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거래
수안은 아버지가 당선인이 되었음에도 현 대통령인 이현창과 만나고 있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통령님.”
“이봐 강 회장. 나 아직 임기 안 끝났어. 왜 이래?”
가벼운 대화였기에 수안은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하하. 아직 내년 2월까지 임기가 남긴 했죠. 제가 실수했습니다.”
“…자네 덕분에 임기 내내 수월했어.”
“아휴. 대통령님이 국정 운영을 잘하신 덕분입니다.”
“아냐. 아냐. 자네가 많이 도와줬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제때 막아 주고 해야 할 일도 알려 주지 않았는가. 돌아보면 자네 말대로 하길 정말 잘했다 싶으이.”
수안은 과거 대통령들의 잘못된 정책들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현창이 하려던 일들을 막았고, 꼭 해야 할 일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특히 전 대통령 때부터 진행된 국방력 강화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아직 가시적인 결과를 보여 주지 못했지만, 외부에만 그렇게 보여 줬을 뿐이다. 기밀로 취급되는 서류에는 엄청난 성과가 기록되어 있었다. 향후 미사일 주권을 회복하면 가파른 국방력 상승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라 일보 건도 내가 그렇게 말리지 않았는가. 하지만 신라 일보가 사라지며 나온 증거들을 보니 왜 그렇게 자네가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알겠더군.”
수안이 신라 일보를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이현창은 한신당에 우호적인 일간지를 공격하는데 반대의견을 내고 수안을 압박했었다. 하지만 밝혀진 진실은 추악했다. 국정원을 통해 누구보다 신라 일보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이현창은 신라 일보에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버렸다.
“저도 강운 그룹만 생각했다면 신라 일보를 그대로 뒀을 겁니다. 신라 일보가 얼마나 말을 잘 듣습니까. 가려운 부분을 살살 긁어 주며 재벌가에 좋은 기사만 쏟아 내는 언론사였습니다. 하지만 국익을 우선해 신라 일보를 정리했습니다. 신라 일보가 없으니 언론의 신뢰가 한층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신라 일보가 그렇게 날아갔으니 남은 언론사가 몸을 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함부로 조작된 기사를 내지 못하고 제목 장사를 하지도 못하는 현실이다. 검찰과 유착해서 기소 정보를 흘리는 일도 뜸했다.
“그리고 자원 외교를 막아 준 것도 그래. 덕분에 엉뚱한 곳에 혈세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어.”
“사업성 평가는 사기업이 더 정확합니다. 공기업에서 아무리 사업성 평가를 해도 그들은 전문성이 떨어집니다.”
자원 외교를 아예 막은 것도 아니다. 진짜 사업성이 있는 희토류 광산은 나라에서 인수할 수 있도록 평가 보고서를 작성해 나라에 제출했다.
“그래도 내가 자네와 강 당선인을 도와준 일은 잊으면 안 될 거야.”
“물론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이현창의 도움이 상당했다.
먼저 한신당은 단일화에 실패하며 여럿의 후보를 대선에 올리고 말았다. 결정적인 패착이었지만, 이는 수안의 부탁을 받은 이현창의 노림수였다. 몇몇 인물들에게 야심을 불어넣고 자금을 지원해 주니,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 대선판에 등장했다. 이들은 대선이라는 단두대를 통해 정치 인생에 방점을 찍었다.
또한 한신당 대선 후보와 다른 대선 후보들의 약점이 낱낱이 드러나는 동안 강운모는 미담만 줄줄이 쏟아졌다. 여전히 이현창이 휘어잡고 있는 국정원의 힘이었다. 여기에 전임 대통령의 신병을 그대로 둔 것도 수안의 요청을 들어준 것이었다.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이렇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말로만?”
“저 모르십니까? 강운 그룹 총수는 말로만 감사 인사를 전하지 않습니다. 아드님과 먼저 따로 만나서 정성을 보였습니다. 제가 장담했던 개헌 중임도 실패해서 그것도 추가로 계산했지요.”
“하하하.”
수안은 이현창의 아들을 먼저 만나고 오는 길이다. 해외 은행 계좌에 넉넉한 금액을 넣어뒀다. 이현창이 퇴임하고 마음껏 써도 쉽게 줄지 않을 거액이다.
“부족하시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설마 부족하겠는가. 지금까지 보인 정성도 대단했는데 말이야.”
“대통령께서도 전임 대통령의 일을 그대로 지나가셨으니 민국당에서도 이를 기억할 겁니다. 퇴임 이후에 법원에 불려올 일은 없으실 겁니다. 그런 일은 공화국 정권으로 끝내야죠.”
“자네 덕분에 뒤까지 개운해.”
수안이 접견을 마치고 돌아가자 이현창은 아들에게 가장 먼저 연락해 얼마가 입금되었는지를 물었다.
“강 회장이 얼마나 넣었어?”
“…30억입니다. 아버지.”
“응? 30억?”
지금까지 준 돈만 해도 2천억이 훌쩍 넘어가는데 30억은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뭔가 착오가 있겠지 싶었다.
“뒤에 공 두 개가 빠진 것 같은데? 정말이야?”
최소 3천억은 되어야 계산이 맞았다. 대통령을 만드는데 일조한 일의 대가가 고작 30억일 리가 없었다.
“아! 제가 제대로 말씀을 못 드린 모양입니다. 강 회장은 30억 달러를 넣었습니다.”
“……!!!”
“원화로 환산하면 3조 2천억입니다. 제가 아직 경황이 없어서….”
“허. 이 사람이….”
“이 정도는 되어야 아버지께서 퇴임하고 넉넉하게 지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푸흐흐. 알았다. 잘 갖고 있어.”
“예. 아버지.”
수안에게 돈은 그저 숫자의 조합일 뿐이었다.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이현창에게 30억 달러를 주는 것도 아깝지 않았다.
“후배는 사람 민망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국정원도 제대로 인계해야겠군.”
이현창은 돈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국정원과의 끈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젠 자신이 휘어잡은 국정원까지 깔끔하게 후임 대통령에게 인계할 마음이 들었다.
“자네를 못 믿으면 누굴 믿을까.”
돈은 신뢰도 살 수 있는 법이다.
* * *
“축하드립니다. 아버지.”
“고생 많았다.”
“아버지께서 정말 고생하셨지요.”
“이번에 얼마나 들었어? 국정원과 언론에서 상당히 도와준 것 같은데 말이야.”
아들에게 직접 얘길 듣진 못했지만, 선거 운동을 하며 체감할 수 있었다. 현 정권을 포함해 전 방위에서 자신을 도와주는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정도 도움이 그저 친분으로 가능하리라는 착각은 하지 않는다. 분명 많은 자금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돈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해외 자금 좀 썼다고 재산에 티도 안 납니다.”
“…….”
다른 사람의 도움이었다면 뭐라도 내줘야 했지만, 아들의 도움이다. 애초에 대통령에 도전하게 만든 것도 아들 녀석이었다.
“저는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되신 것만으로 보람됩니다. 언제나 멋지시지만, 오늘은 더 멋지시네요. 흐흐흐.”
“큼큼. 우리 강운 그룹에서 필요한 건 뭐야.”
그래도 강운 그룹에 도움이 될 마음은 여전했다.
“우선….”
수안도 아버지의 도움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백신 개발과 관련된 보건복지부 허가 절차를 손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급하게 필요한 시기에 고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미리 손을 써 두고 나중에 빠르게 절차를 밟아 나가면 감염병 사태가 시작되어도 대응하기 좋습니다.”
“오케이. 다음은?”
“보건복지부 산하의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셔야 합니다. 미리 권한을 줘야 국가적 대응이 가능합니다. 감염병 사태를 대비한 시나리오도 생각해 두십시오.”
아버지의 임기 중에 메르스가 창궐한다. 미리 준비해 두면 필히 도움이 될 일이었다.
“전부 바이오와 관련된 일이야? 강운 그룹에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구나.”
“아버지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강운 그룹은 정권에서 불이익만 주지 않아도 성장에 걸림돌이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재임하시는 동안 트집거리를 남기지 않을 생각입니다. 강운 그룹은 기억에서 지우십시오.”
정치인이 뇌물을 받으며 부정한 일에 연루되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이런 인식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바로 강운모였다. 기업 총수의 정치도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을 주려면 아버지가 강운 그룹과 연결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녀석….”
“아버지께서 빛나는 업적을 쌓을 수 있도록 음지에서 지원하겠습니다.”
“그래. 앞으로도 부탁하마.”
“옙!”
* * *
2013년 2월. 제18대 대통령 강운모의 취임식이 있었다.
강 대통령은 당일 서울 서초동 자택을 출발해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오전 11시 국회에서 개최되는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취임식에는 연예인들의 식전행사가 있었고 국민의례와 국무총리 식사, 취임 선서, 의장대 행진과 예포발사, 당선인 취임사와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특히 취임식에 해외 정상급 내외빈 인사들과 일반인 등의 규모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대통합을 이루었다고 자만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전임 대통령 이현창은 한껏 웃는 얼굴로 후임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했다. 그만한 돈을 받고 웃음을 참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현창은 마지막 신년 인사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될 강운모 당선자를 중심으로 국민의 힘을 모아 새로운 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었다.
강 대통령은 이임하는 이현창 대통령을 환송하며 취임식 일정을 마치고, 국회에서 서강대교 입구까지 카퍼레이드를 한 이후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청와대로 이동했다.
강 대통령은 저녁에 청와대 영빈관에서 각국의 경축 사절 등 주요 외빈을 초청한 가운데 만찬을 하고 취임 행사를 마무리했다.
“휴우.”
모든 행사를 마치고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늦은 밤이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한숨이에요?”
“그래. 이제 시작이지. 끄응.”
강운모 대통령은 이제 영부인이 된 아내와 마주하고 있었다.
“당신은 계속 미술관에서 일할 생각이야?”
“영부인이 되었다고 제 일을 멈출 순 없죠. 일을 그만두면 오히려 요즘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어요. 여성도 자신만의 일을 해야죠.”
“수안이가 그랬어. 젠더 갈등이 심화되기 전에 수를 써야 한다고. 자네가 그 일을 맡아 줬으면 했거든.”
“그럼 여성가족부를 먼저 바꿔야죠.”
“여성가족부를?”
“젠더 갈등을 유발하는 원천이 바로 여성가족부 인사들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에요. 여성가족부의 명칭부터 바꾸세요. 대한민국 헌법에서 만민이 평등하다고 했는데 여성가족부가 존재하는 것부터가 모순이니까요.”
“…확실히 수안이 머리는 자네를 닮았나 봐.”
“호호호. 그거 듣기 좋은 칭찬이네요.”
이후 여성가족부의 명칭은 여성이 빠지고 가족부로 바뀌었다.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아직 염려스러울 정도로 페미니즘이 심각하지 않은 때였다. 가족부도 기존 여성가족부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차별을 줄이기 위해 애쓰겠다고 하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명칭만 바뀌었다는 식의 변명이었다.
하지만 명칭의 변경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여성만을 위한 행정 서비스 중심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변화하며 아이들을 위한 업무와 가족 구성원 전부를 위한 업무가 주를 이루게 되며, 날이 갈수록 줄어가는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한 정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업무는 국민 기본 소득의 신장이었다.
인구 증가를 위해서는 출산율이 올라가야 했고, 출산을 위해서는 출산이 가능한 환경 조성이 필요했다. 출산이 가능한 환경이란 부모 중 한 사람만 벌어도 자녀의 양육이 가능한 상태를 말했다. 이것이 결국 국민 기본 소득이라는 정책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최저 시급의 인상이 필요합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시급합니다.”
“양육 환경의 개선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의무적으로 CCTV를 설치하고 언제든 감독관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이 국가 지원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매년 감사를 받아야 합니다.”
“학교 주변에도 CCTV 설치가 필요합니다. 기껏 키워온 아이들이 사고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교육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의 교육비 부담이 적어집니다. 이는 결국 출산을 위한 여건이 마련되는 셈입니다.”
“사교육이 끝이 아닙니다. 사립학교의 부패도 엄밀히 감사해야 합니다. 사립학교는 비리의 온상입니다.”
“…….”
강운모는 아찔한 심경이었지만, 대통령으로서 감당해야 할 국정 운영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