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10)

“토할 것 같아…….”

다음 날, 나는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은 채 마차에서 내렸다.

아카데미에서 집까지 오는 게 처음도 아닌데, 당최 적응이 되지 않는다.

“괜찮아?”

나를 부축한 아르한이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아니…… 우욱.”

대답하려 입을 열었더니 헛구역질이 나왔다.

이대로라면 아르한 앞에서 토할 것만 같아 나는 잠시 쪼그려 앉은 채로 속을 진정시키다 몸을 일으켰다.

“……가자.”

“나도?”

“잠깐 들어갔다 차라도 마시고 가. 여기까지 태워다 줬는데 그냥 보내기는 너무 미안하잖아.”

나는 저택 문을 열며 아르한에게 손짓했다.

“그럼 실례할게.”

마차에 비스듬히 기대서 있던 아르한이 매끄러운 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끼익 소리와 함께 저택 문이 열렸고, 사용인을 찾아 뛰어다니던 내 눈에 마침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집사.”

쟁반 하나를 들고 복도를 걸어가던 집사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 아가씨?”

“오랜만이야, 집사.”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빠한테 가는 길이지? 나도 같이 가자.”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니, 히리스 영식까지…….”

집사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벽에 기대서 있던 내가 집무실로 향했다.

“아빠, 나 왔어.”

“응, 거기 두고 가.”

책상에서 서류를 읽고 있던 중년 남자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칼리아 제국의 자작이자 블레어의 주인 그리고 우리 아빠였다.

“아빠.”

“음?”

나를 담은 녹색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너무 보고 싶었나, 내가 헛것을 보네.”

아빠가 제 눈을 비비더니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아빠.”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아빠의 어깨를 쥐었다.

“나 진짜 여기 있어.”

“……케이트?”

아빠가 당황스러움이 어린 녹색 눈을 끔뻑거렸다.

“네가 왜 여기에 있니?”

“집사랑 똑같은 말을 하네. 아빠, 내가 말했지.”

나는 한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

“방학식은 26일이라고.”

“…….”

아빠의 손에서 펜이 툭 하고 떨어졌다.

“아이고, 맞다!”

곧이어 아빠가 경악한 얼굴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로 집무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아빠가 고개를 들고는 물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어떻게 왔니?”

“아르한이 데려다줬어.”

나는 문 쪽에 서 있는 아르한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이구 이런, 신세를 많이 졌구나.”

아빠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날짜를 착각했던 모양이야. 그동안 너무 정신이 없었거든. 어쨌든 우리 딸, 잘 와서 다행이다.”

“흥.”

나는 아직 토라진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이며 나를 껴안아 오는 아빠를 밀어냈다.

“됐고, 왜 착각했어? 그동안은 이런 일 없었잖아.”

다음 순간, 아빠의 표정이 순식간에 씁쓸하게 변했다.

“그라니아 숲에 마물이 나왔거든.”

* * *

칼리아 제국 남부의 곡창 지대에 위치한 블레어 영지는 꽤 풍족하지만 그뿐인 농촌 마을 여럿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히리스 백작령은 광산이라도 있지 여기에 널린 거라고는 그냥 산과 들, 숲뿐이었다. 가끔씩 등산객이 찾아오는 것 빼고는 방문자나 여행객도 별로 없었고.

한마디로 정말 한적한 시골 촌구석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마물이 습격했을 때 다치는 건 일반 영지민들이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찰스 아저씨…….”

아저씨는 그라니아 숲 근처에서 과수원을 하던 순박한 농부였다. 종종 내게 과일을 나눠 주시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일을 당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아이고, 아가씨. 오랜만입니다.”

“괜찮으세요?”

아저씨 다리에 감은 붕대에 피가 조금 배어 나와 있었다.

아저씨가 머쓱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었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었어요. 그렇게 많지도 않아서 조금 긁히고 말았죠.”

“그럴 리가 없잖아요.”

“아닙니다. 정말 한두 마리밖에 없었어요.”

아저씨가 손사래를 치며 멋쩍게 웃었다.

“한데 영주님이 그러시더군요. 마물은 한번 출몰하면 개체수가 급격하게 많아지니 빠르게 조치를 취하는 게 좋겠다고.”

“아…….”

“이 늙은이 집 하나 지켜 주겠답시고 기사님들 전부가 나가셨던데, 죄송할 따름이지요.”

“저택이 한산했던 이유가…….”

다 숲 쪽을 경계하러 나가서 그렇구나.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렇군요. 정말 괜찮으시죠?”

“그럼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나을 때까진 푹 쉬세요.”

나는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저씨를 뒤로하고 응접실을 나섰다.

오랜만에 와서인지, 복도가 유난히 깨끗해 보였다. 그새 대청소를 했나?

문을 닫으며 고개를 갸웃한 내가 아르한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얘 아직까지 있었네.

“그러고 보니까 너, 슬슬 가 봐야 하지 않아?”

“내가 갔으면 좋겠어?”

아르한이 눈썹을 내려뜨리며 자못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나를 집요하게 좇는 시선을 피해 눈알을 데굴 굴렸다.

“아니, 강요하는 건 아니고. 백작 부부께서 걱정하시지 않겠어?”

들었잖아. 여기에 마물도 나타난다고.

내가 아르한을 힐끗 바라보며 얼버무렸다.

붉은색 눈이 반달로 휘어졌다.

“나 걱정해 주는 거야?”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네 몸이 마물한테 갈기갈기 찢기면 안 되니까.”

“누나 진짜 분위기 깨는 데 뭐 있다.”

아르한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무슨 소리야?”

나는 얼굴을 찡그린 채 몸을 돌렸다.

“얼른 출발이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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