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은 어긋남 (230/304)

작은 어긋남

이방효는 클락슨의 보고를 받는 중이다.

클락슨이 드레이크와 통화한 내용을 보고받으면서도 서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미국의 선전 포고가 확실한 상황이었다. 금융 시장 또한 혼란한 상황이라 BE 대표인 이방효가 검토하고 결재할 자료도 많았다.

“드레이크는 PMC를 해체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이군요.”

대수롭지 않은 소식이었다. 2천만 달러를 받고도 목숨을 내맡겨가며 용병 일을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소속 인원 중의 몇은 BE로 끌어들이겠습니다. 괜찮은 녀석들이 좀 있었습니다.”

“그건 마음대로 하셔도 되고요.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와서 대면보고를 하는 거죠?”

클락슨이 집무실까지 와서 보고할 일이 아니었다. 전화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보고였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얼른 궁금증을 해결하길 바랍니다. 보다시피 최근 좀 바쁘거든요.”

어서 질문을 던지라고 재촉하는 말에 클락슨은 그간 품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테러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습니까?”

“사전에 알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1년 이상 놀고 있던 드레이크와 PMC 대원들을 부른 그 시점에 비행기 테러가 발생하는 일은 어려워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누군가는 그 비행기를 탔을 것이고 테러는 일어났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이 탑승한 비행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드레이크의 PMC 대원이 탑승한 네 기의 비행기가 전부 테러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사전에 정보를 파악하고 누군가 일을 기획했다는 의미였다. 클락슨은 확신하고 있었다.

“드레이크가 모집한 PMC 대원들이 전부 테러 대상 항공기에 탑승했습니다. 그 항공권 티켓은 BE에서 구해 줬죠.”

“정확하게 합시다. 티켓은 클락슨 당신이 구했잖습니까.”

“비행기 출발 시간과 목적지까지 지정한 것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중간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꾸라고 지시하지 않았습니까.”

“좋습니다. 또 다른 의심은요?”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항공기에 무기를 들고 탑승할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녀석들은 전부 무기를 들고 공항 검색대를 지나갔다고 하더군요. 몇몇은 걸려서 총기를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 드레이크에게 비행기 테러를 진압하는 교육 영상을 보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래도 BE가 몰랐다고 발뺌하실 겁니까?”

미군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용병들이다. 그런 그들이 비행기에 탑승하며 총기를 숨겨 들어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당신도 비밀을 알 때가 됐나 보군요.”

“역시!”

‘BE는 특별한 정보단체를 보유하고 있었어. 내 추측이 사실이었….’

이방효는 서류를 손에서 놓고 두 손을 모았다.

“미국의 모든 정보망은 BE를 거치게 되어 있죠. 이번 테러는 우리의 정보를 무시한 부시 행정부의 실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장님이 대비하지 않았다면 끔찍한 사고가. 크크크. 아이고 더는 못하겠다. 이걸 왜 진지하게 듣고 있습니까?”

“……?”

“미국 정보국에서 파악하지도 못한 테러 첩보를 BE가 파악할 수 있다고요? 클락슨. 우리 BE 인베스트먼트에서 보안이나 첩보와 관련된 단체는 클락슨이 이끌고 있는 BE Security밖에 없습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아닙니까? 우리가 미국 정부보다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 단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란 말입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번 일은 사전에 정보를 얻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회장님은 미래에 발생할 많은 위기를 걱정하는 분이니까요.”

“위기를 걱정하는 정도로 예측할 수 있는 미래라면 누구든 노스트라다무스라고 불릴 겁니다. 게다가 저는 이번 테러와 관련된 정보를 들은 적도 없습니다. BE Security를 이끌고 있는 제가 모르는 정보를 도대체 누가 줬단 말입니까?”

“큭. 내 말을 오해했군요. 회장님은 위기를 걱정하는 것에서 끝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것을 준비하는 분이죠. 우리가 정보를 얻기 어렵다면,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른 곳에서 정보를 받았습니까?”

“우리가 투자 회사라는 점을 기억했다면 이번 일에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었을 텐데요.”

금융에서 정보는 곧 돈으로 직결된다. 정보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기업이 바로 금융 회사였다.

일례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유명한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워털루 전쟁은 영국이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를 이긴 전투였다. 하지만 당시의 정보 불균형은 심각했고, 네이선 마이어는 워털루 전쟁에서 영국이 질 것이라는 정보를 갖고 있는 것처럼 가문의 채권을 팔아치웠다. 당연히 채권 가격은 급락했고 시장에 거대한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었다. 이후 50% 이상 떨어진 영국의 국채를 모조리 쓸어 담았다. 이후 영국의 승리로 마감된 전투 소식이 전해지며 국채는 폭등했고 엄청난 차익을 남기게 되었다. 당연히 프랑스의 국채도 동일한 방법으로 차익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정보를 손에 쥐면 금융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데 정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BE뿐만 아니라 금융 투자를 주도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자금을 사용하고 있었다.

지라시 또한 증권가에서 비롯되지 않겠는가. 정보를 가진 사람은 더 많은 돈을 손쉽게 벌 수 있는 법이다.

“이번 테러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어요. CIA에서 부시 정부에 보고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

실제 관련 정보를 입수한 사실이 있었다. 수안은 수많은 정보 중에서 그 정보를 선택했고 앞뒤의 일을 끼워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스티븐 회장님은 달랐습니다. 이미 죽은 정보였지만, 누가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는 달라지기 마련이죠. 우리는 CIA에서 파악한 정보가 사실이라 판단하고 유사시 사용하려 준비해 둔 드레이크의 PMC를 불러들였죠.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PMC를 준비했으니까요.”

“…….”

이후 클락슨은 이번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이방효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미국 정보부를 통해 들어온 정보들과 그 정보를 얻기 위해 BE 인베스트먼트에서 소모한 자금과 들인 노력을 알 수 있었다.

‘여기도 전쟁판이나 다름없었군.’

군인들만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었다. 기업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에 거액의 자금을 후원하는 이유도 정보와 관련이 있었다.

‘게다가 미국 정부에도 도출한 정보를 알렸는데, 듣질 않았다니….’

BE 인베스트먼트는 정보를 취합해 내린 결론을 혼자만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사전에 이번 부시 행정부에 관련 정보를 전달했지만, CIA의 경고를 무시한 것에 이어 BE의 경고도 무시했다. 그럼에도 BE는 드레이크의 PMC로 나름의 대비를 한 것이다. BE가 미국의 은인이었다.

“게다가 사람의 목숨이 걸렸다면 돈을 아끼지 않으시죠. 그 결과는 당신이 확인한 그대로입니다. 일부 사망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세계 무역 센터와 펜타곤이 공격당하는 시나리오보다는 이번 결과가 더 나아 보이지 않나요?”

“…….”

살아남은 테러리스트의 입을 통해 테러의 최종 목적이 밝혀졌다. 거대한 미국의 경제를 상징하는 세계무역센터와 군력을 상징하는 펜타곤을 향했던 이번 테러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면 미국은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그 비행기들이 세계 무역 센터와 펜타곤으로 돌진했다면….’

클락슨은 눈을 질끈 감으며 일어나지 않은 현실에 안도했다.

“앞으로 클락슨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죠.”

“What?”

“미국은 이번 테러의 죄를 물어 전쟁을 일으킬 겁니다. 클락슨은 앞으로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관련 정보를 취합하세요. 이번에 새로운 직원들을 받으면 여유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

“자세한 지시는 따로 서류를 통해 보내도록 하죠. 이만 본인의 자리로 가 주세요. 오늘은 시간을 더 빼기 어렵습니다.”

“휴우. 제 괜한 의심으로 바쁜 분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았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무례한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 대표님.”

클락슨이 나가고 나서 이방효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미국 정부에 큰 빚을 지웠으니 향후 몇 년은 편하겠어.”

일개 기업인 BE에서 테러를 막아냈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알고 있었다. 이미 테러를 성공적으로 막아냈기 때문이다. 드레이크의 PMC가 BE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부러 흘렸다.

‘회장님만 괜히 불려오시게 됐군.’

백악관의 부시는 이번 일로 수안을 소환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공식 초청이었다.

* * *

이후 미국에 도착한 수안은 백악관이 아닌 미군 부대에서 부시를 마주했다.

“반갑습니다. 프레지던트.”

“스티븐 회장에게 미국 시민권을 주고 훈장을 달아 줬어야 하는데 말이야. 엉뚱한 퇴역 군인만 혜택을 보게 됐어.”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끝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 모든 것이 스티븐 회장 덕분이지.”

“미국이 훌륭한 군인들을 배출한 탓이지요. 모든 일은 미국인의 손으로 이뤄낸 성과입니다.”

“…자넨 사람을 편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군.”

수안의 입에선 자신을 포장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 일의 공로자는 그들입니다.”

다른 일이라면 자신의 공로가 크다고 하겠지만, 이번 일에는 빠지고 싶었다. 몸을 상해가며 테러를 저지한 그들이 있었기에 많은 희생을 막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범죄자인 드레이크의 일도 있었다.

“그에 관련해 한 가지 확인할 일이 있어서 이렇게 스티븐 회장을 찾았네.”

“이렇게 뵙게 된 것부터 영광입니다. 말씀하시죠. 프레지던트.”

“알아보니 BE는 모건 스탠리와 골드만삭스의 보험 계약부터 엮여 있었더군.”

다른 통로를 통해서 확인해도 될 일을 이렇게 직접 불러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공과 과를 상쇄하고자 함이었다는 뜻이다.

“…….”

“그리고 여기에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인물이 바로 칼슨과 드레이크였어. 하지만 이번에 알아보니 공교롭게도 드레이크가 BE의 명령을 듣고 있질 않았겠나. 참 이상하지?”

“악연은 악연이죠. 큰 손해를 본 골드만삭스의 프랭크 회장이 칼슨을 통해 저를 청부 살해하려고 했으니까요. 아. 이 정보도 이미 파악하셨겠죠?”

“…알고 있었네.”

미국 정보부에서 마음먹고 파악했다면 모를 수 없는 정보라 수안이 직접 밝혔다.

“저는 그들과 다릅니다. 저는 저를 살해하려고 입국했던 드레이크를 회유해 저와 제 가족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다행히 드레이크는 돈에 움직이는 인물이었고, 저는 돈이 많은 사람이죠.”

“훗. 자네가 이번 포브스지 1위 부호에 올랐지?”

“그 과정에서 프랭크 회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잭 회장은 제 일이 아닌 다른 살인 사건들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에겐 좋지 못한 결과였지만, 제게는 해피 엔딩이죠.”

“칼슨의 일은 빠졌군. 그는 왜 죽였나?”

단정적으로 말하는 부시에게 수안은 한 점 동요도 없이 입을 열었다.

“그 일은 참 안타까운 일이죠. 칼슨은 드레이크를 다시 회유하려고 모종의 계약을 했었다고 하더군요.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칼슨은 드레이크에 의해 좋지 못한 일을 겪었던 모양입니다. 저도 이번에 파악한 일입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드레이크에게 자금을 집행해 왔죠. 그런 드레이크가 PMC를 통해 미국을 향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막아냈으니 화가 복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수안은 심문을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있었다.

“난 안전장치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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