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권-차차기 (285/304)

차차기

미래의 대통령

대선

보이지 않는 거래

지우창

따거

1차 샘플

병영 문화 개선(feat. 유성우 쇼)

세수 확보

뒤끝 작렬

첫걸음

일사천리

분리수거 & 다다리오

롱롱롱 타임 노 씨

Will you marry me?

자선 행사

진짜 돈을 써야 할 곳

팬데믹 (2)

12월의 어느 날

에필로그. 소소한 일들

차차기

수안은 내년 치러질 아버지의 대선을 준비하다가 2011년 말에 있었던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수안은 배영성이 집무실로 뛰어 들어와 전한 소식에 결재하던 펜을 떨어트렸다.

“…….”

배영성이 집무실 안에 있던 TV의 전원을 켜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긴급속보> 김정일 사망!

“회장님. 이번 일은 예전에 없었던 일입니까? 혹시 우리가 지금까지 벌인 일들로 인해서 나비효과가 발생했을까요?”

보통 이렇게 큰 뉴스가 나오면 수안이 미리 알려 주곤 했었다. 일전에 김일성의 사망도 수안이 미리 알려 주지 않았던가. 수안이 미리 알려 주지 못했으니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 배영성이다.

“나비효과가 아니야. 내가 깜빡했어.”

죽을 때가 돼서 죽은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딱 이쯤이었다.

“…이건 깜빡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과 휴전 중인 북한 지도자의 일입니다!!”

수안이 귀를 후비며 말했다.

“귀청 떨어지겠다.”

“…죄송합니다.”

“잊어버려도 상관없는 일이라 잊어버린 거지.”

“네?”

“이제 2대 세습이 끝났으니 3대가 나올 차례잖아.”

“…그렇죠.”

“후계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 있어? 이미 다 알려진 그 사람이잖아.”

북한은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 예전엔 김정은이 부랴부랴 3대 세습을 위해 움직였지만, 이번엔 김정남이 일찌감치 후계로 낙점되어 경력을 쌓고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김정일이 죽어도 별일 아니다 생각하고 있었다. 김정일이 죽고 안 죽고는 중요한 일이 아니게 변해 버린 것이다. 잠시간의 놀람은 주었지만, 갈 놈이 갔을 뿐이다. 또한 이현창은 3대 후계자인 김정남과 국정원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이미 대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야 그렇지만….”

“이현창 대통령이 북한 지도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북한은 김정일이 죽었어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거지.”

수안은 다시 펜을 들고 결재 서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제야 배영성도 조금 마음을 놓았다. 수안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어차피 전쟁이 날 일도 없어.’

남과 북의 전쟁보다는 해외에서 발생하는 산발적인 전쟁과 테러 단체의 행위가 문제였다. 그 전쟁과 테러 행위가 국내에서 벌어지지 않는 이상 수안은 결재서류를 보는 일이 급했다.

하지만 이어진 배영성의 말이 수안의 손에서 펜을 떨어트리게 했다.

“주가 보고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김정일의 죽음이 전해지고 국내 주가가 90포인트 이상 하락했으며….”

“아차.”

주식 시장을 생각했다면 잊어버릴 일이 아니었다.

“…벌써 지난 걸 어쩔 수 있나.”

수안은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이제 세계 금융 위기를 벗어나 회복기에 들어섰다. 강운 그룹은 성장을 거듭하면서 IT와 바이오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여전히 서류를 살피는 수안에게 배영성이 물었다.

“…급하게 가실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마음이 급하신 것 같습니다.”

“내년 4월에 총선이야. 그리고 12월에 대선이고. 지금부터 움직여야 해.”

이현창의 당선으로 다시 야당이 된 민국당은 이미 강운모를 중심으로 결집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속 빈 강정일 뿐이다. 총선과 대선을 생각하면 능력 있는 사람들을 직접 모아야 했다.

“오늘은 직접 움직이신다고요? 전략실 시키시죠. 아니면 제가 가겠습니다.”

“핵심 인재는 핵심 인재 대우를 해 줘야 하거든.”

수안은 펜으로 서류를 가리켰고, 배영성은 서류를 들추며 안의 인물들을 하나씩 살폈다. 그리고 서류에 없는 사람을 물었다. 수안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정우현 변호사도 보실 생각이죠?”

“오. 눈치 백 단.”

수안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 신경 쓰고 있긴 했지만, 사실 민국당의 승리와 아버지의 당선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 이현창이 자신을 위협할 새싹을 밟아놔서 한신당에 이렇다 할 대항마가 없었고, 민국당에는 아버지만큼의 영향력을 보이는 정치인이 전무했다.

“그 사람이 뭔데 자꾸 가십니까? 그 사람은 정치 안 한다고 했다면서요?”

정우현 변호사는 박재문 전 대통령의 친구였다. 박재문의 대통령 임기 몇 년 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며 박재문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정치에 투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 생에 박재문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에서 벗어났다. 수안이 미리 손을 쓰기도 했지만, 반대파인 한신당에 당시의 대통령을 해 먹었던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이현창의 시대였다. 이현창은 수안의 둘도 없는 정치적 동반자가 아니던가. 덕분에 박재문 전 대통령이 곤란을 당할 일이 발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정우현 변호사가 정치를 할 생각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삼고초려가 아니라 십고초려라도 해야 하는 사람이야.”

수안이 2019년 팬데믹 사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요했다.

아버지가 당선되면 임기는 2013년 2월 25일부터였고, 이후 다음 대통령의 임기가 2018년 2월 25일부터 시작된다. 아버지를 통해서 진행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진행하겠지만, 실제 바이러스가 시작되는 2019년에는 당시의 대통령과 함께 일을 진행해야 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 사람이 대통령도 아니고, 회장님이 움직이실 필요가….”

배영성은 농담처럼 말을 꺼내다 말을 줄였다. 문득 든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안의 눈치를 살피자 역시나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눈치 천 단이라고 해 줄까?”

“헙! 그럼 정우현이 대통령….”

“아버지 다음이 되겠지. 아버지가 18대 대통령이 되시고 정우현은 19대 대통령이 되는 거야.”

“후우. 제가 실수는 안 했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항상 직접 전화를 받았던 정우현이다. 배영성은 정우현과 통화하며 실수한 일은 없었는지 되새겼다.

“그 정도로 깐깐한 사람은 아니야. 다음 주에 변호사 사무실에 연락해 놓고 내가 만나러 간다고 해 줘.”

“예. 회장님.”

수안에겐 정우현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미래의 대통령 그리고 팬데믹 대통령.’

* * *

정우현은 본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난감한 얼굴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또….’

누구는 한 번이라도 만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지만, 자신은 만날 때마다 부담감만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아.”

생각만 해도 절로 한숨이 나온다.

똑똑.

움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몸이 절로 반응했다.

“…….”

우현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 줬으면 싶었다.

쾅쾅.

‘아예 부수고 들어올 모양이네.’

어쩔 수 없겠다 싶어 밖을 향해 소리쳤다.

“문 열려 있습니다. 그냥 들어오세요!”

“하하하. 또 뵙습니다.”

“…….”

자신을 제외한 누구나 반가워할 남자였다.

“또…. 보는군요. 강 회장님.”

우현이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은 강운 그룹의 젊은 총수인 강수안 회장이었다.

“여기 이것 좀 내려놓겠습니다.”

“…….”

박카스 한 박스였다. 비싼 선물도 아니라 안 받기도 민망했다.

“또 그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이제 척하면 척이네요. 하하하.”

“제가 정치는 안 한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물론 기억합니다.”

“그런데 왜 또 오십니까?”

“하셔야 하니까요?”

“…….”

항상 이런 식이었다. 안 한다고 하는 자신과 밀어붙이는 강 회장과의 싸움이다.

“제가 안 한다면 안 하는 겁니다. 왜 제 삶을 회장님 마음대로 하려고 하십니까!”

“대통령의 자리가 그렇습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국민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많지요. 제가 강운 그룹 소속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부양할 책임감을 가진 것처럼, 대통령의 자리도 그렇습니다.”

“난 정치인도 안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책임감은 지금 대통령이나 다음 대통령에게 가지라고 하셔야죠! 제게 와서 왜 이러십니까.”

“오늘은 얘기를 조금 더 진전시켜보죠.”

수안은 자신이 가져온 박카스를 까라락 까서 벌컥벌컥 마시고 내려놨다.

“진전이고 뭐고 안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정우현 변호사께 정치를 권유한 것은 아직도 국내에 불순분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불순분자라는 말은 공화국 시절에나 통용되던 말이 아니던가.

“…….”

“물론 말로만 이해하긴 어렵겠죠. 하지만 제가 힘들게 확보한 증거를 보시면 믿어지실 겁니다.”

수안은 갈색 서류 봉투에서 사진과 보고서를 반쯤 꺼내 정우현 변호사 앞으로 밀었다.

“박재문 전 대통령을 어떻게 끌어내리려고 했는지 보십시오.”

“……!!”

“일부 언론과 검찰 그리고 정치인이 합작한 결과입니다. 김대준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박재문 대통령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사라지는 것을 반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거사를 들춰내고 사회 혁신의 원동력이 될 박재문을 살려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흠집을 내려고 했죠.”

정우현은 갈색 봉투에서 사진과 보고서를 꺼내 휘리릭 읽어 내려갔다. 사진은 봉화마을로 내려간 전 대통령의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보고서는 박재문의 가족과 친인척 비리를 언론에 공표하고 이를 계속해서 일면으로 다루며 국민적 관심을 끌어온다는 시나리오가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존경받는 전 대통령에서 비리의 중심에선 지저분한 대통령으로 바꾸는 내용이었다. 이는 직접적인 살인이 아니었지만, 대중에 의한 살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 이게….”

“마침 신라 일보가 폐업하면서 사장된 계획입니다. 강운 그룹이 신라 일보를 제때 치지 않았다면 그 계획이 현실로 등장했을 겁니다.”

조작이라고 볼 수 없는 자료였다. 신라 일보에서 만든 자료에는 현역 검사들의 이름이 여럿 적혀 있었고, 고위층으로는 차관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국정원과의 연결 고리는 위협적이었다.

“그럼 이제 박재문 전 대통령께 문제가 생길 일은 없습니까?”

“애초부터 죄라고 볼 수 없는 일들입니다. 뇌물죄가 성립하지도 않습니다. 정 변호사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박재문 대통령께서는 그럴 분이 아닙니다.”

“그럼요. 그럴 분이 아닙니다.”

“자료를 보셨으니 이제 믿어지실 겁니다. 신라 일보는 퇴출 수순을 밟았지만, 그 보고서에 적힌 대다수의 인물은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죠. 이들을 이대로 남겨두실 생각입니까?”

언론과 정치, 검찰이 섞인 판에 언론만 빠졌을 뿐이다.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제가 뭘 어쩌라고 이러십니까.”

“검찰 개혁, 사법 개혁을 진행해 보시죠. 저도 힘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

“국정원은 제가 대통령께 한마디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미리 정리를 좀 해야겠네요. 이어서 언론 개혁도 해 보시고, 여전히 국내에 암약하는 토착 왜구들도 정리하시고요. 친일의 뿌리를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재문 대통령께서 덜 정리하고 가셨으니 친우이신 정 변호사께서 마무리를 해 주셔야죠. 나중에 대통령이 되시면 당연히 하셔야 할 일이죠.”

“자, 잠깐 그럼 날 보고 국회의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치인 되라는 줄 알았더니 대통령까지 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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