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우창 (289/304)

지우창

“하나씩 처리합시다. 한꺼번에 다 정리하다간 오히려 역효과만 납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을 돌아보며 하나씩 지시하기 시작했다.

“최저 시급이 갑자기 크게 올라가면 반발이 큽니다. 임기 5년 동안 차근차근 올리도록 합시다. CCTV 안건은 좋습니다. 관련 법안을 마련해 봅시다. 그리고 교육은 우리나라 학부모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사교육을 막는다고 막을 수 있습니까? 교육 시스템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보면 혼란만 가중될 뿐입니다. 사립학교 감사는 강제할 수 있는 법으로 만들어 봅시다. 감사 안 받으면 인가 취소로 가면 됩니다. 여기 사립학교와 관련된 사람 있습니까? 이 정보는 외부로 절대 나가면 안 됩니다. 국회에 기습 상정하고 승인받아야 합니다.”

“게임 산업도 규제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 학업을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의 말에 강운모 대통령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기각합니다. 게임 산업은 국가가 지원해야 할 산업입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는데, 그 시장을 고스란히 빼앗길 생각입니까? 생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

“대신 전국 PC방을 금연 구역으로 지정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봅시다.”

* * *

강운모 대통령이 정책과 씨름하는 동안 수안은 여전히 바이오에 매달려 있었다.

“올해는 평이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계열사는 예상된 범위 내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바이오와 관련된 개발도 순조롭게 밟아 올라가고 있습니다. 조만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백신도 개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굿. 돼지 열병은 어떻게 되고 있어?”

“돼지 열병 연구도 순조롭습니다. 임상 실험이 필요 없고 동물 실험으로 끝이라 예방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 중입니다. 현재 70%까지 올라갔습니다.”

“오오. 대단한데?”

“하지만 조류 독감의 경우 변이가 많아 연구실에서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백신을 만들어 봐야 다음 해에는 변종이 생겨 버리니까요.”

“괜찮아. 이것도 시간을 두고 계속 진행하라고 해. 연구 자금 필요하면 바로 집행해 줘.”

“예. 회장님. 아! 그리고 작년 중동지방에서 전염병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주변으로 널리 퍼지지는 않았지만, 지금 연구실에서 병원체를 확보해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

지금 배영성이 설명하는 전염병은 MERS-CoV(메르스: 중동 호흡기 증후군)였다.

이전에 SARS-CoV(사스: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2천 년 대에 첫 번째로 등장했고 두 번째로 등장하는 전염병이 바로 이 메르스였다.

이후 2019년에 시작되는 세 번째가 바로 SARS-CoV-2로 불리는 감염병 19였다.

“2015년에 유행해서 조금 더 시간이 있을 줄 알았더니.”

“…이 전염병이 국내로 들어옵니까? 2015년에요?”

꼭대기에 앉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감염병의 충격도 달라질 것이다. 예전처럼 메르스로 엄청난 사망자를 낼 이유가 없었다. 당시 메르스의 진원지였던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많은 숫자의 사망자를 냈기에 전 세계 학자들이 기이한 결과라고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

“예전엔 상당한 치사율을 자랑했지만, 이번엔 다를 거야. 괜히 아버지보고 대통령까지 하라고 했을까. 사전에 준비하려면 아버지가 대통령이 될 필요가 있었어.”

“연구실에 조금 더 재촉해 보겠습니다.”

“연구 인원을 더 투입하고 관련 연구를 광범위하게 진행하라고 해 줘. 나중엔 다 쓸모가 있을 거야.”

“예. 회장님.”

“그리고….”

수안은 2019년의 일도 미리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스 백신을 개발하는 것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중국에 파견할 사람들을 찾아봐.”

“…중국이요?”

“항주 연구소에서 2015년에 바이러스를 연구했다는 건 아는데 정확하지 않아. 2019년에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몰하는데…. 아무래도 난 일부러 개발한 바이러스라고 생각하고 있어.”

“…한 나라에서 일부러 바이러스를 개발해서 세계적으로 유행시킨단 말입니까?”

“일부러 개발했다는 것도 내 추측이지만, 지금부터 알아보면 확인할 수 있겠지. 그리고 바이러스 유출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발생한 우연한 사고라고 생각해. 개발하지도 않았고 유출하지도 않았다면, 자연 발생이라는 결과밖에 없겠지.”

아무리 아니라고 생각하려 해도 연구소가 원흉이라는 의심은 거둬지지 않았다.

“…그럼 해당 연구소에 우리가 포섭한 인물을 넣어야겠군요.”

“그게 좋겠다. 되도록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을 포섭해야 의심을 덜 받겠지. 그렇다고 국가를 배신하라는 것도 아니야. 그저 연구소에서 만드는 병원체를 확보할 수만 있으면 되는 거지. 꾸준히 연구 자료를 외부로 유출해야 하니 위험 부담은 있겠지만, 그리 어렵진 않을 거야. 그 연구소가 그리 엄밀한 보안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으니까.”

“보통 인체에 해로운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연구소는 출입 보안이 삼엄하지 않습니까?”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중국이잖아.”

“아. 중국.”

중국이라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중국이니까 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유출되지 않았겠어?”

“…….”

“중국에서 관련 전공자를 중심으로 찾아봐. 중국 공산주의 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좋겠지.”

“찾기 쉽지 않겠지만,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김현성 회장에게 관련 작업을 진행하라고 하겠습니다. 항주에 있는 바이러스 연구소라면 이미 파악된 정보가 좀 있을 겁니다.”

* * *

중국 칭화대 생명과학원에서 근무하던 교수는 한국으로부터 특별한 메일 하나를 받았다. 본래 이런저런 메일이 많이 들어와 보통은 무시하는 편이지만, 이번 메일은 무시할 수 없었다.

“강운 생명 과학이라니….”

강운 그룹은 중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기업이었다. 그중에서 강운 생명 과학은 관련된 인재를 채용하는 데 깐깐한 기준을 적용하기로 소문난 기업이었다. 깐깐한 만큼 넉넉한 연구비와 급여를 준다는 것도 알려져 있었다. 들어가기만 하면 성과가 있건 없건 무제한 연구비가 지원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교수는 무슨 내용이 있나 싶어 메일을 클릭했다가 화들짝 놀라 아무도 없는 교수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었던 교수는 복도까지 나가 누군가 오고 있는지 살펴봤다. 교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대, 대체 이걸 어떻게….”

메일에는 자신이 공산당에 반감을 갖고 활동한 과거의 자료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특히 과거 천안문 사태의 정보를 모으고 있는 것을 상대가 알고 있다는 게 가장 위협적이었다.

메일의 말미에는 조만간 연락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

어차피 공안에 신고할 수도 없는 일이다. 꼼짝없이 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 * *

며칠 뒤 교수는 강운 생명 과학의 담당자라는 사람의 연락을 받고 마주하기에 이른다.

“지우창 박사님. 저는 임수호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난 반갑지 않습니다.”

상대는 인사조차 받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례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사과는 받겠지만, 그쪽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협박으로 시작된 만남이다.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단단히 화가 나신 모양입니다.”

“…….”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지우창 박사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무례인 줄 알면서도 메일을 보냈습니다.”

“…용건이나 말씀하시오.”

여전히 딱딱한 태도였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선 지우창 박사님의 사적인 부분도 저희는 상당히 좋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바입니다. 그날 아름다운 중국인들이 너무도 많이 사그라졌습니다. 문제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겠지요.”

“…….”

“그리고 혹시라도 자료의 유출을 염려하신다면 그러실 필요가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오늘 저희 제안을 거절하셔도 관련된 일은 어디에도 알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희는 오늘 만남을 위해 그 자료를 보여 드렸을 뿐입니다. 지우창 박사님께 그 어떤 해도 끼치지 않을 겁니다.”

“휴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지우창이다.

“믿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 믿는 건 아닙니다.”

“물론이죠. 항상 경계하십시오. 공안의 눈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저희는 지우창 박사님 같은 분이 많이 있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중국에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후야오방 총서기님이 비명에 가셨어도 그를 따르는 인민은 여전히 이렇게 남아 있지요.”

호의적인 말이 지속되자 지우창의 경계심이 한결 옅어졌다. 특히 천안문 사태의 방아쇠가 된 후야오방 총서기를 향한 존경심이 결정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천안문 사태를 공산당 지도부를 향한 중국인의 투쟁 정도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그 시작부터 살펴보면 원재료 이중 가격제로 인해 발생한 부정부패가 있었다. 이는 물가의 인상을 촉발하고 막대한 국유자산의 유실을 초래하게 된다. 이에 중국인들은 공산당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결국 기업가와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이중 가격제 폐지를 준비하지만, 물가 인상을 염려한 사재기와 뱅크런이 발생했다. 화들짝 놀란 공산당은 이중 가격제 폐지를 무효화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중 가격제를 폐지하지도 못했음에도 엄청난 물가 상승은 그대로 일어나 버렸다. 국가 지도부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대학생과 시민들이 시위를 시작했고, 일부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개혁을 요구했다. 시위는 점차 커지기 시작했고, 천안문 사태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회운동가 출신의 후야오방 총서기가 의문의 사망을 당하게 된 것이다. 개혁을 원하는 시민들과 지식인들은 그를 개혁과 청렴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지도부가 후야오방을 사망케 한 것이다.

결국 천안문에서는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고, 나머지는 익히 아는 바와 같았다. 수만의 군인들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했고, 장갑차와 탱크로 밀어 버렸으며, 시신을 불태워 흔적을 지우려 노력했다. 지금도 천안문 사태를 감히 입에 담지 못하는 중국인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당시의 일과 후야오방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우창도 그중에 하나였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여기 내가 나와 있는 것도 염려되는 일입니다. 공안은 내가 외국인을 만나는 것도 경계할 것이오.”

“우선 제 소개를 다시 하겠습니다. 저는 강운 생명 과학에서 일하는 임수호 차장입니다. 강운 생명 과학 외의 연구소에 연구비를 책정하고 집행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

개별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만나고 싶은 사람이 바로 임수호 차장이었다. 강운 생명 과학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연구비를 받아 낼 수 있는 창구가 있었는데, 바로 임수호 차장이 그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저희는 중국 정부가 모르는 루트로 지우창 박사님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내게 좋은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조건이 문제로군요. 내 연구를 유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신 모양입니다.”

“날 지원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저희는 지우창 박사님을 지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지우창 박사님의 연구 성과물은 지원대상이 아닙니다. 저희는 그 부분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럼 날 지원하겠다는 이유가 뭡니까. 혹시 특이한 조건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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