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뭐가 이렇게 고급스러워?
글로리아 선배가 데려간 레스토랑은 인테리어에서부터 부내가 풀풀 풍겼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며 진짜 금인가 의심이 드는 촛대까지.
메뉴판에 적힌 심상치 않은 금액에, 계산은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어 지갑에 든 돈을 세어 보았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종을 울려 종업원을 부른 글로리아 선배가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나는 눈을 내리깔고 메뉴판을 가렸다.
다 먹지도 못할 텐데 이게 무슨 돈지랄이야. 음식물 쓰레기만 잔뜩 나오지.
“제발 그러지 마세요.”
“칫.”
자기 로망이었다며 툴툴거린 글로리아 선배가 마침내 정상적으로 메뉴를 주문하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흙빛이 되었던 종업원의 표정 역시 밝아져 있었다.
“맛있네요.”
금방 나온 음료를 한 모금 머금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지? 그거 맛있어.”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던 글로리아 선배가 눈을 굴려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있잖아, 나는 너랑 이렇게 나와서 좋아.”
“네?”
“어릴 적부터 저택에서 잘 못 나왔거든. 아카데미 오고선 내 생활이 자유로워진 것 같아서 좋아.”
“아…….”
나는 숙연하게 침음을 흘렸다. 하긴 루피너스 후작가 정도의 대귀족가라면 엄청 폐쇄적이었겠지.
……소원이었다는데, 그냥 다 시키게 둘 걸 그랬나.
죄책감이 가슴을 옥죄는 것 같아 물이나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는데, 글로리아 선배가 예의 그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거짓말이야. 플로라랑 담 넘어서 엄청 놀러 다녔어.”
“…….”
나는 차게 식은 표정으로 다시 찬물을 들이켰다.
……맛있다.
나온 요리를 한술 떠먹은 뒤 든 생각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생선 요리에서 바다에서 펄떡거리는 물고기의 모습이 연상되는 거지.
“맛……있어요.”
내가 홀린 듯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리자 글로리아 선배는 뿌듯하게 웃었다.
“맛있지? 더 시킬래?”
“아뇨, 배불러요.”
나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물을 들이켰다.
맛은 있는데 더 먹으면 토할 것 같았다.
“여기 티라미수도 참 맛있는데.”
“아, 그럼 먹어야죠.”
몸을 일으키려던 나는 흔쾌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디저트 배는 따로 있었다.
티라미수 세 조각을 비우고서야 배를 문지르며 레스토랑을 나왔다.
내가 이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 * *
그렇게 푸짐하게 먹은 게 불과 한 시간 전인데 다시 배고파지는 것 같다.
“널 꼭 데려오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며 글로리아 선배가 날 끌고 오다시피 한 곳은 의상실이었다. 그것도 비싸기로 유명해서 난 엄두도 내 본 적 없는 곳.
“입어 볼게요.”
그런 의상실에 자연스럽게 들어간 선배가 거침없이 옷 몇 벌을 골랐다.
“자.”
“저, 저요?”
본인이 입는 건 줄 알았는데 나를 입히려고…….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탈의실로 들어가 녹색 드레스를 입어보았다.
“어, 편하네요?”
드레스 맞나?
레이스며 장식이며 다 달려 있는 예쁜 옷인데 잠옷처럼 편한 게 신기해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그럼 설마 내가 너한테 불편한 걸 입혔겠어?”
글로리아 선배가 두 눈을 찡긋하더니 다음 옷을 건넸다.
거기까지면 좋았을 걸. 입어본 옷의 개수가 두 자릿수에 접어들자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선배에게 억지로 붙들려 이 옷 저 옷 입어보다 보니 꼭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히, 힘들어.
글로리아 선배는 내가 옷 하나하나를 입어 볼 때마다 너무 예쁘고 귀엽다며 온갖 호들갑을 떨었지만, 반면 나는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다.
“살려 주세요…….”
“으응, 그런데 이거 하나만 딱! 딱 이것만 입어 보자.”
웬 하늘하늘한 하얀 원피스를 집어든 선배가 싱긋 웃었다.
“내 여동생은 아직 어려서 내가 옷 골라 주긴 좀 그렇거든.”
배다른 여동생 말하는 건가.
원피스를 받아 든 나는 선배의 따뜻한 미소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복 여동생한테 저렇게 다정할 수가 있나.
가만 보면 글로리아 선배는 고위 귀족답지 않은 부분이 조금 있다. 그것도 선배가 주장하는 환생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래서 예전부터 너랑 이렇게 놀고 싶었어.”
선배의 푸른 눈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는 날 계속 피하는 것 같더라고.”
“그야…….”
책 때문에.
그렇게 대답하려던 내 말문이 턱 막혔다.
무슨 이유든 간에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배를 멋대로 재단한 게 맞으니까.
“……죄송해요.”
“응? 갑자기? 사과받으려고 한 말 아닌데.”
“그래도요.”
글로리아 선배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하여튼 네가 날 피하길래, 난 내 얼굴이 그렇게 무서운가 했지.”
선배가 조금 차갑게 생기긴 했지만 피하거나 무서워할 정도는 아닌데.
그런 생각까지 했다니 본의 아니게 미안해졌다.
“계산이요.”
“서, 설마 사 주시려는 거예요?”
나는 경악한 얼굴로 지갑을 꺼내 드는 선배를 뜯어말렸다.
“안 돼요! 이건 진짜 안 돼요!”
부담스럽단 말이야.
나는 필사적으로 선배를 저지해 옷 한 벌만 계산하게 하기에 성공했다. 그것도 무척 부담스러웠지만 다섯 벌을 선물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감사합니다…… 꼭 갚을게요.”
“아니야, 난 너 드레스 입은 거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녹색 드레스를 받아든 내가 감사 인사를 하자 글로리아 선배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계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