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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대통령 (286/304)

미래의 대통령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제게는 그냥 정치인의 하나일 뿐입니다. 둘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여기 기록된 한신당의 떨거지도 몇 명 정리해야겠습니다. 어딜 감히 박재문 전 대통령에게 공작을 가하려고 한단 말입니까? 이 녀석들은 정 변호사님 선에서 정리하시죠. 제가 나서면 불법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런 일이 설마 자주 생기기야 하겠습니까. 이런 무도한 사람이 많지도 않을 것이고….”

수안은 한심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6·25 전쟁에서 한국이 밀린 겁니다. 방심했으니까요! 상대가 선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자신이 착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눈앞의 다른 사람까지 착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돼지 눈에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 부처만 보인다? 그렇게 말 안 하셔도 정 변호사님이 선량하다는 것은 알아요.”

“아, 아니. 그런 말은 아니고….”

“하지만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절대로 착하지 않습니다. 약점이 생기면 물어뜯을 것이고, 우린 그 약점을 보호하면서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을 찾아야 합니다. 한신당이 지금까지 약점이 없어서 버틴 것 같습니까? 검찰 때문에, 사법부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힘은 바로 언론이었죠. 이 셋을 잡아야 공정한 경쟁을 만들 수 있어요.”

“…이현창 대통령이 괜히 강 회장을 믿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제가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은 제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정 변호사님은 빨리 여기 정리하고 민국당으로 오십시오. 이번 총선부터 준비해야 하니까요.”

“허허.”

“아니면 김대준, 박재문 전 대통령들께서 이룩한 것을 말아먹는 꼴이나 지켜보시든가요.”

“강운모 의원님의 능력이 상당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잘 해내실 겁니다.”

“물론 제가 옆에서 돕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까? 아버지가 올해 말에 대통령이 되어도 임기는 고작 5년입니다. 그 이후는 어쩔 겁니까? 한신당에서 이현창 대통령과 비슷한 인물이 나올 것 같습니까?”

“…….”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만한 인물이 없었다. 한신당 정치인 중에 대통령 후보가 있느냐를 따져 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한신당은 이상한 놈들만 가득해.’

“나라 말아먹고 싶지 않으면 정 변호사님이 대선까지 갑시다. 정치는 올해 총선부터 시작하시고요. 이미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지내신 분이니 선거 겁낼 이유도 없습니다. 나오면 당선입니다.”

“아, 아직 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자꾸 혼자서 일을 진행하지 마십시오.”

“아뇨. 대답하셔야 할 겁니다. 제가 겨우 일곱 번 왔다고 놀라실 일이 아니거든요. 저는 정 변호사님이 대선에 갈 때까지 계속 찾아올 겁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와서 정 변호사님의 마음을 돌려세울 겁니다.”

“이, 이봐요. 강 회장.”

“거짓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도대체 왜 나란 말입니까.”

“사람이 먼저여야 하거든요. 대통령의 자리는 그런 마음을 먹고 있는 사람이 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재문 전 대통령도 그랬지요. 그런 분의 친구라면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

“그리고 전 대통령과의 연결 고리는 총선에서 힘을 발휘할 겁니다. 지금도 박재문 전 대통령의 인기가 상당하지 않습니까. 박재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인 정우현 변호사님께서 오시면 총선 승리가 한 걸음 더 다가옵니다. 그리고 오늘도 거절하신다면 다음 주에 또 오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는 매일 오겠습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후보 등록까지 막판 스퍼트를 내야죠.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꾸준한 것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

정우현은 아찔한 심정이었다. 수안이 그대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우현이 불러세웠다.

“자, 잠깐.”

“예. 미래의 대통령님?”

“그, 그런 소리는 하지 마시고!”

“예. 미래의 대통령께서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죠. 저야 일개 기업의 총수일 뿐이니까요.”

그 일개 기업이 가진 계열사 하나가 국내 증권 거래소에서 시총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그 일개 기업의 재계 순위는 2위를 멀찍이 따돌린 부동의 1위를 기록하는 중이다.

“흠. 큰 소리를 내서 죄송합니다. 강 회장님.”

자신에게 몇 번이고 찾아와 항상 부탁 조로 얘기하는 사람이라서 순간 착각했다. 강수안 회장은 자신이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었다.

“저를 다시 부르셨다는 뜻은 정치에 뜻을 뒀다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

짧은 침묵에 이어 단호한 대답이 들려왔다.

“하겠습니다.”

수안은 그의 허락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붙였다.

“제가 일곱 번 찾아왔으니, 나중에 제 소원은 일곱 개를 들어주셔야 합니다.”

수안의 말에 정우현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정치를 시작하면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그와 같은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부정한 청탁을 받지 않습니다. 저의 정치는 기존 정치인과 다릅니다.”

“…역시. 제가 사람은 잘 골랐네요. 하하하.”

우현은 너무 쉽게 대답하는 수안의 태도에 오히려 의심스러운 눈빛이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왔으면서 부탁 하나도 없다면 믿어지겠는가.

“…….”

“설마 제가 진심으로 소원을 들어 달라고 하겠습니까? 오히려 제가 거절해야 맞지 않겠어요? 나중에 대통령 되면 괜히 저한테 연락하고 그러지 마세요. 저는 아무것도 안 들어드릴 겁니다. 박재문 대통령도 매번 불러서 도와 달라고만 하셨지 뭐 하나 도와주는 것도 없었습니다.”

“자, 잠깐만.”

수안의 말을 듣고 보니 진짜 청탁을 받아야 할 사람이 강수안 회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강운 그룹이 뭐가 부족해서 청탁을….’

강운 그룹은 청탁이 필요한 그룹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기업이라야 청탁이 필요한 법이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수출로 국내 자동차 제조산업의 위상을 크게 드높였다.

왜 강운 자동차만이 아니라 국내 자동차 제조 산업의 위상까지 올려줬다는 것일까. 강운 자동차의 하이브리드 차량 [프라임스윙]이 결국 한국의 브랜드였기 때문에 발생한 효과였다. 한국산 자동차의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인식이 대현 자동차에도 불붙었고,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의 위상도 올라갔다. 해외 유명 자동차 메이커들도 요즘은 국내 자동차 부품 사업자와 협력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하니 [프라임스윙] 한 모델로 얻은 부가가치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그 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K폰은 함부로 부가가치를 논할 수도 없었다. 피처 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었고, 전 세계 인류가 K폰을 꿈꾸고 있었다. 강운 전자가 이룩한 스마트폰이라는 제국에 삼디 전자와 GL 전자가 왼팔과 오른팔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한없이 우호적인 애플이 함께하고 있었다.

지금도 전 세계 시장에서 굳건한 1위를 수성하는 K폰이다.

‘여기에 강운의 계열사와 BE 인베스트먼트, 더블 스타까지 끼얹으면….’

강운 그룹은 세계 어디서든 러브 콜을 받는 거대기업이었다. 국가가 오히려 도움을 청해야 할 기업이라는 뜻이다.

“흐흐흐. 요즘 오바마 그 사람도 자꾸 연락해서 부탁하는 통에 전화 피하느라 골치 아픕니다. 분명 제 부탁 하나도 안 들어준다고 하셨습니다. 맞죠? 그러니 저도 안 들어드린다는 겁니다. 서로 주고받는 것 없이 깔끔하게 갑시다.”

“사람이 인정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나중에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서로 도우면서 삽시다. 강 회장님.”

“어허. 이러면 안 되는데…. 미래의 대통령께서 벌써 청탁을 생각하시면….”

“그러니 더 상관이 없지요. 아직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강운모 원내대표께서 이번 총선에서 크게 성공하시고, 연말 대선에서도 승리하실 일만 생각하기로 합시다. 나중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되겠지요. 대신 호의적인 마음만 유지해 주십시오. 서로 돕고 삽시다. 강 회장님.”

“청와대에서 정치만 배우셨나 봅니다. 이번 총선까지 거론하시면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시는 말솜씨가 제법이십니다.”

총선에 그가 필요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훗날 대선까지 자신이 도움을 주겠다고 말하고 서로 돕자는 식으로 미래의 일에 가능성을 열어 뒀다.

“하하하. 매번 불려가서 여야 대표들과 마주하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좋습니다. 정 변호사님이 정치인이 되시고 저를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시면 저도 정 변호사님을 돕겠습니다. 남아일언 중천금이지요.”

“구두 약속으로 끝입니까?”

“그럼 제가 계약서라도 꺼낼 줄 알았습니까? 그 정도 믿음도 없이 일하지 않습니다. 약속도 안 지킬 사람이었다면 제 눈을 탓해야겠지요.”

“그간 크게 손해 보셨겠습니다. 하하하.”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전에도 이런 약속으로 크게 이득을 봤지요.”

수안의 입에서 대현 그룹 고 정택주 회장과 있었던 일화가 흘러나왔다.

“기화 차와 대운 차가 그래서….”

정우현은 왜 대현에서 기화 차와 대운 차 입찰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이면 협의가 있었으니 입찰을 진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업가의 약속은 이 정도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룹이 휘청일지라도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지요.”

“…….”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올해 말에 아버지가 대선에 승리하신다면, 이후 민국당을 맡아 주십시오. 물론 이번 총선에서 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시작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말입니다.”

“너무 과한 기대에 부담이 큽니다.”

“제가 과한 요청을 할까 봐 부담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

“저는 정치인이 아니지만, 국민을 생각하고 전 세계인을 생각합니다. 제가 부담스러운 요청을 해도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 될 겁니다. 개인과 기업을 위한 요청을 하지 않을 테니 걱정은 내려놓으세요.”

“정치에 생각이 있으십니까? 미국처럼 부자(父子) 대통령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끔찍한 소리는 하지도 마시고요.”

“하하하.”

두 사람은 이후의 일을 의논하며 시간을 보냈고, 우현은 대화의 마지막쯤에서야 궁금했던 일을 생각해 냈다.

“전부터 궁금했습니다. 강운 그룹은 왜 신라 일보를 망하게 했습니까.”

“아. 신라 일보.”

수안은 스마트폰 기술 제휴 기업과 강운 그룹 계열사 거래처까지 동원해 신라 일보에 광고를 끊고 신라 일보를 나락에 떨어트렸다. 강운 그룹의 공세를 오래 버티긴 했지만, 일개 언론사가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 아니었다. 신라 일보는 자산을 매각하며 버티다가 결국 분해 수순을 맞이했다.

“별일이 다 궁금하십니다.”

“우리나라 전통의 일간지 중 하나가 아닙니까. 덕분에 전국의 신문 배달 업소의 운영 문제로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신라 일보는 국내 대부분 신문 배달 업소를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신라 일보가 없다면 운영 불가능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신라 일보가 판매 부수를 조작해 왔다는 것도 밝혀졌고, 지역의 신문 지국들이 여러 매체와 접촉할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불합리가 합리로 변했지요.”

“지금 회장님의 답변은 답변이 아니라 결과 설명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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