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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236/304)

워크숍

경호실 최 실장과 배 부회장이 계획한 워크숍의 참석자는 총 여섯이었다.

최장호와 배영성, 강수안은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고, 미국 BE 인베스트먼트의 이방효와 일본 BE 인베스트먼트의 차진호가 오기로 했다.

마지막 한 사람은 더블 스타 김현성 사장이었다. 배영성이 김현성 사장을 빼먹으면 안 된다고 워크숍 참석 대상자에 넣었다고 들었다. 김현성 사장이 예전에 벌였던 일이 있지만, 서로 소원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친분이 두터워져 있었다. 수안도 김현성을 계속 가까이 두고 싶었기에 그가 와준 것이 기꺼웠다.

“오늘 회장님 라인이 제대로 뭉치는데요?”

“라인은 무슨….”

배영성의 말대로 오늘 모인 이들이 수안의 직계 라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안이 강운 그룹에 들어가기 전부터 함께해 온 이들이다.

배영성을 가장 먼저 만났고 다음이 이방효와 차진호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장호가 경호와 운전 업무를 겸하기 위해 채용되었고 마지막이 김현성 사장이다.

이들은 다른 사장단과 달랐다. 수안과 배영성이 주도적으로 끌어들여 일을 맡긴 사람들이고 지금까지 많은 성과를 낸 성공의 주역들이다.

“아이고. 배 부회장님.”

“하하하. 이 사장.”

“배 부회장님. 저도 있습니다.”

“그래. 차 사장도 잘 지냈지? 매번 젊어지는 것 같아?”

“일본에 한번 오시라니까요. 제가 긴자에서 코스별로 모시겠습니다.”

“차 사장이 말하니까 진짜 기대되는데?”

“최 실장. 거기 서서 뭐 해? 얼른 이리 와.”

“예. 회장님.”

모인 멤버 중에 사장 미만이 없다.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최장호가 조금 위축된 모양이다.

‘안 그래도 할 얘기가 있었지. 미래를 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야.’

이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편히 쉴 수 있었다. 수안이 회장이라지만, 지금 이 자리는 일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애초에 워크숍의 목적 자체가 일에서 벗어나 쉬기 위함이었기에 수안은 자신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얘기했었다. 자고 싶으면 자고 소파와 한 몸이 되고 싶으면 되라고 했다.

모두가 편히 쉬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수안이 최 실장에게 말했다.

“전부 회의실로 모여 달라고 해.”

“…여기까지 와서 일하시려고요? 다 놓고 쉬기로 하셨잖습니까.”

“일은 아니고…. 이를테면 사업 제안이라고 할까?”

“사업 제안이요?”

회장인 수안이 명령한다면 듣지 않을 사람이 여기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제안이라고 하셨으니…. 뭔가 또 있다는 말이야.’

“머리 굴리지 말고 얼른 다녀와.”

“예. 회장님.”

잠시 뒤 배영성이 가장 먼저 회의실에 도착했다.

“아직 식사 준비 안 됐습니다.”

배영성은 저녁 식사를 위해 강원도에 있는 고려 호텔의 주방장과 직원들을 불러 놨다. 수안이 모인 이유가 같이 저녁을 들자고 부른 줄 안 것이다.

“막간을 이용해서 할 얘기가 있어. 다 오면 시작할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배영성, 김현성, 이방효, 차진호, 최장호까지 전부 모였다.

“왔으면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이 문 잠가.”

수안이 문을 잠그라고 하자 내부에 작은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무슨 얘길 하시려고….’

‘요즘 회사도 잘 굴러가는데….’

‘요즘 별다른 일은 없지 않았나?’

수안의 내밀한 비밀을 모르는 세 사람은 수안이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할 수 없었다.

‘분명 미래에 관한 일이야.’

‘사업…. 돈이 되는 사업을 선점하시겠지.’

수안을 잘 아는 배영성과 최장호는 대강이나마 추측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진행한 사업 중에 성공하지 않은 사업은 없었다.

“왜들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내가 놀러 온 곳에서 무거운 얘기라도 할까 봐?”

수안의 가벼운 말투에 긴장감이 훌훌 날아가 버렸다.

“저희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줄 알았잖습니까.”

“문은 왜 잠그라고 하셨어요? 나 참.”

“좋은 건 우리만 알아야 하니까 그렇지. 모여봐.”

수안은 작당 모의하는 악당처럼 말했다.

“여기 모인 사람 중에 10억 이상 돈 없는 사람 있어? 없잖아. 그치?”

당사자를 제외하고 모두의 눈이 한 사람에게 향했다. 바로 최장호다.

“…저도 돈 많습니다. 며칠 전에 로또도 당첨됐습니다.”

““오오~!””

다들 대단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배영성은 화를 냈다.

“우리 장호가 로또에 당첨됐다고? 형한테 얘길 했어야지 인마!”

“얘기하면 뭐 달라집니까? 그래봤자 여기서 제일 가난한 사람인데요.”

이제 화살이 배영성을 향했다.

“배 부회장님이 챙겨 주셨어야죠. 회장님이 아끼는 사람인데….”

“맞습니다. 우리야 멀리 있어서 그렇다 치지만, 배 부회장님은 항상 같이 있었잖아요.”

“…….”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최장호나 배영성이나 비슷한 처지였다. 큰돈을 만지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주식 관련 정보를 공유하면서 돈을 벌기도 했었다. 실로 억울했지만, 자신이 번 돈에 비하면 정말 적다고 할 수 있었기에 할 말은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마다 사는 세상이 있는 거죠. 사는 게 행복하면 그만 아닙니까. 게다가 제가 회장님과 제일 오래 붙어 있죠. 이것만으로 만족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최 실장이 진짜 측근이었네.”

“차 사장 말이 맞아. 최 실장이 진짜고 우린 그냥 머슴이지 뭐.”

수안은 장호가 무리에 섞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잡담은 멈추고. 이제부터 들어 봐. 우리 중에 수십억 없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현금으로 10억을 찾아서 집에 실물로 두고 있는 사람 있을까?”

“…….”

“…….”

없다. 누가 집에 현금을 쌓아 두겠는가. 도난 위험도 있거니와 현금을 그대로 두면 이자도 붙지 않는다. 이자를 받거나 투자하지 않으면 물가가 상승하는 만큼 현금의 가치는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 아무도 없지. 있을 리가….”

“회장님댁에는 10억 넘게 쌓아두지 않나요?”

서초동 집에 숨겨진 방이 하나 있었는데, 고가의 미술품과 도자기, 금괴와 보석을 보관하는 용도였다. 장호 말대로 여기엔 현금다발도 쌓여 있었다. 10억은 훌쩍 넘는다.

“최 실장. 우리에서 나는 빼야지.”

“옙….”

“어쨌든! 그럼 우리가 돈을 가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무슨 수로 증명하지?”

“…계좌에 있다고 찍혀 있잖아요.”

“그래! 바로 그거야. 숫자! 우리 돈은 숫자일 뿐이야. 은행 데이터베이스에 들어 있는 숫자. 그 숫자가 바로 우리의 돈이라는 거지. 더 정확하게 보자면 0과 1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컴퓨터 언어일 뿐이야. 숫자가 곧 돈이라 이거지.”

“…….”

“…….”

“…….”

배영성은 수안의 말을 들으며 도대체 이 얘기가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배영성뿐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표정이다.

“그럼 내가 숫자를 만들면? 그 돈은 내 돈이 될까?”

“네?”

숫자를 만들었다고 돈이 될 리가 있나.

“어차피 은행 컴퓨터 안에 있는 숫자도 숫자일 뿐이잖아. 내가 컴퓨터에다가 번호를 주르륵 적는 거야. 한 100경을 적어 놓을까? 그럼 내가 100경을 가진 부자가 될 수도 있잖아.”

“에이. 회장님. 이제 다들 충분히 집중하고 있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세요. 빙빙 돌리지 마시고요.”

김현성의 말에 수안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여튼 빠꼼이 김 사장. 농담은 여기까지만 하지. 그럼 본론 들어간다.”

이미 100경이라는 숫자가 이들의 집중도를 끌어올린 다음이었다.

수안의 말이 훅 치고 들어온다.

“1983년 미국의 컴퓨터 공학자 데이비드가 암호화 프로토콜을 발명했어. 그리고 함께 개발한 것이 바로 전자 현금인 이캐시(ecash)야. 가상 화폐의 시작이지.”

“……!”

“……!”

그제야 수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이캐시에 관해 들었다면 가치 없는 화폐라고 생각했겠으나, 수안이 본인들의 돈으로 설명하는 바람에 이캐시나 은행의 숫자나 다를 바 없이 느껴진 것이다.

“이후 1995년에 이캐시 기반의 암호화폐를 만들었지. 지금도 그 연구는 꾸준히 이어오고 있어. 우리 강운 그룹에 지원을 받는 벤처 기업들에도 관련 연구를 맡겨 놨지. 이들은 중앙 서버 방식의 은행과 달리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새로운 가상 화폐인 블록체인 코인을 만들고 있어. 아주 혁신적인 가치 창조라고 할 수 있지. 내가 돈을 만들고 그 돈이 내 돈이 되는 셈이야.”

“…그걸 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사지 못할 텐데요? 차라리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컴퓨터에 100경을 쓰는 편이 더 경제적일 것 같습니다. 100경을 보면 마음이라도 푸근해질 테니까요.”

이런 반박은 예상했던 바다.

‘역시 김현성 사장은 현실적이야.’

배영성과 최장호는 입을 꾹 다물고 수안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수안의 말은 곧 예언과 같았기 때문이다.

“맞아. 가상 화폐라도 누군가 가치를 인정해야 거래할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린 세상을 조금 넓게 볼 필요가 있어.”

수안은 목이 말랐는지 손에 들고 있던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계속 열변을 토했다.

“우린 짧은 시간에 세상이 바뀌는 걸 지켜봐 왔잖아. 불과 10년 전에 삐삐가 대단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요즘 거리에선 삐삐는 찾아볼 수 없어. 대신 휴대 전화 없는 사람이 없지. 그리고 실물 화폐? 요즘 다들 카드 쓰잖아. 현금은 굳이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

수안의 말에 설득력이 더해진다.

“가상 화폐가 항상 가치가 없을까? 미래의 사람들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완벽한 보안을 자랑하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화폐라면 더더욱 그렇잖아. 컴퓨터는 날로 발전하고 해커들은 점점 더 지능적으로 변해가고 있으니까. 앞으로 은행 털이범은 인터넷으로만 만나게 될지도 몰라. 은행 털이범이 모두 해커일 테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조금 가치를 인정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대단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

김현성은 여전히 비관적인 태도였다.

“그래? 왜 그렇지?”

“각 국가의 화폐가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나라가 화폐의 가치를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달러가 세계에서 기축 통화로 인정받는 이유도 그와 같습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달러 가치를 보장하고 있으니까요.”

“기축 통화를 가진 나라는 무역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지. 세계 각국으로 돈을 뿌려야 하니까 말이야. 미국은 항상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미국 정부가 BE를 반기는 원인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

“그래서 가상 화폐가 허상이라는 제 주장이 맞았다는 말씀이시죠?”

“반은 맞아.”

“반이나 틀렸단 말입니까?”

“주식 시장이 이성적으로 흘러가는 거 봤어? 김 사장이 주식 시장이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들의 기계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이라고 한다면 김 사장 말이 전부 맞았다고 할게.”

“…사람. 사람의 욕심이 끼어들면….”

주식 시장은 헛된 희망과 소문, 추악한 욕망과 욕심으로 가득한 곳이다. 재무제표만 보면 절대로 투자하지 말아야 할 주식인데, 5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한다. 그 회사가 곧 엄청난 성공을 앞두고 있다는 지라시가 돌았기 때문이다. 그럼 그 회사가 진짜로 그 뉴스를 발표했을 때 주식이 계속 상한가를 기록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뉴스가 나오는 즉시 그 주식은 꼬꾸라지기 시작한다. 상승을 견인할 소스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소문에 사고 기사에 판다. 주식 시장의 오랜 격언이었다.

가상 화폐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흘러간다면 가치의 인정은 물론이고 상당한 가치 상승까지 보일 수 있었다. 그제야 김현성의 눈이 반짝이며 빛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해야 합니다. 가상 화폐를 개발하고 약간의 작업으로 가치를 상승시킨다면 상당한 돈을 만들 수 있겠습니다. 원가는 컴퓨터와 인건비, 전기세가 끝입니다. 비트(Bit)의 조합은 돈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강운 그룹이 사기꾼이 돼야 속이 시원하겠어? 지금까지 쌓아 온 좋은 이미지를 똥통에 처박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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