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데저트 스콜피온.
드레이크가 이끄는 PMC(Private Military Company: 민간 군사 기업)의 명칭이다. 이들은 2001년 9월. 실전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미국 소환이 예정되어 있었었다.
“미국에서 무슨 실전 훈련이야? 야외 사격 훈련이라도 하려고?”
“내가 아냐? 대장한테 물어보든가.”
“드레이크 대장도 모른다잖아.”
“…대장이 모르면 누가 알아? 이번 의뢰인이 뭐라도 얘길 했을 거잖아.”
드레이크도 클락슨을 통해 전달받았을 뿐, 훈련의 정확한 목적을 알지 못했다. 그저 정해진 비행기에 정해진 인원을 탑승시키라는 명령이 전부였다. 출발 장소도 다르고 도착 장소도 달랐기에 소속된 용병들의 의문이 커졌지만, 의문을 풀어 줄 사람도 이유를 모르니 답답할 뿐이다.
그리고 이들이 의뢰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사실은 이들의 고용주였다. 드레이크는 차마 그 사실을 밝힐 수 없었기에 그저 따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의뢰잖아. 지금까지 잘 놀았으니 훈련하는 척이라도 하자. 돈 받기 싫어? 선금도 넉넉하게 받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들은 지금까지 직접적인 지시를 받지 못했다. 그간 진행한 업무는 아랍지역에서 국제 사회 단체 소속 인물들을 호위, 부호의 근접 경호 등으로 부외 수입을 위한 개별적인 의뢰였다. 그간 윗선을 통해 맡겨진 업무는 없었다. 이번 명령이 첫 명령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자. 아마 얼굴이나 보자고 불렀을 거야. 의뢰인이 비행기 표도 알아서 다 구했다니까 그냥 마음 놓고 가.”
“그래놓고 진짜 훈련이면 어쩌려고? 미국 가서 총기를 다시 사?”
의뢰인에게 첫인상을 나쁘게 남길까 걱정이었다. 선금도 주고 비행기까지 미리 챙겨 줄 정도면 착한 의뢰인이 아니던가.
“의뢰인이 얼마 전에 비행기 납치 관련 영상도 보내 주지 않았나? 테러 대비 훈련하라고?”
“맞아. 진짜 비행기에서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라고? 대장. 뭐 챙겨? 방검복 정도는 입어야 하겠지?”
“애냐? 내가 기저귀까지 챙겨 줘?”
“대장. 탑승 거부돼도 난 모른다. 나 다 챙겨갈 거야.”
“나도!”
“Shit. 나도 잘 숨겨가야겠네.”
“누구 세라믹 나이프 남는 사람.”
“사서 써 새끼야.”
이들이 숨긴다면 숨기는 거다. 아무리 공항에서 수색을 강화해도 발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항공 보안은 너무 열악했다. 이들이 가져온 총기는 수월하게 검색대를 지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보안 구멍은 테러 분자들에게도 희소식이었다.
“뭐야. 이럴 줄 알았으면 RPG도 챙겨올걸.”
“비행기에서 다 같이 죽자는 거냐? 미친놈.”
“앞으로 대화 금지야. 자리는 전부 떨어져 있을 테니까 서로 아는 척하지 마.”
“왜?”
“의뢰인 지시란다.”
“…별 이상한 지시도 다 있네.”
9월 11일. 이들은 미국에 도착해 정해진 비행기에 나눠 탑승했다. 드레이크가 인원을 많이 뽑는 바람에 수안은 열 팀으로 인원을 나눠야 했다.
보스턴 공항에서 출발하는 팀이 넷, 뉴욕에서 출발하는 팀이 셋, 워싱턴에서 출발하는 팀이 셋이다. 그래봤자 비행기에 따로 탑승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이 탑승할 비행기는 총 네 대였고, 모두 테러 분자들이 탑승한 비행기였다.
이른 아침부터 비행기에 탑승하느라 피곤했던 PMC 대원들은 잠이라도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앞이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Nobody Move. Everything will be okay. If you try to make any move, you’ll endanger you self and the plane. Just stay quiet.”
아무도 움직이지 말라고 하면서도 움직이면 비행기를 위험에 빠뜨리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특히 들고 있는 총기와 칼이 승객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PMC 대원들은 의자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급하게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대기. 적 숫자 파악.’
‘콜.’
‘앞에 둘. 뒤에 둘.’
‘하나 더.’
‘어디?’
‘끝 좌석. 아랍인.’
비행기가 납치되는 상황인데도 전혀 놀라지 않은 얼굴을 한 아랍인이 하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얼굴을 한다는 것은 같은 편이라는 뜻이었다. 교본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테러리스트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준비했을 마지막 인물까지 파악한 대원이다.
‘확인.’
‘무기.’
세라믹 나이프와 권총을 들어 보이는 대원이다.
‘머리만 노린다. 몸은 안 돼.’
‘오케이.’
‘다른 녀석들도 비슷하게 시작할 거야.’
지금까지 함께 생활한 시간이 있었다. 게다가 같은 훈련을 받아 온 미군이다. 믿고 시작해야 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앞을 살핀 남자가 벌떡 두 손을 들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Now!”
그의 말에 앞뒤에 무기를 들고 있던 이들의 시선이 고정되었고, 사이사이에 숨어 있던 대원들의 총이 불을 뿜었다.
타다당!
마지막 총소리는 옆에서 맨 뒷좌석의 인물을 노리던 대원의 총구에서 발생했다.
탕.
“동체에 구멍 안 났지? 제대로 못 쏜 놈은 죽을 줄 알아!”
“이상 없음!”
“몸수색 시작해! 몸에 폭탄을 감고 있을지도 몰라!”
“롸저!”
“승무원! 승무원부터 찾아. 기장이 무사한지도 확인해야 해!”
“롸저!”
잠시 후 돌아온 대원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기장과 부기장이 전부 죽었다.”
암울한 상황이라 승무원들은 창백한 얼굴로 변했다.
하지만 대원들에겐 대안이 있었다.
“클락! 어디에 있어? 총 맞았냐?”
“여기! 안 맞았다.”
“가서 조종간 잡아. 관제탑과 교신 시작하고 상황 마무리됐다고 알려! 급하다. 언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몰라!”
“크악!”
클락은 급하게 조종실로 달려 나갔고 그 뒤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저놈이 혼자가 아니라고 했어. 통합 관제소에 확실하게 알려주고 지시를 받아.”
“Shit!”
자신들에게 비행기가 있다고 하지 않고 비행기“들”이 있다고 했던 녀석이다.
“다른 비행기들에도 우리 대원들이 탔어야 하는데….”
그가 바란 대로 이와 같은 일이 다른 세 대의 비행기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
.
.
[(속보)미국 영공에서 항공기 탈취 사고 발생.]
긴급 속보로 전해진 미국발 뉴스는 후속 보도를 이어 갔다.
극렬 이슬람 세력의 소행으로 추측되는 비행기 탈취 사고로 총 4기의 비행기가 이륙 후 긴급 착륙. 일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비행기에는 미국의 퇴역 군인들이 다수 탑승하고 있어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고 전하고 있었다. 이들은 사고 후 미국 영공에 떠 있던 모든 비행기에 강제 착륙 지시가 내려졌고, 이륙은 당연히 금지되었으며 미국으로 접근 중이던 모든 민항기도 회항시켰다. 미국 전체의 영공이 봉쇄되었다.
“…….”
“회, 회장님.”
수안은 기쁜 미소로 되물었다.
“왜?”
“저기 탑승한 퇴역 군인들은….”
드레이크를 포함한 100여 명의 미국 퇴역 군인으로 구성된 데저트 스콜피온이 이번에 큰일을 해냈다.
“맞아. 내가 보냈어.”
배영성은 수안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었다.
“…훈장 준다고 하는데요?”
“잘됐네. 퇴역 미군이 더 대우받겠어.”
이번 테러를 막은 공로로 데저트 스콜피온 대원들에게 훈장을 수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죽은 사람이 둘이고 다친 사람도 좀 있었다. 이들은 대통령이 직접 내려주는 훈장을 받게 될 것이다. 세계 무역 센터 빌딩이 멀쩡히 서 있게 만들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직 테러 분자들이 항공기를 공중 납치해서 벌이려던 일이 밝혀지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것도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클락슨을 통해 듣기로 몇 명은 사로잡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능력도 좋아.’
드레이크의 인성은 어떨지 몰라도 능력만큼은 출중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그 능력을 여실히 입증하며 살아남았다.
‘총상을 입었다고 했던가?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사망자와 부상자는 드레이크 계좌로 추가 보상을 집행할 거야. 데저트 스콜피온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해체할 생각이고.”
“휴우.”
“여차하면 나라도 가야 하나 싶었는데, 자국의 일은 자국민이 희생해서 지켜야지.”
“꿈도 꾸지 마십시오. 제가 회장님은 절대로 안 보냅니다.”
“큭. 나도 내 가족들 두고 가고 싶지 않아.”
“이후 일은 어떻게 수습됩니까?”
“…부시는 테러가 실패했어도 본래 역사대로 행동할 거야. 곧 알카에다를 지원한 세력을 뿌리 뽑는다며 공습을 시작하겠지.”
“전쟁입니까?”
“그래. 전쟁이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미국을 상대해야 할 거야.”
“…….”
“미국 주가 영향은 어때?”
“갑작스러운 테러로 전체적으로 하락했습니다.”
“오래가진 않겠네.”
“사고가 제때 수습되어 큰 반향은 없을 것 같습니다.”
본래라면 바닥을 봤어야 하는 주가가 아주 작은 하방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 사장에게 평소와 같이 처리하라고 해. 미국발 전쟁이 예상된다고 일러주고.”
“예. 회장님.”
.
.
.
백악관에서 테러를 막아낸 인원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당연히 드레이크의 과거도 수면으로 떠올랐다.
“PMC(민간 군사 기업) 데저트 스콜피온의 수장 드레이크는 몇 년 전 칼슨이라는 인물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수배 중이었습니다. 칼슨은 골드만삭스 전 회장인 프랭크의 심복이었습니다.”
“모건 스탠리 잭 회장과 살인을 공모했었다는 프랭크 골드만?”
“예. 맞습니다. 칼슨은 엮인 일이 많아 주요 증인이자, 용의자였는데 해외에서 사망했습니다.”
“…괜히 들춰봐야 걸림돌만 되겠군.”
칼슨이 없어도 모건 스탠리의 잭 회장이 1급 살인 혐의를 적용받는 데 문제가 없었다. 칼슨을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도 수사를 진행해야 사실이 밝혀질 일이다. 들춰내지 않기로 하면 결백한 퇴역 군인으로 남지 않겠는가.
“예. 퇴역 군인들의 공로를 치하하려면 묻어 둬야 합니다. 게다가 드레이크는 데저트 스콜피온의 수장입니다. 리더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면 차후 일을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군인들을 퇴역 후에도 나라를 지키는 영웅으로 만들 생각이다.
“훈장 수여식을 크게 열도록 하지. 미국에 테러를 자행한 세력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야.”
“진행하겠습니다.”
드레이크는 말년 운이 트였다.
* * *
“내 이름으로 홍콩 계좌를 만들어 놨단 말이야?”
-그래. 이번에 네 이름으로 새로 만들어 놨다고 했어. 너 좋아하는 돈 다 가져라. 괜히 널 사지에 보냈다고 난리야. 일이 잘못됐으면 BE에도 불똥이 튀길 뻔했잖아. 아! BE는 절대로 언급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본래 칼슨에게 받아 자기 몫으로 챙겼어야 할 금액이었다. 지금까지 데저트 스콜피온을 운영하며 들어간 돈을 제외한 나머지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그야 당연하지.”
지금까지 몇 번이고 FBI에서 다녀갔는데 BE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데저트 스콜피온을 해체하라고?”
-위에선 되도록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네 마음대로 해. 이제 돈도 많은데 쓰면서 살아야 하지 않아? 나 같으면 저택을 사서 매일 파티를 열 거야. 날마다 새로운 여자를 만나면서 말이지. 2천만 달러라니…. 정말 엄청난 금액이야.
초기 3천만 달러에서 지금까지 소요된 자금과 사망한 대원들에게 지급한 일부 금액을 제외하고 2천만 달러가 남아 있었다.
“큭. 내가 파티를 열면 널 꼭 부르지. 번쩍이는 훈장도 같이 보여 줄 수 있겠어. 클락슨.”
-Shit. 배 아파서 그 꼴은 못 보겠다. 꺼져. 드레이크.
돈 자랑은 아무렇지 않을지 몰라도 훈장 자랑은 참을 수 없었다.
“크큭.”
이번 테러에 관한 보상과 BE 인베스트먼트를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2천만 달러를 손에 쥔 드레이크는 절로 웃음이 났다.
소속 대원들은 미국에서 보상을 챙겨 줬으니 이제 계좌의 자금은 모조리 자신의 소유였다.
“거기다….”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범죄도 불문에 부친다는 조사관의 확답까지 들었다. 이번 일로 얻은 것이 너무 많았다.
“으윽.”
팔에 입은 부상은 아직도 고통스러웠지만, 고통은 잠시일 뿐이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흐흐.”
‘총 한 발 맞고 이 정도 보상이면 크게 남겼지.’
자신들이 탑승할 비행기에 테러 분자들이 탑승한 것은 불행한 일이었지만, BE에서 사전 정보를 취득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 정보부도 파악하지 못한 일을 BE에서 파악했을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