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누가 내 손을 할퀴었다는 말에 길길이 뛰던 도라는 고양이가 그랬다는 말에 급격히 표정을 풀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고양이가 어디 있었다고?”
“와, 태도 바뀌는 거 봐.”
나는 친구보다 고양이를 우선시 하는 그녀의 작태에 혀를 쯧쯧 찼다.
누가 이렇게 붕대를 못 감냐며 내 손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도라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너 요즘 자주 다치는구나.”
“응, 근데 선배가 약 발라 줘서 좀 좋았어.”
내가 행복하게 답하자 도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친놈…… 너 진짜 괜찮은 거야?”
염려 섞인 물음에 나는 킥킥거리며 대답했다.
“응, 나 좀 미친 것 같아.”
“선배, 이리 한번 와 보세요.”
나는 진지한 얼굴로 지나가던 글로리아 선배의 손을 붙잡고 후원으로 이끌었다.
“뭔데, 뭔데?”
선배는 무척 궁금하다는 낯을 하고 연신 내게 물어 왔다.
“짜잔.”
후원에 도착해서야 나는 익숙한 수풀을 가리키며 웃었다.
하얀 고양이가 나를 보며 반갑다는 듯 야옹거렸다.
“아으으.”
나는 감격스레 신음하며 입가를 가렸다. 그날 내 손등을 할퀸 게 미안하긴 했는지, 조금 친해지고 나서는 내게 먼저 오기도 하는 녀석이었다.
“우와, 고양이네? 나 고양이 엄청 좋아해!”
글로리아 선배도 흐물흐물하게 풀어진 얼굴로 보송보송한 고양이의 솜털을 쓰다듬었다.
뭐야, 가만히 있네?
나는 얌전히 쓰다듬을 받고 있는 고양이를 뱁새눈을 뜨고 슬쩍 째려보았다.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동물을……키워도 되나 모르겠네.”
“키우는 건 아니고, 여기에 올 때마다 보이는 애예요. 신기하게 사람을 안 무서워하네요. 앗.”
나는 손을 뻗자마자 풀숲 구석으로 가 숨는 고양이를 보며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만지는 건 유독 싫어한다니까요. 지난번에 봤더니 노아 선배는 엄청 따르더니만.”
“아아. 알지.”
내가 툴툴대자 팔짱을 낀 글로리아 선배가 중얼거렸다.
“꼭 동물들이 걔를 잘 따르더라고. 백설 공주 같은 놈.”
그녀가 불만스레 턱을 괴고 넋두리를 했다.
“백설 공주가 뭐예요?”
“그런 게 있어.”
내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한 글로리아 선배가 말을 이었다.
“우리 집 고양이도 걔만 보면 애교 부린다니까? 체, 8년 키워 준 주인은 본 체도 안 하고.”
“음…….”
그건 아마 본능이 아닐까. 동물들도 예쁜 걸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었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글로리아 선배를 바라보았다.
“선배 고양이 키우세요?”
“으응, 엄청 뚱뚱하고 성격도 더러워. 정확히는 어머니 고양이고. 꼴 보기 싫은 자식새끼보다 낫다면서.”
“어…….”
나는 갑작스레 튀어나온 집안 사정을 모른 척하곤 고개를 돌렸다.
글로리아 선배는 장난기가 들었는지 개구지게 웃으며 한술 더 떴다.
“우리 집 가정사 막장이야. 다들 알걸?”
“어우.”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예상치 못하게 선배의 집안 사정을 듣게 된 나는 작게 식겁하면서도 슬쩍 귀를 기울였다.
“동생이 둘인데 둘 다 엄청 귀여워.”
선배는 배다른 동생이 둘 있고 부모님끼리 사이가 안 좋은 환경에서 컸다고 했다.
그런 말을 유쾌하게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선배는…….”
괜찮은 건가요.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그렇게 물으려던 나는 관두고 입을 다물었다.
그 뭐냐, 완전히 믿지는 않지만 환생인가 뭔가 했다고 했으니 어릴 때부터 속은 어른이었겠지. 그러니 그런 가정 환경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은 무의미할 터였다.
“힘드셨겠네요.”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은 멋대로 움직여 저런 소리를 내뱉었다.
예상치 못한 말에 글로리아 선배가 눈을 깜빡거리는 사이, 나는 황급히 변명했다.
“동정은 아니니까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요.”
“하하.”
그녀가 맑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참 다정한 아이야, 케이트.”
“고맙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선배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노아스한테 더 아까운 거고.”
잘 나가다가 이게 당최 뭔 소린지.
헛웃음을 흘리며 쪼그려 앉아 있는데, 내 품에서 공책 몇 개가 떨어졌다.
“봐도 돼?”
“그래요.”
그걸 주워 든 글로리아 선배가 묻자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책에는 중요한 내 개인 연구가 적혀 있었지만 아직 초기 단계였고, 글로리아 선배라면 괜찮겠지.
“우와…… 어려워.”
수식과 문자와 마법진의 향연에 선배는 머리가 아프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하지, 마법은 손 한번 튕긴다고 발동되는 게 아니니까.
나는 마법진 문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법진 두 개를 맞물리게 돌리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아, 실기 평가 하는구나.”
“실기 평가용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좀 관심이 있던 분야라, 계속 연구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선배가 주워 준 공책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그런데 조금…… 음, 많이 새로운 분야라 참고할 자료도 적고 제대로 구현하기도 어렵고. 힘드네요.”
“그래?”
한숨을 쉬는 내 등을 두드리던 글로리아 선배가 조언을 했다.
“그럴 땐 선배한테 도움을 청해 봐. 보니까 네가 큰 틀이며 이론은 다 잡아 놓은 것 같은데, 조금 도움 받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아? 평가용도 아니고 개인 연구라며.”
“선배요? 선배 마법 하세요?”
“아니, 나 말고.”
내가 미심쩍게 묻자 그녀가 은근한 얼굴로 씩 웃었다.
“있잖아, 네 주위에 마법 천재.”
나는 짧게 신음을 토했다.
“아.”
* * *
마법은 마법진을 통해 발동되지만, 마법진을 그린다고 끝은 아니다.
끊임없이 마력을 제어하며 마법진을 제대로 유지하는 것까지가 마법인 것이다.
수식, 문자, 마력의 배열, 분야별로 정형화된 마법진의 틀과 형태.
마법을 할 때는 여러 요소를 고려하며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아야 했고 그게 마법이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는 이유였다.
안 그래도 마력 보유자는 열 명에 한 명 간신히 나오는, 매우 희귀한 체질인데 그중에서도 마법사라고 불리는 이들은 더 드문 원인이기도 했다.
마법진 연구가 유달리 활발한 요즘 시대, 마정석을 사용해 자동으로 돌아가는 마법진에 대한 이론 또한 이미 제시된 바가 있었다.
하지만 워낙 현실성 없고 다소 비효율적이라 수업에서는 짧게 설명만 하고 넘어갔다.
나는 조용히 앉아 내 말에 경청하는 노아 선배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마정석이나 마력석이 없으면 아예 마도구에 새기는 게 아니고서야 마법진을 오래 유지하기가 어렵고 자동으로 돌아가게 할 수도 없잖아요?”
희귀하게 자연적으로 발견되는 마정석과 숙련된 마법사가 마력을 모아 만드는 마력석.
그게 있다면 자동으로 돌아가는 마법진을 그리는 게 가능했다.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마정석과 마력석 모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고 수식을 새기는 것 또한 엄청난 기술력이 필요한지라 상용화는커녕 실제로 구현하는 것마저 불가능했다.
황실에서 마정석을 이용해 자동으로 굴러가는 마차를 만들었다고 들어 본 적은 있다만, 말 그대로 돈 많은 황실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마법 자체가 귀족의 특권에 가까워서 평민들은 시도는커녕 마도구나 마법진 구경도 못해 보는 경우가 파다했다.
나는 숨을 크게 한번 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마력 공급용으로 보조 마법진을 추가로 그리는 거예요.”
연쇄 마법진. 원래부터 존재하던 형식이긴 하지만 연결 공식이 무척 복잡한 탓에 웬만해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마법진이었다.
내 말을 들은 선배의 금색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공급 마법진에 담긴 마력이 적절하게 주 마법진으로 흘러들어 갈 수 있게끔 구성해서요.”
작았던 내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럼 시전자가 제어를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작동할 수 있어요. 마정석, 마력석이나 엄청난 기술이 없어도요.”
발표를 마친 나는 헛기침을 하며 선배의 반응을 살폈다.
“……어떤가요.”
“좋은 생각이네.”
내가 말을 마치자 노아 선배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잠시, 선배는 금세 진지해진 얼굴로 턱끝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려면 연결을 확실하게 해야 할걸. 마력 속도와 양도 고려해야 하고 마법진에 마력을 담을 방법도 찾아야 해.”
“네, 계산을 더 해야겠죠.”
나는 품에서 주섬주섬 공책 몇 개를 꺼냈다. 연쇄 마법진이니만큼 공식은 상당히 복잡하지만, 타고난 마력량이 많지 않아 계산에 이골이 난 나로서는 해 볼 만했다.
“그래서 큰 틀을 한번 짜 봤어요.”
내게서 공책을 받아든 노아 선배는 미미하게 인상을 쓰며 공책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꽉 조인 넥타이를 푼 선배가 미간을 문지르며 옅은 숨을 내쉬자, 나는 눈알을 빙글 굴렸다.
와, 집중하는 모습 엄청 섹시하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가만히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이게 맞아?”
선배가 손을 몇 번 휘젓자 금색 빛 무리가 허공에 늘어져 마법진을 구성했다.
모양을 확인한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주 마법진으로 사용한 건 간단한 발광 마법이었다. 중요한 건 보조 마법진이었다. 대략적인 골조만 설계한 마법진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몇 초가 더 지나고 나자 불현듯 마법진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우와.”
내가 생각하고 계산한 건데 정작 나 대신 선배가 먼저 성공했다.
실력 차이가 워낙 크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질투 따위는 나지도 않았다.
“……!”
그리고 선배가 손을 내렸는데도 마법진은 계속 유지되었다. 나는 신나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속으로 오두방정을 치며 숨을 참던 바로 그때.
열심히 돌아가던 마법진이 피식, 소리를 내며 꺼져 버렸다.
“수명이 좀 짧네요.”
하긴 아직 수식이 완성된 것도 아니니 당연하지.
하지만 더 연구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안타깝게 혀를 쯧쯧 차던 나는 눈을 반짝이며 선배를 올려다보았다.
“선배, 괜찮으시면 한번 같이 연구해 보시지 않을래요? 계산은 제가 다 만들 테니 선배는 시전만 해 주시면 돼요. 그럼 선배 이름도 올릴게요.”
“생각은 네가 해 냈는데, 네 연구지.”
딱 잘라 말한 노아 선배가 입을 열었다.
“그냥 도와줄게.”
“왜…….”
나는 이유를 물으려다 말고 뒷말을 삼켰다.
왜긴 왜야, 흥미가 있어서겠지. 안 그래?
“그럼 수식 완성될 때까지만, 부탁드릴게요.”
잠시 코끝을 찡긋거리던 내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혹시 주말에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