다. 의외로 말랑한 촉감이 느껴졌다. 눌리는 감촉이 상당히 중독성 있었다.

“그런데요, 선배. 선배가 황실 마법사로 내정되어 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요.”

연신 선배의 볼을 쿡쿡 찔러 보던 내가 말을 꺼냈다.

유리엘 후작가는 황실에 충성하는 가문이니, 선배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성향을 따라야겠지.

선배는 스테이크를 썰다 말고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을 생각하고는 있어.”

“으음, 아빠가 허락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졸업하고 마탑에 지원하고 싶거든요.”

나는 양 볼을 부풀린 채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중얼댔다.

“선배는 황궁으로 출퇴근하는데, 저희가 결혼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맞벌이 부부.”

“그렇네.”

명쾌한 대답이 돌아오자 나는 괜히 머쓱해져 물을 마셨다.

그렇네, 그렇네……. 간단하네.

“괜한 걸 걱정했네, 내가.”

분명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선배는 마탑에 자주 가셨잖아요, 어떤 곳이에요?”

멀뚱히 눈을 깜빡거리던 선배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대답했다.

“……재미있는 곳이지. 연구하기도 좋고.”

어째 대답이 늦은 것 같은데?

나는 고래를 갸웃하다 말고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마탑주는 엄청 나이 많은 현자라면서요? 200년 전 제국 전쟁에 참전했었다고 교과서에서 봤어요.”

“탑주님은…….”

선배는 말끝을 흐리며 물컵을 기울였다.

“대단한 분이시지.”

그게 끝? 서대륙 마탑의 주인이자 현자, 마법진 발달에 지대한 기여를 한 전쟁 영웅한테, 대단하다는 말이 끝이야?

뭔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는데, 내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말을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뭐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선배를 훑던 내가 이내 표정을 풀었다. 그래, 귀여워서 봐 준다.

“덥긴 한데 날은 참 좋네요.”

내가 강한 햇살에 두 눈을 깜빡이자 노아 선배가 물었다.

“눈 부셔? 자리 바꿀래?”

“아뇨! 따뜻해서 좋아요.”

나는 따뜻한 햇살을 쬐며 두 눈을 휘어 활짝 웃었다.

햇볕에 머리카락이 따끈하게 데워지고 있었다.

“만져 보세요.”

내가 머리를 들이밀자 선배가 손을 뻗어 따뜻하게 달궈진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러곤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따뜻하다.”

“그죠.”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웃음을 지었다.

오늘 선배가 너무 예쁘게 입어서인지 자꾸만 이쪽을 흘끗거리는 사람들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그것 빼고는 모든 게 완벽했다.

어디선가 미풍이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나는 살며시 눈을 감고 웃었다.

부디 이 행복한 평화가 오래 갔으면 좋겠다.

* * *

누가 돈을 낼지 옥신각신한 끝에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서니 햇볕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어 있었다.

“이거 하나 주세요.”

나는 길거리에서 솜사탕 하나를 샀다. 여름 더위에 조금 녹아 있었지만 먹을 만했다.

아쉽다. 선배가 단 걸 좋아했다면 하나를 나눠 먹는 건데. 그러다 막 간접 키스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뭐.

아우, 주책이야 정말.

나는 솜사탕이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며 달아오른 뺨을 작게 두드렸다.

“정말 안 드시게요?”

내가 솜사탕을 슬쩍 내밀자, 선배는 얼굴을 감싸고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네가 먹던 걸 어떻게 먹어…….”

은색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귀가 분홍색을 띠고 있었다.

나는 그 귀에 입을 맞추고픈 것을 간신히 참으며 신음 섞인 말을 내뱉었다.

“……키스하고 싶게 만들지 마세요.”

“?”

노아 선배는 당황스레 두 눈만 깜빡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결국 빠르게 입술을 훔치고 떨어졌다.

방금 솜사탕 먹어서 단맛 날걸.

나는 고장이 난 것처럼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는 노아 선배를 바라보며 입술을 닦았다.

“……이건 괜찮은 것 같아.”

선배가 묘한 표정으로 제 입술을 만지작거리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속삭였다.

“한 번만 더 해 줘.”

“아하하.”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노아 선배의 목에 팔을 둘렀다.

보는 눈이 많고 탁 트인 야외라 짧게 입만 맞추고 떨어지는데, 사람들 사이로 보기 드문 꽃잎 같은 색의 머리카락이 언뜻언뜻 비쳤다.

“어, 플로라 선배다.”

사복을 입은 플로라 선배 옆에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둘이 화해했나? 다행이다.

속으로 안심한 나는 플로라 선배에게 인사하려 목을 가다듬으며 손을 들었지만, 둘은 너무 빠르게 스쳐 지나가 버려서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머쓱하게 손을 내리고 머리를 긁었다.

“왜 그래?”

“아, 저기 플로라 선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지나쳐 버려서요.”

플로라 선배를 보지 못했는지 노아 선배가 묻자, 나는 민망함에 괜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 * *

“얼른 오세요!”

해가 지기 시작하자, 나는 노아 선배의 손을 붙잡고 근처 언덕으로 향했다. 주중에는 노을이 지는 시간까지 같이 있을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작은 언덕 위에는 이미 노을을 보려는 연인들이 몇 쌍 와 있었다.

“전 노을 보는 거 엄청 좋아해요.”

선배의 팔짱을 끼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나는 노을에 주홍빛으로 물든 노아 선배의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소리 내어 웃었다.

“와, 이거 봐요. 선배 머리가 금발처럼 보여요.”

선배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넘겼다.

“그러게, 너랑 같은 색이네.”

엄밀히 말하자면 노을에 물든 선배의 오렌지빛 감도는 머리색과 내 샛노란 머리털은 달랐지만, 그래도 둘 다 금발의 범주에 들어가긴 하니 넘어가기로 했다.

이왕 금발일 거면 글로리아 선배처럼 반짝거리고 윤기 나는 금발이면 좀 좋아. 나는 해바라기처럼 노란색을 띤 내 머리카락을 불만스레 만지작거리다 관두었다.

에잇, 나 원래는 외양에 잘 신경 안 쓰는 타입이었는데. 진짜로. 아카데미 오기 전엔 거울도 잘 안 봐서 리타가 얼마나 잔소리를 했는지 모른다.

방에 거울을 새로 사다 놓은 것도, 생전 관심도 없던 화장품 정보를 도라에게 물어보기 시작한 것도, 생각해 보면 다 노아 선배를 본 다음부터였다.

언덕을 내려가는 동안에도 노아 선배의 은발은 주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름이라 저녁에도 더웠지만 내내 잡고 있던 손의 온기가 좋아서 손을 놓지 않았다.

더운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넌 왜 말을 그렇게 해!”

나는 그에 화들짝 놀라 곧장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길 한복판에서 두 남녀가 싸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 주위로 빽빽하게 몰려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제법 심각한 것 같았다.

나는 괜히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슨 일일까요.”

“그러게.”

아무리 그래도 길 한복판에서…….

혀를 쯧쯧 차며 지나쳐 가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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