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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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절

BE 인베스트먼트가 입을 다물어 준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수안을 드레이크의 살인으로 엮어 신뢰를 확보하려고 했는데 일이 틀어지고 있었다.

약점으로 신뢰를 얻을 수 없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라는 보답이 있다면 말해 보게. 스티븐 회장의 자산이 너무 거대해서 딱히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더군.”

그 하나는 돈으로 얻을 수 없는 적절한 혜택을 주고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BE는 그들에게 준 보상으로 만족합니다. BE는 미국의 흰머리 수리입니다. 미국을 보호하는 수호신이 될 겁니다. 이번일 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한국이 아니라?”

“그 부분은 프레지던트께서 신경 써 주시면 될 일이죠.”

나는 미국에 충성할 테니 나머지는 미국에서 알아서 해 달라는 뜻이다.

“BE는 앞으로 미국 정부의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BE는 미국의 친구랍니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신뢰가 더해지면 BE는 지금보다 더욱 성장하겠죠.”

미국의 수익 사업에 한발 걸치겠다는 뜻이다. 이래야 부시가 신뢰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사안이 중대하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그 어떤 반대 의견도 나와선 안 돼.”

“테러리스트를 지원한 국가는 미국의 화를 감당해야겠죠. BE는 미국의 분노에 맞서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와 함께 발걸음을 맞추고 싶습니다.”

“…….”

부시는 한동안 수안을 노려보다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BE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을까.”

“앞으론 먼저 믿어 주시길 바랍니다. 사전에 테러를 경고했을 때 대비했다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겠습니까.”

“모든 정보에 반응하면 정부가 마비될지도 몰라. 하루에도 몇 건씩 첩보가 쏟아지거든.”

“쉽게 믿기 어려운 정보이긴 했죠.”

‘당신의 행정부가 무능하기도 했고….’

“미국 정부는 테러 주동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습니까?”

“그건 얘기하기 곤란하군. 설마 미국의 대외정책까지 참견하려는 마음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테러가 발생하고 얼마나 됐다고 주동자를 잡겠는가. 너무 일찍 잡아도 안 될 일이다. 오일 전쟁을 수행하고 세계 오일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오려면 전쟁을 오래 수행해야 했다.

수안은 부시 행정부의 미래를 알고 있기에 물어봤을 뿐이다. 클린턴 행정부 인사가 알카에다를 조심하라고 조언했었지만, 알카에다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정도로 중동과 이슬람에 기반 지식이 없었다. 이후 미국은 알카에다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이라크를 배후로 지목하며 전쟁을 수행하게 된다. 이 전쟁은 차차기 대통령에 의해 종식이 될 정도로 길게 끌고 간다.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을 뿐입니다. 미국의 군사력과 정보력은 세계가 알아주죠. BE는 미국의 승리에 베팅할 겁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작은 걱정조차 참견이라 생각하는 상대에게 조언을 건넬 정도로 수안의 인내심이 크진 않았다.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으면 좋겠군.”

“물론입니다. 프레지던트께서 BE를 신뢰하시는 만큼 BE는 더 많은 이익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배당금도 내년 초에 지급하겠습니다.”

1천억 달러의 우선 배당 계약에서 이미 500억 달러를 집행했다. 전쟁을 수행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은 자명한 일. 수안은 나머지를 집행함으로써 미국 정부에 보탬이 되어 주겠다고 한 것이다.

“좋군. IPO는 언제 진행할 생각인가.”

“IPO를 바라십니까? …저희야 언제든 가능합니다.”

미국 정부가 원하는 시기에 IPO를 진행하면 수월하게 증권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도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군.’

BE를 공개하고 지분을 분산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강경하게 요청하는 상대에게 더 강경하게 나갈 수 없었다. 지금은 클린턴 행정부가 아니었다. 부시 행정부와 어긋나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지구 끝까지 따라올 놈들이다.

“배당으로 충당하기엔 재정이 부족하거든. 세금을 사용하긴 해야겠지만 자체 충당의 노력을 게을리할 수는 없지.”

“지금부터 준비하겠습니다. 잘하면 정부 재원을 사용하지 않고도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겠군요.”

“예전부터 느꼈지만, 역시 자네는 말이 잘 통해.”

“하하하. 별말씀을….”

“오늘 만남은 상당히 유익했어. 다음엔 백악관에서 보도록 하지.”

“꼭 불러 주십시오.”

* * *

차에 오른 수안은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당겨 풀었다.

탁.

차 바닥에 넥타이를 던진 수안은 옆에 앉아 있는 이방효에게 말했다.

“BE 인베스트먼트의 IPO를 준비해. 이번 정부는 욕심이 너무 많아.”

“…예. 회장님.”

수안의 기분이 별로 좋지 못함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내년 배당으로 미국 정부의 우선 배당을 끝낸다. 그리고 BE의 내 지분 일부에 의결권이 30배인 클래스A 주식을 부여해.”

“차등의결권이 필요하긴 하죠. 예. 알겠습니다.”

“또한 의결권이 없는 대신 배당이 높은 클래스B 주식을 대량으로 추가 발행해서 정부 지분율을 낮추고 배당금도 낮춰. 클래스B 주식은 IPO에 일부 매각하고 대부분은 내가 매입할 거야. 앞으로 미국 정부에 넘겨줄 배당금은 없어.”

“이해했습니다.”

치하를 받아도 모자란 일을 해냈는데도 의심만 가득했다. 이번 정부에 더해 줄 것은 없었다. 우선 배당 계약이 완료되면 모든 것을 회수해야 했다.

‘한국이 괜찮다 싶었더니 이젠 미국이로군.’

한국의 대통령에게 강압적인 지시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는데, 이젠 미국 대통령에게 불려 다니고 있었다. 거기다 오늘과 같은 대화는 수안이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공화당 후원금은 절반으로 줄이도록. 민주당 오바마에게 힘을 실어줘. 힐러리 여사에게도 마찬가지야.”

“예. 회장님.”

* * *

미국은 수안의 예측과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여 줬다.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다.

어차피 이번 전쟁을 통해 얻어야 할 수익은 금융을 통해 얻었고, BE 인베스트먼트는 IPO까지 성공했다. 투자 회사와 금융사 대부분이 BE 인베스트먼트의 지분을 취득하려 난리였고 주가는 당일 70% 넘게 상승하며 나스닥지수 상승에 기여했다.

상장 후 미국 정부의 지분율이 하락했기 때문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미국 정부는 보유한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서 지분율은 5% 이하로까지 내렸다. 이 정도면 축배를 들어도 될 정도였다.

미국은 이 돈을 전쟁에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었고, 사용한 돈은 미국의 군산 복합체가 벌어들이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 배후에서 군산 복합체가 전쟁을 원했다는 설이 있지만, 수안은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우리나라가 전투기를 개발한단 말입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수안과도 관련이 있는 일이 되었다.

현재 수안이 앉아 있는 곳은 올해 새로 만들어진 청와대 지하 벙커였다.

박재문 대통령이 재임한 지 만 1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도 자체 전투기를 개발해야 합니다.”

수안은 이번 대통령이 밀덕(밀리터리 덕후)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집무실에도 전투기와 인공위성, 잠수함을 전시해 놨었지?’

2002년 우여곡절 끝에 당내경선을 마치고 다시 역전의 드라마를 쓰며 2003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재문 대통령은 큰 사업을 앞두고 수안을 불러들였다. 일전에 만났을 때는 편하게 대했지만, 지금은 공적인 자리라 자연스럽게 서로 공대하고 있었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은 욕심이 아니라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사업비는 얼마나 예상하십니까.”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은 개념 연구가 진행 중이라 사업비 추정은 곤란합니다.”

“좋습니다.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에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강운 전자와 기화에서 장비 개발에 지원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박재문은 기술 지원을 바랐던 모양이다.

“…재원(財源)은 마련되었습니까?”

수안이 생각하는 것은 돈이다. 돈이 없으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고, 돈이 넘치면 안 될 일도 되게 만들 수 있었다. 돈은 불가능을 빼고 모든 것을 다 가능하게 만드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었다.

“아직 사업비도 책정하지 않은 사업이라니까요. 사업비가 얼마나 들 것인지 윤곽이 나와야 재원을 마련할 노력이라도 해 보죠.”

“저는 제 돈이 필요한 줄 알았습니다.”

수안이 필요하면 줄 것처럼 얘기하자 박재문은 엉뚱한 소리를 들었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전투기 개발 비용을 많이 책정해도 고작 10조 원 내외 아니겠습니까? 더 들어요? 20조도 상관없죠.”

“…….”

10조, 20조를 고작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사람이 바로 수안이다.

작년 BE 인베스트먼트 미국 법인이 IPO에 성공했고 현재는 시총 3조 달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포브스지는 올해에도 수안을 최고 부호에 올려놨다.

“저는 우리나라의 항공 우주 산업을 진흥시킨다는 대통령님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모든 사람이 시기상조라고 말리는데, 강 부회장은 다르군요.”

“전투기 개발 자금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전부 내겠습니다.”

“……!!”

“물론 그 수익 일부도 제가 가져갑니다. 잠수함이나 이지스함, 신형 탱크와 미사일 개발도 좋겠군요. 물론 사업은 수의계약으로 진행하시죠. 개발비 대부분은 국책 과제가 아니라 제 돈으로 충당하겠습니다. 결과물에 지분을 나누는 방식으로 하시죠.”

“이거 참. 너무 듣기 좋은 말이라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하하하.”

대한민국의 국방이 단단해지는 일이다. 훗날 얻을 이익은 상관없었다. 당장 개발을 시작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저도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직접 전투기를 생산해 보면 무기를 수출하는 미국과 상대하기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부품 가격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으니 바가지를 씌우지도 못하죠. 미국은 당장 한국의 전투기 개발을 막으려고 도입 예정 전투기 가격부터 깎아 주겠군요.”

“진즉에 강 부회장과 대화할 걸 그랬어요. 이렇게 마음이 잘 통할 줄이야.”

“그렇다고 너무 자주 부르진 마십시오. 전 대통령님과 뒤에서 후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통령님의 추진 정책에 힘을 실어드리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 설마 우리 의원들에게 후원하고 있었습니까?”

뒤에서 후원하고 있다면 이런 것밖에 생각할 수 없을 터였다.

수안은 적극적으로 변명했다.

“강운 그룹은 SBS를 산하에 두고 있고, 네이보와 다움을 통해 종이 신문을 인터넷 신문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후원은 언론을 통해 사실적인 정보가 대중에 알려지도록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정도는 상관없지 않습니까? 강운 그룹은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하도록 합리적인 경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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