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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 연애도 한다는데… (249/304)

누군 연애도 한다는데…

수용과 전화를 끝낸 수안은 바로 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오빠.

“넌 지금 한가하게 오빠 소리가 나오냐?”

-왜 전화하자마자 시비야?

“뭐 해?”

-뭐 하긴. 신규 숍 런칭 준비 때문에 바빠.

“이번엔 어디야?”

-QUEENY 인천 10호점. 다음 달엔 대전 8호점도 곧 시작해야 하고, 또….

호텔 일을 놓지 않으면서 커피 프랜차이즈까지 운영하는 녀석이다.

“서울은 대체 언제 오는 건데?”

녀석이 로열패밀리라 가능한 일이다. 호텔에는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쯤 출근하고 나머지는….

-호텔은 휴직계 냈어.

“뭐?”

-커피 프랜차이즈 하나만 해도 벅차. 난 오빠가 아니거든?

“언제 낸 거야? 왜 나한테는 보고가 없었지?”

-호텔 사장님이 시시콜콜 보고하겠어? 휴직계 내고 얼마 되지도 않았어.

“그럼 집에는 대체 언제 올 건데?”

걸핏하면 외박하는 녀석이라 요즘 녀석의 얼굴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었다.

-왜? 엄마가 나 보고 싶대?

“엄마도 엄마지만, 네가 서울에 와야 선을 보지.”

-선은 이제 질렸어. 가 봤자 제대로 된 놈도 없는데 뭐.

“아이고. 두야.”

-조만간 모교에 강연 있어서 가긴 할 거야.

“네가 강연을 해?”

-나 정도면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야. 이거 왜 이러셔?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해. 수고!

열심히 일할 나이이긴 했지만, 수현과 수용은 정도가 조금 심했다.

“그나마 수진이가 제일 낫지.”

생각난 차에 수진에게도 전화했다.

-으아앙! 애앵.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

수안의 첫 조카였다.

“하린이가 밥 달란다. 수진아.”

첫째, 둘째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부모라 아기 울음소리만 들어도 아기가 왜 우는지 알 수 있었다. 곧 셋째가 나오면 또 같은 일의 반복일 테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를 생각하면 기대만 가득했다.

-나도 알아! 분유 타고 있었단 말이야. 왜?

“너 잘사나 싶어서….”

-그럼 내가 나중에 할게. 끊어.

“…….”

수안은 뚝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다 내려놨다.

“얘는 그래도 애까지 낳았으니, 더 바랄 게 없지.”

‘그나저나 수현이가 자꾸 마음에 걸리네.’

“모교에서 강연한다고 했었지?”

수안은 비서실을 통해 수현의 모교에 연락해서 언제 강연이 열리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 * *

“커피 프랜차이즈 QUEENY 대표 강수현입니다. 반갑습니다.”

젊은 대학생들의 환호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예뻐요. 언니!”

“멋있다!”

“처음 대학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을 때 솔직히 난감했어요. 여러분 모두 알다시피 저는 태어나서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죠. 강운 그룹 총수의 둘째 딸이 어려워 봤자 얼마나 어렵게 살았겠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

갑작스러운 자기 고백에 청중이 조용해졌다.

“똑똑한 후배들은 이런 함정에는 잘 안 빠지네요. 저 같으면 “네가 어렵긴 뭐가 어려웠겠어! 학자금 대출받아서 공부하는 내 대학 생활을 네가 알기나 해?”라고 말했을지도 몰라요.”

쿡쿡 웃는 학생들 사이로 수현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주제를 꺼냈다.

“여기 후배 중에 형제가 있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강당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형제와 단 한 번도 비교당해 본 적이 없었던 분은 손을 내려 보세요.”

손을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자. 좋습니다. 여기서 저 강수현의 오빠보다 더 잘난 형제가 있는 사람은 계속 손을 들고 있어 보세요.”

여지없이 모든 사람이 손을 내렸다. 강수안보다 잘난 형제가 대체 어디 있겠는가.

“없네요. 신랑감을 찾을 수 있으려나 했더니.”

킥킥거리며 웃는 학생들 사이로 수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얘길 했다.

“그래요. 제 오빠가 바로 강수안입니다. 연년생이라 저랑 나이 차가 고작 두 살이죠. 제 언니와 저 그리고 남동생은 그런 오빠, 형과 함께 살아야 했어요. 어려서부터 단 한 번의 흑역사도 만들지 않은 괴물 같은 오빠였죠.”

수현은 청중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었다.

“남은 형제의 삶이 짐작되세요? 당신 형제가 강수안이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운동하면 금메달을 우수수 따오고, 공부하면 한국대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사법시험도 원스톱으로 패스하는 사람. 거기다 악기 연주, 노래, 작곡, 그림, 신소재 개발, 디자인… 못하는 게 없어요. 마지막으로 비교할 대상도 없는 천부적인 투자 감각과 기업 경영 능력까지 갖추고 있죠. 하지만 저를 포함한 형제들은 아주 평범했어요. 아찔하지 않아요? 제가 그 사람 여동생입니다. 저도 여러분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의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청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있었다. 강수안이 자신의 형제였다면 얼마나 많은 비교를 당하며 살았을지 짐작 간다는 의미였다. 강수안이 자신의 오빠나 형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진짜 내 형제라면 미쳐 버렸을지도….’

엄마 친구 아들이나 딸이 아니라 형제라면 그 비교가 얼마나 더 극심할 것인가. 게다가 그 형제가 신문에 오르내리는 강수안이다? 이건 견디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저는 비교라는 주제로 여러분의 삶을 얼마나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얘기하고자 해요. 비교는 인생을 좀먹기 때문이에요. 비교하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어요. 비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시작되니까요. 지금부터 시작할게요. 비교하지 않고 세상을 사는 법. 괜히 내가 하는 말을 적느라고 강연에 집중 못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적는다고 언제 한번 들춰나 볼 것 같아요? 거기 후배는 뭘 자꾸 적어? 그냥 오늘 듣고 흘려보내. 너 그거 10년이 지나도 다시 안 열어 봐. 나중에 쓰레기통으로 직행이야.”

반말과 존대를 적절히 섞고 중간에 위트가 들어간 멘트로 청중의 관심을 끌어왔다.

‘우리 수현이가 강연에 소질이 있었네.’

수안은 모자와 두꺼운 뿔테 안경, 마스크까지 쓰고 구석에 앉아 있었다.

수안은 수현의 강연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자리에서 들었다.

“…자신을 더 사랑하며 단단하게 지켜가세요. 남들이 잘난 점은 칭찬하고 기억에서 지워 버리세요. 자신의 장점을 찾아 스스로를 칭찬하세요. 그래야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교를 강요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비교의 불행에서 살아야 합니까? 우린 우리의 행복을 선택할 수 있어요. 내가 찾은 나의 장점은 당신의 새로운 능력으로 거듭날 겁니다. 당신의 새로운 능력을 발휘해 보세요. 제가 커피 프랜차이즈 QUEENY를 시작한 것처럼 말이죠. 너도 할 수 있어. 넌 장점이 넘치는 녀석이니까.”

청중의 감정을 여지없이 흔드는 강연이었다. 박수갈채 속에 수현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오늘 강연은 이걸로 끝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인생은 이제 시작이에요. 후배님들의 행복한 삶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언니가 학교에 장학금 50억 쐈으니까 쏴리 질러!! 학자금 대출은 장학금으로 날려 버려!”

“와아아!!”

박수갈채에 환호성이 더해졌다.

“풉.”

수안은 녀석이 저런 쇼맨십이 있었나 싶었다. 오늘 수현의 새로운 모습을 참 많이 본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강연을 잘 마친 수현에게 결혼 얘기를 할 날은 아니다 싶어 일어서는데, 수현의 시선이 완전 무장하고 자리를 피하는 남자에게 향했다.

“떠헙!”

당연히 그 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강당에 울려 퍼졌다.

“오, 오빠?”

저 근육질의 거대한 덩치를 가진 사람이 흔하겠는가. 게다가 아직도 한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라 아무리 감춰도 몰라볼 수가 없었다.

물론 오빠라고 부른 소리도 마이크를 타고 사람들의 귀로 들어갔다.

“……!”

수안의 몸이 일순 굳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강당 내 모든 사람의 눈이 수현의 시선을 따라 옮겨갔다.

“…….”

식은땀이 주르륵 등줄기를 적시는 순간이다.

“…쉽게 만나기 힘든 분이 오셨네요. 여러분! 박수로 맞아주시겠어요?”

‘저게 진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고 수안은 어쩔 수 없이 무장을 해제하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와아아아! 강수안!! 강수안!!”

수안이 올라오자 수현은 얼른 마이크를 끄고 말했다.

“이미 들켜서 차라리 이편이 나아.”

“그 와중에 머리 굴렸다 이거냐? 아예 처음부터 이상한 소리를 내지 말았어야지.”

“오빠가 안 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에효.”

“인사라도 해. 마이크 넘겨줄 테니까.”

수안은 마이크를 받고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항상 연습한 표정이라 어색하지 않았다.

“저도 모교에서 강연한 적이 없는데, 여동생이 먼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제 동생 너무 잘하지 않았습니까?”

“네에!!”

“제가 키웠습니다.”

“하하하하.”

“농담 같죠? 제가 키웠습니다. 정말 잘 컸네요. 우쭈쭈.”

“아하하하.”

“오늘 저도 강수현 대표의 강연에 많이 공감했어요. 하지만 약간 다른 시야에서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살 수는 없지 않겠어요?”

이미 모든 눈과 귀가 수안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제 강연이 아니니 짧게 하겠습니다. 비교는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비교로 인해서 누군가는 성장을 거듭해 갑니다.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죠. 여러분이 누군가의 동생이었다면 집안에서 오빠나 언니, 형이나 누나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맏이라면 어떨까요? 동생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싶겠죠. 엄마에게 “넌 어째서 동생보다 못하니?” 하는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피식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에서만 그랬을까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우린 언제나 비교 대상이었죠. 같은 반 친구들은 성적순으로 번호가 매겨졌고, 그 범위는 학교 내 학년으로 확장되고 또 지역과 국가 단위로 자꾸 넓어졌죠. 여러분도 그 비교를 양분 삼아 이 대학까지 입학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곳 대학에 다니고 있는 당신은 이미 훌륭한 사람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옴마야….”

수안의 미소에 몽롱한 얼굴을 한 여학생도 많았다.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무분별한 비교와 자기 비하는 나쁘지만 단단한 마인드를 가진 당신이라면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이미 이 자리까지 잘 이겨내고 도착했습니다. 여러분은 승자입니다. 비교를 겁내지 말고 이겨내세요. 이겨낸다면 당신은 학교를 벗어난 사회에서도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수안이 마무리 멘트를 하자 수현이 마이크를 획 낚아챘다.

“진짜 끝! 내가 이런 오빠랑 살았다니까요!”

“와하하하.”

수안은 손을 흔들며 자연스럽게 강연장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현도 마지막까지 강연에 와준 학생들에게 인사하고 대학 관계자들에게도 인사했다.

“강 회장님까지 오실 줄은 짐작도 못 했습니다.”

“거액의 장학금도 감사한데 아무리 특별 강연을 부탁드려도 오지 않는 강 회장님을 모셔오다니요. 저희가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강 대표님.”

“내일 신문에도 나겠지요? 하하하.”

‘신문에도 내보겠다는 뜻이겠지.’

“잘 부탁드려요. 저도 예상치 못한 일이거든요.”

이런 기회를 대학에서 놓치고 싶겠는가. 대학을 홍보할 절호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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