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10)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한 표정으로 노아 선배를 올려다보았다. 입 안에 온갖 질문들이 떠다녔다.

무슨, 뜻이에요? 왜 제가 탈퇴하는 게 싫어요?

……나 조금은 기대해도 돼요?

하지만 선배의 얼굴은 너무나도 차분하고 평온해서, 나는 차마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자, 머뭇거리던 선배가 입을 열었다.

“그냥 그렇다는 거야. 잘 생각해 보고 네 마음대로 해.”

이어 또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는지 선배가 한 손을 들었다.

“……!”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미련을 떼려고 나온 건데 이러면 곤란해.

거절하다시피 해 놓고 이러는 건 너무 잔인하잖아요, 선배.

그러자 선배가 멈칫하며 손을 내렸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이내 노아 선배가 입을 열었다. 쓰다듬으려 한 게 미안했는지 조금은 주저하는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는 한 번도 거부하거나 한 적 없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 줘서 고마워.”

선배의 아름다운 얼굴이 언뜻 미미한 미소를 띠었다.

무엇이 고맙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가슴 한쪽이 아릿했다.

“그럼 잘 자.”

노아 선배가 몸을 돌리자 긴 은색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선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좋아해요, 선배. 처음 본 날부터 좋아했어요. 선배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아할 것 같아요, 어쩌죠?

나는 끝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내가 들어도 제법 애틋한 목소리였다.

“……정말 좋아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선배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린 노아 선배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선배.”

달을 등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안 보일 테니까.

* * *

“왔어? 어떻게 됐어, 차였냐?”

문을 열자마자 문가에 기대선 채 킬킬거리는 도라의 모습이 나를 반겼다.

짜증 나 죽겠는데 사실이라 반박도 못 하고.

“……잘 거야.”

실연이 다 그런 거니 어쩌니 하는 도라를 뒤로하고 나는 침대에 몸을 뉘였다.

나는 또다시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불과 몇 분 전 상황이 떠올랐다.

흩날리던 은색 머리카락, 달빛을 받아 안경 너머에서 반짝이던 황홀한 금색 눈.

햐,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네.

“미쳤나!”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주먹을 들어 베개를 내리쳤다.

평정심, 평정심. 이제 그만 생각해.

한 손을 가슴 위에 얹고서 내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어색한 상황을 떠올리니 조금은 마음이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한참을 침대에 누워 뒤척거리던 내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다.

“……야, 도라. 너 이거 먹어.”

이젠 미련 정말 버릴 거니까.

“엥?”

내 손에 들린 박하사탕을 본 도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 이거 싫어하는데.”

“그냥…… 먹어. 그냥 먹어. 내가 네 입에 직접 넣기 전에.”

빨리 먹어서 없애.

이마를 짚은 내가 도라의 품에 사탕을 들이밀었다.

“……?”

도라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사탕을 받아들었다.

맛도 없는 걸 왜 주냐며 툴툴대는 그녀의 한탄을 들으며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내 짝사랑이 끝났다.

* * *

내 착각이었다. 아무래도 안 끝난 것 같다.

내가 그 결정을 후회한 건 정확히 다음 날 아침이었다.

“너 그거 먹었어? 먹었어?”

나는 방금 일어나서 비몽사몽한 도라의 옷깃을 마구 흔들어 재꼈다.

“……뭐?”

졸린 눈을 게슴츠레 뜬 도라가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네가 먹으라며.”

“먹으라고 그걸 또 홀랑 먹냐!!”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악을 썼다.

생각해 보니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언제 선배가 또 나한테 사탕을 주겠어. 한…… 한 며칠만 더 갖고 있다가 내가 먹을걸.

“아, 너 미워! 너 진짜 미워!”

“시끄러. 아, 잠 다 깼네.”

내가 침대에 엎어져 난리를 치자, 눈을 비비며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도라가 등을 벅벅 긁으며 하품을 했다.

“어제는 정작 조용하더니 오늘은 왜 또 난리야.”

“사탕…….”

“으휴.”

내 대답에 썩은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도라가 별안간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와, 네 얼굴 장난 아니다! 와하하하!”

왜 저러나 싶어 거울을 본 나는 기겁했다.

헝클어진 금발머리는 잔뜩 뻗쳐 있고,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나는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중얼거렸다.

“망할.”

나는 속으로 툴툴거리며 서랍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이걸로 조금은 가려질 거다. 수업을 빠질 수는 없지.

“하…… 사랑했다, 노아스…….”

내가 얼굴을 손에 묻고 신음하는 걸 보며 도라가 옷을 꿰어 입다 말고 혀를 쯧쯧 찼다.

“사랑이 그런 거지 뭐 어쩌겠니.”

“닥쳐.”

나는 그녀를 부라리며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싫은데.”

그에 답하듯 얄미운 소리로 종알댄 도라가 혀를 벳 내밀었다.

저걸 확 쥐어박아?

주먹에 힘이 들어갔지만 지금은 마법을 쓰기에도 물리적인 힘을 쓰기에도 내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주먹이 운다.

“야, 좀 기다…….”

벌써 다 준비를 끝내고 방을 나서려는 도라를 따라 내가 허겁지겁 책을 챙겼다.

“으악!”

나가려 문을 연 도라가 뒤로 나자빠지며 비명을 질렀다.

통쾌할 상황이지만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었다.

쟤가 갑자기 왜 저러나, 이유를 찾아 문가로 고개를 돌린 나는 도라와 똑같은, 어쩌면 더 추한 비명을 질렀다.

“와악!”

우리 둘 다 그럴 만도 했다.

문 앞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노아 선배였으니까.

잠깐, 나 지금 꼴이 말이 아닌데?

손이 본능적으로 머리를 정리했다.

“어머. 도라. 너 괜찮니?”

부러 말끝을 늘려 짐짓 친절한 표정을 띤 내가 도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떫은 표정의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치마도 털어 주었다.

그러고선 자연스레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배? 어, 왜 여기 계세요?”

“안녕.”

노아 선배가 평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자.”

“예?”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되물었다.

“저요?”

“응.”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우리 어딜 가나요, 물어볼 새도 없이 선배가 몸을 돌렸다.

“야, 어디 가…….”

나는 문가에 서 있는 도라를 애처롭게 돌아보며 주저하는 몸짓으로 선배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미안, 친구야. 근데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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