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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폰! (240/304)

K폰!

약속한 1시간이 지나 수안이 경영진과 함께 회의실로 돌아왔다.

루빈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고, 다른 직원들은 무조건 인수 금액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다들 좋은 표정이네요. 한번 정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죠.”

“……!”

‘스티븐 회장은 표정만 보고 우리의 속마음마저 들여다보고 있어. 역시 노련한 사람이야.’

그래도 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다.

“우린 안드로이드사의 매각만 우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채용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이슨이 떠난다고 했으니 안드로이드의 매각과 직원들의 이적을 묶어서 거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굿. 우리도 안드로이드사와 개발자를 묶어서 생각하지 않기로 하죠.”

‘첫 단추만 잘 끼워지면 다음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갈 테니까.’

안드로이드사의 인수가 수월하게 진행된다면 이후 개발자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우리가 산정한 안드로이드의 가치는….”

회의실에서 긴장하는 이들은 오직 루빈과 안드로이드 측 직원들뿐이다. 수안과 경영진은 가벼운 마음으로 제시될 금액을 기다렸다.

“…4천 5백만 달러입니다.”

루빈의 입에서 정확한 금액이 나오자 수안은 전자 사장과 박 사장을 돌아봤다.

둘은 동요 없이 수안과 눈을 마주쳤다.

훌륭한 포커페이스였다. 수안은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물었다.

“내일로? 아니면 지금?”

금액을 들었으니 다시 회의를 진행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수용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끝내시죠.”

“추가 논의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럼 끝내도록 하죠.”

루빈은 자신들이 다 들으라는 식으로 영어로 대화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너무 높이 불렀을까? 괜히 제이슨의 말을 들었어. 지금이라도 더 낮춰야….’

“루빈 씨. 안드로이드사를 넘기는 조건으로 제시한 금액이 4천 5백만 달러라고 하셨죠?”

“그….”

루빈이 정정하려고 했지만, 옆에서 제이슨이 루빈의 신발을 툭 치며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맞습니다.”

이미 내디딘 걸음이다. 한참이나 동료들과 회의를 거듭한 금액이었다. 인제 와서 되돌린다면 더 뒤로 물러서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 아니면 우리를 원하는 곳이 없겠어? 끝까지 밀고 간다.’

“금액을 변경할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면 되겠죠?”

“…으.”

하지만 스티븐 회장의 말이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려왔다. 자꾸만 마음이 약해진다.

‘바꾸고 싶다! 바꾸고 싶다고!’

옆에 앉은 제이슨은 굳은 얼굴로 수안의 입만 보고 있었다.

긴장한 루빈이나 제이슨과 달리 수안은 여유가 넘친다.

“그쪽은 루빈 씨와 안드로이드사를 공동 창립한 분이죠? 제이슨이라고 했었나요?”

“그렇습니다.”

“얼굴색이 무척 안 좋군요. 혹시 건강에 이상이 있습니까?”

“……!!”

수안은 이전의 삶까지 더해 80년을 넘게 살아온 몸이다.

오랜 시간 사람을 마주하다 보니 얼굴색만 봐도 대충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의사처럼 정확하진 않았지만, 젊은 사람의 얼굴이 저렇게 칙칙한 빛을 보이면 십중팔구 간에 이상이 있다는 뜻이었다.

예전에 공사판에서 같이 일하던 박 씨 아저씨도 저런 얼굴색을 가졌었는데, 간경화 진단을 받았었다. 조금 더 진행되면 간암까지 고려할 수 있었지만, 젊은 나이라 간에 이상이 있겠거니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다.

“저런. 제가 맞춘 모양입니다. 아직 나이가 젊으니 큰일은 없을 겁니다.”

“걱정은 고맙지만, 별일 아닙니다. 인수에만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스티븐 회장에겐 간단한 일이겠지만, 우리에겐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둘의 대화를 들은 루빈은 협상보다 제이슨의 건강에 관심이 쏠렸다.

“제이슨.”

“루빈. 별거 아냐. 조금 쉬면 괜찮아진다고 했어.”

“…….”

“정말이야. 루빈. 예전처럼 함께 일을 하진 못하겠지만, 당장 죽을병은 아니야.”

루빈은 친구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오히려 협상에 집중했다.

‘이 돈은 녀석의 병원비였어.’

인수 가격을 내릴 생각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4천 5백만 달러에 변경은 없습니다.”

“흐음.”

수안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제이슨 씨의 말대로 우선 일부터 끝내도록 하죠.”

수안은 가볍게 인수 결정을 내렸다. 더 올려줄 필요도 없고 당연히 더 깎을 필요도 없었다.

“4천 5백만 달러에 안드로이드사를 인수하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완성할 모바일 운영 체제는 우리와 당신들의 뜻대로 모든 제조사에 무료로 제공될 겁니다.”

“…좋습니다.”

루빈은 수안과 악수하면서도 관심은 온통 제이슨에게 향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수안이 추가로 제안했다.

“우리 회사에 소속된 대형 병원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만한 간 수술 전문 의사도 보유하고 있죠.”

“네?”

“제이슨 씨. 문제가 있는 부위가 혹시 간이 아닙니까?”

“도대체 어떻게….”

“지방간이나 간경화 병증을 앓는 분들의 얼굴색과 비슷해서 넘겨짚었습니다.”

“…….”

“한국에 머물면서 치료를 받아 보시죠.”

수안은 제이슨의 답을 듣지 않고 통보하듯이 말했다.

“안드로이드를 개발한 직원들이 우리와 함께한다면 집과 차가 무상으로 제공될 겁니다. 제이슨 씨가 강운에서 일할 생각이 있다면 치료비도 회사에서 지급하죠. 일은 병이 다 낫고 시작해도 좋습니다. 어떻습니까? 나름 좋은 조건이 아닐까요?”

“허….”

“제이슨! 정말 간에 이상이 있는 거야?”

“…맞아. 한국에 세계적인 권위의 간 전문 의사가 일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야.”

“그 병원이 바로 강운 병원이죠.”

말릴 새도 없이 루빈이 말했다.

“안드로이드 전 개발자는 강운과 함께하겠습니다. 제이슨을 꼭 치료해 주십시오.”

“좋은 선택입니다. 강운은 안드로이드의 개발진을 환영합니다.”

일이 원활하게 흘러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처음부터 지극한 호의로 이들을 대했고, 그들이 제시한 인수 금액에도 아무런 트집을 잡지 않았다. 개발자의 건강까지 신경을 써 주는 상대에게 경계심을 보일 필요가 없었다.

“스티븐 회장님. 사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루빈이 자신의 K팟을 꺼내 들고 말했다.

“하하. 잠시만요. 박 사장님 혹시 이번에 출시할 K팟 터치 제품 갖고 있습니까?”

“아. 예. 10개 정도 있습니다. 샘플로 보내고 남은 수량입니다.”

“인원수에 맞춰서 8개 가져오세요. 루빈 씨. 제 사인은 새 상품에 해 드리겠습니다.”

“오오! K팟 터치는 이번에 출시되는 신제품이죠?”

“제대로 만드느라 조금 늦어졌죠. 시중에선 구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인기가 높은 K팟 MP3 장치는 초기 물량 공급에 애를 먹곤 한다. 매장에 물건이 입고되자마자 동나기 일쑤였다. 게다가 이번 K팟 터치는 전면이 풀터치 스크린이고 고해상도 LCD 디스플레이가 탑재되어 있었다. 평소보다 더 심한 경쟁이 예상되는 제품이었다.

잠시 후 K팟 터치가 그들 손에 들렸다.

“와우. 이건 정말 혁신적인데?”

수안의 사인까지 들어간 다음이다.

“나 이거 보관하고 하나 더 살 거야.”

그리고 안드로이드의 여직원 하나가 부끄러운 듯이 다가와 부탁했다.

“저기…. 저는 한 가지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미안하지만 키스는 안 됩니다. 허그 정도는 괜찮지만요.”

평소 이런 팬들이 자주 있었다.

수안이 넓게 팔을 벌렸지만, 그녀는 허그가 아니라 다른 부탁이 있었다.

“저를 발로 차 주셨으면 좋겠어요. 바로 요기.”

이런 팬은 별로 없었다.

“…….”

수안이 루빈과 제이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두 손바닥을 보이는 제스처를 해 보였다.

‘날 보고 어쩌라고?’

말려 달라는 뜻이다.

“쟤는 진짜.”

“하지 마!”

둘은 얼른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여직원을 뒤로 잡아당겼다.

“왜?”

“알리샤. 상상만으로 끝냈어야지!”

“미안합니다. 좀 엉뚱한 친구라….”

“제 발에 차이면 석 달은 누워 있어야 할 겁니다. 이건 들어드릴 수가 없겠네요.”

“난 괜찮은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

* * *

수안은 그들을 돌려보내고 강운 전자 & 팬탁의 두 사장을 마주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저렴하게 샀습니다.”

“저희가 먼저 제시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전자 김 사장은 1억 달러를 예상했었고, 팬탁 박 사장은 1억 5천만 달러는 줘야 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루빈이 부른 금액은 고작(?) 4천 5백만 달러. 달러당 1,150원으로 계산하면 고작 517억을 조금 넘는다.

두 사장만 곁에 없었다면 수안이 금액을 올려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5천만 달러는 나중에 더 올려서 부른 모양이야.’

본래 5천만 달러에 구글에 매각됐던 안드로이드를 조금 더 저렴하게 인수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돈을 덜 쓴 만큼 그 친구들에게 더 잘해 주면 되겠죠. 차와 집까지 약속했으니 이 부분은 두 분이 잘 챙겨 주세요. 특히 제이슨은 강운 병원에 얘기해서 빨리 검진받고 치료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고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직장 동료라면서 형제지간처럼 보였습니다.”

루빈은 강운과 함께 일하는 것에 의욕적인 태도를 보여 줬고, 제이슨은 괜히 자신 때문에 동료들이 강운 그룹에 들어갈 것을 결정하진 않았나 싶어 조금 민망한 모습이었다.

안드로이드사는 작은 회사였기에 서로가 친구처럼 지내왔다고 한다.

루빈과 제이슨은 회사의 중추였다. 특히 제이슨은 회사 내에서 모두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고, 루빈은 엄한 아버지 역할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제이슨이 병에 걸렸다고 하니 직원들 전부가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염려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결과적으론 수안이 제이슨의 병을 짐작한 덕분에 일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었다.

“회장님. 제이슨과 직원들의 뒷조사를 하신 건가요?”

뒷조사가 아니라면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알지도 못했던 안드로이드의 정보를 먼저 받아 봤다고 했으니, 그들의 뒷조사도 어렵지 않았으리라.

“루빈은 좀 알아봤는데 공동 창업자인 제이슨의 뒷조사까지 할 생각은 못 했죠.”

“그럼 정말 안색만 보고 아셨다는 말씀입니까?”

“아까 다 들었잖습니까. 혹시나 하고 말을 꺼냈는데, 어쩌다가 맞췄을 뿐입니다.”

“허허. 회장님은 운까지 좋으시네요.”

“앞으론 비슷한 일이 있을 때 이번 일을 참고할 생각입니다. 일 외적으로도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저희도 기억하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모였으니 두 사장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수안이 일 얘기를 시작했다.

“박 사장님은 신제품 K팟 터치의 생산량 증대와 제품 공급 상황을 점검하세요.”

“이미 많이 생산해 뒀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K팟 터치의 인기를 고려해 미리부터 생산을 시작한 상태였다. 아직 출시도 하지 않은 K팟 터치는 양품 창고에 가득했고 더 많은 완성품이 배와 비행기를 통해 세계 각지로 이동하는 중이다.

“이번엔 물량 부족 사태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물량 부족을 마케팅으로 포장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시장은 우리의 생산능력에 의문을 표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김 사장님은 3개월 후에 K폰 발매 광고가 나올 수 있게 준비하세요.”

“자, 잠시만요. 회장님. 그럼 이번에 인수한 안드로이드는 K폰 운영 체제에 넣을 수 없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안드로이드사를 인수한 것이 오늘이다.

완성된 기계가 있지만, 기계와 운영 체제를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은 새로운 개발자와 기존 개발자 간의 손발부터 맞춰야 했다. 광고가 3개월 후라는 뜻은 넉 달 뒤에 제품을 출시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안에는 새로운 운영 체제의 완성이 불가능했다.

‘지금은 속도가 관건이야. 여기서 더 완성도를 올리느라 시간을 지체하다간 자칫 최초의 스마트폰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어.’

안드로이드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스마트폰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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