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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 (224/304)

Fire

배영성에게 샤롯 마트가 매물로 나왔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수안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크흐흐흐. 샤롯 마트의 끝을 이제야 보네. 너무 오래 버틴다 싶었지.”

“샤롯 마트는 무조건 저희가 먹어야 합니다. 게다가 주환득 사장이 은밀하게 저희에게 접촉한 상황이니 인수할 가능성도 큽니다.”

“그런데 주 사장이 우릴 밀어주겠다는 거야? 오히려 샤롯에서 주 사장을 통해 수를 쓴다는 의심이 먼저 아닌가?”

고육계(苦肉計)를 의심하는 수안이다. 적벽대전 중 동오의 노장 황개가 주유를 만나 조조에게 거짓 항복한 다음 기회를 엿보아 화공을 쓰자고 제의한다. 황개는 실제 매질을 당하면서까지 배신의 이유를 만들었다. 조조는 편지를 받고 실제 황개가 항복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속아 넘어가 적벽에서 모든 군선을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조조도 비슷한 계략을 주유 진영에 사용했지만, 오히려 같은 계략에 당해 버린 것이다.

이번 경우엔 강운 그룹에 샤롯 마트를 비싸게 팔아먹기 위해 주환득을 접촉하게 했다고 의심할 수 있었다.

“주 사장이 샤롯 그룹 모르게 저희와 접촉한 것은 확실합니다. 샤롯 그룹 내 정보를 확인해 본 결과 실제 지금까지 주환득 사장을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고 앞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것도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신희태 부회장은 그런 책략을 꾸밀 만한 머리가 없습니다.”

배영성은 샤롯의 신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신 부회장이 단순한 면이 있긴 하지.”

“주환득 사장은 차명 휴대 전화까지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문자도 보내지 말라고 하더군요. 저희 외에 다른 기업과는 표면적인 협의만 진행될 겁니다.”

“보안을 그렇게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외부 업체에 함부로 연락을 못 하겠지. 자칫하면 일이 틀어질 테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고….”

수안은 샤롯 마트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다른 기업들의 단가를 내리는 수를 쓰자고 제안했다. 주환득 사장이 어떻게 말을 꺼내느냐에 따라 샤롯 마트의 인수 제안금액은 천차만별이 될 것이다.

“샤롯 마트의 상황이 최악을 달리고 있어 최대한 빠른 매각을 생각한다고 말하면…. 샤롯 마트에 관심을 가졌던 기업들이라고 해도 높은 금액을 부르진 않겠군요.”

조급한 쪽이 지는 싸움이다. 주환득 사장이 처음부터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상대는 당연히 가격을 낮춘다는 선택지를 고르기 쉽다. 여기에 가격을 낮췄음에도 고맙다는 인상만 남겨 준다면 베스트라고 할 수 있다.

“적절하게 주차 문제나 직원 고용상의 문제를 곁들이면 좋겠지. 무조건 마트 고용인원을 승계해야 하는 조건이라고 해 봐. 누가 높은 금액을 써내고 싶겠어?”

안 그래도 매출이 잘 나오지 않는 샤롯 마트다. 고용인원들을 구조 조정 없이 인수하려면 인수 후 매출이 폭증해 적자가 수익으로 돌아선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홈플러스와 뉴월드가 단단하게 소비자를 사로잡은 마트 사업에서 흑자 전환을 확신할 회사는 없었다.

이것이 강운 무역의 인수금액이 상단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나머지는 주환득 사장에게 일임하겠습니다.”

“아. 그 사람도 바라는 바가 있겠지?”

“예. 그 부분도 주 사장에게 확인했습니다. 아직 확실하게 얼마를 보상하겠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충분한 성의를 보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홈플러스를 무역에서 분리하려고 했는데 잘됐네.”

“주 사장에게 홈플러스를 맡기시려고요?”

“상황 판단이 제대로인 사람이잖아. 일전에 봤을 때 인상이 나쁘진 않았어. 윗사람을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됐을 뿐이야.”

주환득의 경영 능력은 한참 전에 파탄을 드러냈어야 했던 샤롯 마트를 지금까지 끌고 온 것으로 충분히 입증했다고 판단했다.

“샤롯과 불편함을 감수하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걔들하고는 앞으로도 계속 불편할 생각이라….”

앞으로도 샤롯을 대한민국에서 몰아내기 위해 공격을 이어 갈 생각이다. 조금 불편해지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그 정도 불편함도 못 견딘다면 회사를 경영할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배영성은 피식 웃으며 긍정했다.

“그렇다면 상관없겠군요. 그래도 괜한 구설에 오를 수 있으니 인수 후 몇 년 지나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고용으로 끝나면 재미없지 않아?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확실히 해야지. 20억 쏴준다고 해.”

“20억이면 넉넉할 것 같습니다. 주 사장이 강 회장님 품으로 들어와 말년 복이 터졌네요.”

“일복이 터졌겠지. 크흐흐.”

* * *

“배 대표님. 주환득입니다.”

-통화 괜찮으세요?

“예. 산행 중입니다.”

집 안에서 하는 통화도 걱정이라 아예 탁 트인 산으로 나왔다.

-걱정이 너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신 부회장은 염려하지 않지만 신 회장님은 다릅니다. 이번 일로 진노가 대단하셨습니다.”

신기호 샤롯 그룹 회장에게 직접 샤롯 마트의 매각을 보고하러 갔던 주환득이다. 신희태가 성질만 나쁜 인물이라면 신기호 회장은 성질도 나쁘고 꼼꼼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기업들이 적어낸 인수 금액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낸 다음, 직접 기업에 연락해 확인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보고서가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 와중에 귀에 피가 나도록 욕을 먹었지만, 아주 양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재떨이가 제자리에 있었고, 골프채도 안 휘두르셨지.’

-신 회장이 화를 냈건 폭소를 했건 제가 알 필요는 없겠죠. 그래서 결정됐습니까?

주환득은 삭막한 배영성의 말에 작은 불안감을 느꼈다.

‘거액을 준다고만 했지, 얼마인지는 알려 주지도 않았어.’

아직 보상이 얼마로 책정되었는지를 듣지 못한 주환득이다. 처음 배영성과 전화를 연결한 시점부터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라 일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젠장. 이쪽에서도 배신인가?’

“…예. 강운 무역이 샤롯 마트를 인수하게 될 겁니다. 신 회장님은 마무리만 하고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시더군요.”

-저런. 면전에 대고 그런 소리를 했단 말입니까?

“신씨 일가가 다 그렇습니다.”

주환득은 강씨 일가가 그렇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홈플러스에선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강 부회장님은 온화한 스타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주 사장님은 이번 일 마무리하시면 앞으로 뭐 하실 생각입니까?

“그…. 보상이 확정되면 그때 생각해 보려고 했습니다.”

아직 보상이 얼마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계획을 세웠겠는가. 지급될 퇴직금과 지금까지 모은 돈이 있으니 굶어 죽지는 않겠으나, 나이 50이 넘어 새로운 직업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공부라도 하고 있으세요. 마트 사업이 쉽지 않습니다. 샤롯 마트처럼 경영하시면 퇴출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2, 3년 지나고 홈플러스로 부르겠습니다. 강 부회장님이 확답하신 일이니,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허업!”

주환득은 아무도 없는 산길에서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린 샤롯 그룹과 다릅니다.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죠. 여보세요? 듣고 계십니까?

“저, 저를 홈플러스로 부르신다고요?”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맙시다. 당장은 샤롯 눈치로 힘드니까 몇 년 지나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 잘해 주셨으니 그에 따른 보상도 지급될 겁니다. 주 사장님 계좌 말고 의심받지 않을 다른 계좌를 만들어 두세요. 총액 20억이 나눠서 들어갈 겁니다.

“역시!! 저는 강운 그룹을 믿고 있었습니다!”

-에이. 의심만 가득했던 것 같은데요?

“하하하….”

-인수 계약은 강운 무역에서 진행할 테니 저와 만날 일은 없겠습니다.

“나중에 꼭 식사 대접이라도 하겠습니다.”

-일없습니다. 괜히 문제 만들지 마시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으세요.

“아. 예. 예.”

-마지막까지 잘 부탁합니다. 주 사장님.

“맡겨 주십시오. 배 대표님. 그럼 강운 그룹으로 적을 옮기는 날에 뵙겠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샤롯 마트가 강운 무역의 품으로 들어왔다.

주환득이 신경을 썼는지 강운 무역 김성우 사장이 노련하게 협상했는지 모르지만, 기존 인수 제안 금액보다 더 낮은 금액으로 샤롯 마트를 인수할 수 있었다.

* * *

2001년 연초부터 BE가 터져 나왔다. 역시나 미국 정부가 시발점이다.

[미국 정부. BE 인베스트먼트의 지분 공개. 기업 가치 1조 달러 훌쩍 넘어.]

[BE 인베스트먼트의 나머지 지분은 단 1인에게 귀속. 빌 게이츠를 뛰어넘는 대부호의 등장.]

[스티븐 강. 그는 누구인가.]

[BE 인베스트먼트의 주인으로 알려진 스티븐 강의 정체는?]

드디어 스티븐 강이라는 이름이 잡지와 신문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수안은 여론몰이에 여념이 없었다.

“최정무 사장님. 이번 특집 방송 예쁘게 뽑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질투가 아닌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예.

이번 SBS의 특집 방송은 BE가 친 사회적 기업이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했다는 내용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외부에서 정보가 시작했지만, 국내에서 터트리는 것은 SBS가 최초가 될 것이다.

“특히 금 모으기 운동으로 모은 금을 해외로 유출하지 않고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주세요. IMF에 달러를 들여왔다는 것과 국내 부도 기업에 지원했다는 사실도 빼먹지 말고요.”

-염려하시지 않도록 제가 직접 감독하겠습니다.

다음은 인터넷 여론이다.

“이재영 사장님. 다움 사이트 뉴스 중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기사는 사전에 안 보이는 곳으로 자리 옮겨 주세요.”

-언론사에 삭제를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반대 의견이 너무 없으면 안 되죠. 적절하게 섞여야 긍정적인 기사가 돋보이는 법입니다. 네이보 정 사장에게도 전해 주세요.”

-예. 회장님.

마지막은 이방효 사장이었다.

“이 사장.”

-예. 회장님.

“이번에 맡은 역할이 좀 크네?”

-하하하. 제대로 불을 지르겠습니다.

* * *

SBS는 대대적으로 특집 방송을 광고한 덕분에 상당한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BE 인베스트먼트! 그 거대한 실체를 파헤친다.]

방송은 전문가 패널과 사회자를 두고 대담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지세현 소장님은 미국 정부의 BE 인베스트먼트 지분 확보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희 경제 연구소의 직원들도 BE 인베스트먼트의 지분을 갖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지분이 아니죠. BE 인베스트먼트는 업계경력이 오래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수익률을 자랑하는 투자 회사입니다. 미국은 좋은 투자처를 골랐습니다.”

“최 교수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작년 미국에서 발생한 롱텀 캐피털 사태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롱텀은 러시아 국채에 과도한 레버리지를 걸고 거래하다가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말았죠. 당시에 롱텀과 BE를 비교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문가 그룹인 롱텀과 공격적인 투자의 대명사인 BE 중에 누가 더 뛰어난지를 궁금해했습니다. 지금은 결과가 보여 주는군요. BE는 살아남아 미국 정부에서 지분을 취득했고 롱텀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다들 BE를 높게 평가한다는 사실은 잘 알겠습니다. 이번에 미국 정부에서 BE 인베스트먼트의 지분을 공개하며 실 소유자인 스티븐 강이라는 인물을 거론했습니다. 미지의 인물일까요? 지세현 소장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랍의 대부호가 사용하는 가명이라는 추측도 있었고, 미국 정부가 내세운 가상의 인물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죠. 하지만 아직 정확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기업인 패널로 나온 조태주 벤처 기업 사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저도 한마디 거들죠. 일각에서 강이라는 성 때문에 한국인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 정도로 거대한 기업은 국내에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대한민국 기업의 시총 1위부터 50위까지 더해야 BE 인베스트먼트 미국 지점 시총에 비길까 말까 한 수준입니다. 규모가 다릅니다. 망상은 집에서 혼자 하는 편이 좋겠죠. 괜히 밖으로 표출하면 정신병자가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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