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110)

나는 입을 딱 벌리고 선배를 올려다보았다.

어, 어어? 어어. 어라.

노아 선배는 애써 울음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한 떨기 백합꽃처럼 처연하고 가련한 모습이었다. 머리를 숙이고 있던 탓에 헝클어진 은색 머리카락 탓에 더 그랬다.

평소에 선배에게서 느꼈던 단정함이나 약간의 차가움은 수용성이었나 보다. 눈물 흘리니까 다 없어지네.

아차, 지금 선배 미모에 감탄할 때가 아닌데.

나는 재빨리 벌어진 입을 닫고 진지한 표정을 장착했다.

“귀찮게 안 할 테니까…….”

바들바들 떨리는 손길로 내 손끝을 간절하게 붙잡은 선배가 말을 이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고칠 테니까, 나 안 피하면 안 될까.”

“…….”

멘트만 보면 선배가 나를 짝사랑하는 줄 알겠네, 실제론 반대인데.

아니, 그런데 약간 정도를 모르고…… 너무 시도 때도 없이 예쁜 거 아닌가, 이건?

닫았던 입이 다시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선배의 처연한 우는 모습은 파급력이 실로 엄청났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선배를 싫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요.”

얼굴을 가리고 가쁜 숨을 내쉬던 노아 선배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정말?”

“윽, 네.”

선배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자 그 미모에 눈이 부셨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얼굴을 붉혔다.

하, 정말. 사람이 울고 있는데 음흉한 생각이나 하는 내가 싫다.

“……일단 눈물부터 닦으실래요?”

때마침 반대쪽 주머니에서 손수건이 나왔다. 하필이면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촌스러운 수가 놓여 있는 손수건이.

나는 손수건의 구린 무늬가 보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돌려서 노아 선배에게 건넸다.

“으응.”

선배가 안경을 벗자 겨우 닫았던 내 입이 다시 벌어졌다.

와, 와아.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에 대고 손부채질을 했다.

예쁘다는 건 원래 알고 있었지만 안경을 벗는 것만으로도 풍기 문란 및 면학 분위기 훼손으로 벌점 먹을 것 같은 얼굴이라니.

울어서 눈가가 빨개진 탓에 안 그래도 묘한 얼굴이 더, 더…….

“케헴.”

민망함에 헛기침을 하며 몸을 돌리는데, 노아 선배가 나를 붙잡았다.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엿보였다.

“잠깐만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그에 나는 못 이기는 척 뒷걸음질 쳐 돌아왔다.

선배가 진정될 때까지만 있어야겠다. 이대로 수업 들어가면 큰일 날 테니까. 선배의 평판을 위해서라도.

다 쓴 손수건을 두 손에 소중히 꼭 쥐고 있는 선배를 보던 내가 벽에 몸을 기댔다.

노아 선배가 다 흘러내리고 풀어진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묶었다. 청순한 모습에 가슴이 뛰었다.

아무도 없이 텅 빈 복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심장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쿵, 쿵.

아니 잠깐.

그런데 이게 정말 내 심장 소리가 맞나?

나는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상하다, 그렇게 크진 않은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선배 쪽에서도 미약하게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선배 괜찮으세요? 무슨 심장 소리가…….”

내가 벽에 몸을 기댄 채 그렇게 말하자 노아 선배가 느리게 대답했다.

“……네가 옆에 있으니까.”

“……네?”

이쯤 되니 헷갈렸다. 헷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들리던 심장 소리가 더 커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선배 저 좋아하세요?”

그리고 선배의 분홍빛 입술이 자그맣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신음했다.

미친,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아, 아, 그냥 대답하지 마세요. 잊어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내가 또 화낼까 봐, 아니면 또 피해 다닐까 걱정됐는지 노아 선배는 아무 말 없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빨개진 귀 뒤로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볼이 간접적으로 답을 해 주고 있었다. 울어서 저렇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왠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뜨끈뜨끈한 얼굴을 붙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 망했다.

* * *

“뭐? 아하하!”

내 이야기를 들은 글로리아 선배가 배를 잡고 웃더니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이거, 이거. 네가 나랑 이렇게 놀아 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네.”

“웃지 마세요. 이제 정말로 얼굴 못 보게 생겼다고요.''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턱을 괴었다.

“왜, 아예 차 버리게?”

“그건…….”

내가 대답 대신 우물거리며 침음을 흘리자, 유쾌하게 웃은 글로리아 선배가 내 귀에 대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아, 있잖아. 걔 지난 동아리 시간에 너랑 플로라 오기 전에 뭐랬는지 아니?”

갑자기 바뀐 선배의 태도에 무슨 말을 할지 괜히 궁금해졌다.

“뭔데요?”

“글쎄 평소라면 싹 무시했을 놈이 웬일로 말을 거는 거야.”

글로리아 선배가 혀를 끌끌 차더니 말을 이었다.

“들어 보니까 대충 네가 누굴 안고 있었대.”

“아.”

“막 엄청 우울하게 말하길래 대충 어우, 나빴네, 했거든?”

선배가 숨을 고르려는 듯 말을 멈추자, 나는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랬더니 나 째려보면서 네 욕하지 말래.”

바보 아냐?

생각만 해도 웃긴지 글로리아 선배가 피식피식 웃었다.

“그래서 그랬지. 걔가 다른 사람이랑 끌어안았든 키스를 했든 네가 걔랑 사귀는 것도 아닌데 네가 뭘 어쩔 거냐고. 어차피 네가 거기에 뭐라고 할 자격은 없지 않냐고.”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반응은요?”

“거의 울던데?”

글로리아 선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귀를 후비며 대답했다.

나는 입을 벌린 채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너무했어요.”

“와,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서럽다, 서러워.”

서운한 얼굴의 글로리아 선배가 어깨를 으쓱하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맞는 말을 했을 뿐이야.”

그것도 그렇지만.

괜히 불편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내게 글로리아 선배가 은근한 투로 물어 왔다.

“그런데 그래서 누구랑 안고 있었던 거야? 노아스는 모르는 것 같던 눈치던데.”

“그냥 어릴 때부터 알던 동생이요.”

“어? 우리 예쁜이 인기 많네. 잘생겼어? 어때?”

잠시 할 말을 잃고 서 있던 내가 턱을 쥐고 침음을 흘렸다.

아르한은 나름 잘생겼다고 할 수 있지. 키도 커서 남부 사교계에서도 인기 많은 걸로 기억한다.

그레도 10년을 봐 왔던 애 얼굴을 평가하는 건 조금 어색한데.

“음…… 네.”

결국 그렇게 말했다. 객관적으로 잘생겼다고 할 수 있지. 가만 보니까 아카데미에서도 인기 많은 것 같던데.

“와, 진짜?”

“네, 검술학부라 선배가 알 수도 있어요.”

“그래? 이름이 뭔데?”

글로리아 선배가 궁금하다는 듯 푸른 눈을 깜빡거렸다.

그에 나는 눈알을 작게 굴리며 대답했다.

“아르한 히리스라고, 1학년인데요.”

“아, 걔 본 적 있어.”

알겠다는 듯 박수를 치던 선배가 말했다.

“애가 참 훤칠하니 잘생겼던데. 둘이 친했구나.”

“예에…….”

“그런데 왜 안고 있었던 건데? 궁금해.”

나는 알려 달라며 조르는 글로리아 선배에게 대충 대답했다.

“그냥 장난치다가요.”

사실이었다. 그냥 장난으로 한 포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글로리아 선배나 노아 선배가 그렇게 의식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묘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내게 글로리아 선배가 은근하게 속삭였다.

“예쁜아.”

“그렇게 좀 안 부르시면 안 돼요?”

나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투덜거렸다.

내 얼굴에 딱히 못생긴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17년을 봤는데, 내 얼굴이 내 얼굴이지 뭐.

무엇보다 저 선배는 본인이 훨씬 예쁘면서 왜 허구한 날 나한테 예쁘다고 하는 걸까.

나는 백금색으로 빛나는 글로리아 선배의 머리카락이며 새파란 눈을 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 그거 말인데, 내가 호칭 생각을 해 봤어.”

글로리아 선배가 웬일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녀가 허공에 손을 올리더니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았다.

“예쁜이, 귀염둥이, 깜찍이 중에 골라 봐.”

“그만하죠.”

잠시나마 진지하게 생각한 내 잘못이지.

“아이, 왜.”

내가 불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버리자 글로리아 선배가 내게 매달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래서 이제 노아스 얼굴 안 볼 거야?”

“아니요. 안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얼굴 아닌가요.”

내 목을 끌어안은 글로리아 선배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묻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조금 혼란스러워요. 조금 시간이 필요해요.”

나는 손목을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노아 선배가 나를 좋아한다.

추측일 뿐이지만 그런 것 같다. 아마도.

“……하아.”

어떡해, 너무 좋아.

나는 고개를 돌린 채 양 뺨을 쥐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실실 나왔다.

다시 고백할까? 그, 그럼 사귀는 건가? 사귀어? 나랑 노아 선배가?

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글로리아 선배가 내 볼을 살살 쓰다듬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고민 같은 게 있으면 언제든 언니한테 말하기다?”

“저는 외동인데요.”

내가 건조한 투로 답하자 선배가 상처받았다는 듯 소리쳤다.

“야아!”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선배를 반쯤 무시하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아 선배…….”

나는 몽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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