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가! (247/304)

나가!

“신분 확인이 필요합니다. 우선 두 분 성함부터 말씀해 주시죠. 로비에 방문자리스트 확인 후 출입을 허가하겠습니다.”

-치직. 치직. 로비다. 뭐야?

“하! 나 참. 1톤 탑차 타고 왔다고 들여보내 주지도 않네.”

“이건 아버지 탓이라고 봐.”

“창식아. 노친네 탓하진 말자.”

“창수형. 앞으로 노친네라고 안 하기로 했잖아.”

“아. 맞다.”

“거기 둘! 노가리 그만 까시고! 이름 뭐냐고!”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대화만 나누는 두 사람에게 벌컥 화를 내는 주차요원이다.

“야.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쟤 지금 우리 무시했지? 너 이름 뭐야?!”

그사이 뒤에 있던 검정 승용차에서 한송 그룹 비서실 직원이 나와 대응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한송 그룹에서 나왔습니다. 강수안 회장님과 약속이 있습니다.”

“누구? 당신이?”

“저기 차에 탑승한 두 분입니다.”

돌고 돌아 다시 1톤 탑차였다.

“…어쨌든 두 사람 이름. 확인은 해야 하니까.”

한송 그룹이라는 말에 조금 기분을 가라앉힌 주차요원이다.

“네 이름부터 말하라고!”

“요즘 성질 죽이고 살았더니 별게 다 지랄….”

대답은 다시 옆에 있는 정장의 인물에게 들려왔다.

“좀 가만히 있으세요! 강창수, 강창식입니다.”

한송 그룹은 범 강운 그룹이다. 강 씨라고 하니 일단 성은 맞다.

앞에서 시끄러운 두 놈에게 화를 내는 건 확인 이후였다.

“주차장이다. 강창수, 강창식 방문자 확인 바람.”

-치익. 치직. 오늘 해당 방문자 이름 없음. 어제도 없었음. 내일도 없음.

주차요원에게 신비한 힘을 주는 대답이었다.

“나가! 이 새끼들아!”

“자, 잠깐만!! 한송 그룹 강병모 회장님이나 박수겸 사장님 이름으로 약속되어 있을 겁니다!”

“어쭈? 아예 확실하지도 않았어?”

“자, 잠깐만 다시 확인을….”

“너도 나가! 뒤에 차도 전부 빼!! 이것들이 어디서 장난질이야! 경찰 부를까? 앙?”

일이 해결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창수와 창식은 차를 빼고 주변에서 대기해야 했고, 한송 그룹에서 온 연락을 받고 내려온 회장 비서실 직원과 함께 외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두 분 이쪽으로 오시죠.”

“내가 아까 그 새끼 얼굴 기억했다.”

“나도. 수안이 보고 나서 바로 주차장으로 뛰어갈 거야.”

“박 사장님도 일을 하려면 똑바로 했어야지. 아버지 이름으로 약속 잡고 우릴 보내면 어쩌라는 거야?”

“에이. 썅. 오늘 가오 제대로 상하네.”

비서는 회장실 앞에 도착한 다음 돌아서서 말했다.

“노크하고 들어가시죠. 회장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비서님은 되게 친절하시네요. 하하.”

“주차요원은 제가 책임지고 재교육하겠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송 그룹 자제분들을 알아보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누가 한송 그룹 형제를 알아보겠는가. 강운 그룹 본사에 온 것은 처음이었고, 군에서 제대한 이후 외부 활동도 없었다. 오직 회사와 집만을 오갔던 둘이다. 비서에게도 두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화를 받고 나갔으니 망정이지 주차요원 자리에 본인이 앉아 있었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아아. 아까 저희가 나눈 대화는 그냥 농담입니다.”

“괘념치 마시고 볼일 보세요.”

“감사합니다. 사실은 마음이 넓으신 분들이셨네요. 차는 시원한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난 콜라.”

“목이 좀 마르네. 난 물.”

“시원한 물과 음료 몇 가지를 챙겨가겠습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비서가 가고 나서야 회장실로 진입하는 둘이다.

벌컥.

당연히 노크는 없었다.

“여. 히사시부리.”

“아이고. 강 회장. 이렇게 반가울 때가. 힘들게 만나서 그런지 더 반갑네?”

두 사람의 자유분방한 성격이 드러나는 인사에 수안도 걸맞게 대꾸했다.

“굼벵이를 삶아 드셨나? 왜 이렇게 늦었어? 백부님은 어디 가시고?”

“와. 얘가 좀 늦었다고 우리 타박하는 거 봐라.”

“이제 회장이라 이거냐? 앙?”

날로 그 위세가 달라지는 강운 그룹과 BE 인베스트먼트였다. 사촌 동생 수안은 두 회사의 회장직을 맡고 있었고, 보통 사람이라면 만나기도 힘든 위치였다. 자신들은 그저 사촌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편하게 대하고 있었으니, 이런 격식 없는 대화도 기꺼웠다.

“내 1분이 돈으로 따지면 얼만지 형님들이 알기나 해? 형들 30분 늦으셨거든요?”

“창식아. 얘 봐라. 한술 더 뜨는데?”

수안은 얼굴을 풀고 둘을 환영했다. 방금까지는 반가움을 표현하는 인사에 불과했다.

“킥. 어쨌든 잘 왔어. 아래에서 실랑이 좀 했다며? 그러게 왜 1톤 탑차를 끌고 와? 일반 주차장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1톤 탑차는 지하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따로 있었다. 주차요원이 괜히 막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물 끌고 온다고 기분 좋게 왔는데 말이지.”

“주차장에서부터 문전박대나 당하고. 형들 가오 다 상했어. 인마.”

“푸흐흐. 형들은 변함이 없어서 좋다니까.”

수안은 집무실 소파에 앉았고 둘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자리에 털썩 앉았다.

“형. 지금 우리가 얘하고 마주 앉아도 되는 군번인가?”

“…아. 강 회장님? 상석으로 가시죠?”

“일찍도 얘기한다. 됐어!”

“히히. 우리가 강운 그룹 강 회장하고 마주 앉아도 되는 사람이란 말이지?”

“형. 웃지 말고. 먼저 인사해야지.”

오는 차 안에서 어떻게 감사 인사를 할지 정해 둔 두 사람이다. 창수는 창식의 말에 얼른 소파 옆으로 섰다.

“아아. 창식이 너도 내 옆으로 나와 인마.”

“하나, 둘, 셋. 절!”

둘은 소파 옆으로 가서 선 다음 갑자기 무릎을 꿇고 손과 머리를 바닥에 댔다. 큰절하는 자세였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아우님. 고맙다.”

“고맙다.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다.”

“…나 참. 빨리 안 일어나?”

“인사를 받아 줘야 우리가 일어나지.”

“계속 이러고 있으랴?”

“그래. 감사 인사는 잘 받았어. 오케이! 만족!”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가서 앉는 둘이다.

“백부님이 전화 한 통화로 얘기하면 될 일을 형들까지 보내서 이 난리야.”

“수안아. 우리한테 미리 말이라도 해 줬어야지.”

“우린 일 다 끝나고서야 들었잖아. 우리 때문에 SK 텔레콤 작업 쳤다며?”

대기업 인수를 작업이라고 표현하는 둘이지만, 수안이 생각해도 이번 일은 작업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에헤이. 백부님은 괜히 시시콜콜 다 얘기하고 그래.”

“똥값 된 땅도 미리 사 줬다고 들었다. 손해가 크지?”

“얘는 츤데레 스타일이야. 차갑게 틱틱거리면서 속은 용암 같다니까.”

“아 쫌. 적당히 합시다. 작업할만해서 했고 땅은 나중에 크게 상승할 거라 내가 샀어. 나도 조금 기다리면 손해가 아니라 이익으로 돌아서니까 형들까지 감사할 필요 없어. 나중에 원망이나 하지 말라고. 땅값 올랐다고 다시 안 돌려줄 거다?”

“형 얘 봐. 확실히 츤데레 맞아.”

세종의 미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였다.

“됐고. 그 얘기하러 온 거지? 목표 달성? 더 할 얘기 있음?”

“바쁘긴 바쁜가 보네.”

“그룹 회장이 그럼 안 바쁘겠냐?”

“난 위에 올라가면 놀고먹는 줄 알았지.”

“그건 예전 우리 얘기고. 얘는 다른 기업 확장까지 신경 쓰는 오지라퍼잖아.”

“친척 집안 상속까지 헤아리는 오지랖이니 바쁘긴 하겠다.”

“거참. 말 많다. 20분 준다. 나 20분 뒤에 중요한 약속 있어.”

“아버지가 선물 보내셨다.”

“여기 차 열쇠.”

수안은 삐뚜름한 눈으로 열쇠 두 개가 달린 고리를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2004년 기화 봉고 쓰리??”

기화 차 모델이라면 차 열쇠만 보고도 알 수 있었고, 수안이 금용으로 살던 시절에 자주 몰았던 기종이라 모를 수 없었다.

“탑차로 개조했지.”

“우리가 타고 온 탑차야.”

탑차라는 말에 수안은 번뜩 떠올랐다.

‘차떼기? 허. 내가 이걸 받아 보네.’

“…이건 너무 과한데?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 나 벌써 충분히 받았다니까.”

앞으로 오를 공주, 연기의 땅값과 이를 활용해 얻을 부가가치는 SK 텔레콤 기업 가치를 한참이나 초과할 것이다. 한 채당 평균 3억 원의 아파트로 계산해 생기는 이득을 40%만 잡아도 1천 세대로 계산하면 무려 1천 2백억이다. 이런 대단지 아파트를 10개 단지만 건설해도 1조가 훌쩍 넘어가는 이득을 챙길 수 있는데, 이번에 얻은 부지는 10개가 아니라 100개 단지를 건설해도 남을 정도의 규모였다. 여기에 파생될 건설 부가가치까지 계산하면 충분히 SK 텔레콤의 가치를 뛰어넘는다.

“넌 자동차 열쇠만 보고도 아버지 선물이 뭔지 아는 거냐?”

“얘는 대체 머리가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둘은 일부러 내용물을 말하지 않았다. 기화 자동차에서 생산한 차량을 왜 가져왔냐는 식의 반응을 기대했는데, 수안은 단번에 탑차의 내용물을 짐작하고 있었다.

“용돈이나 조금 챙겨 달라고 했는데, 백부님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진짜 알고 있네….”

“우리만 멍청이지.”

또 수안과 자신들을 비교하는 형제였다.

“형들이야 이런 규모로 돈거래를 안 해 봤으니 모르지. 오늘 봤으니까 앞으로는 알지 않겠어? 그래도 이건 도로 가져가. 너무 과해.”

“너 우리가 맞아 죽길 바라냐?”

“수안이가 차도 살인을 계획하는 모양이야.”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 안 그래도 이번 인수에 사재까지 털어 넣으셔서 가뜩이나 현금이 부족하실 텐데.”

“그만큼 고맙다는 뜻 아니겠냐?”

“아버지가 오셨어도 네게 절하셨을지 몰라.”

“에효.”

“SK 텔레콤 인수가 보통 일이야? 게다가 한송 그룹이 주도한 것도 아니고 초기 계획을 세운 것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작업은 네가 다 했다며. 네가 받아도 아무도 뭐라 안 해.”

“우리도 더 못 해 줘서 미안할 뿐이다. 덕분에 우리 형제도 이렇게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잖냐. 흐흐.”

형제는 일전에 수안이 제안했던 일도 기억하고 있었다. 훗날 세기 통신의 경영자 자리까지 약속했던 사촌 동생이다. 이번엔 아예 두 사람이 각자 물려받을 기업까지 마련해 준 상황. 고맙지 않다면 인간도 아니다.

창수와 창식은 어깨동무까지 하며 우애를 자랑했다.

“앞으로 우리 필요한 일 있으면 불러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부르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오마.”

“그래. 매번 도움만 받을 수 없잖아. 우리도 기회 좀 줘.”

“오. 형님들 제대로 철들었네? 언제 이렇게 정신 차렸어?”

“우리 수안이. 형들에게 말하는 뽄새 좀 보게.”

“에이. 우리가 철들은 건 사실이지. 우리가 지금까지 개차반으로 살았으니 쟤한테 저런 말 들어도 할 말 없어.”

“얀마. 너는 형이 말하면 편을 들어야지. 새꺄.”

“난 수안이 편.”

“나도 수안이 편이거든?”

“내가 먼저 말했다. 형.”

두 사람의 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몰라 수안이 잘랐다.

“잡담은 거기까지. 백부님께는 선물 잘 받았다고 말씀드려. 과한 선물이라 나중에 꼭 다시 보답해 드리겠다고 해. 내가 따로 전화도 드릴 거야.”

“예의도 바른 녀석.”

“내가 아버지 다음으로 이 녀석을 존경하게 될 줄은 몰랐지.”

“이제 끝이지?”

“하나 더 남았다.”

“뭔데?”

“나 결혼하려고.”

창수의 말에 수안과 창식이 반응했다.

“어엉?”

“뭐어?”

창식도 몰랐던 일인지 수안과 같은 얼굴로 되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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