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110)

* * *

마탑은 마력 보유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꿈의 직장이었다.

아직 단 한 번도 가 본 적 없지만, 적어도 내 환상 속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빠, 마탑!”

집무실 문을 열어젖히며 내가 소리쳤다.

“응?

“마탑에서 사람 온다며!”

심장이 흥분으로 마구 두근거리고 있었다.

마탑 소속 마법사를 직접 볼 수 있다니, 이런 엄청난 일이 있나.

“이런, 내가 말하는 걸 깜빡했네.”

아빠가 머쓱한 얼굴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저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니. 그래서 블레어 자작의 이름으로 마탑에 토벌 요청을 넣었단다.”

나는 입가를 가리고 중얼거렸다.

“와…… 아빠 완전 멋있어.”

“하하, 그렇지? 아빠 멋지지?”

아빠가 가슴을 쭉 펴고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자, 그러니까 내년부터는 가주 수업도 열심히 듣기다?”

“아, 응.”

나는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아빠의 눈을 슬며시 피했다.

사실 아빠는 내가 마탑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걸 모른다. 당연히 내가 가문을 이을 거라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나를 아끼는 만큼 가문도 중요시하는 분이시니, 예쁘게 키운 딸에게 작위를 물려주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집이 이렇게 깨끗했구나.”

나는 화제를 돌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진짜 오는구나.”

책상 위에 놓인 마탑 관련 서류를 집어 든 내가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빠, 어떡해. 나 심장이 막…….”

벌렁벌렁 뛰어.

양 볼을 감싸 쥔 내가 설레는 웃음을 흘렸다.

마물의 출몰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있으니 너무 좋아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이건 엄청난 일이다. 막말로 우리 영지 같은 변방에 마탑의 마법사가 올 일이 또 있겠는가. 그것도 세 명이나.

개학하면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서류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내리고 있자니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 * *

“아가씨, 광대가 하늘을 뚫겠는데요.”

커튼을 걷던 리타가 킥킥대며 몸을 돌렸다.

“그럼,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꿈꿔 온 일인지 알잖아.”

나는 침대 위에 그동안 수집했던 마법 책들을 죽 늘어놓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흐뭇한 얼굴로 세탁물을 챙긴 리타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가씨, 세탁할 거 더 없으시죠?”

“응, 수고해.”

리타가 나간 후에야 나는 시선을 슬그머니 돌렸다.

그곳에는 붉은 양장본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잘게 떨리는 손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손이 저절로 익숙해진 페이지를 찾아 폈다. 나의 최후가 드러나 있는 대목이었다.

‘선배가 그랬잖아요, 좋아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저도 그래요. 선배가 너무 좋아서 그랬어요. 저는 이런 감정도 가지고 있으면 안 돼요?’

노아 선배는 싸늘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알 바 아냐. 중요한 건 너 때문에 플로라가 힘들었다는 거지.’

책 속의 나는 처음에는 항변하다가도 냉랭한 선배의 반응에 점점 무너져 갔다. 울고 불며 매달리다 급기야 눈물까지 흘리는 나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그런데 만약 선배가 나를 저렇게 무섭게 대한다면, 나는 과연 이렇게 울고불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으음…….”

내가 이 책에 적힌 미래를 몰랐더라면 저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괜찮아, 잊을 수 있을 거야.

거의 2년을 좋아했는데 갑자기 떨쳐 내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지. 고백을 하면 선배가 날 완전히 뻥 찰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으니.

플로라 선배랑 노아 선배가 같이 있는 걸 보다 보면 점점 단념이 될 거야.

“괜찮을…… 거야.”

나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책을 덮었다.

* * *

하늘이 다 새카매지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잠드는 것을 포기하고 멍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던 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창문 밖 저 멀리서, 불덩이 몇 개가 조그맣게 아른거렸다.

“뭐지……?”

나는 잠옷 위에 겉옷을 걸치고 복도를 걸어가 저택 문을 나섰다.

“아가씨, 어디 가세요! 아가씨!”

저택 쪽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불들이 보인 곳은 그라니아 숲 경계면이었다. 가문의 기사들이 횃불을 든 채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나는 겉옷을 여미며 슬그머니 거기에 끼어들었다.

“저기, 무슨 일 있나요?”

“아가씨? 지금 오시면 안 됩니다. 어서…….”

당황한 제온 경이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기사들이 둘러싸고 있던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저, 저거!”

마물이잖아.

이게 마물이야? 와, 징그러워. 이렇게 징그럽게 생길 이유가 있나?

미간을 좁히고 검은색을 띤 마물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눈이라고 해야 할지, 하여튼 마물의 주의가 나를 향하더니 촉수가 이쪽으로 휙 날아오는 게 아닌가.

나는 황급히 허공에 방어 마법진을 펼쳤다.

“읏.”

급하게 시전한 마법이라 그런지 조금 불안정했다. 그나마 그동안 쓰고 외우던 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가씨!”

“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다들 물러나요.”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마법진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교과서 삽화와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울퉁불퉁한 표면은 어두운 색을 띠고 있어서,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물의 생소한 생김새에 정신이 팔려 있던 그때였다.

와장창, 마법진이 깨졌다.

“……!”

마법이 강제 종료된 적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저려 오는 손을 털며 마물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가만히 서 있는데, 기사가 마물에게 검을 내질렀다.

“이얏!”

용감한 선택이었지만 마물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그를 돕기 위해 엉겁결에 생각나는 아무 공격 마법을 시전했다. 아직 손이 조금 저렸지만 할 만했다.

“……!”

마법을 맞은 마물의 몸통에 홈이 패더니, 이내 괴상한 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증발해 버렸다.

끝난 건가?

나는 조금 어벙벙한 얼굴로 서서 아직도 찌릿거리는 손을 문질렀다.

“케이트!”

저만치서 헐레벌떡 달려온 아빠가 내 어깨를 그러쥐었다.

“너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아, 아빠.”

나는 어깨가 저려 오는 것을 느끼며 우물거렸다.

“다른 방법이 없었잖아. 저건 검으로 당해 낼 수가 없는데, 마법사는 나뿐이고…….”

“그래도 그렇지…… 하아, 케이트.”

잠옷 바람의 아빠가 이마를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 이제 나이 들어서 이렇게 놀라면 안 돼, 응?”

“아이, 알았어. 결국 다 잘 됐잖아?”

내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런데 정말 저걸로 끝인 게 맞나? 내 마력이 그렇게 대단치가 않아서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나는 어두운 수풀 쪽을 힐끗거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저기, 가주님.”

“뭐냐!”

아빠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등 뒤로 뺐다.

마물을 공격했던 기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더듬거렸다.

“이것 좀 보십시오.”

그 기사가 마물에게 휘둘렀던 검의 날이 검게 부식되어 있었다.

저게 나한테 닿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등골이 서늘했다.

아빠도 그걸 인지했는지 내 어깨를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얼굴에 시커멓게 그늘이 진 제온 경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빨리 좀 와라, 마탑…….”

덩달아 내 표정도 어두워졌다.

동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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