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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비극 (272/304)

형제의 비극

수현과 진태의 결혼식이 있었다.

수현과 진태의 결혼식엔 정말 많은 기자와 방송국 관계자들이 출동해 세간의 관심을 보여 줬다. 꾸준하게 둘의 열애 과정을 공개해 왔기에 재벌가와 연예인의 결합이라는 면보다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결실이라고 포장할 수 있었다.

또한 백부님의 장담대로 다시 범 강운 그룹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돈독한 사이를 자랑했다.

이어서 수용과 주미의 결혼식도 치러졌다. 많은 재계 인사들이 축하해 줬고, 일부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용은 강운 그룹에 마지막 남은 혼처였기 때문이다. 수용이 세기 통신을 계열 분리, 인수한다는 소식에 더욱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수현은 커피 프랜차이즈가 자리 잡은 다음 다시 뉴월드 호텔로 복귀해 두 회사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수현은 두 회사를 오가며 바쁘게 일하다가 임신을 알게 되었고, 출산일이 가까워서야 손에서 일을 놨다. 산후 조리를 하면서도 휴대 전화를 붙들고 살았다고 하니 완전히 일을 놓지는 못한 모양이다. 진태는 수현의 강권에 회사 일을 배우고 아내를 대신해 회사와 집을 오간다고 했다.

커피 프랜차이즈의 경우엔 직원들만 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호텔은 외부 손님이 많아 진태의 모습이 가끔 사진으로 남겨지곤 했다.

특히 호텔에 진태가 모습을 드러내면 외국 손님들의 눈길이 진태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식이다. 당연히 수현의 귀에도 그 소식이 들어갔다.

“당신은 호텔 로비에 나가지 말라니까 그러네.”

-…밥은 먹어야지. 나 굶어?

“시켜 먹어! 호텔에 룸서비스 괜히 있어?”

-오랜만에 처남 만나서 먹는데 집무실에서 룸서비스를?

“아. 수용이가 왔었어?”

손위처남과 손아래처남(작은 처남)이 있어 헷갈릴 법도 했지만, 처남은 무조건 수용이다. 진태가 수안을 부르는 호칭은 언제나 회장님으로 통일이었다.

-처남한테 우리 아기 사진 보여 줬더니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걔는 나이도 어리면서 뭐가 그렇게 급해. 작은 올케는 아직 서른도 안 됐잖아.”

-처남이 애를 좋아하잖아.

“조만간에 두 사람 불러서 우리 애 자랑 좀 해야겠다.”

자랑해도 될 만큼 잘난 아들이었다. 진태를 빼닮은 아기는 누구든 보자마자 탄성부터 터트렸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너무 예뻐 보호자를 확인하면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태의 2세라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조만간 둘이 찾아온다고 했어.

“오. 알았어. 내가 연락해 볼게.”

* * *

수진은 하린이가 어느 정도 크고 강운 패션으로 복귀해 일을 시작했다. 그래봤자 수진도 수현이처럼 오래 다니지 못했다. 또 임신하며 출산을 위해 휴직해야 했기 때문이다. 수진은 이번에야말로 숨겨진 유전자를 끌어내겠다며 태교부터 열심히 했었다.

그리고 실제 태어난 아기의 미모에 수진은 나름 만족했다고 한다.

“좋아. 이대로 계속 가는 거야!”

“…뭐가 이대로 계속이야. 둘 낳았으면 됐지, 더 낳으려고?”

상준은 둘로 충분했다. 딸과 아들. 성비도 훌륭했다.

“어림없는 소리! 최소한 넷은 있어야지.”

“당신 몸은 생각 안 해? 그러다 당신 몸 다 망가져.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아야지.”

“…당신은 뜬금없이 감동 주더라.”

“난 어쩌다 그러지만, 당신은 맨날 사랑스럽거든?”

아직 오글거리는 멘트를 던질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결혼생활이었다.

“내가 애만 안 낳았어도 오늘 그냥 안 넘어가는데 말이야.”

아직 출산 후 산후 조리도 끝나지 않은 시점이다. 남편을 사랑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고 싶었지만, 아직은 조심해야 했다.

“흐흐. 내가 하린이랑 잘 테니까. 당신은 하준이 잘 챙겨.”

“두고 보자. 내 사랑.”

몸조리만 끝나면 마음껏 남편을 사랑해 주겠다는 표현이다.

애가 금방금방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당신만 기다릴게. 내 사랑.”

“잘자. 여보.”

“문제 생기면 바로 불러. 대기하고 있을게.”

“응. 응.”

* * *

기쁜 소식은 수용과 주미 사이에서도 전해졌다.

주미는 결혼 전부터 교본 생명 보험에 입사해 강운 증권과 BE 인베스트먼트를 오가며 바쁘게 일했고, 이번에 상무이사로 진급했다고 들었다. 그간 수안의 직접적인 도움으로 교본 생명 보험의 수익률이 크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지분을 넘겨받는 작업도 꾸준히 진행 중이라고 하니 일에서만큼은 걱정할 부분이 없었다.

다만 수안은 아이를 언제 낳을지 걱정했지만, 아직 젊은 주미는 아이보다 일이 우선이라고 했었다.

그러던 중 수용에게 연락이 왔다.

-주미가 애를 가졌대!

“하하. 축하한다. 드디어 네가 아빠가 되겠구나.”

-형! 내가 뭐 해야 하지? 뭘 준비하면 될까?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제수씨가 시키는 것만 해라.”

임신 초기에 준비할 것은 없었다. 미리 뭔가를 준비한다고 해도 임산부의 결정이 우선이었다.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사봐야 좋은 소리를 듣기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임신 육아 서적을 미리 읽어 두는 정도가 좋다.

-주미도 갑작스럽지 않을까? 열심히 일하다가 덜컥 임신인데.

“설마 제수씨가 생각 없이 임신했겠니? 이제 회사에서도 확실하게 자리 잡았고, 사돈총각을 따돌렸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임신을 했겠지.”

똑똑한 제수씨가 우연히 임신했을 리가 없었다. 앞뒤를 다 따져 보고 아이를 가졌을 것이다.

최근 전략비서실에서 확인한 정보로는 사돈총각이 집안과 어울리지 않는 여자와 만나고 있었다고 하니, 그 일이 신 회장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었다. 완전히 눈 밖에 난 아들과 강운 그룹과 맺어져 그룹에 큰 도움이 되는 딸이다. 여기에 임신까지 더해진다면 신 회장으로서도 한쪽으로 기우는 저울추를 바로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집에 올 때 꽃다발이라도 사 와라. 케이크도 사 오든지.”

-오케이. 오케이!

주미의 바람대로 둘은 결혼하고 서초동 본가로 들어와 살고 있었다.

벌써 올해로 3년이다.

전화를 내려놓은 수안은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동생들이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가고 있어 뿌듯한 심정이었다.

“흐흐. 녀석.”

똑똑.

“어. 들어와.”

“회장님.”

굳은 얼굴의 배영성은 들어오자마자 보고를 시작했다.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난 또. 벌써 작년부터 예견된 일이었잖아.”

2007년 9월 금리 인하를 기점으로 부동산이 붕괴하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났다. 그 말은 미국 정부와 연준이 수안의 경고를 무시했다는 뜻이었다.

HSBC도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거액의 손실을 인정했고, 주택 버블의 붕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며, 미국 정부는 서브프라임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대형 헤지 펀드들은 파탄을 드러냈고 가진 주식과 달러까지 내다 팔아버린다. 이는 주가 폭락과 달러의 폭락으로 이어졌다. 유럽, 일본, 중국까지 대부분의 은행이 엄청난 손실을 봤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2008년 9월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을 기점으로 전 세계적인 불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주워 담을 일만 남았네.”

남들은 대침체의 공포에 떨고 있었지만, 수안에겐 저점 매수의 타이밍으로 보였다.

“말씀대로 2009년 3월을 최저점으로 설정하고 미국과 일본에서 조금씩 매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증권 시장이 온통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수안은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았고 관여할 마음도 없었다. 돈은 관심사에서 멀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둘이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난 김현성 부회장에게 갈게.”

수안이 간간이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오로지 바이오였다. 혈육을 지키려면 전염병을 대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예. 차량 준비하겠습니다.”

이후 수안의 일정은 회사와 집 그리고 강운 생명 과학을 오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밖으로 나가던 배영성이 다시 수안에게 몸을 돌렸다.

“아! 대통령께서 전달 말씀이 있었습니다.”

“…선배님이?”

작년 서울시장에서 사퇴하고 대선으로 오른 이현창은 여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서울시장으로 서울시민들의 인기를 한 몸에 누리고 있었고, 전통의 한신당에서 나온 걸출한 인물이었다. 거기다 일부 여당의 표까지 쓸어 담을 수 있는 포용력을 갖추고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 전에 대통령 임기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 시도가 있었다. 야당과 여당의 합치와 언론의 힘이 더해진 대국민 투표는 국민의 큰 관심을 받고 치러졌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국민들이 대통령 중임하는 게 싫다고 하잖아. 나보고 어쩌라고 맨날 전화야?”

당연히 찬성으로 끝날 줄 알았던 헌법 개정이 반대의 우세로 끝나 버린 것이다. 독재자의 장기 집권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던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의 임기가 늘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다 차린 밥상을 국민이 엎어 버렸기에 수안도 방법이 없었다. 덕분에 수안의 계획도 틀어진 상황이었다. 재임 대통령을 가능케 하여 아버지를 10년간 대통령 자리에 앉히고 싶었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인 팬데믹 상황을 맡을 대통령이 붕 떠버렸다.

“그 부분에 관한 얘기가 아닙니다. 미국발 금융 위기에 강운과 BE 인베스트먼트의 협력을 부탁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 얘기 아니었어? 별것도 아니네. 미국에 해 준 정도는 해 줘. 구제 금융 필요하면 전달해 주고. 한국엔 영향이 크지 않아서 큰돈이 들진 않을 거야.”

“예. 회장님.”

“아. 박재문 전 대통령 시절에 수석비서관 하시던 분은 어디 계시는지 알아?”

“…찾아보겠습니다.”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긴 했지. 나중에 자리 좀 만들어 줘.”

아버지 다음의 대통령으로 만들어 줘야 했다.

‘본래 그가 대통령이기도 했고….’

“예. 알겠습니다.”

* * *

주미는 시댁에서 꽃다발을 받고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입으로 불어 껐다.

“임신 축하해. 우리 며느리.”

“감사해요. 어머님.”

“아하하하.”

수용은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소식이던가.

“사돈 댁에도 알렸니?”

“아직이요.”

“어머나. 얼른 알려 드려 얘.”

“예. …그 전에 어머님께 죄송스러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응?”

주미는 시어머니에게 미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희가 집을 비워야 할 것 같아요.”

“어머. 벌써 3년이나 지났어?”

본래 3년간 시댁에서 살겠다고 했던 두 사람이다.

“시간이 다 되어서가 아니라….”

수안의 예측대로 주미의 오빠와 신 회장 사이에 문제가 있었다.

“집에 좀 일이 있어서…. 저희 부모님과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사돈댁에 무슨 일이라도 있니?”

주미는 시어머니께 숨길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가깝기도 가깝고, 재벌가의 온갖 소문이 모이는 곳이 바로 어머니의 미술관이었다.

주미는 사실대로 집안 사정을 설명했다.

“오빠가 여자를 만났는데…. 상대가 화류계 여자라고 하네요.”

“어머. 어머!”

“얼마 전에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아셨어요. 오빠가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가 버리는 바람에 저희라도 곁에 있으면서 위로해 드리려고요.”

짧은 설명이었지만, 핵심이 모두 들어가 있어서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더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결국은 집안의 흠이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돈총각은 어쩌다가 그런 여자를 만났을까….”

“오빠는 푹 빠져 버린 모양이에요. 회사에도 나오지 않고 있어요.”

“우리 주미가 임신했으니 좋은 것만 봐야 하는데….”

“괜찮아요. 되도록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내가 소문나지 않도록 조심할게.”

주미는 시어머니의 이런 배려를 짐작하고 있었기에 사실대로 말할 수 있었다. 3년이나 같은 집에서 살며 정을 쌓은 사이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네 시아버지한테는 이런 얘기까지 전하지 마. 너 임신해서 친정어머니 계신 본가에 들여보내기로 했다고 말씀드릴게. 어차피 본래 같이 살기로 한 시간도 다 됐잖니.”

“감사해요. 어머님.”

.

.

.

방으로 들어온 수용은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어?”

수용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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