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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 & 다다리오 (297/304)

분리수거 & 다다리오

수안은 얼마 전에 들어왔다는 3차 샘플에 관해 보고를 듣고 있었다.

“이번 샘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체 감염이 안 된다는 뜻이지?”

“예. 또한 실험실에서 배양 중인 기존 바이러스도 아직 인체 감염이 가능한 바이러스로 변이하지 않았습니다.”

“…….”

항주 연구소에서 개발했다는 의심이 자꾸만 힘을 얻고 있었다.

“임 차장은 아직 거기 그대로 있는 거지?”

“예. 요즘 경계가 심하지 않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하다고 합니다.”

매일 같은 일의 연속이고 의심되는 사람도 없으니 경계가 풀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내년까지는 기다려야겠어.”

“그래서 저희도 스정리 박사의 연구와 유사한 연구를 진행할까 고민 중입니다. 김현성 회장이 의견을 냈습니다.”

“…바이러스 기능 획득의 연구 말인가?”

“예.”

중국 항주 연구소보다 강운 생명 과학이 월등한 연구원 숫자를 자랑하며 고급 인재를 보유하고 있었다. 연구소의 수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자면 못할 것도 없는 일이다.

“…….”

수안은 고민을 거듭했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아냐. 중국이 했다고 우리까지 할 순 없어. 지금까지 우리가 확보한 내용은 제대로 증거로 남기고 결백함을 증명해야 해. 그래야 중국을 옭아맬 수 있을 거야. 괜한 의심을 받아봐야 그들이 피해갈 여지만 만들어 주겠지.”

“김 회장에게 절대 불가함을 전달하겠습니다.”

* * *

수안의 경계심은 언제나 항주의 연구소로 향해 있었고, 그사이 국내 법조계는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검찰과 사법부를 견제하는 토털 솔루션 격인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진행되면 앞으로 이직은 기대하기 어렵겠습니다.”

“이직이 문제가 아니라 판결에도 참견할 수 있게 됩니다. 국민이 뭘 안다고 재판에 자꾸 끼어듭니까.”

“그리고 탄핵도 문제지요. 어디 감히 판사를 탄핵하려 합니까. 우리나라는 엄연히 삼권 분립의 나라입니다.”

“AI라니…. 지금 인간의 존엄을 인공 지능이 평가하겠단 말입니까?”

“검찰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법안이 나왔는데 왜 반발이 없습니까?”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소규모 모임이었지만, 그 안에 프락치가 있었다.

“검찰은 총장을 비롯해 검사장급과 평검사들도 환영의 뜻을 표한다는 공고문을 내걸겠다고 합니다.”

“……!!”

수사권 박탈로 가장 크게 반발할 줄 알았던 검찰이 법안을 수용하면 함께 싸울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 판사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방금까지 확인했습니다만, 어찌 된 일인지 대부분의 판사들이 반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만 사실이었다. 사실은 여기 모인 이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밖의 상황도 달라질 수 있었다.

“허.”

“어째서….”

“듣기로 이미 그들은 미래를 보장받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헛!”

“어딥니까. 누가 우리의 미래를 보장한단 말입니까.”

“그건 말씀드리기가….”

이렇게 말할 수 없다는 모양새를 취해야 달라붙는 법이다.

“어허. 이대로라면 앞으로 우리는 노후를 걱정할 상황이야. 자네는 이미 걱정을 던 모양이니 우리도 알려 줘 보시게.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나.”

“맞네. 어째서 우리만 쏙 빼놓고 그러는지….”

“배신이야. 배신.”

“그럼 제가 그쪽에 연락처를 남겨도 될지….”

“어딘지부터 말하는 게 순서 아니겠나?”

“그렇지. 급하다고 썩은 동아줄을 잡고 싶지는 않다네.”

때가 무르익었다. 이제 궁금증을 해소해 줄 때였다.

“강운.”

“……!!”

“……!!”

“……!!”

“강운 그룹 강수안 회장이 나섰습니다. 아버지의 실책을 자신이 떠안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머리 좋은 판사들은 단박에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강 대통령의 이번 법안이 실책이라는 점은 확실한가 보군.”

“그래도 강 회장이 나섰으니 걱정 없겠어.”

“하하하. 솟아날 구멍은 있구먼.”

“강운 그룹은 대법과 헌재까지 손을 뻗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법안에 찬성하고 때가 되면 알아서 모셔갑니다. 이후는 강운에서 책임진다고 합니다.”

어차피 자신들의 안위 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나가는 돈은 몇 푼 되지도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당장 법안을 준비해 둬야 했다.

“아. 원한다면 삼디나 GL, 대현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강운과 뜻을 함께한다고 들었습니다.”

“오. 그 와중에 선택지까지 있어?”

“삼디가 대우가 좋다던데….”

“대현은 조금 답답한 경향이 있다더군.”

“GL은 더하다지?”

대화의 주제는 금방 강운 그룹으로 옮겨갔다.

“강 회장이 일은 확실한 사람이야.”

“나중에 대선에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

누군가의 입에서 대선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모두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들의 머리에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

“…….”

“…….”

“…….”

이미 강운 그룹 총수였던 강운모 회장이 대선에 엄청난 득표를 기록하고 대통령에 올랐다. 그의 아들인 강수안은 인기로 보나 인물로 보나 아버지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못 하지 않았다. 나이까지 40이 넘었으니 언제 대선에 나와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난 강운으로 가겠어.”

“거참. 당연한 소리를 해? 강운 아니면 어디로 가겠어?”

법관들은 강운으로 가서 수안을 모시다가 나중에 한 자리를 차지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수안은 전혀 대선을 고려하지 않는다. 착각은 자유였다.

.

.

.

“누가 내 욕을 하나. 자꾸 귀가 가렵네.”

“오른쪽 귀는 칭찬이라고 합니다.”

“오오. 그래?”

“그래 봐야 미신일 뿐이죠.”

“법조계 정리는 어떻게 되어 가나?”

“대부분 동참한다고 들었습니다. 일부 인원이 법치주의가 무너진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소수일 뿐입니다.”

“그 소수가 진짜야.”

돈이라는 사탕발림에 넘어오지 않는 그들이 대한민국 법조계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사탕발림에 넘어온 놈들은 그저 분리수거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분들은 이번 법안의 수혜자가 되겠지요.”

“흐흐. 그도 그렇군.”

정상적인 기소와 정상적인 판결. 법을 적용하는 데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외부의 힘에 눈치 보지 않는 법조인은 새로운 법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 지방에 있다는 점입니다. 권력에서 멀어진 결과입니다.”

“어차피 물갈이가 시작되면 돌고 돌아 중추로 오실 분들이야.”

5년 수임 제한이 걸리기 전에 퇴직을 선택할 법관들과 검사들이 상당했다.

“앞으로 저희도 몸을 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본보기를 보이지 않겠습니까.”

“확보한 법조 인력만 해도 상당하잖아. 앞으로 법조인에게 들어가는 돈은 없을 테니 더 좋지. 국가에서 감시한다지만, 우리도 감시해 보자고. 비위를 확인하면 바로 청와대에 자료 보내.”

“예. 회장님.”

* * *

주미는 오랜만에 수안의 집무실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하하. 제수씨가 교본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은 들었죠. 호원이랑 건원이는 잘 크고 있죠?”

주미는 또 아들을 낳았다. 딸을 바랐다고 하는데 자식의 성별은 부모가 결정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항상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해요. 두 아이 모두 잘 크고 있답니다.”

“그런데…. 제수씨 얼굴에 그늘이 있네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주미는 회장실에 들어오면서부터 굳은 얼굴이었다.

“실은 오빠의 일로 문제가 조금 생겼습니다.”

“또 사돈총각의 일입니까?”

“혹시 예전에 만나던 여자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초반에 금방 헤어진 여인은 아닐 것이고…. 미국인 말입니까?”

“예.”

“그 사람은 왜 찾으십니까?”

“아무래도 오빠가 그 여자를 다시 만나는 것 같아요.”

“네?”

수안에겐 실로 놀라운 소식이다.

“사실이에요. 그동안 선을 봐도 신통치 않았고 여자에게 도통 관심도 없었는데, 최근에 여자 향수 냄새를 묻히고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여자를 만나는 것 같은데, 남녀 관계가 갑자기 그렇게 진전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알 필요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오빠는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의 육감으로 분명 전에 만나던 여자를 다시 만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샤넬 No 5. 분명 오빠가 미국에서 가져온 옷들에서도 났던 향수 냄새야.’

미국에서 가져온 오빠의 옷들에서도 같은 향수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래서 전에 만나던 여자라고 확신했다.

문제는 집에서 알게 되면 예전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술집 여자라도 허락한다는 판국에 미국인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래서 주미는 상대가 누구인지라도 알아보려 수안을 찾아온 것이다.

“그 여자를 다시 만나요? 내한한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

“내한이요?”

“잠깐만 기다려 봐요.”

수안은 얼른 휴대 전화를 꺼내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

수안은 커뮤니티에 올라온 그녀의 몰래 방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꺄아아! 제시가 한국에 왔어! 거리에서 아무도 그녀를 못 알아보는 거 있지? 난 알아보고 바로 사인 받았지롱! 그런데 제시는 한국말 진짜 잘해. 깜놀!]

첨부: 제시카 다다리오 친필 사인.jpg

┗주작임. 제시카 다다리오라고 한글로 썼다.

┗풉. 제시카가 한국어로 사인을? 주작도 성의가 좀 있어야….

┗ㅋㅋㅋ 게다가 사랑해라고 썼어. 그것도 한글이야. 주작도 주작 나름이지.

첨부파일에 그녀의 풀네임이 적혀 있어서 검색이 가능했던 모양이다.

“…그녀가 한국에 왔네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수안은 그녀가 한국어에 능숙함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뽐내리라 예상했다. 할리우드 배우가 엉성한 한국어가 아닌 능숙한 한국어를 뽐낸다? 국내에 그녀의 팬들이 폭증할 것이다.

“이런 정보를 검색해서 알 수 있었다고요? 대체 누구기에….”

“그녀의 이름은 제시카 다다리오. 요즘 뜨고 있는 할리우드 배우입니다.”

“자, 잠깐 누구라고요?”

“제시카 다다리오라고 했어요.”

“누군지 알아요. 나도 아는 여배우라고요.”

여전히 연예계 가십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할리우드 배우도 훤히 알고 있었다. 제시카 다다리오는 아름다운 미모에 대단한 몸매까지 갖춘 핫한 배우였다.

‘게다가 그녀의 나이가….’

“그녀가 오빠보다 10살은 어릴 텐데….”

“정확히는 9살 차이죠.”

“…….”

주미가 멍하니 앉아 입을 다물고 있자 수안이 부연 설명을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잘나가는 배우가 아니라 배우 지망생이었어요. 당시 사돈총각이 매니저 역할도 하면서 그녀의 뒷바라지를 했죠. 시원하게 차이긴 했지만.”

“하!”

“이제 의문은 풀렸습니까?”

주미는 인상을 찌푸렸다가 입술을 내밀었다가 하면서 깊이 고민을 이어 갔지만,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냥 둬야겠죠?”

“그럼 갈라놓기라도 할까요?”

“휴우.”

주미도 이제 포기였다. 그래도 할리우드 여배우라면 전에 그 여자보다 백배는 나은 상대가 아닌가. 인기가 많아 돈도 잘 번다고 들었다.

“그녀에 관한 추가 정보를 드리자면, 그녀의 할아버지는 민주당 하원의원을 지냈고, 그녀의 아버지는 뉴욕의 검사로 일하고 있죠. 나름 괜찮은 집입니다. 그녀도 집에서 사랑받는 딸이죠.”

국내 재벌가에 비하면 부족하겠지만, 나름대로 명망 있는 집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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