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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애 (265/304)

자유연애

며칠 뒤 수용은 형과 함께 스테이크를 썰며 마주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형의 호출에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수용은 고기를 잘라 입으로 가져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요즘 형 시간 많네? 나 보러올 시간도 있고.”

“여유가 좀 있지. 그래서 애들 데리고 경기장 나들이 다니잖아.”

“신문에 좀 많이 나오긴 하더라. 스포츠면이라 아쉽긴 하지만. 크크.”

“그나저나 네 회사 잘나가더라. 시장 점유율이 상당하지?”

“크크. 확실히 선점 효과가 무시무시해. 뒤에서 후발 주자들이 따라오긴 하는데, 아직 멀었지.”

“요즘도 계속 바쁘겠네? 여유 시간은 있어?”

수안은 여전히 일에 빠져 있는 동생이 걱정스럽다.

“항상 비슷하지. 관리를 안 해 주면 사기 치는 놈들이 생기더라니까. 가짜매물 올려서 손님 끌어오려는 중개 업자들이 많아서 그때그때 경고하고 심한 업체는 잘라 줘야 해.”

“그런 놈들은 맨날 다시 생겨.”

“맞아. 그래도 제때 정리한 덕분에 신뢰가 쌓였지. 다른 부동산 포털은 가짜 매물이 많은데 우리 회사는 진짜 매물이 대부분이니까. 소비자 신뢰도 면에서도 우리가 한참 앞서고 있어.”

적당히 대화가 오고 갔다고 생각한 수안은 고기를 씹어서 넘기고 레드 와인으로 입가심했다.

“요즘 만나는 사람은 있냐?”

딸깍.

수용은 한참 잘 움직이던 포크를 접시에 내려놨다.

“…형. 나 몰래 뒷조사도 했어?”

“……!”

수안은 수용이 긍정하는 답을 하자 눈만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뭐야. 모르고 물어본 거야?”

“허!”

“진짜 몰랐나 보네. 에이. 괜히 말했다.”

“이름, 생년월일 불러 봐라.”

“그냥 잠깐 만나는 애야.”

“그래서 감쪽같이 숨기셨다? 나한테까지?”

“숨기긴 뭘….”

“숨길 이유 없으면 다 불어. 혹시 연예인이냐?”

“이제 연예인은 관심 없어.”

“그럼 회사 직원?”

“에이. 내 주변의 직원들은 거의 다 남자뿐인데? 그리고 직원들은 저들끼리 놀지 나 안 끼워 줘. 얘는 내가 강운 그룹 사람인 줄도 몰라.”

“그럼…. 일반인?”

“…응. 아마도?”

“어떻게 만났는데?”

“…….”

“내가 뒷조사 들어가? 탈탈 털어 볼까?”

“아. 쫌!”

“그럼 얼른 말해 봐.”

“에효. 한 일 년 전이었던가….”

* * *

수용은 평소와 같이 회사에 출근했다가 외부 업무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한 회사의 대표로 일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일선의 업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 부동산 중개 업자들을 만나고 매물을 관리하며 실제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와 온도를 피부로 느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외부에 전해지는 부동산 열기와 실제 시장에서 느끼는 온도에 차이가 있었기에 시장 조사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수용은 예전에 빠진 살이 그대로였다. 체력이 부족하면 이 일도 하기 힘들었다. 헬스장에도 꾸준히 나가며 체력을 유지해야 외부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시장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은 꾸준히 상승 기류였고, 거래 또한 활발했다. 부동산 포털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또 오셨네요? 하하하.”

“요즘 시장 어떻습니까.”

“딱 좋습니다. 매물 나오는 대로 잘나갑니다. 사이트에도 나간 물건은 바로 삭제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계시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후 한참 부동산 중개인과 대화한 수용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다른 중개소를 찾아가야 했다. 수용이 방문하는 부동산 중개소는 부동산 포털의 정회원으로 등록된 곳이었다.

수용은 회원이 아닌 다른 부동산 중개소를 지나가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전세 보증금을 왜 못 주시는데요! 집에 하자가 있어서 옮겨야 한다니까요.”

“집주인이 다시 전세가 나가야 준다지 않습니까.”

“집주인이 돈을 못 갚아서 경매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누가 전세로 들어와요?”

“그건 제가 알 바 아니고요! 집주인하고 연락도 잘 안 되는데 내가 뭘 어쩌겠습니까! 나가세요!”

‘제대로 물린 모양이네.’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다가구 주택을 매입하며 은행권에 대출을 받았을 것이고,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받아 챙긴 다음 경매로 던져 대출을 정리하는 수법이다. 그럼 세입자의 전세금은 어떻게 될까. 전세권 설정을 하지 않는 이상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었다. 전세권 설정을 했어도 은행 대출 순위가 우선이기에 경매에서 받을 돈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경매로 낙찰받는 사람조차 집주인과 관련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지. 부동산 중개인도 한 발 걸치고 있을 것이고.’

해당 주택은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며 세입자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아앙. 내 돈 어뜩해! 흐흑.”

부동산 중개소 밖으로 나온 여성이 눈물을 터트렸다.

수용은 안타까운 마음에 손수건을 꺼냈다.

“여기…. 이거라도 쓰세요.”

크흥.

“아. 고마워… 아니, 감사합니다. 흐흑.”

수용은 코 묻은 손수건을 검지와 엄지 끝으로 들고, 쓰레기통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 이리 줘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휙.

수용은 코 묻은 손수건을 도로 가져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가지세요.”

“빨아서 돌려줄게요.”

돌려주긴 뭘 돌려준단 말인가. 수용은 돌려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지나가다가 들었는데, 전세금 물렸습니까?”

“흑. 코딱지만 한 집에 전세금을 1억 5천이나 받아 놓고 이제 와서 못 돌려준다고 하잖아요. 집도 곰팡이가 가득했는데 사진만 보고 계약했더니….”

“어휴. 금액이 크네. 전세권 설정도 못 했을 것이고….”

“어? 부동산 잘 아세요?”

“관련 일을 하고 있긴 합니다.”

“저 전세권 설정해 놨어요! 집주인이 절대로 안 된다고 했었는데, 우겨서 했어요.”

“임차한 집에 짐은 뺐습니까?”

“아뇨. 아직 그대로 있어요. 전세금도 못 돌려받았는데 가긴 어딜 가겠어요.”

“그럼 눌러앉으세요. 경매 시작해도 배당 신청하지 마시고요. 어차피 배당 하나도 안 나옵니다. 그럼 경매 참여하는 사람들이 전세권 보고 쉽게 못 들어옵니다. 계속 그 집에 살 수 있어요. 그리고 집주인의 다른 자산을 찾아서 전세금 반환 소송을 준비하셔야 할 텐데…. 집주인이 그걸 남겨놨을지는 미지수네요.”

“오오! 전문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기대하는 모습에 수용은 괜히 어깨가 으쓱해져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했다.

“우선 저기부터 다시 들어가 볼까요?”

수용이 가리키는 곳은 방금 나온 부동산 중개업소였다.

“중개인은 관련 없다고 하던데요?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어요.”

“우선 밖에서 기다려 봐요. 내가 먼저 얘기해 볼게요.”

수용은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목소리만 들었던 부동산 중개인과 마주했다.

“어서 오십쇼.”

“안녕하십니까.”

“찾는 물건이라도 있으십니까? 저희 부동산에 매물이 상당히 많아서 찾으시는 물건을 쉽게 고르실 수 있습니다. 신혼집인가 보죠? 헤헤.”

“저 이런 사람입니다.”

수용이 건네주는 명함을 받은 부동산 중개인은 잠시 명함을 살폈다.

“헙!”

‘국내 최대 부동산 포털!! 그것도 사장!!!’

“방금 내 애인이 여기서 무슨 얘길 듣고 왔는지 들었는데 말입니다.”

“애, 애인….”

이제부터 경고였다. 수용은 말투부터 바꿨다.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당장 돌려주든가 아니면 우리 회사 변호사와 싸울 생각을 하든가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하라고 전해 주겠어? 아무리 숨겨놔도 숨겨둔 자산 찾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이라…. 당신도 이번 일과 관련 없진 않을걸?”

“…….”

“이쪽은 전세권도 있는데 괜히 서로 힘 빼지 말지? 나중에 반환 이자까지 다 토해낼 생각 아니면 내놓는 편이 좋을 거야.”

“…연락해 보겠습니다.”

수용은 아직 부동산 중개인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 누군지 알아?”

“…….”

부동산 포털 사장이 아닌가. 방금 명함을 받았으니 알고 있었다.

“나 강운 그룹 사람이야. 아까 말한 변호사는 강운 그룹 법무팀을 얘기한 거고.”

“힉!”

강운 그룹의 이름을 잘 써먹는 수용이다. 국내에서 강운 그룹의 이름으로 안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틀 준다. 아니면 경찰부터 검찰까지 면담하고 마지막엔 판사에게 네 형량을 들을 수 있을 거야. 그나마 사기죄로 들어가면 오래 살진 않겠네. 한 3년? 그런데 네 죄가 이번 일 하나뿐일까? 찾으면 더 나오지 않겠어?”

“오, 오늘 내로 정리하겠습니다.”

“그럼 고맙지. 정상적인 거래만 하실 생각이면 명함의 번호로 연락하시고.”

“예, 옙.”

수용은 상쾌한 마음으로 밖에 나왔다.

“자. 오래 안 걸렸…. 뭐야?”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여인이 흔적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비슷한 여성이 없었다.

“…헛힘 썼네.”

그래도 좋은 일을 했다 위안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고 잠시 뒤에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 아저씨! 아저씨!!”

‘…어라?’

“헉헉. 그냥 가면 어떻게 해요!”

“그쪽이 간 줄 알고 그랬죠.”

“내가 그 정도 염치는 있거든요? 자요.”

여성이 내민 것은 음료수 캔이었다.

“뭡니까?”

“손수건도 고맙고 내 일에 나서준 것도 고마워서요.”

“…뭐. 감사히 받죠. 그리고 나 아저씨 아닙니다.”

“…맞는데?”

“아닌데?”

“연세가 어찌 되시는지?”

“드실 만큼 드셨으니, 아저씨든 할아버지든 마음대로 부르세요.”

수용이 삐딱하게 대답하자 여성은 금방 사과했다.

“…기분 상했으면 미안해요. 농담이었어요.”

“참 재미있는 농담입니다. 방금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얘기했고, 오늘, 내일 사이로 전세금 넣게 만들어 준다니까 기다려 보세요.”

“네에?”

“짜잔. 문제 해결. 볼일 끝났죠? 나 이제 갑니다.”

수용은 깔끔하게 돌아서서 갈 길을 갔다. 그런 수용에게 여자가 따라붙는다.

“자, 잠깐만요! 정말이요?”

“내가 뭐 하러 그쪽한테 거짓말을 합니까? 나 바쁩니다.”

“알았어요. 갈 길 가시면 제가 옆에서 궁금한 거 물어볼게요. 됐죠?”

결국 수용은 처음 보는 여인과 함께 길을 가야 했다. 여성은 자신의 이름부터 밝혔다.

“신주미예요. 나이는 25살. 대학 졸업하고 독립했는데, 그 전세금이 제 전 재산이었거든요. 집에 전세금 떼였다고 얘기했으면 아빠한테 맞아 죽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진짜 오늘 들어온다고 했죠?”

“내일까지 통장에 안 찍히거든 다시 그 부동산으로 연락해 봐요.”

“우아. 아저씨 능력 되게 좋나 봐요.”

“아저씨가 아니라….”

아저씨 소리도 듣다 보니 나쁘지 않았다. 항상 막내로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아저씨가 능력이 좀 좋습니다.”

“아저씨가 내 일을 해결해 줬는데 그냥 지나갈 순 없죠. 연락처 주세요. 손수건은 빨아서 돌려드리고 식사도 거하게 대접할게요.”

전 재산이 전세금이라는데, 무슨 식사 대접이란 말인가. 가난한 일반인에게 밥까지 얻어먹고 싶지 않았다. 도움은 순전히 호의로 한 일이다.

“손수건은 그냥 가지시고, 식사 대접은 받은 셈 칩시다. 그 돈으로 본인 생활에 보태 쓰세요.”

“와. 이렇게 예쁜 여자가 밥 사준데도 거절이에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자신만만한 포즈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풉.”

“지금 비웃었어?”

“그냥 기침이 난 겁니다.”

“갓 대학 졸업한 파릇파릇한 젊음에 이렇게 마음까지 넉넉한 여자가 세상에 많은 줄 알아요? 아저씨는 황송하게 생각하셔야죠.”

“푸흐흐. 마음뿐 아니라 시간도 넉넉하신 듯한데…. 백조?”

남들 일하는 시간에 이렇게 편안한 옷으로 돌아다닌다는 뜻은 결국 직업이 없다는 뜻이었다.

“아저씨는 아픈 데를 너무 심하게 찌르시네. 그래도 식사 대접할 돈은 있으니까 연락처나 줘 봐요!”

수용은 통통 튀는 매력과 젊음을 발산하는 그녀와 만나기 시작했고, 그 뒤로 소박한 연애를 이어왔다고 한다. 오래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따로 얘기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이어왔을 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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