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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들은 그냥 미워 (258/304)

걔들은 그냥 미워

“그래. 일본에 샤롯 그룹의 지주회사가 하나 있는데 거길 좀 파악해 줘야겠어.”

“신 회장의 광윤사 말씀이시군요. 예전에 샤롯 마트를 인수할 때 파악했습니다.”

예전 샤롯 마트를 인수할 때 샤롯의 지분 구조를 조사했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상당히 자세하게 분석했었다. 다만, 조사한 자료 대부분이 국내 계열사로 끝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었다. 샤롯의 경영권은 일본계 기업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나? 어쨌든 차 사장에게 광윤사와 일본 샤롯 홀딩스를 포함해 계열사를 낱낱이 파악해 달라고 지시하고….”

수안의 지시가 상세하게 이어졌다. 차진호를 통해 샤롯 그룹 계열사의 지배 구조와 이익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파악한 다음, 인터넷상에 퍼트리라는 내용이었다.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구호까지 있었다.

“…캐치프레이즈가 상당히 자극적인데요?”

“애국심은 무기로 사용하기 좋으니까. 국가도 결국 국민에게 애국심을 심어서 이용할 뿐이지.”

수안이 제시한 캐치프레이즈는 [독립 운동은 못 했어도 불매 운동은 한다.]였다.

“샤롯은 국내 기업이 아니야. 국내에서 발생한 이득을 일본에 있는 관계사가 가져가지. 그런 기업이 만든 제품을 우리나라 국민이 왜 사야 해? 안 그래도 대일 무역 적자가 매년 200억 달러를 훌쩍 넘기는데?”

샤롯이 국내 기업이 아니라는 것은 배영성도 조사하며 파악했던 바다. 문제는 샤롯과 날을 세워 문제를 일으키면 강운 그룹에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운 그룹이 국내 재계 서열 1위라고 하지만, 국내 다른 기업 경영진과 불편해질 수도 있었다.

국내 많은 기업이 일본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고, 애초에 적산 불하(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인들이 남겨둔 재산을 정권에서 분배)를 통해 재벌이 된 기업도 있었기 때문이다. 샤롯이 일본을 중심으로 기업을 일군다고 해서 강운 그룹이 공격한다면 외려 일본계 기업들에 합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배영성은 수안을 말릴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올해 주환득 사장이 홈플러스 대표 자리에 오르며 샤롯과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일까지 더해지면….”

과거 샤롯 마트에서 일했던 주환득 사장이 홈플러스 대표로 취임하자 샤롯 그룹은 강운 그룹과 강운 무역에 깊은 불만을 표시했었다. 샤롯 그룹이 불만을 표한다고 해서 주환득 사장이 잘릴 일은 없었다. 샤롯을 두려워할 강운 그룹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번 일까지 표적이 되어 줄 필요는 없었다.

“왜 인터넷을 활용하라고 했겠어. 우리와 관련성은 없게 만들어야지. 애국심이 투철한 개인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내용처럼 만들어 봐. 몇 군데 유명 커뮤니티에 올리면 알아서 퍼 나를 거야. 자극적인 주제는 언제나 인기 있기 마련이지.”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에 갖는 감정은 특별했다. 여기서 특별하다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2차 세계 대전과 식민 지배 그리고 이후에 보인 일련의 역사 때문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의 경우 한국에 비해 짧은 전쟁을 겪었지만, 한국은 30여 년간 일본의 식민 지배를 당했고 그 기간에 민족성을 철저하게 짓밟혔다.

그런 일본에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특별한 적개심을 갖고 있었고, 수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배영성도 마찬가지였다. 강운 그룹이 연루되지 않는다면 일본계 기업이나 마찬가지인 샤롯을 공격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강운과 관련성을 지운다면 진행이 어렵진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업이 최종적으로 도달할 곳은 어디입니까. 회장님께서 샤롯을 치고자 하신다면 목적이 있으실 텐데요.”

공격은 좋다. 하지만 공격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것인지, 마지막 숨통을 끊어 놓기를 원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우선 나도 독립 운동은 못 했어도 불매 운동은 하겠다는 생각이고….”

“…전생에 독립 운동 못 해 보셨습니까?”

수안의 비밀을 아는 배영성이라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지금이랑 시대가 같았다니까. 독립 운동이 왜 나오나?”

“아. 혹시나 하고요. 어쨌든 샤롯이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해서 싫다는 말씀이죠?”

“걔들은 그냥 미워.”

“…….”

광복 이후 6·25전쟁으로 한국이 진통을 앓는 동안 패망한 일본은 전쟁 특수를 누리며 경제 호황까지 이뤄냈다. 식민 지배를 하던 나라가 일본을 나락에서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사과? 일본은 다른 패망국과 달리 반성하지 않는 자들이었고, 지금까지도 일본에 붙어먹던 민족 반역자의 자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다.

샤롯 그룹은 그런 일본에 적을 두고 한국의 고혈을 빨아먹는 기생충이었다.

“…뭐. 저도 밉긴 합니다. 예전에 샤롯 마트 운영하던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요.”

“원래는 하나씩 처리하려고 했는데….”

샤롯 카드를 시작으로 샤롯 그룹의 계열사를 하나씩 정리하려고 했었다.

“그러다 어느 세월에 샤롯을 무너트리겠어? 이번에 확실하게 눌러서 재계 순위 밑바닥까지 처박아 버릴 거야.”

마음은 굴뚝같지만, 샤롯을 완벽하게 지워 버리긴 어려웠다. 샤롯 그룹이 일본에도 상당한 계열사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진호 사장과 공조해서 정보를 파악한 다음 차근차근 처리하겠습니다.”

상사의 목표를 깨달았으니 지금부터는 거기까지 달리면 그만이다.

“샤롯 그룹 일은 신약 개발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야. 검찰과 연락해서 샤롯 그룹 비리도 찾을 수 있으면 찾아놔. 찾으면 대중이 잊지 않도록 하나씩 터트리고. 그래야 꾸준히 불매 운동이 이어질 수 있을 거야. 나중에 샤롯 그룹에서 계열사 정리한다고 해도 강운에서 인수할 일은 없어. 녀석들에게 준 돈은 예전 샤롯 마트 인수 대금으로 충분해.”

여기까지 지시했으니 나머지는 배영성과 전략비서실이 진행할 것이다.

“아! 이유를 물으니 하나 더 생각난다. 신기호 회장이나 신희태 부회장이나 부자 성질머리가 비슷하게 더럽더라고. 신 회장이 아직 나이도 어린 것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가르치듯 말하는데, 샤롯에 질려 버렸어.”

홈플러스에서 주환득을 대표로 선임한 일로 신 회장과 통화했던 수안이다.

수안은 신기호 회장과의 통화에서 나름 예의를 갖추려 노력했지만, 예의도 무용지물이었다.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대는 통에 수안은 머리에서 김이 올라오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대한민국 재벌 기업 자수성가 1세대, 즉 밑바닥부터 시작해 그룹을 일궈낸 사람이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정택주 회장이고, 나머지가 신기호 회장이다.

정택주 회장은 굳은 심지로 사업을 일구고 불굴의 의지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경영자였다. 또한 신의를 알고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신기호 회장은 어느 것 하나 닮고 싶은 부분이 없었다. 그는 1공화국 독재자의 선택으로 재벌의 반열에 오른 사람일 뿐이었다. 수안은 신기호 회장을 재벌 1세대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할아버지뻘인 신 회장에게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수안은 반쯤은 욕이 섞인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도 올라오는 화를 꾹꾹 눌러야 했다.

수안이 통화 내용을 대충 설명하자 배영성이 오랜만에 화가 치민 얼굴을 보여 줬다.

“감히 어디다 망발을….”

강운 그룹 회장에게 불만을 표한 것만으로 샤롯을 공격할 이유는 충분했다.

“일본에서도 추가 작업 진행하겠습니다.”

“괜히 차 사장만 바빠지겠네.”

* * *

배영성은 전략비서실로 가서 직원들을 호출했다.

“과장급 이상 회의실로 집합.”

“예. 전무님.”

더블 스타 부회장이지만, 강운 그룹 내에선 전략실 전무이사로 통하는 배영성이다.

‘큰 건수가 생긴 모양이네.’

과장급 이상이라고 했으니 전략비서실에 중요업무가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집합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해당 직원들은 수첩과 펜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 블라인드가 내려갔고 문은 잠금장치가 채워졌다.

전략실 직원들이 회의실로 들어오자 배영성은 인사도 없이 바로 업무 지시를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추적 불가능한 게시글을 작성할 놈이 필요하다. 강운과 연관 없는 놈들로 찾아놔. 퍼트릴 내용은 일본과 국내에서 샤롯 그룹을 파악한 다음 확정한다. 또한 검찰에 계류 중인 사건 중에 샤롯 그룹과 관련한 일이 있는지 알아 와. 경찰 수사 단계에 있는 건과 고발 건도 포함이야. 불법적인 일을 돈으로 무마한 일도 좋아. 인터넷은 김 과장이 맡고 검찰과 경찰은 이 차장이 맡아. ”

“예!”

“예!”

직원들은 수첩에 지시 사항을 주르륵 적어 내렸다.

“샤롯 그룹의 지분 구조를 완벽하게 해부해. 일본에 있는 계열사는 따로 확인하겠지만, 우리도 파악해서 이중 검토를 진행한다. 추가로 샤롯 그룹 경영진의 성향과 성격, 사소한 습관까지 모조리 파악한다. 일을 진행하며 우리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기지 않는다. 지분구조 파악과 샤롯 그룹 경영진 인물 파악은 박 차장이 맡는다.”

“예!”

꿀꺽.

긴장감에 침을 삼킨 부장급 인사가 손을 들었다.

“그래. 정 부장.”

“샤롯을 어디까지 몰아세우실 생각입니까?”

“우리는 샤롯과 전쟁을 시작한다. 샤롯은 누가 때리는지도 모르고 맞다가 KO패를 당할 거야. 샤롯의 국내 계열사와 해외 계열사가 망하는 날까지 전쟁이야.”

“……!!”

“이번 프로젝트명은 신 반민특위다. 일본에 적을 둔 샤롯을 분해해 내용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대한민국에서 몰아낸다. 회장님은 [독립 운동은 못 했어도, 불매 운동은 한다.]로 캐치프레이즈까지 정하셨다. 우리의 우군은 대한민국 국민이 될 거야. 그리고 이번 기회에 숨어 있는 일본계 기업도 더 찾아내야겠어. 그래야 샤롯만 노린 일이 아니라고 포장할 수 있을 테니까.”

“이거…. 통하겠습니다.”

2004년 초부터 일본 총리가 기습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며 한국의 반발을 불러왔었다. 덕분에 한일 인터넷 커뮤니티 간에 사이버 전쟁이 발발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항상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양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지 않는가. 여기에 불을 지핀다면 샤롯의 불매를 끌어낼 가능성이 충분했다. 샤롯만이 아니라 일본의 손길이 닿아 있는 기업들과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불매까지 가능했다.

“지금까지가 회장님과 나눈 대화 요약이야. 가서 팀원들하고 아이디어 짜와. 확실한 시나리오 만들어 내려면 빨리 움직여야 할 거야.”

“예! 전무님!”

차, 과장급 직원들이 나가고 정 부장만 남았다.

정 부장은 항상 마지막에 남아 배영성의 추가 지시를 듣곤 했었다.

“정 부장이 아이디어 취합하고 시나리오별로 보고서 만들어 놔. 자료는 속도가 아니라 정확성이 우선이야. 자료 취합할 때 허술한 시나리오 있으면 정 부장 선에서 자르고 다시 해 오라고 해. 여럿을 취합해야 쓸 만한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 있으니까.”

“예. 전무님.”

이제 끝인가 싶었는데 배영성이 다시 정 부장을 부른다.

“정 부장. 아니, 태식아.”

“예, 예. 전무님.”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름까지….’

보통 회사 내에서 이름을 부르지 않는 배영성이다. 가끔 술자리에서나 이름을 부르며 친밀감을 표시했는데, 뭔가 심상치 않았다.

“샤롯 그룹 신 회장이 우리 회장님을 홍어 X으로 봤단다. 내가 이걸 참아야 하냐?”

“네? 신 회장이 그런 말을 했다고요?”

“우리 회장님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뭘 안다고 까부느냐고 잔소리를 잔뜩 들었다고 하시는데 내가 참을 수 있겠냐고.”

“…신 회장이 울 회장님께 그런 소리를 했답니까? 아랫도리 간수도 제대로 못 해서 나이 60이 넘어 자식까지 본 사람이 할 말입니까? 하!”

“그것뿐이겠어? 회장님이 내 앞에서 차마 말을 못 하셔서 그렇지, 얼마나 욕을 들었겠어. 그 노망난 영감쟁이가 감히 우리 회장님을 깔아뭉개는데 우리가 가만있으면 되겠냐? 우리 회장님인데? 회장님이 우리 강운 그룹 얼굴인데? 우리 직속 상사가 바로 회장님인데?!!”

화를 더해가는 배영성의 말에 정 부장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감히 우리 회장님한테….”

“태식아. 전략실 애들 정신 무장 제대로 시켜. 나 이번에 제대로 샤롯 그룹 상대해 볼 생각이니까. 국내는 네가 확실하게 맡아서 처리해. 난 일본 샤롯을 맡으마.”

“맡겨 주십시오! 전무님. 샤롯이 절대로 국내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괴롭혀 주겠습니다.”

“믿는다. 정태식.”

“예! 전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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