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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287/304)

대선

수안은 그럴듯한 이유를 붙였다. 이유야 갖다 붙이기 나름 아니겠는가. 게다가 신라 일보는 아무거나 갖다 붙여도 말이 된다.

“신라 일보는 오보를 밥 먹듯이 내는 언론사입니다. 그런데 그 오보가 실수가 아닌 노림수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요. 하지만 언론의 힘에 대항하면 너무 큰 피해를 봐야 했기에 할 수 없이 두고 봐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즐겨 보는 신문이다. 전통의 신라 일보는 그만한 힘이 있었고, 대형 3개 언론사가 연합해 언론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속절없이 끌려다녀야 했다.

“언론에 대항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죠. 국민의 알 권리라는 전가의 보도를 사용하는 집단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들은 혼자가 아니죠.”

“그렇습니다. 신라 일보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라 일보를 포함해 중요 일간지가 공동으로 대응하기 시작하면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강운은 감당할 수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서 저는 과하게 본보기를 보였습니다. 그것도 삼디, GL과 함께 시작했지요. 국내 재계 순위 1위에서 3위까지 한 언론사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래야 언론에 대항할 수 있었습니다. 과한 일 처리라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이해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신라 일보는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간지가 아닙니다. 신라 일보는 매국의 뿌리입니다.”

“…강 회장님께 소식이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국내 정계의 인물들에게 들어오던 엔화 스폰서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수안이 신라 일보를 정리한 이유 중 하나였다.

“알고 있습니다. 신라 일보를 통해 일본 정계의 자금이 흘러들어왔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스폰서는 일본 유학 시절부터 장학금으로 시작됩니다. 이후 국내에서 활동하는 유력 인사들에게 집행한다고 들었습니다. 한국뿐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관련된 장학금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일입니다.”

“…….”

수안은 일본 BE의 차진호로부터 이 정보를 얻었다. 이후 자금의 흐름을 추적했다. 일부는 샤롯 그룹을 경유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신라 일보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됐다.

“신라 일보를 친 중요 이유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겸사겸사 진행했습니다.”

위아래를 모르고 아버지께 설쳐 대던 신라 일보 기자 몇 명 때문에 시작한 일이라고는 밝힐 수 없었다.

“덕분에 검사, 법원과 정치인, 언론사의 추악한 커넥션이 밝혀졌습니다. 아직 공론화하지 않았지만, 사법 개혁과 언론 개혁을 시작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차기 대통령의 출신이 기업인인데, 기업가 얘기는 전혀 없습니다? 정치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기업인이 아닐까요?”

날카로운 질문이지만, 수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버지는 국가의 권력으로 돈을 벌고자 할 분이 아닙니다. 제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강운은 정권의 도움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

과한 자신감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강운 그룹이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께서는 민국당의 미래를 맡아 주십시오. 그리고 후대 정치인을 키워 주십시오. 지연과 학연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는 정치인을 키우시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게 빛날 겁니다.”

“대계를 준비하는 분이 있으니 강운 그룹이 성장할 수밖에요.”

“더 큰 비밀이 있지만, 궁금증으로만 남겨두지요. 다 알면 재미없지 않습니까.”

“허! 누구 속 터져서 죽는 꼴을 보려고 그러십니까? 얼른 얘기하십시오.”

“차차기 대선에서 승리하시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명 정우현 변호사님이 승리하실 테니까요.”

“…강운 그룹은 진정으로 10년 대계를 준비합니까? 그것도 이렇게 확신할 정도로 정확하게요?”

“BE가 왜 불패의 투자자가 되었겠습니까.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때문에 불패의 투자자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쌓인 정보들로 얼마든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지요.”

“……!!”

“뛰어난 인재들이 예측한 미래는 곧 현실입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말씀도 있지 않습니까.”

수안의 말에 정우현이 답했다.

“요한복음 20장 29절…. 강운 그룹 총수 일가는 무교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정우현이 가톨릭 신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집안은 그렇지만 저는 반쯤 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수원교구 소속의 미카엘라 수녀님과 깊은 친분이 있지요. 여전히 그분이 운영하는 보육원에 많은 돈을 기부하고 있고, 전국의 천주교 교구에 거액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수안은 전생에 보육원에서 세례를 받아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래서 스테판이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사람을 죽여 죄를 범했기에 세례를 받지 못하고 그저 넘치는 자금을 기부하고 있었다.

“좋은 일 하십니다. 이제야 조금 믿음이 갑니다.”

“형제님. 그냥 믿고 삽시다.”

“흐하하하. 아직 형제는 아니지요. 세례는 받고 형제라고 부르십시오.”

“제가 너무 급했습니다. 하하.”

수안은 우현과 헤어지며 다시 당부했다.

“민국당 당사로 가시면 아버지와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저를 만날 일은 별로 없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강 회장님을 뵐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저는 언론에 등장할 수 없습니다. 특히 정치와 엮이면 큰일이지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생각하니 까마득하군요.”

5년 뒤에 알려 준다던 큰일을 가볍게 질문한 우현이다. 하지만 가벼운 질문에 너무 무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대한민국 국민과 전 세계인의 안위가 달린 일입니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

“지금은 앞만 보고 달리기로 합시다. 저도 미래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답니다.”

“…주님께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

수안의 형제 호칭을 이번엔 바로잡을 수 없었다.

수안이 밖으로 나와 차에 오르자 세진이 물었다.

“회장님. 성당에 다니시는 건 못 봤습니다만, 제가 없는 사이에 다니셨습니까?”

밖에서 안의 대화를 들었던 모양이다.

“내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읽은 책이 성경책이야. 이 정도야 껌이지. 그리고 나중엔 나도 세례를 받을 생각이야.”

앞으론 사람을 죽이지 않고 착하게(?) 살 생각이다. 미뤄왔던 세례를 생각해도 될 때였다.

“오오. 대단하신데요?”

“장 비서도 나랑 같이 세례받는 걸로?”

“…….”

“민희도 데려와. 같이 다니자.”

“안 그래도 민희가 저 성당 데려가려고 난리입니다. 애도 데려가서 유아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 민희가 신자였구나? 장 비서는 무조건 가야겠네. 응? 나중에 나랑 같이 시작하는 거다. 알았지?”

수안의 강권에 세진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 사장도 데려갈까나?”

“물론이죠! 배 사장님은 회장님 가시는 곳이라면 무조건 가셔야죠!”

혼자 끌려갈 수 없었다.

* * *

4월 총선을 대승으로 이끈 강운모는 쉽게 경선을 통과해 2012년 대선에 돌입했다. 유세는 전국에서 계속 진행되었다.

“기호 2번! 강운모! 우리 함께 나아갑시다!”

-아무리 커다란 힘겨운 시련들이~♬♪버티고 서 있다 해도~♩♪♩♩

-운모는 할 수 있어 이룰 꺼야~♬♪

-빠라빠~ ♬♪

“기호 2번!”

-빠라빠빠~ ♬♪

“강운모!”

-빠라빠~ ♬♪

“기호 2번!”

-빠라빠빠~ ♬♪

“강운모!”

선거를 돕는 아주머니들이 전국 도로에서 춤을 췄고, 기호 2번과 강운모 후보의 얼굴이 그려진 피켓을 들고 흔들었다. 시골 동네에선 잔치가 벌어졌고, 술과 고기가 양껏 지급되었다.

“누구 찍어야 한다고요?”

“기호 2번!”

“이름은?”

“강운모!”

“정답! 이제 먹고 마십시다!”

그리고 대망의 투표일.

6시가 지나며 출구조사가 먼저 발표되었다.

-5. 4. 3. 2. 1. 출구조사 결과입니다. 강운모 후보의 승리가 유력합니다! 한신당 박 후보를 비롯한 여권 후보들의 약세가 확연히 드러나는 출구조사 결과입니다. 투표 집계가 진행되어야 확실하겠으나, 출구조사로는 이미 확정에 가까워 보입니다.

밤새 투표의 향방을 중계하던 뉴스는 늦은 밤 18대 대통령을 확정했다.

-민국당 강운모 후보 당선 확정! 역대 최다 득표 확실!

강운모는 한신당의 후보를 큰 표 차로 따돌리며 봉황의 자리를 차지했다.

민국당 당사 카메라 앞에 앉아 있던 강운모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곧이어 당사에서 준비한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카메라 앞에 서서 당선 소감을 발표했다.

“국민의 뜻에 반하지 않도록 성실히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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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대선 유세를 따라다녔던 사람들도 저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수안의 형제들도 한자리에서 부둥켜안고 만세를 불렀다.

“아자자!”

“아빠 진짜 최고다!”

.

.

.

집에서 투표 집계를 끝까지 지켜본 한송 그룹 강병모 회장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강씨 집안에서 대통령이 다 나오는구나. 허허허.”

“숙부님이 진짜 대통령이 되셨네요.”

“와아.”

강병모의 두 아들도 숙부가 대통령이 됐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는다.

.

.

.

뉴월드 그룹 강지수 회장도 남편, 아들, 며느리와 오빠의 당선을 확인하고 있었다.

“하하. 오빠가 진짜 대통령이 됐어.”

“형님이 인물은 인물이야.”

“강운 그룹의 위상이 또 올라가겠습니다. 더 올라갈 곳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저희도 마찬가지로 반사 효과를 보겠어요. 이제 범 강운 그룹은 국내 재계에서 특별한 위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몸 사리지 말고 움직여도 되겠어. 지훈이 너는 프리미엄 아울렛 확장에 신경 쓰도록 해. 일부는 뉴월드 마트와 연계해.”

“예. 어머니.”

그간 혹시라도 대선에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 사업의 확장도 조심스럽게 진행했었다.

“그리고 뉴월드 지분도 넘겨줄 테니 받아 두고, 이제 사장으로 올라서도 좋겠지.”

“……!!”

“오빠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지금이 적기야.”

“…예.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님.”

.

.

.

뉴월드그룹뿐만 아니라 한송 그룹도 마찬가지였다.

“창수 너는 한송 텔레콤, 창식이 너는 SK 텔레콤 사장으로 올라서라.”

“……!!”

“……!!”

둘은 두 회사에서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경영일선에서 빠질 때가 됐다. 너희 둘이 맡아서 해 봐라.”

“…아버지.”

“여전히 건강하시지 않습니까. 일선에 더 오래 계셔도 됩니다.”

“됐다. 때가 좋아. 잡음이 없을 때 너희에게 넘겨줘야 좋을 것 같아서 그런다. 수안이는 예전부터 회장 달고 있었잖아. 너희도 이제 경영자가 되어야지.”

“…고맙습니다. 아버지. 부족하지만, 앞으로 채워나가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병모 회장은 자식들이 이런 정상적인 반응을 보여 주는 것도 기꺼웠다. 예전 같으면 저 잘났다고 기뻐하기만 했을 녀석들이다. 결혼도 하고 자식까지 낳은 아들들은 중년의 무게감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잘할 수 있을 게다. 나도 했는데, 너희가 못하겠느냐. 너희도 이제 자식이 있는 가장이지만, 회사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직원도 직원의 가족도 너희가 부양할 사람이다. 너희는 경영에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라.”

“예. 아버지.”

“예. 아버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확실하게 약속해라.”

““…….””

두 사람은 아버지의 입만 쳐다봤다. 무슨 말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통신사가 두 개다.”

““……?””

“그런데…. 세기 통신이 우릴 따라잡는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

수용이가 경영하는 세기 통신은 한송 그룹의 두 개 통신사를 더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가입자를 유치하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었지만, 따라잡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땐 사장이고 뭐고 없었던 일이 될 거다. 알았느냐?”

“예, 옙!”

“절대로 밀리지 않겠습니다.”

“말로만 그러지 말고 며느리 통해서 GL 텔레콤과 자리라도 만들어 봐!”

“아!”

“내가 이런 것까지 세세하게 지시해야 하느냐.”

““…….””

꼼수까지 따라가려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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