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사천리 (296/304)

일사천리

“법조 장학생?”

사법개혁의 시작이다. 물론 정부에서 시작하겠지만, 외부에서의 조력이 필수적이었다.

“우리 쪽 장학생들과 삼디, GL은 이미 확보했지요. 대현까지 확보하면 대부분이 그물 안으로 들어옵니다.”

외부의 조력은 강운이 있으니 절반은 가능하다. 여기에 다른 대기업의 사법 장학생을 더하면 그물을 촘촘하게 짤 수 있었다.

“뭘 어쩌려고….”

“그 부분은 정부에서 법안을 진행하면 알려 드리기로 하죠.”

아직 알릴 때가 아니었다. 괜히 정보가 먼저 나가면 시끄러운 일만 생길 것이다.

“다음은 언론입니다. 신라 일보의 전례가 있어 몸을 사리고 있지만, 언론은 법적인 장치가 필요합니다. 대현에서도 언론에 힘을 발휘하지 않습니까.”

언론을 향한 징벌적 손해 배상 법안이 마련되고 있었다. 언론에서 이를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전 방위로 압박을 줄 필요가 있었다.

“저울추가 조금 기울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 말입니다.”

대현 건설 인수에 도움을 주는 것은 강운 그룹인데, 도움은 정부에 줘야 한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얼마 전에 대통령께서 오바마를 만나고 왔습니다. 앞으로 미국으로 들어가는 한국의 자동차의 관세는 문제가 없는 한 철폐될 겁니다. 통관도 빠르게 처리될 겁니다.”

“허. 그렇다면 말이 다르군요. 좋습니다.”

“저는 대현 건설 회장과 만나고 정 회장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보다 자금은 얼마나 융통할 수 있을지….”

“정 회장님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국제무대에 한국 기업이 많아져야 하지 않겠는가. 대현은 전통의 대기업이다. 그만한 저력이 있었다. 대현에 넉넉한 자금이 더해지면 국제무대에서 일본 자동차를 누르고 올라설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대현은 수소차에 집중할 수 있겠습니다. 건설 인수를 위해 조금 남겨놨는데 필요 없겠군요.”

“수소연료 자동차는 대현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죠. 앞으로도 그 분야에 강운이 끼어들 일은 없을 겁니다.”

강운은 전기차를 차세대 자동차로 밀고 있었고, 대현은 수소연료 차량을 밀고 있었다. 당장은 전기차가 우세할 것 같지만 미래는 모르는 일이다. 배터리의 발전이 벽을 마주하게 되면 수소연료가 배터리를 누르고 우월종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것도 보답의 일부로 생각해 주시죠.”

“대현 자동차에서 관리하는 법조인들은 정부의 새로운 법안을 찬성할 것입니다.”

“아. 그리고 자금은 다른 기업에서 투입될 수 있으니 그리 알고 계세요.”

“…또 뭘 숨겨둔 겁니까.”

지금까지 알려진 수안의 회사가 아니라면 또 다른 회사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다 알면 재미없지요.”

대현 건설 인수에 들어가는 자금을 5조 원 안팎으로 예상하면 최대 3조 원의 수혈이 필요했다. 이만한 자금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회사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 * *

대현 건설 정영호 회장과 일정을 잡고 만나는 자리였다.

“그간 고초가 많으셨습니다.”

그가 대북 송금으로 인해 옥고를 치르고 나온 지 한참 전이었지만, 이후 이렇게 단독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예의상 하는 말이다.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일이었지요.”

“그 책임이 너무 오래 지속되는 듯합니다.”

이현창이 집권한 다음에서야 경제 사범에 대한 사면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형기를 거의 다 마치고서야 사회로 나왔다. 사회로 나와서 대현 건설을 다시 부흥시키지도 못하고 형제들에게 조금씩 차입으로 버텨왔지만, 이젠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늘 강 회장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대충 짐작됩니다.”

“…….”

확실히 정영수 회장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솔직히 형님을 보면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 같습니다. 차라리 강 회장님이 중간에 있어 주시면 저도 결정을 내리기 편하겠군요.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도 되겠지요.”

정 회장은 수안이 자신 앞에 온 이면에 자신의 형 정영수가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오니 오히려 대화가 편하군.’

“대현은 하나의 대현으로 돌아가야겠지요.”

“하지만 예전과 같진 않을 겁니다. 이미 흩어질 대로 흩어졌으니까요.”

“…형님이 알아서 하시겠지요.”

수안은 정영호 회장의 태도를 보고 가족의 해체를 그렸다.

‘그렇게는 안 되지요.’

“아예 발을 뺄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정 회장이 건설을 인수해도 정영호 회장님의 능력은 필요할 겁니다.”

“……?”

의문을 보이는 정영호 회장에게 수안이 설명했다.

“정영수 회장님은 자동차만으로 버거운 분입니다. 아무리 지분을 인수해도 누군가는 건설을 맡아 중심을 지켜 줘야 합니다. 지분만 이동한다 생각하세요.”

“…….”

“정영수 회장께는 제가 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분 양도의 조건으로 걸어 버리지요.”

“형은 욕심이 있어서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겁니다.”

자금줄을 잡고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건 제가 할 일이지요. 아시다시피…. 저 강수안입니다. 세상에 불가능이 어디 있습니까? 하면 됩니다.”

“…아버지의 정신은 그대가 이은 것 같군요.”

“앞으론 정 회장님이 지켜가십시오. 괜히 왕 회장님 따라 하려니 두드러기가 날 것 같습니다.”

“하!”

“고 정택주 회장님의 아드님이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어쨌든 저는 저의 일을 합니다. 정 회장님은 정 회장님의 일을 하십시오. 건설 그룹에 딸린 식구들을 생각하세요. 그들의 가정도 생각하십시오.”

“…부끄럽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강 회장님.”

* * *

수안은 오랜만에 최장호를 불러들였다.

“찾으셨습니까. 회장님.”

“최 사장은 요즘 별고 없으시고?”

수안이 예전에 말한 것처럼 코인 거래소를 설립한 장호는 이제 한 회사의 사장이었다.

“하하. 거래소야 거래 수수료를 벌어들이는 곳이니 손해날 일이 없지요. 게다가 말씀해 주신 대로 작년 말에 모두 처분하고 다시 코인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전자 화폐인 코인이 급등을 기록했을 때 보유했던 코인을 모두 처분한 장호는 올해 말까지 다시 코인을 수집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조 단위로 끌어모았지?”

“앞으로 추가 수급할 자금을 제외하고 남은 자금이 4조가량 됩니다.”

실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대현 자동차에서 대현 건설을 인수하는 데 자금 수혈이 필요한 모양이야. BW나 CB 발행으로 진행하게 될 테니, 최 사장이 도와주면 어떨지 싶어. 최대 3조까지 생각하고 있어.”

대현 자동차에서 필요한 자금은 장호의 거래소를 통해 융통할 수 있었다. 이제 이런 일은 강운과 BE가 나설 필요조차 없었다.

“안 그래도 투자처가 마땅치 않았는데, 안전하게 불릴 수 있겠습니다.”

최장호가 조 단위 자금을 쉽게 거론할 수 있는 것은 그 돈을 만드는 데 들어간 자금이 적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수백억이었는데, 조 단위로 돈을 모았으니 돈이 돈으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배당은 필요 없으니까 계속 불려봐.”

“옙. 회장님. 아! 다른 분의 전자 지갑도 확인했습니다.”

수안은 코인 급등으로 상당한 이득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이득은 국세청에서 과세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이에 적용할 법안도 없는 상태였다.

“이 회장하고 차 사장은 당연히 잘 챙겼을 것이고. 배 회장과 김 회장도 적당히 챙겼겠네.”

미국 BE의 이방효 회장과 일본 BE의 차진호 사장, 배영성과 김현성까지 골고루 이득을 봤다. 괜히 거래소 이익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예. 그리고 사모님과 자녀분들 지갑도 정리가 끝났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도 코인 거래소를 활용했다. 향후 증여세를 생각하면 미리부터 챙겨야 했다.

“2017년 말에 한 번 더 급등이 올 것 같으니까 기억해 두고.”

“예. 회장님. 그리고…. 조만간 시간 되시면 식사라도 같이하시죠.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당연히 최장호 본인도 개인적인 자금을 투입, 상당히 재미를 봤다. 수안 덕분에 번 돈이니 최소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이고. 내가 벼룩의 간을 내먹지. 배 회장 부를 테니까 오랜만에 셋이 뭉치자. 장소는 알지? 예전 아버지가 쓰던 별장.”

“하하하. 배 회장님이 또 수고하시겠네요.”

별장으로 가면 배영성이 따로 전문 요리사를 불러야 했다. 또한 서빙 할 인원은 전략비서실이 대신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배영성이 챙겨야 하는 일이다.

“음식만 차려 놓고 다 나가라고 할 거야. 늦게까지 우리끼리만 놀자고.”

“하하하. 예. 회장님.”

누가 사면 어떻고 누가 준비하면 어떻겠는가.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했다.

* * *

“검사의 권한을 최소화합니다. 우선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죠. 앞으로 검사는 수사권을 가질 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기소권을 가질 추가 기관이 있으면 기소권의 힘도 분산될 겁니다. 또한 고위 공직자를 수사하는 기관이 절실합니다. 특검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법부의 견제도 필요합니다. 국민 참여 재판을 늘려야 합니다.”

“추가로 판사 탄핵이 실효성을 가져야 합니다. 탄핵 시 면직, 파면으로 끝이 아니라 변호사 자격을 박탈하는 쪽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전관예우를 끝장내는 것도 고민할 일입니다. 그래야 사법 정의가 바로 섭니다. 전관 변호사의 특혜를 막기 위해서는 사건 수임 제한 기간 1년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행 1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방향이 좋겠습니다.”

“산업의 발달에 맞춰 AI(인공지능) 판결도 고려해 볼 만합니다. 판결 자체를 인공 지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비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습니다. 기존 판결에서 10년 이상의 판결이 내려졌는데, 갑자기 집행유예가 나오기도 합니다. 전관예우나 봐주기 판결 때문이지요. 인공지능은 이런 부분을 걸러낼 수 있을 겁니다.”

대통령은 모두의 의견을 듣고 말했다.

“실로 좋은 안건이 많이 나오는군요. 좋습니다. 이제 구체화해 봅시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법조계 반발도 염두에 두시고 법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대로라면 검찰과 사법부의 큰 반발이 있을 것임은 명약관화합니다.”

반대 의견을 무시하면 토론이 아니라 지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미리 준비된 것이 있어서 이번엔 반대 의견을 수용할 수 없었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겠습니까. 게다가 미리 준비 중입니다. 검사와 판사는 외부에서 따로 달래는 중이지요. 그 부분은 우선 넘어가고 법안의 실효성만 생각합시다.”

“아….”

“우리가 원하면 하늘이 돕습니다.”

하늘이 아니라 수안이 돕는다.

“하하하.”

강 대통령의 말은 자리한 공직자들에게 농담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고위 공직자를 수사할 기관부터 시작합시다. 추천할 인물이 있는지 찾아보고 리스트를 만들어 봅시다. 내부적으로 확실하게 검증한 다음에 임명될 겁니다.”

“예. 대통령님.”

“다음은 징벌적 손해 배상의 문제인데, 이게 꼭 언론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지요. 모든 기업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업도 잘못을 바로잡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적은 벌금으로 기업의 잘못을 넘기게 되면 결국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없습니다.”

“옳습니다. 징벌적 손해 배상은 모든 기업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언론에 더 엄밀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요. 거짓 기사로 국민을 우롱하는 짓은 이제 용납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의 신뢰도가 OECD에서 얼마나 낮은 순위를 기록하는지 확인하고 쥐구멍에 숨고 싶었습니다. 언론의 신뢰도를 높이고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올려봅시다.”

임기 중에 사법 개혁과 언론 개혁을 완수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부에선 여야의 호응을 기대할 수 있고, 밖에서 기업이 도와주는 이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