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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209/304)

포상

-강운 그룹 배터리 연구소에서 개발한 신소재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물질의 분리에 성공한 강운 그룹 연구소는 이 물질이 미래 산업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을 이끌 것으로 자신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에 따르면 그래핀으로 불리는 이 물질이 상온에서 구리보다 100배 많은 전류를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전달한다고 합니다. 또한 강철보다 수백 배의 강도를 보이고 신축성도 뛰어난 최첨단 특수 신소재입니다. 향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산업 전반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올 신소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외 각국의 연구소에서도 강운 그룹 배터리 연구소에 그래핀 관련 정보의 공유와 협력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네이처에서도 그래핀 관련 논문을 기다리고 있으며 벌써 노벨상 후보로도 올려야 한다는 여론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틱.

강운모 회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TV를 껐다.

“최 사장.”

“예. 회장님.”

“연구소 연구원들에게 포상금이라도 미리 줘야 하는 거 아냐?”

“그게 좀….”

최학주 사장은 포상금이라는 말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왜?”

“이번 그래핀 발견은 강 부회장님의 지시로 성과를 냈다고 합니다.”

정확한 사정을 몰랐던 강운모 회장은 아들의 이름이 왜 나오나 싶은 얼굴로 말했다.

“강 부회장이 여기서 왜 나와? 지시만 했다고 성과 내면 나는 맨날 지시만 하고 살아야겠네? 내가 반도체 성능을 두 배로 올리라고 지시하면 내 몫을 받을 수 있어? 아니잖아?”

“강 부회장님은 그래핀을 특정하고 연구소에 분리법을 알려 줬습니다. 연구원들이 한 일은 강 부회장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것이 전부입니다. 연구소에서도 발명 포상 관련 지분 비율에 강 부회장님을 4%로 책정해 올렸습니다. 관련 메일을 첨부했는데, 몇 달 전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발송한 메일로 확인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 성과가 이메일에 고스란히 이론으로 들어 있었습니다. 연구원들의 새로운 발명으로 인해 성과가 나온 것이 아니라 이론을 실체화시킨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면 말이 다르다. 뭉뚱그려 지시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방법을 제시했다면 4%도 부족하다.

“…….”

“상식적으로 이해가 힘든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정도가 심했습니다. 갑자기 신소재로 급발진을 하실 줄은….”

반도체 공정을 건드리고 차량 디자인에 손을 대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번엔 신소재 개발을 초기 단계부터 기획했단다.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다섯 가지 방법이 제시되어 있었고, 연구소는 모든 방법으로 그래핀 추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최학주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방법도 없었던 그래핀 추출을 어떻게 다섯 가지나 제안하고 모두 성공할 수 있단 말인가.

강운모 회장도 똑같은 심정이다. 예전에도 겪어 본 일이지만, 겪을 때마다 놀랍다.

“강 부회장은 뭐래?”

“별일 아니라고….”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고도 수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본래 목적은 그래핀이 아니라 실리콘과 그래핀을 이용한 리튬이온 배터리의 성능 향상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노벨상 받을지도 모른다는데?”

“개인이 아니라 연구소에서 받으면 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아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

강운모 회장은 그래핀의 향후 가치를 예상한 보고서를 보고 결정을 내렸다.

“선지급 포상금 200억 책정해서 연구원들에게 지급해. 기자들에게도 관련 보도문 날리고.”

“예. 그럼 부회장님 비율인 4%를 빼고 40억을 지급하겠습니다.”

“연구원들 몫만 200억이라는 말이야. 고작 40억을 포상금이라고 하면 외신에서 뭐라고 하겠어? 배터리 연구소 인원으로 나누면 몇억 나오지도 않잖아?”

수안의 4% 몫으로만 800억, 1%인 연구원들이 200억이다. 총 1,000억의 포상을 진행하라는 말이었다. 외신까지 그래핀에 주목하는 상황이었다.

“5%에 1,000억. 이해했습니다.”

“어차피 앞으로 관련 특허와 산업 기술이 개발되면 그 이상의 효과를 보일 거야. 연구원들도 지분 비율대로 향후 포상금을 확실하게 지급해.”

“부회장님 몫도 말입니까?”

일전에 수안은 관련 포상금을 지급하지 말라고 지시한 바 있었다. 훗날 지급 기한이 지나면 회사에서 이익으로 처리하라는 말까지 했었다.

“그럼 빼려고?”

“…예. 모두 지급하겠습니다.”

“강 부회장은 차량 개발부터 연구소 신소재 개발까지 다 손대고 있잖아. 얼마 안 되는 포상이라도 챙겨 줘야지.”

1조 원이 넘는 돈도 아낌없이 건네는 아들에게 수백억이 뭐가 아쉽다고 미룬단 말인가. 또한 강운모 회장이 전부터 체감하는 바가 있었다. 거액의 포상금을 지급해도 결국 회사의 이득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포상금은 내부에서 연구원들의 탐구열에 불을 지르고 있었고, 외부 인재들이 대우가 좋은 강운 그룹에 문을 두드리게 했다. 포상금이 선순환을 만들고 있었다.

“예. 회장님.”

* * *

강운 그룹 직원들은 이번에 포상금으로 책정된 1천억에 혀를 내둘렀다.

“후아. 이번 포상금은 규모가 후덜덜하네.”

“그래핀이 정확하게 뭔진 모르겠는데, 앞으로 장난 아니라더라. 소재산업의 중심축을 우리 강운 그룹이 가져오는 것과 같다고 했어. 향후 수백 조의 가치가 있으니 1천억도 가볍게 던지는 거지.”

“…지금이라도 주식을 사놔야겠지?”

“회사 주식을 아직도 안 샀어? 지금까지 너 뭐 했냐?”

“뭐 하긴 뭐 해? 주식 했다가 다 꼬라박았지. 앞으로 적금 넣는 대신에 우리 회사 주식을 사야겠다.”

“아마 우리 퇴직금보다 더 많이 나올걸? 20년 근무한 우리 부장님은 벌써 50억 바라보고 있다더라.”

“히익!”

“10년 지나면 우리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거액의 포상금은 강운 그룹 내부에서도 상당한 반향이 있었지만, 외부에서 더욱 크게 반응했다.

[강운 그룹 그래핀 발명자 포상금 1천억 원 규모로 책정.]

[1천억 포상금은 초기 포상금. 진짜 포상은 그래핀이 상용화되면 다시 시작!]

[연구원들의 성지. 강운 그룹엔 박사급 인재들이 우글우글.]

[강운 전자 배터리 연구소! 노벨상이 눈앞에!]

* * *

“부회장님. 그래핀 때문에 난리 났습니다.”

“배 사장은 다른 소식 들어온 거 있어?”

수안은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터져 나오는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미국에서도 주시하는 모양입니다.”

“미국도? 정부에서 말이야?”

“아직 미국 정부에서 들어온 연락은 없었지만, 미국 내 유명 대학과 연구소에서 수도 없이 연락이 들어옵니다. 일이 풀리지 않으면 미국 정부도 나설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강운 그룹으로 전화가 쇄도하고 있었다. 여기에 미국이 빠질 리 없었다.

“아직 상용화까지 갈 길이 멀었는데 말이야.”

그래핀의 분리에 성공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았다. 상용화 단계까지 가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상용화를 함께하고 싶겠지. 빨리 시작하면 시작할수록 시장을 선점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향후 휴대 전화에 들어갈 리튬이온 배터리를 준비하려고 지시했는데, 그래핀을 중심으로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조만간에 배터리 연구소에 들러야겠네. 그리고 또 있어?”

“그리고 회장님이 지시한 1천억 포상금에 부회장님 몫으로 800억이 책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방금 최학주 사장님이 전달해 주셨습니다.”

“그거 어차피 회사에 묵힐 돈이야. 기자들이 알지 못하게 잘 숨겨야겠네.”

포상금을 받지 않더라도 포상금 대부분이 경영진 몫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괜한 입방아에 오르기 쉬웠다.

“바로 지급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왜?”

“…….”

배영성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전화해 볼게.”

수안은 배영성을 앞에 두고 최학주에게 전화를 연결했다.

-예. 부회장님. 최학주 전화 받았습니다.

“예. 최 사장님. 방금 배 사장에게 들었는데, 포상금은 왜 지급하시려고 하세요? 그거 묵혀 두시고 나중에 털어 버리시라니까요.”

-회장님 특별 지시 사항입니다.

“내 포상금 챙겨 주라고 하세요?”

-회장님도 실제 이번 발명의 대부분 공로가 부회장님께 있었음을 확인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미지급한 부분도 모두 집행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세금만 왕창 내려고?’

“우선 알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나 회장님 뵈러 다녀올게. 배 사장은 이제 더블 스타로 가 봐.”

“예.”

수안은 부회장 집무실에서 나와 한층 더 올라갔다.

‘불러서 미리 논의하시면 될 것을….’

“안에 계시죠?”

“네. 부회장님. 회장님께 기별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수안이 왜 자신을 보러 왔는지 알고 있었다.

“포상금 때문이야?”

“예. 외부의 시선이 강운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포상금이 경영진으로 귀속된다면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수안은 나중에 대선에 나갈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구설에 오를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벨상은 부담스러워?”

포상금이 아니라면 노벨상을 받아도 좋겠다 싶은 강운모 회장이다.

“…저 국가 대표 선수 출신에 법학 전공한 사람입니다. 갑자기 신소재 개발로 넘어가면 아무도 안 믿습니다.”

누가 믿어 주겠는가. 지금 수안이 강운 그룹 부회장으로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정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아버지를 잘 만나서 부회장 자리에 앉았다고 보는 시선이 대다수였다.

“…그렇기도 하지.”

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주르륵 신소재 이론을 정립하고 연구를 지시했다. 결과는 성공. 놀랍게도 그 결과가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발견이란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해당 연구소를 소유한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다? 사람들은 일의 진위를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거짓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괜히 소문나면 강운 그룹이 이상한 방향으로 저를 띄운다고 생각할 겁니다. 부회장 타이틀을 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한다고 생각하겠죠. 우리가 미디어를 주무른다고 해도 이건 아닙니다.”

“거참. 아들이 잘났는데, 잘났다고 말도 못 해? 거짓말도 아니잖아?”

보통 잘났어야 말이 되질 않겠는가.

운동을 잘해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오고 공부를 잘해서 한국대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다. 이미 알려진 일이기도 했고 모두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정을 개선, 발전시키고 신소재를 개발한다?

전문 산업디자이너보다 더 뛰어난 디자인을 구상해 내서 제품에 적용한다?

금융 산업에 뛰어들어 국제 투자 은행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다?

어느 하나도 이해시킬 수 없었다. 일반인들이 확인할 수 없는 회사 내의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개 개인이 모든 일에 전문가보다 더한 지식을 갖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실제로 수안은 각 분야의 전문가보다 못한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 미래를 보고 온 특별한 경험이 아니었다면 얻어내지 못했을 성과였다. 신소재를 개발할 기본 지식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내부에선 다 알잖아. 연구원들이 직접 책정한 비율이니까 받아둬.”

수안은 아버지가 포상금을 강요할 때를 대비한 말을 풀어놨다.

“차라리 제 몫의 포상금을 비축해 두셨다가 조금씩 비자금으로 돌려서 모아 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훗날 대선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현금을 준비해 두셔야 합니다.”

“허….”

“혹시나 훗날 포상금 관련 의혹이 일어나도 수습이 쉽습니다. 회사에서 향후 포상을 목적으로 준비금을 만들어 놨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제 명의로 넘기는 일만큼은 절대로 안 됩니다. 긁어 부스럼입니다.”

“하여튼 너도 고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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