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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놔 (244/304)

다 내놔

“당연하지. 나도 최 회장 마음에 안 들었어. 너무 기회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이지.”

본인 얘기를 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

수안은 이정용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래. 이 정도 철판을 얼굴에 깔아야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법이지.’

얼굴에 깔린 철판의 두께가 가히 짐작되지 않았다.

“일전에 시작도 못 한 얘길 오늘 진전시켜 보자고. 가져온 제안서라도 있다면 보여 줘 봐.”

철판은 철판이고 일은 일이다.

정용은 수안의 말을 반기며 가져온 제안서를 꺼냈다.

그리고 수안이 책자 수준의 제안서를 막 들춰보기 시작했을 때 준비한 말들을 쏟아 냈다.

“현재 K폰은 상당한 성과를 이룩하고 있지만, 중요한 점은 바로 독과점이라고 할 수 있어. 일례로 미국 시장에서 K폰이 독과점으로 판단되면 미래가 불투명해질 것은 당연한 일이야. 특히 미국의 반독점법은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유명하지. 그리고 이게 미국 시장만의 일이냐? 아니야. 한 국가에서 반독점법 위반 혐의를 받게 되면 다른 나라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어. 그래서 스마트폰도 이원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수안은 손바닥을 보이며 정용의 말을 막았다.

“미국의 공정거래법(Antitrust Law: 반트러스트법)은 나도 잘 알아. 이미 그에 대한 대비도 끝난 상황이고.”

“……!!”

“내가 스마트폰 기술 협약이라는 거창한 주제로 만나자는 형님을 거절하지 않은 이유가 있지 않겠어? 이미 앞서 만난 기업이 두 곳이나 있어. 삼디 전자는 같은 주제로 만난 세 번째 회사야.”

“커흡!”

바로 뒤를 이을 줄 알았는데 한참이나 늦어 버렸다.

“젠장!”

‘SK 텔레콤 때문에 너무 늦어 버렸어!’

끝까지 남 탓을 멈출 수 없었다.

“형님. 열심히 준비한 자료를 읽어 봐야 하니까 좀 조용히 해 줘 봐. 제안서에 다 나와 있을 텐데 입 아프게 말로 할 필요 없잖아?”

“…….”

반독점을 해결했다면 저 제안서는 하등 쓸모없는 내용에 불과했다.

반독점으로 인해 지금까지 다른 회사들이 부담한 비용과 그 피해가 주로 들어가 있는 제안서였다.

팔랑.

조용한 가운데 수안이 제안서를 넘기는 소리만 들려왔다.

탁.

수안은 마지막 장을 덮고 입을 열었다.

“결국 형님이 말한 독과점이 내용 전부네? 제안서가 두꺼워서 좋은 제안이라도 들어 있을 줄 알았더니 같은 내용 재탕, 삼탕이 전부라니….”

“…….”

여러 내용이 들어 있었지만, 수안의 말대로 핵심은 반독점이 전부였다.

반독점 판결을 받은 사례와 과징금 규모, 그로 인해 망한 회사, 그리고 반독점법의 악독함을 강조하는 보고서는 마지막에 그 대안으로 세계적인 휴대 전화 제조기술을 보유한 삼디 전자를 찬양하며 끝났다.

“형님. 기발한 제안 없어? 스마트폰 제조 기술을 공유하는데 고작 협박이 전부라면 강운이 삼디 전자와 손잡을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독점은 앞선 두 기업이 알아서 해결해 줄 텐데.”

“우선 그 기업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

“안다고 달라지지도 않을 텐데….”

“그래도 어딘지는 알아야 내가 할 말이 있지.”

삼디 전자보다 부족한 기업이라면 협력 회사로서의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다.

“우선 미국의 애플.”

“……!”

이미 K팟 터치와 K폰을 생산 중인 애플이다. 게다가 미국 기업이라 반독점은 확실히 피해갈 선택이었다.

“그리고 국내에선 GL 전자.”

“아.”

둘 다 만만치 않은 곳이다.

“한 번이라도 만나 달라며 연락 온 곳은 더 많지. 대만, 일본, 유럽을 포함해서 각 나라의 휴대 전화 제조 기업은 빠지지 않고 연락했으니까.”

K폰 출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들이 강운 전자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장 기술을 개발해도 언제 완성해 시장에 내놓겠는가. 만들어 낸 기업을 찾아가 기술을 달라고 하는 편이 시장 진입 면에서 효과적이었다.

“K폰에 들어간 모든 부품과 기술들이 각 나라에 특허로 묶여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야.”

신기술을 개발하려면 기존 강운 전자의 특허를 피해야 했는데, K폰이 워낙에 앞서 나간 상황이라 여의치 않았다.

특허를 확인하고 강운 전자에 연락할 수밖에 없었던 기업들이다.

“형은 왜 이렇게 늦게 와서 날 곤란하게 하는지 모르겠네. K폰 출시할 때 바로 와서 미리부터 협의했으면 좋잖아.”

“내부적으로 의견이 많다 보니….”

출시 전 시점엔 통신사를 통해 막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에 위기감이 크지 않았지만, 이후 계략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이어 K폰이 출시되며 시장에 폭탄을 떨어트렸고 국내외 소비자의 반응을 통해 삼디 전자도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삼디 전자는 입수한 K폰을 엔지니어들이 분해하며 확실하게 깨달았다.

“기술 수준 차이가 이렇게 극심할 줄이야.”

삼디 전자 내부에서 K폰과 같은 스마트폰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가 되었지만, 반 K폰 대열에 서 있던 회장과 그의 아들 정용 때문에 지금까지 늦어진 것이다.

“회장님은 뭐라 하시는데?”

“그 양반이야 뭐….”

아버지는 노발대발 난리가 났다. 높은 연봉을 받아먹던 개발자들은 지금까지 뭘 했냐고 성질을 부렸지만, 성질부린다고 없던 스마트폰이 갑자기 튀어나오겠는가.

“내가 어떻게든 강운 전자와 협의하길 원하시지.”

“그럼 형님이 전권을 가져왔다 이거네?”

“전권… 이라고 볼 수 있지.”

“맞다 아니다 확실하게 말해. 그래야 나도 시간 낭비 안 하고 삼디 전자와 기술 협약을 진행하라고 하지.”

“생각은 있다는 말이지?”

“그럼 내가 생각 없이 형님하고 마주 앉아 있겠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지금?”

“아. 쏘리.”

“내가 해외 기업은 애플 하나만 허락했고, 나머지는 되도록 국내 기업과 기술 협약을 진행하고 싶단 말이지. 그래서 GL 전자 다음이 삼디 전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놓고 간 보지 마. 할 거면 빨리 진행하자고.”

지금부터 정용은 반독점이라는 복병을 해결한 상대와 힘겨운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그래. 내가 전권을 갖고 있다. 우리가 뭘 하면 강운 전자와 기술 협약을 맺을 수 있을까.”

‘다 내놔야지. 빤쓰까지 전부.’

수안은 애플과 마찬가지로 삼디 전자도 벗겨 먹을 생각이다.

“우선 삼디 전자에서 앞으로 출시할 스마트폰의 운영 체제는 안드로이드로 해야 할 거야. 자체 개발? 마이크로소프트? 기타 외부 프로그램? 어림없어. 운영 체제는 안드로이드로 통일이야.”

“자, 잠깐. 안드로이드? 그건 뭔데?”

아직 K폰에도 적용되지 않은 운영 체제라 모를 수 있었다.

“K폰 2세대부터 적용될 야심 차게 개발한 모바일 전용 운영 체제야. 이런 핵심 운영 체제를 공유해 준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가격이….”

“대신에 무료야.”

“아. 그러면 말이 다르지.”

개발 중인 운영 체제가 있었지만, 이제 걸음마 수준이다. 운영 체제 공유는 삼디 전자에서 오히려 환영할 일이었다. 다른 기업들은 여기에서 꼬꾸라졌다. 저마다 자체 프로그램을 개발 활용한다고 해서 스마트폰 기술 협약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안드로이드 개발진도 강운 전자의 안드로이드 우선 정책에 크게 환영하고 있었다.

“이건 뭐 협상 거리도 아니네. 삼디 전자는 아직 시작 단계잖아?”

강운 전자의 운영 체제를 사용하면 이후에도 수안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지금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정전식 터치패널과 TFT LCD, 핵심 반도체는 당연히 강운 전자 부품으로 써야 하고 들어가는 부품의 상당수도 강운 전자 제품을 사용해야 할 거야.”

“…….”

가격은 당연히 저렴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삼디 전자에서 스마트폰을 팔아도 그 이익은 전부 강운 전자가 가져가게 된다.

“싫어? 싫으면 말고.”

“아, 아니야. 내가 언제 싫다던?”

일부라도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가 아니면 말단 순위도 차지할 기술이 없는가로 구분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라는 분야에서 삼디 전자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지만, 아예 점유율도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수안의 제안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 또 있겠지.”

더는 없다고 착각했었다.

“이렇게 좋은 기술을 공유하고 훌륭한 운영 체제를 공유해 주는데 우리만 건네주는 건 아무래도 축이 기울잖아.”

“그럼?”

“앞으로 하청 업체가 개발하는 기술이나 프로그램을 우리도 공유하고 협력해서 개발해야지.”

“하청?”

삼디 전자를 고작 하청 업체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아. 내가 말이 헛나왔네. 상생 협력 업체라고 하자. 협력해서 개발한 기술의 우선 공급처는 당연히 강운 전자가 될 것이고, 기술의 지분 비율은 갑과 을이 5 대 5 정도로 정하면 아주 합리적이지 않을까?”

말이 좋아 상생협력이지 갑과 을을 따진다면 결국 삼디 전자가 을이었다.

“끄윽.”

“그런데 강운 전자 몰래 스마트폰 기술을 개발해서 단독으로 특허를 출원하는 일도 생길 수 있겠지? 그럼 어떻게 될까?”

“…축하해 줘야 할 일 아닌가?”

“오! 형은 아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졌네? 좋아. 나도 축하해 줘야지. 강운 전자 특허를 피해서 얼마나 스마트폰을 잘 만드나 지켜봐 줄게. 단독으로 특허를 출원할 정도면 기술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 아니겠어? 강운 전자 핵심부품 납품을 당장 끊고 혹시나 우리 특허를 사용하진 않았는지 감시할 거야. 그게 싫으면 반반 나눠야지. 응?”

“…….”

삼디 전자가 스마트폰 분야에서 개발할 프로그램이나 기술을 강운 전자가 독식하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왜. 싫어?”

“…회사로 돌아가서 협의해 보마.”

정용은 이를 꽉 물고 대답했다.

이대로 확정하고 돌아가면 회장님께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조건이다.

“형. 전권이라고 안 했어? 형이 결정할 수 있다며?”

“삼디 전자는 경영자 혼자 독불장군처럼 밀고 나가지 않아. 아무리 전권을 가졌어도 경영진과 협의는 해야지.”

“그럼 나머지 얘기도 듣고 가서 논의해.”

“…또 있냐?”

“마지막이야. 삼디 전자 디지털 카메라 사업. 강운 전자로 넘기지?”

“……!!”

“어차피 앞으로 디지털 카메라 사업 시장은 가망 없어. 빨리 넘긴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야! 사업을 어떻게 넘겨? 그리고 가망이 없긴 왜 없는데? 우리 경제 연구소에서 앞으로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크게 발전한다고 예측했단 말이야.”

“그건 K폰이 나오기 전에 나온 보고서겠지.”

“…뭐?”

“필름 카메라 시장을 봐. 불과 4년 만에 다 망해 버렸다고.”

“그건 필름 카메라 시장이잖아!”

“이 형이 이렇게 미래 예측을 못 하네. 매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카메라가 달렸단 말이야. 아직도 이해가 안 돼? K폰은 2세대 3세대가 나오면서 매번 카메라 기능을 향상해 선보일 거야. 누가 따로 디지털 카메라를 살 것 같아?”

“스마트폰이 디카 대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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