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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241/304)

잔소리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는 K폰 2세대부터 적용합니다. 1세대는 지금 우리가 완성한 대로 출시합시다.”

“그렇다면 문제없습니다. 단시간 내에 K팟 터치의 물량을 소모하고 바로 이어서 K폰으로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겠습니다.”

“시장의 시선은 K팟 터치에서 K폰으로 옮겨갈 겁니다. 국내 K팟 터치의 생산 라인을 K폰 생산 라인으로 전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세요. 크기도 비슷하니 조립 공정에서 비슷한 속도로 생산할 수 있을 겁니다. 이후에 추가 요청 물량은 애플이 생산하는 K팟 터치로 충분히 공급 가능할 겁니다.”

K팟 터치와 K폰은 전화, 메시지 기능과 추가 기능 몇 가지를 제외하고 K팟 터치와 유사했다. 이렇게 하면 지금까지 생산해 둔 K팟 터치를 소진하고 추가 공장을 증설하지 않은 상태로 K폰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K팟 터치의 생산량 증대를 요구한 것이다.

“아. 이해했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원가 절감 방안을 찾아보세요. 그렇다고 협력 업체 쥐어짜라는 말이 아닙니다.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수율을 올리는 방법이 최선이지만, 시간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노력은 게을리하지 마세요. 부품을 줄이고 심플하게 가야 합니다. 나중에 5세대 6세대가 출시되는 시점에는 충전기도 빼버릴 수 있겠죠. 이미 1세대 이후로 많이 풀렸을 테니까요. 원가 절감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두 분은 계속 노력해 주세요.”

“예.”

“예. 회장님.”

철석같이 대답하고 있었지만, 이후로도 수안의 잔소리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두 사장은 진이 빠져 버렸다.

“…….”

“…….”

“오늘따라 할 얘기가 너무 많았네요. 하하.”

모든 지시를 쏟아 낸 다음 수안이 한 말이다.

두 사장의 수첩은 몇 장이나 넘어가 있었다. 모두 수안의 지시를 받아 적느라 사용한 페이지였다.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 아. 그리고 안드로이드 직원들은….”

“아까 한국에서 적응이 어려우면 미국 지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운 전자 캘리포니아 지점이라고 콕 집어서 말씀하셨죠.”

“아. 벌써 했습니까? 자꾸 걱정만 많아져서 큰일이네요.”

“걱정하지 않으시도록 저희가 꼼꼼히 챙긴다고….”

“한 다섯 번쯤 말씀드렸죠.”

수안의 잔소리에 질릴 대로 질린 두 사람이다.

“곧 K팟 터치와 K폰이 출시된다니까 자꾸 이러네요. 가서 일 보십시오. 진짜 그만하겠습니다.”

“예. 회장님. 판매에 문제가 없도록 저희가 책임지고 관리하겠습니다.”

* * *

박 사장은 회장실을 나와 옆에 있는 김 사장에게 말했다.

“회장님 잔소리가 부쩍 느셨네요.”

“이제 시작입니다.”

전자 김 사장은 이어서 구시렁거리며 말했다.

“그 피가 어디 가겠습니까? 씨도둑질은 못 한다더니….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자 김 사장은 오랫동안 강운모 회장을 모셨던 그룹의 중추 임원이었고, 수안이 어렸을 때부터 곁에서 보아온 사장단의 일원이었다.

“회장님이나 전 회장님이나 똑같다 이 말입니다. 아직 강 전 회장님보다 덜한 편입니다. 나중엔 저거에 두 배는 될 테니까 각오하고 있으세요.”

“우아…. 지금보다 더 하다고요?”

“이것도 사장단에서 견뎌야 할 일입니다. 잔소리 대마왕 회장님을 우리가 커버해야 회장님 이미지를 지켜 내죠. 그래도 전 회장님은 나이가 좀 지긋해지고 나서 그러셨는데, 아직 마흔도 안 돼서 이러니 나중이 걱정입니다.”

“하아. 앞날이 깜깜하네요.”

“능력도 없으면서 성과만 닦달하는 다른 그룹 총수들보다 백만 배는 낫습니다. 회장님이 오늘 하신 말씀 중에 중요하지 않은 지시가 없었어요. 그러니 강 씨들 걱정이 좀 많은가 보다 합시다.”

“예. 사장님.”

* * *

광고만으로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이던 K팟 터치가 드디어 매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에서 전자 제품을 취급하는 매장이라면 K팟 터치가 들어오지 않은 매장이 없었다. 출시일 당일 아침부터 K팟 터치를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그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기자들이 구매 대기자에게 인터뷰하기도 했지만, 워낙에 자주 있었던 일이라 기자도 그에 대답하는 사람도 자연스러웠다.

“오늘은 어떤 제품이 당신을 이렇게 서 있게 만들었을까요?”

“K팟 시리즈의 최종판입니다. K팟 터치! 이걸 사기 위해 새벽부터 기다렸죠.”

“터치라는 이름으로 보니 화면을 터치하는 방식으로 조작하는 모양이죠?”

“정확합니다. 터치를 통해 간단한 게임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게임도 할 수 있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죠.”

사실 두 사람의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애플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다.

“친절한 인터뷰 협조에 감사합니다.”

“당신도 얼른 줄을 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러다가 제품이 다 떨어져 버릴 수도 있거든요. K팟 시리즈는 항상 물량이 부족하죠. 이번엔 심각할 겁니다. 당신이 느긋하게 마음먹고 있다간 다른 사람의 K팟 터치를 구경만 해야 할 겁니다.”

“오우. 줄 끝이 저긴가요?”

“맞아요. 빨리 줄을 서야 할 겁니다.”

카메라는 기자가 줄 끝에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비추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기자가 줄을 서버린 상황이라 카메라맨이 농담처럼 기자에게 물었다.

“오늘은 어떤 제품이 당신을 이렇게 서 있게 만들었을까요?”

“풉. 필립. 당신도 내 뒤로 서라고. 오늘 일만 없었으면 기다렸을 거라며.”

“…….”

이제 카메라는 맨 뒤에서 길게 늘어선 앞 열을 비추기 시작했다.

인터뷰하러 갔던 기자와 카메라맨조차 기다리는 K팟 터치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 순간이다.

* * *

“안 그래도 잘 팔리는데….”

미국에선 매진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매장에선 남은 물량이 없다고 야단이었고, 미국에 공급하는 물량을 절반 정도 감당하고 있는 애플 공장에선 미국 내 물량 감당이 불가능하다며 강운에 추가 물량을 요청한 상태였다.

“마케팅은 뭐 하러 이렇게 잘하냐고.”

기자와 카메라맨을 이용한 마케팅도 좋았지만, 소비자의 감성과 수집욕을 자극하는 마케팅도 훌륭했다. 가장 먼저 K팟 터치를 손에 쥔 남성에겐 갖가지 이벤트 상품을 선물했고, 초창기 제품부터 K팟 시리즈를 모아온 사람을 대단한 수집가인 것처럼 소개하기도 했다. 게다가 초창기 제품의 경우 수집가들 사이에 벌써 프리미엄까지 붙어 팔리고 있다는 소식도 더해졌다.

잘 만들어진 애플의 K팟 시리즈 TV 광고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활용 중이다.

“K폰도 위탁 생산을 맡겨 달라 이건가?”

K팟 터치의 위탁 생산도 따낸 애플이다. 지금까지 K폰 개발에 준 도움이 있으니 K폰 생산도 맡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돈을 더 벌고 싶다면, 벌게 해 줘야지.’

K팟에 이어 K폰의 위탁 생산까지 시작한다면 애플의 스마트폰 출시는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애플은 K팟과 K폰 생산으로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겠지만, 직접 기기를 만들어 성공한 것보다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늦어지면 후발 주자들이 기고만장해질 거야.’

국내 삼디 전자와 GL 전자, 대만의 HTC, 일본의 전자 회사들이 출시할 스마트폰까지 생각한다면 강운이 세계 첫 스마트폰으로 충격을 준 다음 오래 지나지 않아 애플이 또 다른 스마트폰을 출시해야 한다. 그래야 이익을 극대화하고 시장 지배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애플의 지분을 괜히 확보했겠어?’

BE가 확보한 애플의 지분은 20%.

20% 지분으로 자회사라고 볼 수 없지만, 강운 전자가 확보한 7% 지분까지 더하면 회사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스마트폰 생산을 허락하면 스티브 기분이 하늘을 날겠는데?”

수안은 비서를 통해 박 사장을 호출했다. K폰의 생산을 허락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몰래 개발 중일 애플의 스마트폰도 대 놓고 출시하라고 해야 했다.

* * *

강운 전자 & 팬탁의 시장 장악은 속도를 더해갔다.

K팟 터치는 K폰의 선구자 역할을 하며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K팟 터치의 기능들엔 소비자의 관심을 끌 요소가 가득했다.

전화 기능은 없었지만, 와이파이를 통해 같은 K팟 터치를 가진 사람끼리 무료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이 들어가 있었다. 이 기능을 넣기 위해 지금까지 K팟 터치의 출시를 늦춘 것이다.

또한 카메라는 없었지만, 영상을 넣어 두면 어디에서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음악을 위해 만들어진 기기임에도 오히려 영화를 넣어 보는 일이 잦았다.

기본으로 깔린 프로그램 중 노란색 아이콘이 있었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코코아톡.

이 프로그램을 열고 회원에 가입하면 강운의 K팟 계정을 생성하기에도 편했고, 나머지 프로그램도 가입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다. K팟 터치를 구매한 사람치고 이 프로그램에 가입하지 않는 사용자는 없었다.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친구를 찾는 일이다.

“제니퍼. 너 만들었다는 아이디가 뭐였지?”

“내 이름에 숫자 75만 뒤에 붙여.”

“오! 여기 있다. 친구 신청할게.”

-코톡!

“왔다! 내가 수락했어. 이제 우리 K팟 터치로 메시지 주고받는 거다?”

-코톡!

[에일린4885: 제니퍼. 알았어!]

“오오~ 적응 빠른데?”

K팟 터치를 통해 코코아톡에 접속하면 온갖 볼거리로 가득한 화면이 나온다. 누군가 올린 재미있는 글과 사진도 자주 올라왔고, 사회적 이슈나 헤드라인도 제공했다. 몸매 좋은 여성들과 남성들의 사진도 눈길을 잡아끌었다.

자신만의 페이지를 꾸밀 수도 있었는데, 이를 통해 아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자랑할 수도 있었다. 여기서 인기를 끌게 되면 아까 볼거리로 가득한 화면에 자신의 페이지가 연결될 수도 있었다.

설정을 달리하면 메시지를 주고받는 창이 가장 먼저 나오게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남의 이야기를 읽고 보면서 흥미로워했다.

새로운 IT 세계를 경험하는 인류였다. 강운의 K폰에 적응하고 코코아톡이 주는 편리함과 자신의 개인 페이지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함부로 다른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을까? 한번 자리 잡은 습관은 쉽게 방향을 틀기 어려운 법이다.

국내에선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가입자 수에 행복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해외 가입자가 2천만을 넘어섰습니다!!”

“하하하.”

이재영 사장은 코코아를 통해 늘어나는 가입자 숫자를 들으면서 그동안 코코아톡을 만들면서 힘들었던 나날을 보상받고 있었다.

‘회장님의 잔소리는 더 듣고 싶지 않아.’

K팟 터치에 들어간 코코아톡 프로그램은 수안의 지시로 만들어 낸 프로그램이었다. 같은 기계 사용자끼리 문자 통신이 가능하고 사진, 동영상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기존 채팅 프로그램을 카피한 수준이었다.

수안은 여기에 기능을 두 가지 추가했다. 하나는 별스타그램이었다. 누군가 내가 올린 게시물에 엄지손가락을 들고 있는 손 모양을 누르면 좋아요 숫자가 증가하고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페이지에 찾아온다.

나머지 하나는 뉴스. 곧 언론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기 위한 장치였다. 만약 코코아에서 보여 주는 기사를 통제하려는 국가가 있다면, K팟 터치와 K폰을 제공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K팟 기본 프로그램은 코코아톡이 전부가 아니다.

“게임 서버 24번까지 열렸습니다! 오늘 중으로 30번까지 돌파 가능합니다.”

“크하하하!”

K팟 터치에 들어간 기본 프로그램 중 게임 프로그램만 다섯 개였다. 용량을 많이 차지하면 안 된다고 해서 줄이고 줄여 다섯 개를 넣었는데, 더 넣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게임 개발하는 계열사는 뭐 하는 거야? 다른 게임 더 없어?”

“지금 만드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대기 중인 게임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써먹지 못해도 이후가 있었다.

곧 K폰이 출시되면 나머지 게임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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