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샤롯 마트 (223/304)

샤롯 마트

“마트 사업을 접는 편이 오히려 부회장님의 커리어에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흘러가 마지막을 지켜본다면 괜히 다른 쪽에만 힘을 실어 주게 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 썩을 놈….”

마트 사업의 생사를 더 빨리 결정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룹 부회장으로 올라섰지만, 자신의 동생도 샤롯을 집어삼키려고 대기 중이다. 자신이 대차게 마트 사업을 말아먹었으니 녀석의 어깨가 두 치는 솟아오를 것이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 또한 같았다.

‘녀석은 내 실수를 물고 늘어질 거야.’

“부회장님. 그래도 샤롯 마트의 위치가 나쁘지 않습니다. 두 기업에 제안을 넣으면 적당한 금액을 회수할 수 있을 겁니다. 크게 확장 중인 뉴월드와 홈플러스라면….”

“끄응.”

마트 사업을 영위하는 두 기업은 날아오르고 있는데, 샤롯 마트만 죽어나고 있는 상황이 더 배 아프다.

신희태는 대신 매를 맞아 줄 사람. 즉, 책임을 전가할 사람을 골랐다.

“주 사장!! 대체 일을 어떻게 해서 이 꼴이 난 거야?”

“…….”

샤롯 마트 주환득 사장은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신희태 부회장의 말에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럴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얘기가 나오겠지. 에효.’

“홈플러스에서 하듯이 손익을 최소한으로 맞췄으면 손해날 일은 없었잖아!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지금까지 뭐 한 거야?!”

“…….”

‘그럼 중간 유통 업자를 빼시든가요.’

신희태 부회장이 추가한 유통 업자가 중간에 마진을 빼먹는다. 그 유통 업자는 사모님 친인척이 운영하는 업체였다.

단가를 후려칠 수도 없는 갑 중의 갑. 이런 상황에 무슨 수로 홈플러스와 똑같이 운영한단 말인가. 할 말이 많았지만, 해 봤자 통하지도 않을 얘기를 꺼내봤자 자신만 손해였다.

‘이번엔 숙성 문제가 나올 차례네. 그래도 이번엔 알아냈지.’

“아직도 홈플러스 육류 숙성법을 알아내지 못했지? 일을 왜 그따위로 하나?”

“…숙성 방법은 알아냈습니다. 워터 에이징이라는 숙성법인데, 관련 설비가 추가로 필요해 당장 도입하긴 어려웠습니다.”

워터 에이징은 영원히 숨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이제 마트 사업이 자리 잡기 시작한 홈플러스는 숨겨오던 육류 숙성법을 공개하고 숙성 설비를 판매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선회한 상태였다. 문제는 설비의 가격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마트 사업을 접느냐 마느냐 하는 판국에 추가 비용이 들어갈 숙성 설비를 구입하기는 어려웠다.

“…….”

“지금은 숙성법이 문제가 아닙니다. 숙성법을 알아내봤자 육질은 홈플러스와 같은 수준에 불과합니다. 결론은 역시 단가 문제입니다. 유통 과정이 대대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단가를 맞출 수 없습니다.”

신희태도 뻔히 유통 과정에 누가 남겨 먹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엉뚱한 홈플러스를 욕했다.

“홈플러스 그 새끼들은 땅 파서 장사해? 나쁜 새끼들. 저들 혼자만 살겠다고 다른 기업을 다 죽이고 말이야.”

‘홈플러스는 중간에 필요 없는 유통 업자를 다 날리고 직거래를 중심으로 유통망을 새로 짰으니 우리와 다르죠. 게다가 중간 마진을 빼먹는 경영진 인척도 없으니….’

지금으로선 샤롯 마트가 홈플러스에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마이너스가 발생하는 사업 분야의 생사를 빠르게 결정하는 것만이 최선의 수였다.

“주 사장이 책임지고 정리해!”

“…….”

마트 사장인 주환득이 입을 다물고 있는데 오히려 주변에서 신 부회장의 결정을 치하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부회장님.”

“돈도 안 되는 유통에서 발을 빼고 금융으로 발길을 돌리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카드 쪽이 유망하니 이번엔 샤롯 카드에 힘을 실어 주시죠. 회장님도 누가 샤롯에 어울리는 아들인지 깨닫게 되실 겁니다.”

주환득은 아직 샤롯 마트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자신들의 말만 하는 임원진을 무시하고 신희태 부회장에게 다시 물었다.

“부회장님. 경쟁 업체 중에 어디에 제안서를 넣을지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

신희태가 입을 다물자 다른 임원들이 나서서 주환득을 성토했다.

“주 사장. 그거야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거참. 부회장님이 책임지라는 말뜻이 뭔지 모르나?”

“주 사장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란 말이잖습니까.”

“큼큼. 유종의 미를 거두셔야지….”

“…….”

주환득도 자신이 확실하게 뒤로 밀려났음을 알고 있었다. 이번 마트 정리가 끝나면 자신의 자리도 없어질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새끼들 의리 없기는….’

몇 해 전 함께 신희태를 왕좌에 올리기로 의기투합했던 임원들이다. 잘해 보자며 자주 술자리를 가졌던 이들이 지금은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책임을 지더라도 마지막까지 부회장님의 의중을 들어 반영하고자 합니다. 그간 홈플러스에 맺힌 것이 있는데, 저희 마트를 홈플러스에 매각하는 것은 감정적인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주환득은 자신이 모시던 상사의 감정까지 생각하고 말했기에 신희태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뉴월드와 해외 마트에 제안을 넣어봐. 홈플러스는 매각 대상에서 제외하지만, 그래도 금액은 받아봐야지. 희망 고문이라도 해야겠어.”

“예. 부회장님.”

“대략적인 금액이 나오면 바로 가져오도록. 회장님께는 내가 보고하지.”

“최대한으로 뽑아내겠습니다.”

하지만 강운 그룹, 그것도 강수안을 상대로 희망 고문을 한다? 상대를 한참 잘못 골랐다.

장수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줘놓고 중요 업무를 맡긴 것도 실수였다.

* * *

샤롯 마트를 매각하기로 하고 한참 뒤. 신희태는 각 기업이 제안한 금액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운 무역에서 이렇게 많이 질렀어?”

“예. 부회장님.”

다른 기업들이 제안한 금액보다 족히 30%는 높은 금액을 제안한 강운 무역이다.

“…홈플러스에서 샤롯 마트까지 집어삼키겠다?”

“홈플러스가 샤롯 마트를 먹으면 후발 주자들을 완전히 따돌리게 됩니다. 뉴월드 마트는 고급화 전략으로 가고 있으니 결국 범 강운 그룹이 다 해 먹는 꼴이죠. 전국 주요 도시에 자리한 샤롯 마트를 생각하면 적절한 금액입니다.”

오히려 다른 기업들의 제안 금액은 마트 사업이 힘든 샤롯을 고려해 후려쳤다고 봐야 맞았다.

“강운 무역을 빼면 다음으로 높은 쪽이 뉴월드네?”

최악과 차악이 1, 2위를 차지했다.

“지금까지 샤롯 마트에 투입한 자금을 생각하면 2순위 이하는 절대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내 기분은 어쩌고?”

거액의 돈이 달린 일을 감정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샤롯 마트의 실패는 제가 짊어집니다. 부회장님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문제가 생겨도 제 잘못입니다. 회장님께는 제가 직접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주 사장….”

“맡겨 주십시오. 마트의 마무리는 제가 하고 싶습니다.”

이미 옷을 벗기로 각오한 몸. 신희태를 향한 충성심보다는 맡은 일에 책임을 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라는 식의 자세면 저놈이 홀딱 넘어오고도 남지.’

충성심 따위는 단 한 움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자신이 최종 보고자가 되어야 했을 뿐이다.

“하려면 확실하게 해. 불똥 튀지 않게.”

“…물론입니다. 부회장님. 마트 사업에 문제가 생긴 것은 전적으로 제 탓입니다.”

‘그래도 참 인간미 없네. 같이한 세월이 몇 년인데.’

신희태 본인 탓이라고 해도 인정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듣기 좋은 말이라도 해 주는 편이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내가 따로 섭섭지 않게 챙겨 줄게.”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섭섭지 않게 챙겨 준다는 말은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은 말이다. 얼마를 주든 섭섭함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주환득은 신희태가 얼마를 챙겨 줄지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샤롯에서 주는 보상은 보통 월급의 두 배 정도가 적정선이었다.

‘겨우 그거 주면 내가 많이 섭섭하지. 이 사람아.’

무엇보다 자신이 회장이 되면 다시 부르겠다는 입에 발린 말도 없었다. 이런 속 좁은 인물에게 누가 남아서 충성을 바치겠는가.

‘희태야. 동태 눈깔 희태야. 너도 앞날이 가엽구나.’

그의 주변엔 달콤한 말만 남발하는 경영진만 남아 있었다. 제대로 된 조언자도 없는 그가 샤롯을 말아먹을까 걱정이지만, 이번 샤롯 마트 매각을 끝으로 샤롯에서 떠나갈 그가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난 배 사장님께 보고드리러 가야겠군.’

주환득은 마트 정리가 거론된 순간부터 강운 그룹과 접촉하고 있었다. 샤롯 그룹에선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배신이다.

* * *

샤롯 마트의 매각이 결정될 당시의 일이다.

주환득은 집에 돌아와 서랍 속 차명 휴대 전화를 들었다.

“배 사장님. 샤롯 마트 주환득입니다.”

-아. 기억합니다. 잘 지내시죠?

배영성도 이제 경영자의 자세가 나오고 있었다. 예전 주환득과 만남이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 주환득을 대하는 자세는 뒤끝 없이 깔끔했다.

“하하. 예의상이라도 잘 지낸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영 좋지 못하네요.”

-저런. 제가 인사를 잘못 드린 모양입니다.

“제가 예전에 실수가 많았습니다. 그때 일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휴. 예전 일까지 다시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오래전 일이지 않습니까.

“예의가 아니지만,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늦은 시간이라 본론을 먼저 들었으면 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주 사장님.

“뵙고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되실까요?”

-흐음. 중요한 일이라면 대충이라도 짐작하게 해 주시죠. 궁금해서 속이 탑니다. 하하하.

“…샤롯 마트 매각 건입니다.”

-……!!

“제가 전권을 받았지요.”

-저는 언제든 시간 됩니다. 주 사장님은 언제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샤롯 마트를 매입할 수 있다면, 홈플러스의 가파른 성장을 기대할 수 있었다.

샤롯 마트는 도시의 중요 길목에 자리잡고 있었고 건물까지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땅을 매집하고 건물을 올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돈이 모자라는 강운 그룹이 아니니 샤롯 마트만 인수한다면 순식간에 점포 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엄중한 보안이 필요합니다. 제가 강운과 접촉한 사실이 샤롯에 알려지면 모든 일이 틀어집니다.”

-보안은 물론이죠. 이후 적절한 보상도 필요하시겠군요.

소속된 회사 모르게 위험 부담을 안고 진행하는 일이다.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민망하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샤롯 마트와 함께 사라질 운명이니까요.”

-정말 전화 잘 주셨습니다. 이젠 저만 믿으십시오. 이 전화로 계속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차명 휴대 전화입니다. 이 번호만 사용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주 사장님. 강수안 부회장님께 보고하고 일을 추진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쪽으로 전화 주신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강 부회장님이 허락하신다면 꼭 전화로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문자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샤롯의 보안이 정말 철저한가 보군요. 기억하겠습니다. 주 사장님. 전화도 저녁 7시 이후에만 걸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주환득의 배신은 예정된 일이었다.

“후우. 그러니 날 너무 몰아붙이지 말았어야지. 이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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