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10)

* * *

생각해 보니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의문이 들었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멍한 얼굴로 선배를 따라가던 나는 힘겹게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저, 선배. 선배님.”

힘, 힘들어.

선배 다리가 길어서인지 따라가기가 영 힘들었다.

그걸 알아차린 듯 내가 자신을 부르자 노아 선배가 걸음을 멈췄다.

“미안, 힘들었어?”

“……아, 아뇨.”

“안경 썼네.”

“아, 네.”

나는 어느새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썼다.

서랍에 두고 방치한 탓에 안경알에 먼지가 묻어 있었다. 대충이라도 닦고 나올걸.

안경 닦는 천이 어디 있더라,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눈살을 찌푸리는데 선배가 슬며시 웃으며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을 넘겨 주었다.

“예뻐.”

덜그럭.

나는 쿵쿵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다정한 금색 눈을 올려다보았다.

뭐, 뭐라고? 뭐라고요? 예쁘다? 예쁘다고?

내가 꿈을 꾸고 있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볼을 세게 꼬집었지만 꿈에서 깨기는커녕 아프기만 했다.

“갈까?”

선배의 ‘예쁘다’ 발언에 충격을 받아 해롱거리던 나는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그래. 지금 복도 한복판이었지. 가야지.

나는 고개를 휙휙 흔들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종종걸음으로 노아 선배를 따라갔다.

나를 배려해 준 것인지 선배의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지.

잠시 풀어졌던 내 표정이 다시 진지해졌다.

슬슬 수업에 가야 하는데 너무 시간을 오래 잡아먹으면 곤란했다. 지금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려던 그때, 내 눈앞에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저, 선배. 여기 2학년 건물인데요.”

내가 불안한 얼굴로 노아 선배를 올려다보자, 선배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아.”

뭐지? 여기 볼 일이 있나?

아무렇지도 않은 선배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다소 이른 시각이라 학생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먼저 와 있던 몇몇이 선배를 보고 그대로 굳는 것이 보였다. 하긴, 노아 선배가 다른 학년 건물에 올 일이 어디 있겠어.

“수업 잘 들어.”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선배가 도로 손을 거두었다.

올라갈 일이 거의 없는 입꼬리가 미미하게 호선을 그렸다.

그렇게나 보고 싶던 모습이었는데,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다.

“안녕.”

작게 인사를 건넨 노아 선배가 돌아서 발걸음을 옮겼다.

엥?

에엥?

에에엥?

나는 어벙한 얼굴로 멀어져 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른 볼일이 있는 게 아니었어? 설마 날 여기까지 데려다준 거야?

노아 선배가? 나를?

나는 복도에 서서 허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왜?”

* * *

“그렇게 널 데리고 가서 교실까지 데려다줬다고?”

내 이야기를 들은 도라가 떫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안 그래도 내가 아침에 노아 선배랑 가 버리는 바람에 혼자 교실까지 와야 해서 조금 삐진 것 같았다.

“왜 그랬대?”

“나도 모르니까 물어보지 마라.”

나는 초코 과자를 집어먹으며 도라의 시선을 피했다.

“설마?”

한참을 곱씹던 내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을 벌렸다. 도라의 남색 눈동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에이.”

“에이.”

우린 거의 동시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말이 되냐. 노아 선배가 날 좋아한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네. 고백했을 때 아무 말도 못 했으니 차인 거나 다름없는데.

저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내가 문득 드는 생각에 고개를 홱 들었다.

“혹시 날 찬 게 미안해서?”

“오, 일리 있어.”

도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혹시 선배 앞에서부터 질질 짰던 거 아냐?”

“아닐……걸?”

나는 긴가민가한 기억을 되짚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니 보이지는 않았을 거다. 아, 혹시 눈물이 흘렀나? 그럼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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