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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돈을 써야 할 곳 (301/304)

진짜 돈을 써야 할 곳

“헙! 우리의 영웅! 소치의 챔피언! 올포디움과 올림픽 2연패의 쾌거를 이룩한 연하를?”

“…수식어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수안은 소치 동계 올림픽의 편파 판정을 막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우선 심판진 중에 승부를 조작해 심판 자격 정지를 먹었던 우크라이나 심판을 떨궈냈고,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의 아내였던 심판도 공정성을 이유로 반대했다. 또한 테크니컬 컨트롤러를 맡기로 했던 러시아의 전 빙상연맹 부회장도 반대했다.

러시아의 불곰은 두 팔과 두 다리를 잃은 것과 같았다.

수안이 IOC 위원 중 하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올림픽 3연패의 기록을 세운 육상 챔피언이고 이후에도 스포츠 꿈나무를 지원하며 활동해 온 수안이다. 당연히 IOC 위원장이 수안을 IOC 위원으로 지명하는 데 잡음이 없었다.

“내가 러시아 편파 심판 교체하느라 쓴 돈이 얼만데 이 정도는 붙여 줘야지.”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정말 올림픽 정신에 충실한 곳은 아니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돈으로 불가능했다면 그것은 돈이 부족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수안은 대외적으로 돈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

IOC 위원장부터 그 이하 위원들까지 수안의 돈맛을 보지 못한 인물이 드물었다. 덕분에 수안이 반대한 러시아 측 심판진은 판정 라인에서 제외되었고, 그 외에 많은 이들은 쏠쏠한 돈맛을 봤다.

수안은 진짜 돈을 써야 할 곳에 썼을 뿐이다.

수안이 러시아와의 심판진 로비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 결과 연하는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정상적으로 금메달을 따내고 피겨 2연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리피트 클럽(Repeat Club: 올림픽 2연패 클럽)에 들어갔다.

“어쨌든, 피겨 챔피언도 기금 마련 행사에 초대하도록 하지요.”

“우리 퀸이 오신다니 그동안에 몸을 좀 만들어야겠네.”

볼트와 치를 자선 경기 때문이 아니라 퀸을 위해 몸을 만들겠다는 말이다.

“오늘 보고 끝이지? 나 운동하러 간다.”

“…차량 대기시키겠습니다.”

“오늘 제대로 몸 좀 풀자.”

* * *

배영성은 트랙에서 수안이 피니시 라인을 통과함과 동시에 스톱워치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 기록을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

“허억. 배 회장. 기록. 허억.”

배영성은 자신이 제대로 누른 게 맞나 싶은 의심이 들었다.

“저어기. 아무래도 제가 버튼을 잘못 누른 모양입니다.”

“뭐어? 또 뛰라고?”

“연습이잖습니까.”

“이젠 잘못 눌러 놓고 당당해?”

“흐흐. 죄송합니다.”

“앓느니 죽지. 이번엔 제대로 체크해.”

“옙.”

스톱워치를 리셋하기 직전에 보이는 기록은 8초 중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수치였다.

수안이 다시 시작 위치로 걸어가는 동안 배영성은 설마 하는 마음만 들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인간이 어떻게 8초대에 100m를 달려?’

그것도 전성기를 한참이나 지난 사람의 기록이다. 현재 수안이 세워둔 세계 신기록도 현역 선수들이 깨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배영성은 수안이 스타팅블록에 발을 올린 것을 보고 깃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힘차게 깃발을 내리며 스톱워치를 작동했다.

수안은 스타팅블록을 박차며 튕겨 나가듯 가속을 시작했고 아까와 같은 속도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고 배영성은 정확한 시점에 버튼을 눌렀다.

“오케이!”

이번엔 확실하게 잘 누른 것 같았다.

“…어라?”

“허억. 허억. 이리 내놔봐.”

배영성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수안이 스톱워치를 빼앗듯이 가져갔다.

하지만 기록을 보고 한마디 하려던 수안도 입을 다물었다.

“…….”

“아무래도 제가 또….”

“감 떨어졌어? 이젠 버튼도 못 누르네. 명퇴시켜 줄까?”

“여, 연습이잖습니까. 연하 선수가 멋진 회장님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렇지! 연하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 주려면 더 연습해야지. 이번엔 제대로 눌러.”

배영성에게 돌려준 스톱워치의 이번 기록은 8초 초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열심히 달려 버린 수안이다.

‘감은 내가 떨어졌지. 젠장.’

배영성에게 뭐라고 할 일이 아니었다.

하도 오래 기록을 재지 않았더니, 적당하게 달리는 법도 잊고 말았다.

이후 수안의 기록은 차츰차츰 나아져(?) 9초 후반과 10초 초반을 오갔다.

“이제 제대로 누르네. 배 회장 계속 일해도 되겠어.”

“그런데…. 체감상 회장님 속도가 늦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말입니다.”

“이제 눈도 노안이 오나? 진짜 퇴직 시기가 되긴 했나 봐.”

“아, 아닙니다. 아깐 제가 잘못 봤나 봅니다.”

멀쩡한 배영성의 눈까지 타박했지만, 감 떨어진 사람은 수안이었다.

* * *

이벤트가 열리는 당일.

잠실 올림픽 경기장엔 많은 사람이 착석해 세기의 이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외신 기자들과 국내 방송사들이 대거 몰려왔다. 중계석에 아나운서까지 대기 중이었고, 오늘 중계권은 여느 프로 경기 못지않게 높은 금액이 책정되었다고 한다.

볼트와 수안은 기자들 앞에서 서로 주먹을 마주한 포즈까지 취해야 했다.

대기실에서 수안은 볼트를 앞에 두고 타박했다.

“어딜 감히 스승님께 도전해? 날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어.”

“저 많이 컸습니다.”

키는 볼트가 더 크긴 했다.

“…….”

“이젠 스승님을 넘어설 때가 됐습니다. 전성기가 훌쩍 지나 버린 챔피언도 못 이기면 금메달도 반납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서라. 그런 얘긴 기자들한테 하지 마.”

“…자신 있으십니까?”

“넌?”

“반반?”

“미쳤네. 네가 이길 가능성을 50%나 본단 말이야? 넌 어디 가서 도박하지 마라. 다 잃어.”

“안 그래도 국제 베팅 사이트에 저희 승패가 올라왔습니다.”

“몇 대 몇이든?”

“제가 90%입니다.”

“풋. 내가 이기고 이번 희귀병 어린이 기금에 1천만 달러를 기부하지.”

적당히 져 줄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제가 이기고 1천만 달러를 기부하겠습니다.”

“아니. 넌 지면 1천만 달러를 기부해. 내가 이길 테니까.”

“하하.”

“네 웃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 보자.”

“아마 첫 200m 경기부터 다음 100m 경기까지 이어질 것 같습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자신이 이긴다는 뜻이다.

“…….”

“시간 됐습니다. 경기 준비 바랍니다. 두 선수는 나와 주십시오.”

이제 나갈 시간이다. 수안은 괜히 볼트의 컨디션이 걱정되어 물었다.

“컨디션은 어때?”

“최상이죠.”

“다행이다.”

“네?”

“미안하지만 내 컨디션도 최상이거든. 게다가 우리 연하가 보고 있지.”

“퀸?”

“그래. 피겨의 여왕. 소치의 챔피언!”

수안은 당당하게 트랙으로 향했다.

“““와아아아아!”””

환호성 속에 두 사람은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며 스타팅 라인에 섰다. 그리고 중계진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방송을 이어 갔다.

“와아. 볼트 선수야 현역 선수니 저런 몸을 가질 수 있다지만, 강 선수는 의외입니다.”

“올해 마흔셋. 만 나이로 따져도 마흔둘입니다. 애도 셋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현역 선수와 다르지 않은 근육질 몸이 대단하군요. 강 회장은 그간 운동을 쉬지 않은 모양입니다.”

“오늘만큼은 강 회장이 아니라 강 선수라고 해야겠지요?”

“아! 그렇군요. 오늘만큼은 강운 그룹 총수가 아닌 육상의 강수안 선수로 돌아왔습니다.”

그사이 두 사람은 스타팅블록에 발을 얹고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거의 챔피언과 현재의 챔피언이 맞붙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현재 육상의 절대자인 볼트! 그리고 과거 육상의 황좌를 차지한 강수안. 여전히 깨지지 않는 세계 신기록은 육상의 황제를 기리고 있습니다.”

“국제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서는 볼트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고 하죠? 오늘 경기는 왕자가 황제를 밀어내기 위한 이벤트라고들 합니다.”

“기록을 유지하는 것은 현역 선수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죠. 특히 지금까지 출전 기록이 없는 강 선수에겐 상당한 부담일 겁니다. 하지만 강 선수는 희귀병 어린이 기금마련을 위해 이번 경기에 참석했습니다. 참가에 의의를 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200m 첫 경기 지금 시작합니다.”

중계진도 수안의 승리를 점치지 못하고 있었다.

스타팅블록에 발은 얹었던 두 사람의 엉덩이가 들렸다.

그리고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똑같이 치고 나가는 두 사람이다.

“달립니다! 강 선수 밀리지 않습니다.”

“빠릅니다! 오히려 볼트가 밀립니다!”

100m와 달리 200m는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

“볼트! 다시 동일 선상으로 올라섭니다! 같은 라인을 달리는 두 선수!”

“역시 현역 때와 다릅니다. 예전엔 감히 누가 옆에서 달렸겠습니까.”

하지만 동일 선상에 달리는 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수안은 볼트를 곁눈질로 확인하며 더 빠르게 치고 나갔다.

“다시 앞서 나옵니다! 강수아아안! 강수안! 결승선 통과합니다!”

“와아아아! 강 선수가 현역 선수인 볼트를 누르고 200m 우승을 차지합니다!”

“예상치 못한 반전! 볼트가 스승을 배려했나요!”

“기록 나옵니다! 배려가 아닙니다! 세계신기록! 기존 자신의 기록조차 뛰어넘었습니다! 강수안 선수 오늘 육상의 역사를 새로 씁니다!”

“아쉽지만 오늘 경기는 공인되지 않은 경기라 세계 신기록으로 기록되지 못합니다. 이벤트 경기인 것이 이렇게 아쉬울 때가 없습니다.”

“아아. 그래도 오늘! 바로 오늘! 육상의 황제가 돌아왔습니다. 야심에 가득했던 왕자의 목을 잔인하게 날려 버렸습니다. 강수안! 그가 돌아왔습니다!”

볼트는 허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전광판의 기록을 보고 있었다. 비공인이지만, 세계 신기록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수안도 볼트 곁으로 가서 말했다.

“허억. 내가. 허억. 뭐랬어.”

“휴우. 이렇게 잘 뛰면서 왜 은퇴했어요?”

“그럼 내가 네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면 좋겠냐?”

“…….”

“너뿐만 아니라 까마득한 후배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잖아. 그 선수들도 희망이 있어야지. 세 번도 얼마나 민망했나 몰라.”

“저는 내후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죠.”

“스승과 타이 기록은 만들고 나오시겠다?”

“이따 100m는 제가 이깁니다.”

“그래라.”

마지막까지 승부욕을 잃지 않는 녀석이 기특했다. 수안은 중앙의 VIP 관중석 근처로 가서 연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가 이긴다고 했지!! 아자자!”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피겨 여왕이었다. 그 외에도 초대받은 많은 스포츠 선수들과 IOC 위원들, 대내외 중요 인사들이 총출동한 VIP석이다. 이들이 오늘 희귀병 어린이를 위해 많은 기부금을 내놓을 것이다.

200m 경기 후에 한참이나 행사를 진행했다.

다음 경기를 위해 충분한 휴식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수안은 기자들이 모인 곳을 보고 배영성을 불렀다.

“네?”

“강운 병원 의사나 빨리 섭외해 놔.”

그날 경기는 엄청난 기금을 모으며 마무리되었다. 승패는 무승부. 200m는 수안이 승리했지만, 100m는 간발의 차이로 볼트가 승리를 가져갔다.

한 번의 승리와 한 번의 패배였다.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100m 경기가 끝나고 볼트가 수안에게 물었다.

“봐준 거 아니죠?”

“야. 내 나이가 몇인지 알아? 아까 힘 다 써서 다리가 후들거려.”

“젠장. 컨디션 좋을 때 다시 붙어요!”

“아주 노인네를 잡으려고 하네. 됐어! 너나 혼자 뛰어! 나 다리 저는 거 안 보이니?”

실제 수안은 100m 경기에서 볼트의 속도를 맞춰 달리다가 뒤로 밀리는 모습을 보여 줬다. 의도된 패배였다.

경기 후 행사에 참여한 수안은 여전히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돌아다녔다.

이벤트가 끝나고 수안은 배영성을 불러 보도 자료를 지시했다.

“…진짜로 이렇게 기사 냅니까?”

“그래. 얼른 기자들에게 뿌려.”

오늘 볼트와의 경기에서 200m 신기록을 기록했으니 다시 육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기사가 쏟아질 것이다. 그 전에 입을 막기 위함이었다.

“우선 의사부터 들어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강수안 회장. 이벤트 경기로 발목과 무릎 인대 파열.]

[강수안 회장 담당 의사, 수술 후 일상생활은 가능하나, 앞으로 육상은 불가능]

[강운 그룹 공식 인정. 회장님의 안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

[강수안 회장 “희귀병 어린이를 위한 기금 모금이 성공한 것으로 충분. 어차피 육상으로 복귀할 생각 없었다.”]

경제면과 스포츠면에서 시끄럽게 강수안을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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