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브리드 (278/304)

하이브리드

수안은 발표가 끝나고 강운 자동차 임직원을 치하했다.

“한 사장도 수고 많았고, 발표한 박 차장도 수고했습니다. 신차 개발에 노고를 아끼지 않았기에 이룰 수 있었던 일입니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이번 성과로 강운 자동차에서 곧 하이브리드 차량을 출시할 수 있겠군요.”

이번에 강운 자동차에서 개발한 신차는 가솔린과 전기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이었다.

“배터리 성능에 따라 전기차의 성능도 좌지우지됩니다. 회장님께서 개발하신 그래핀이 배터리 성능 향상에 기여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성과입니다.”

배터리 성능 향상이 전기 자동차에만 이점이 있겠는가. K폰을 비롯해 최근 출시한 웨어러블 기기에도 적용할 수 있었고, 산업 전반에 사용하는 모든 배터리 시장을 장악할 엄청난 발명이었다.

“그건 실수로 발견했을 뿐입니다. 제 노력이 여러분에 비하겠습니까.”

이제 강운 자동차는 하이브리드를 시작으로 전기차 시장에 발을 들이밀 수 있었다. 국제유가는 최근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앞으로는 오름세가 지속될 것이다. 유가의 등락이 아니라도 전기차는 대세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번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의 성공은 강운 자동차가 세계무대에 자리 잡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수안은 자신의 성과보다 직원들의 성과가 도드라지기를 바랐다.

“회사의 성공은 오너의 성공이 아닙니다. 개발에 참여한 직원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회사를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의 성공입니다. 그 결실 또한 직원들이 맛봐야 합니다. 한 사장님은 고생한 직원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충분한 성과급을 지급하길 바랍니다.”

성과를 확실하게 챙기는 강운 그룹이다. 강운 그룹 직원들은 자신의 발명 성과를 회사에서 꿀꺽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덕분에 강운은 더 많은 수의 기술자를 확보할 수 있었고 신기술 개발 속도 또한 누구보다 빨랐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한 사장 뒤에 서 있던 임직원들은 서로 얼싸안기도 하고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앞으로 남은 것은 인센티브라는 달콤한 과실이었기 때문이다.

“만세!!”

“와아아!”

“가자! 가자! 강운!”

“조, 조용히 좀 해. 회장님이 계시는데….”

놀란 한 사장이 직원들을 만류하려 했지만, 오히려 수안이 한 사장을 만류했다.

“하하. 그냥 두세요. 기운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예. 회장님.”

이후 수안은 계열사를 계속 순회하며 각 그룹사의 성과를 검토하고 또 지시하며 업무를 봤다. 부문별로 그룹을 나눠 자체 경영을 허락했다고 하지만, 가끔 이런 관여가 있어야 긴장감을 유지하는 법이다.

* * *

수안은 적당한 수준에서 회사 업무와 가정생활을 양립하며 지냈지만, 가끔 그보다 우선하는 일이 생긴다.

“당선 축하합니다. 프레지던트.”

-하하. 미스터 강에게 축하받으니 감회가 새롭군요.

2009년 미국은 건국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배출했다. 바로 오바마 대통령이다. 수안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고, 평소 많은 후원금을 가져갔던 사람이다.

-…….

오바마는 가장 많은 후원금을 지급했던 BE 인베스트먼트가 어떤 요구를 할지 조금 걱정하고 있었다. 수안은 그런 염려를 의식한 듯이 말했다.

“지금까지 프레지던트를 응원했던 사람들에게 어떤 보답을 해 줘야 할지 많은 염려가 있으시겠죠. 하지만, 저만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린 친구니까요.”

-친구. 좋은 단어죠. 하지만 친구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로 쓰이지 않겠습니까?

남보다 못한 친구도 있기 마련이다.

수안은 여전히 의심 가득한 오바마에게 도움이 필요하지 않음을 역설했다.

“정말입니다. BE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정당한 경쟁. 그거 하나면 됩니다.”

-BE는 정부의 도움이 필요 없는 거대한 금융회사죠.

수안이 생각하는 친구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지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BE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위기에 나서겠습니다. 미국에 국채 발행이 필요해지면 말씀해 주십시오. 흔쾌히 인수에 응하겠습니다.”

-나는 정말 좋은 친구를 뒀습니다.

“프레지던트의 취임식엔 BE의 신임 회장을 보내겠습니다.”

-저런. 미스터 강이 빠진다니 아쉽군요.

계열사를 그룹화해서 부회장에게 맡겼듯이 BE 인베스트먼트에선 이방효를 회장으로 올렸다. 그룹사 최초의 회장이라 할 수 있었지만, 엄밀히 따져 BE 인베스트먼트는 강운 그룹의 계열사가 아니라 수안의 개별 회사였다.

“앞으로 저와 러닝을 함께할 날이 많으시겠지요.”

-그러고 보니 우린 러닝메이트였죠.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국에 방문하실 일이 있으시거든 꼭 말씀해 주십시오. 마중 나가 환영하겠습니다.”

-하하. 미스터 강을 보기 위해서라도 방한 일정을 당겨야겠군요.

수안은 전화를 끊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히 취임식은 안 가도 되겠네.”

누구는 못 가서 안달인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이지만, 수안에겐 아들과 스키장에 가기로 한 약속이 더 중요했다.

아들과 스키장에 다녀온 수안은 결국 오바마를 만나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백악관에서의 연락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그 사람은 왜 벌써 오고 그래?!”

최소 연말에나 올 줄 알았는데 벌써 방한이란다. 미국의 신임 대통령은 다른 중요 국가를 먼저 돌아보고 한국은 항상 맨 나중에 오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강운 그룹의 성장과 BE 인베스트먼트로 인해서 올라간 한국의 위상이 미국 대통령의 해외 순방 순서까지 바꿔 버렸다.

“…제가 오라고 하진 않았습니다만.”

“아휴. 그래. 내가 오라고 했지. 내가 그랬어. 괜히 오느냐고 물어서는….”

결국 수안은 이현창 대통령과 함께 오바마를 맞이하고 함께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물론 외교적인 문제에선 끼어들 수 없었지만, 이현창 대통령은 수안 덕분에 오바마와 거리감 없이 마주할 수 있었다.

수안과 오바마의 친분이 있다는 걸 몰랐던 이현창은 수안에게 귓속말로 묻기도 했다.

“후배. 오바마 대통령과 안면이 있었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러닝메이트라고 할 수 있죠.”

미국 대통령의 공식 러닝메이트는 부통령을 일컫는 말이다. 수안은 비공식적으로 러닝메이트나 같다고 했지만, 사실은 진짜 러닝메이트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오오!”

“진짜 같이 뛴다고요. 그냥 뛰기만.”

“엥?”

둘이 대화하는데 오바마가 통역과 함께 다가와 끼어들었다.

“무슨 얘길 그렇게 재미있게 합니까?”

“프레지던트와 제가 러닝메이트라고 했습니다.”

“그건 사실이죠. 우리 내일도 뛰기로 했죠?”

“러닝 코스는 미리 잡아 놨고 대통령 경호실에도 통보했습니다.”

“이번에도 기대하겠습니다. 이번엔 미스터 강을 따라잡을 수 있겠죠?”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편이 좋을 텐데요.”

작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100m, 200m를 석권하며 육상 정상에선 볼트가 수안을 언급한 인터뷰가 지금도 회자되고 있었다.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다. 난 스승을 따라잡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볼트가 언급한 스승. 당연히 그가 누구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스티븐 강. 그는 어려서부터 날 후원하고 교육해 준 진정한 스승이다.]

전설의 챔피언이 다시 등장했다. 웅성거리는 기자들 사이로 불만스러운 질문이 들어왔다. 중국에서 열린 올림픽 육상 승자가 과거의 승자를 거론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중국 기자였다.

[당신은 올림픽 챔피언입니다. 과거엔 그럴 수 있겠지만, 강 선수의 나이가 벌써 38세입니다. 당신이 최정상입니다.]

선수 생활을 지속하지도 않았으니 그 실력이 퇴보했을 것임을 짐작하고 던진 말이었다. 게다가 과거의 챔피언은 현재 한국과 미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질 않은가.

[이번 올림픽에 오기 직전에도 오랜만에 함께 달렸다. …난 아직 멀었다. 여전히 스승님과 기록이 1초 이상 벌어진다. 최고의 자리는 아직도 까마득하다.]

[……!!!]

볼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성기 기록보다 더한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배영성은 이때다 싶어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대대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볼트와 수안이 어려서부터 함께한 사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주먹을 마주하며 인사한 사진도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황제의 복귀를 바라는 의견도 많았다. 강운 그룹으로 전화가 폭주해 공식적인 발표까지 해야 했다.

[강운 그룹 공식 발표-강수안 회장의 선수 복귀는 없다. 앞으로도 국내외 스포츠 발전에 아낌없는 지원을 통해 응원을 이어 가겠다.]

외부에 공개한 수안의 입장은 절대 불가였다. 수안의 나이가 곧 40에 가깝다. 체력이 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가정과 기업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하하하. 올림픽 챔피언도 못 이기는 육상의 황제라 이겁니까?”

“그건 볼트가 봐준 겁니다. 어려서부터 볼트를 후원해 왔으니 립서비스를 해 준 것뿐이죠.”

베이징 올림픽 전 수안은 점검 차원에서 볼트와 100m, 200m를 뛰었다. 여전히 느리게만 보이는 볼트를 채근하면서 달렸다. 수안은 말을 하면서 달렸지만, 그래도 볼트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볼트 입장에선 아직도 까마득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연습경기였다.

이현창은 이후에도 함께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수안은 외부 일정에만 모습을 보였다. 오바마가 공사 구분이 확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로도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자동차 관세 철폐를 유예 문제로 줄다리기]

-한·미 양국 통상장관들의 자유 무역 협정(FTA) 추가 협상에서 자동차의 관세 철폐 기한 연장 문제를 놓고 양측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 측은 승용차의 수입 관세 2.5%를 철폐하기로 한 기존 합의에서 시한을 몇 년 더 연장해 줄 것을 요구, 한국 측이 이에 난색을 표하면서 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후략….

이후 오바마가 미국에 돌아가고 나서야 수안은 통화로 불만을 표시했다.

“자동차 관세는 너무 했습니다. 관세 철폐 시한은 늘어나고 미국산 차량 판매 대수 또한 늘리지 않았습니까.”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불공정하다고 해야 맞겠지요. 제가 공정한 경쟁을 원하지 않았던가요?”

-그때 미스터 강이 말한 기업은 분명 BE 인베스트먼트였죠.

“…….”

맞는 말이다. 강운 자동차가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물론 내가 억지를 부린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강운 자동차의 하이브리드 모델이 너무 위협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가 국내 자동차 산업이 무너질 판입니다.

“…….”

-나는 국내 자동차 업계의 불만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세계적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쟁력이 날로 떨어집니다. 프레지던트의 결정은 그들 기업의 생존이 아닌 연명을 위한 조치를 취한 것에 불과합니다. 차라리 대대적으로 시장을 오픈하고 자율 경쟁을 노리는 편이 좋을 수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 부분은 양보가 어렵군요.

“…좋습니다. 프레지던트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도 어쩔 수 없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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