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110)

* * *

시내로 나간 나는 이내 거대한 고민에 휩싸였다.

도대체 선배한테 뭘 먹여야 하지?

아니, 애초에 이런 데서 뭘 먹여도 되는 걸까? 우리 영지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선배는 명색이 수도 후작가 아들인데.

일단 식사할 때 보니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어 보였지만…….

에라, 일단 골라 보라 하자.

“뭐 드실래요, 선배?”

나는 죽 늘어진 노점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주머니에 든 용돈이 든든했다.

“엇, 솜사탕 아시는구나.”

선배가 가만히 솜사탕 노점 쪽을 가리키자 나는 곧장 지갑을 꺼내 들었다.

“제가 사 드릴게요. 여기 계세요.”

“아니야, 괜찮아.”

각자 지갑을 꺼내 들며 실랑이를 하던 중, 이러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아 내가 제안했다.

“그럼 각자 하나씩 살까요?”

내 것까지 사 주겠다는 선배를 한사코 만류하고서 나는 커다란 분홍색 솜사탕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어요, 아가씨.”

선배가 내민 금화를 당황스레 바라보던 노점 아저씨가 주머니를 뒤져 동화 한 움큼을 거슬러 주었다.

이런 작은 노점에서는 그렇게 큰 금액의 화폐가 유통될 일이 거의 없으니 당연했다. 어쩐지 조금 웃겼다.

선배가 한 손에 동화를 가득 들고 솜사탕을 받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솜사탕을 한입 베어 물었다.

이런 좋은 방법이 있었잖아.

끈적한 입 주위를 핥다 말고 옆을 보았다.

선배가 붉은 혀를 내어 솜사탕을 애매하게 할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외설적이었다……. 정신 차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내가 선배를 힐끔 살폈다.

솜사탕 먹을 줄 모르나? 그럼 왜 이걸 골랐지?

하기야 솜사탕이 예쁘게 생기기는 했어. 폭신해 보이고 분홍색이고.

솜덩어리 같은 분홍색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어쩐지 플로라 선배 머리카락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냥 손으로 뜯어서 먹으면 돼요.”

나는 실없이 웃으며 솜사탕을 쭉 찢어 입에 넣었다.

내 말을 들은 선배가 소심한 크기로 솜사탕을 뜯어냈다.

씹으려던 참에 그대로 녹아 버렸는지 선배가 잠시 멈칫했다. 금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귀, 귀엽잖아.

“…….”

하얀 손끝에 솜털처럼 솜사탕이 묻어 있었다.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그건 그냥 핥아먹으면 된다고 말하려는데, 선배가 별안간 이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순간 단내가 훅, 끼쳐 왔다.

“맛있다.”

선배가 슬쩍 손끝을 핥아 내리며 중얼거렸다.

나는 괜히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선배가 단 걸 좋아했던가?

도라의 입 속으로 사라져 버린 박하사탕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앉으실래요?”

선배가 먹는 속도가 조금 더디기에 나는 근처 벤치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먹는 건 나중에 할 걸 그랬나? 그런데 먹을 거 말고는 할 게 거의 없는데.

선배는 솜사탕을 뜯어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의 솜사탕은 내 솜사탕에 비해 느리게 사라졌다. 나는 옆을 슬쩍 곁눈질하며 더 천천히 뜯어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조금씩 솜사탕을 다 뜯어먹었다.

생각해 보면 장날이 아니더라도 시내에 나오면 먹는 것밖에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선배를 데리고 나온 거지.

“서점 가실래요?”

시내를 반쯤 걷다 보니 익숙한 서점이 보여서, 순간 충동적으로 그렇게 물었다.

내가 자주 가는 곳 중 가장 선배랑 가도 괜찮을 만한 장소다. 선배는 우리 집 서재에 상주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니까.

“좋아.”

선배는 예상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서점 문을 열며 주인 할아버지께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할아버지.”

“중고책은 저쪽.”

내 얼굴을 힐끗 본 주인 할아버지가 서점 구석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서 중고책 코너로 향했다.

“할아버지셔?”

나를 따라온 선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예? 아니요. 그냥 아는 분이세요.”

나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말 하기 조금 조심스럽지만.”

나를 내려다보며 잠시 머뭇거리던 선배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어디 계셔?”

“제가 두 살 때 돌아가셨어요.”

나는 여전히 책을 만지작거리며 여상히 대답했다.

선배가 곧장 몸을 굳히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아니에요.”

엄마는 내 기억에 거의 없다시피 했다. 엄마가 살아 있었을 때 나는 말도 못 하는 아기였으니까. 그냥 아빠가 아주 많이 울었던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아서, 집에 걸려 있는 초상화만 보고 저렇게 생긴 사람이었구나 할 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아빠랑 살아오면서 한 번도 엄마의 부재를 느껴 본 적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후레자식 같은가?

혼자 픽 웃음을 흘리며 나는 페이지를 넘겼다.

“마법 책은 중고로 없는 것 같아요. 저쪽으로 가 볼까요?”

그러자 소설책을 읽고 있던 선배가 황급히 책을 내려놓았다.

선배 소설책 좋아했구나.

발걸음을 멈춘 나는 슬쩍 웃으며 모르는 척 다른 소설책을 들고 벽에 기댔다. 딱히 마법 관련 책을 사러 온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잠시 눈치를 보듯 서 있던 선배가 그 소설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잠시 옆을 흘깃거리던 나는 다시 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문장이 흡입력 있어 집중하기는 쉬웠다.

그렇게 서점에서 한 시간 정도를 보냈다. 나도 즐겁고 선배도 즐거웠던 것 같다.

게다가 재미있는 소설 시리즈를 발견한 터라 전권을 샀다. 방학 동안 다 읽어야지.

“벌써 6시가 넘었네요.”

계산을 마친 내가 한 손에 봉투를 들고서 시계를 흘깃 바라보며 선배에게 말했다.

한 손에 소설책 한 권을 소중히 든 선배가 내 봉투를 집어 들었다.

“엇, 괜찮은데.”

“팔. 다쳤잖아.”

“감사합니다.”

나는 뻘쭘한 얼굴로 두 눈을 깜빡이다 고개를 돌렸다.

“저녁은 어떻게 할까요? 드시고 가실래요, 아니면 저택 가서 드실래요?

“나는 상관없어.”

나는 본능적으로 오늘 저녁 메뉴를 떠올렸다.

아, 청어 맛없는데.

선배만 괜찮다면 밖에서 먹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생각했던 만큼 어색하지도 않고 말이야.

눈썹을 찡그려가며 고민하던 내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럼…… 먹고 갈까요?”

선배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자 나는 선배에게 물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고기 좋아하세요?”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자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역시 손님 대접에는 고기지.

아는 식당이 있었다. 내가 아는 곳 중에서 여기가 가장 유명하고 맛있다. 이곳 주인아주머니와 아는 사이이기도 했고.

“아이고, 아가씨! 이게 얼마만이에요.”

“그 팔은 뭐예요? 다치셨어요?”

아니나 다를까, 식당 문을 열자마자 여기저기서 건네 오는 인사들에 정신이 없었다.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바빠서 나오지를 못했네요.”

“아유, 공부 열심히 하시는 거야 저희 다 알지요. 일행분도 앉으세요.”

우리는 주인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테이블에 앉았다.

“아가씨, 마물 토벌단에 아가씨도 계셨다면서요?”

자리에 앉자마자 식당 점원이 나를 향해 눈을 반짝거렸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맞아요.”

“그 팔도 거기서 다치신 거고요? 어쩜!”

탄식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들을 다스릴 차기 영주가 나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 있을 때면 관심이 너무 나에게로 쏠리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머쓱한 얼굴로 붕대 감은 팔을 문지르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노아 선배를 흘깃대며 말했다.

“어머, 마탑에서 오셨다는 그분 아니야? 마법사님.”

“맞네, 맞아. 아가씨랑 숲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고 했어.”

“좋은 일 해 주셨네, 그럼! 그동안 그 숲 빙 돌아가느라 얼마나 고생했어, 그치?”

“그래, 갑자기 동물들도 사나워져서 난리였지, 참.”

아주머니가 선배의 등을 두드리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물을 마시려던 선배가 휘청하며 잔을 놓쳤다.

저기, 이분 후작가 영식이세요.

“이럴 게 아니지. 얘, 어서 음식 내와라. 메뉴판에 있는 거 전부 다.”

점원에게 그렇게 말한 아주머니가 다정스레 웃어 보였다.

“돈은 안 받아요.”

“그게 무슨…….”

선배가 부담이 가득한 얼굴로 거절하려던 참이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나는 주인아주머니께 웃어 보였다.

그녀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억지로 돈을 쥐여 줘도 내일쯤 다시 자작저로 보내 줄 게 뻔했다.

내 말을 들은 선배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잠자코 자리를 잡았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음식을 내려놓던 종업원이 선배를 보곤 얼굴을 확 붉혔다.

암요, 어떤 기분인지 알죠. 이해해요.

나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음식이 하나 둘씩 나오던 참이었다.

주인아주머니가 호소하듯 말했다.

“저쪽 토마스네 밭도 그놈들 때문에 엉망이 됐지 뭐예요.”

“그동안은 밖에 나가기도 무서웠죠.”

식당 안 사람들은 다들 마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늘 한적하고 평화로운 이곳에서 몇 안 되는 이슈거리니까 말이다.

“말씀 좀 해 주셔요, 아가씨. 그 무서운 것들을 어떻게 없애셨대요?”

“에이, 선배가 거의 다 하셨죠. 전 별거 안 했어요.”

나는 헤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구석에 박혀 있는데 선배가 마물 핵을 쓱!”

“와아!”

어느새 저쪽에서 술을 마시던 아저씨들도 슬쩍 다가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구연동화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 핵은 마탑에서 연구 자료로 가져가셨어요.”

나는 이야기를 끝내며 감자에 포크를 찔러 넣었다.

“오오!”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다.

옆을 힐끗 보니 선배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소리쳤다.

“자, 박수!”

“와아아!”

거센 함성 소리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곧 있으면 꽃까지 날아올 것처럼 우렁찬 소리였다.

선배는 여전히 아무 말도 않은 채 연신 찬물만 들이키고 있었다.

당황에 찬 선배의 얼굴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나는 큭큭 웃으며 손으로 나무 식탁을 내리쳤다.

그러자 선배가 한 손을 들어 얼굴을 반쯤 가렸다.

언뜻 보이는 귀가 붉었다.

칭찬받으면 되게 좋아하는구나.

언제나 완벽하던 모습 뒤에 저런 면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는 달아오른 선배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고 식사를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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