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110)

고개를 갸웃하던 내가 무언가를 중심으로 뭉쳐 있는 마물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저거 핵 맞죠?”

“응.”

나와 같은 곳을 주시하고 있던 선배가 화색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거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핵만 제거하면 나머지 마물들은 알아서 사라질 테니까.

한층 밝아진 표정을 짓고 있던 내가 얼굴을 구겼다.

그런데 어디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시체 썩는 냄새 같은…….

“욱.”

“괜찮아?”

“네…….”

나는 코를 틀어쥐고 애써 태연한 얼굴을 가장했다.

가만, 시체?

그러고 보니 내가 열 살 때쯤부터 아빠가 그라니아 숲에 가지 말라고 했었다.

왜였더라? 아, 어떤 남자가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는 바람에 숲 전체가 자살 명소가 되어 버렸지.

사실 그라니아 숲은 평소에도 사냥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아니면 잘 출입하지 않는 흉흉한 곳이었다. 일부러 피해 가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마물은 마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기운에 영향을 받아 자연적으로 생기기도 한다고 했죠.”

버려진 옛 신전이라거나, 귀신 들린 집이라던가.

내가 다음 학기 교과서에 있었던 내용을 상기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 자살 명소예요.”

그렇게 말하는데 괜히 뒷골이 섬뜩했다.

나는 시체 냄새가 나는 마물 쪽을 바라보지 않으려 애쓰며 몸을 움츠렸다.

선배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알아챘는지 순식간에 마법 하나를 시전했다.

“지금은 은신 마법을 썼어. 안 보일 테니 괜찮을 거야.”

아니, 그런 고차원 마법을 이렇게 쉽게.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선배의 태도에 혀를 내두르던 내가 잠시 몸을 굳혔다.

코앞에 탄탄한 가슴이 있었다. 이동 중 단추 몇 개가 풀렸는지 하얀 옷깃 사이로 선명한 가슴골, 살색의 향연이 엿보였다.

어어, 음. 와아.

나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괜히 마물 쪽을 힐끗거렸다.

마물은 검은 물감을 묻힌 붓을 도화지 위에 멋대로 문지른 것처럼 생겼다. 마물이 자리한 풍경 자체가 마치 하나의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난번에 봤던 마물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내심 졸아서 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 라이너스 님과 에이든 님을 이쪽으로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지.”

선배가 곧장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능숙한 솜씨로 그려진 마법진이 금색으로 번쩍 빛났다.

나름 돕겠다고 왔는데 마법이란 마법은 다 선배가 쓰는 것 같아 머쓱했다.

“아마 시간이 조금 걸릴 거야. 그러니까…….”

“서, 선배!”

나는 딸꾹질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선배를 불렀다.

제일 거대한 마물이 주위를 사납게 살피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촉수가 어지럽게 휘날리며 쉭쉭대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이렇게 되면 우리를 인지했든 아니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냥 생각 없이 휘두르는 거에 우리가 깔려 죽게 생겼잖아.

나는 지금 당장 사용할 만한 마법진을 떠올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여차하면 바로 시전할 생각이었다.

“내가 싸울게, 여기서 마법진을 지켜 줄래?”

천천히 몸을 일으킨 노아 선배가 마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렇게 말했다.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심하세요.”

선배가 몇 걸음 떼자마자 곧바로 마물의 공격이 이어졌다.

걱정 어린 시선으로 그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던 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는 괜찮을 거야.

“후.”

나는 아직 발동하기 전인 마법진 주위에 보호막을 치고 그 옆에 섰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이중, 삼중으로 보호막을 걸고서야 한시름 놓았다.

그렇게 마법진 옆에 서서 선배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감탄이 나왔다.

“와아…….”

베고, 찢고, 썰고, 터뜨리는 동작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력의 운용이며 세기 조절 모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여기저기서 금색 빛이 번쩍거렸다.

같은 마법사로서 가히 경이로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이론을 완벽히 알고 있다 들었는데, 실전도 완벽하구나.

나는 선배를 닮아 섬세한 마법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 내게 주어진 임무는 마법진을 지키는 거다. 선배가 저기 있으니 은신 마법도 진작에 깨졌을 터.

이쪽으로 다가오는 몇 마리 작은 마물들을 향해 불꽃 마법을 날린 내가 소환 마법진을 힐끔거렸다.

여전히 웅웅 진동만 할 뿐, 작동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으음.”

선배가 싸우는 것을 지켜보던 내가 동굴 천장에 유난히 크게 튀어나온 바위를 향해 마법진을 날렸다.

튀어나온 모양의 바위를 깨부순 마법진이 부메랑처럼 내 손으로 되돌아왔다.

마물 몇 마리가 부서진 바위 조각에 깔려 꿱꿱대는 소리를 내다 연기처럼 소멸했다.

나는 씩 웃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성공.”

마법진을 지키며 간간히 선배에게 지원 화력도 쏘고 있는데, 문득 다소 큰 규모의 마물이 다가왔다.

눈이 마주쳤다. 다시 말하지만 징그럽다.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지만 참았다.

징그럽게 여긴다는 티를 내면, 이지를 가지고 있는 마물을 자극할지도 모르니까.

저 정도면 지금도 약간 버거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보호막을 깨자니 마법진이 걱정되고, 선배를 부를 순 없고.

별수 있나. 해 봐야지.

긴장감 어린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침을 삼키며 가장 자신 있는 공격형 마법진을 그렸다.

붉은색 화염이 혀를 날름대며 춤을 췄다.

“끼엑!”

아악, 소리까지 징그러워!

치익, 하고 고기 굽는 소리와 탄내가 진동했다. 하필 냄새도 돼지고기 같아.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을 참으며 눈을 질끈 감고 끝내 버릴 생각으로 다음 마법진을 그렸다. 녹색 마력이 허공에 일렁이더니, 다음 순간 마물이 연기처럼 소멸했다.

“엥?”

나 아직 다 안 그렸는데.

나는 덜 그려진 마법진을 황망한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라이너스 님!”

반갑게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내가 싸우던 사이 마법진이 발동한 모양이다.

나는 한시름 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손을 내렸다.

라이너스와 에이든이 노아 선배를 도우러 간 사이, 나는 저릿저릿한 손을 주무르며 동굴 벽에 몸을 기댔다.

“어휴.”

쉬면서 중간중간 다가오는 조무래기 마물들을 처치하다가 선배 쪽을 보았다.

나는 마력이 반쯤 고갈된 것 같은데 선배는 여전히 멀쩡하다. 내가 비전투형인 탓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격차였다. 재능의 차이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어쩜 마탑 소속 마법사보다도 능숙할 수가 있지. 저게 진짜 천재라는 거구나.

앞으로 엄청 노력해야겠다.

꾸물거리는 작은 마물에게 화염 마법을 날리며 나는 옅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끼에에엑!”

우두머리로 보이는 거대한 마물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 위에 올라탄 노아 선배가 무심한 얼굴로 그 안에 손을 넣더니, 이내 맨손으로 꿈틀거리는 검은색 구체를 꺼냈다.

노아 선배가 라이너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끝났습니다.”

그런 선배의 손에서 실처럼 뽑힌 금색 마력이 핵을 구속하고 있었다.

무슨 마물 토벌 종료를 집 앞 장터에서 과일 사 왔다는 것처럼 말하나.

“꼑!”

핵을 잃은 마물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소멸하기 시작했다.

동굴 안쪽에 있는 마물들을 선두로 내 주위 마물들까지 얼음처럼 녹아내렸다. 곧 땅이 찐득찐득한 액체로 뒤덮였다.

선배가 다친 데는 없냐는 듯 이쪽을 돌아보았다. 걱정 어린 금색 눈을 마주한 내가 멀쩡하다는 뜻으로 엄지를 치켜올렸다.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습니다. 결계가 깨졌다고 마물 몇십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오지 뭡니까.”

라이너스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밖에도 많이 있었구나. 싸우고 있었던 건지 둘의 행색도 영 깔끔하지는 않았다.

“수고하셨어요, 선배. 대단하세요.”

신발 밑창에 묻은 점액질을 털어 내던 내가 선배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번쩍거리는 수십 개의 마법진들이 아직도 눈에 선연했다. 열 개 이상의 마법을 동시에 시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정말 엄청나다.

노아 선배가 작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은색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귀가 붉었다.

설마 부끄러워하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선배의 옆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헉!”

미처 소멸하지 않은 마물 한 마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건지 눈을 비비고 있는데, 그게 정신을 차린 듯 공격을 시작하려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 궤도를 보니 정확히 선배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저 얼굴에 흉? 절대 안 돼. 그건 국가적인 상실이야. 그리고 다음 학기에 플로라 선배랑 이러쿵저러쿵 하려면 얼굴 멀쩡히 간수하셔야죠.

선배 얼굴은 내가 지킨다.

나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감각으로 달려가 방어 마법진을 펼쳤다.

“얼굴은 안 돼!!”

깩, 소리와 함께 마법진에 부딪힌 마물이 나가떨어졌다.

나는 그제야 내가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깨달았다.

“얼굴은…… 급소니까…….”

내 맥 빠지는 소리와 함께 마법진이 사라졌다. 끝으로 가서는 목소리가 살짝 떨린 것 같았다.

“…….”

한참 정적이 흘렀다.

내 머리를 깨고 싶다.

수십 번을 자책하며 눈을 질끈 감은 채 그 자세 그대로 서 있는데, 이상할 만큼 팔이 화끈거렸다.

“어라.”

그와 동시에 팔뚝을 타고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노아 선배의 표정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 * *

“아빠 안녕.”

“너, 너……!”

선배가 급하게 응급 처치를 한 내 팔을 본 아빠가 뒷목을 잡았다. 상처를 감싼 천 조각에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

믿고 보낸 딸내미가 한쪽 팔을 다쳐 왔으니 그럴 법도 하지.

나도 약간 회의감이 들었다. 준비해 간 마법진은 다 써 보지도 못한 데다, 노아 선배 앞에서 바보 같은 모습이나 보여 버렸으니.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아.”

나는 아빠의 눈을 피하며 웅얼거렸다.

촉수가 조금 뾰족했지만 그뿐, 절단된 것도 아니고 그냥 베인 것뿐이다. 물론 아픈 거랑은 별개지만은.

“이게 도대체 무슨…….”

“제 잘못입니다.”

입을 떡 벌린 채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아빠를 향해 노아 선배가 고개를 숙였다.

“제가 딴생각을 하는 새 케이틀린이 저를 지키려다 다쳤으니 제 탓이 맞습니다.”

나는 기겁하며 선배를 만류했다.

“선배가 왜 사과를 하세요, 달려든 건 저인데!”

선배는 여전히 이쪽을 보지 않고 있었다.

혹시 화났나?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키던 중, 라이너스 또한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토벌단장은 저입니다. 영애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제 탓도 있습니다.”

노아 선배와 라이너스가 고개를 숙인 채, 오직 에이든만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상황이 부담스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일단 치료부터 받자꾸나.”

아빠가 다소 불편한 얼굴로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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