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IT 닷컴 버블 (198/304)

IT 닷컴 버블

계약서에 1천억 달러를 반환까지 확정하는 문구를 넣는다면 더 볼 것도 없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3천억 달러에 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프랭크 장관님은 내일도 모레도 저와 계속 회의에 참석해 주시고요. 한 시간도 안 돼서 논의가 끝나면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힘들고 지루한 논의가 있었고 지분 가치를 올리는 대신 배당금을 받아 내기로 했다 하시면 정부도 장관님의 노고를 알아줄 겁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프랭크 장관님의 도움에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프랭크 장관님은 로버트 전 장관님과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되실 겁니다. 제가 약속드리죠.”

“하하하. 우린 좋은 친구가 될 겁니다. 스티븐 회장님.”

“저도 믿음직한 친구가 생겨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수안은 웃으며 프랭크와 손을 맞잡았다. 지분을 넘기기로 했지만, 미국에서 얻을 것은 더 많았다.

‘탈탈 털어먹어야지.’

“아! 내일부터는 회의 장소를 다른 곳으로 바꾸시죠. 골프 좋아하시죠?”

“오. 물론 좋아합니다.”

“하하하. 괜찮은 골프 클럽으로 모시겠습니다.”

“살살 해 주세요. 일전에 로버트에게 들었는데, 스티븐 회장님은 프로와 다를 바 없다더군요. 이번엔 로버트 대신 제가 제물이 되겠어요.”

“로버트는 과장이 너무 심했어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저 프로 시험을 봐도 단번에 통과할 수준일 뿐이다.

* * *

프랭크 빈치와 1차 회의가 끝나고 나서 이방효와 회의 내용을 공유할 수 있었다.

-…미국 정부에 지분을 넘긴단 말씀입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지금까지 100%로 끌고 온 것도 기적 같은 일이고.”

-하지만 25%는 너무 과합니다. 10%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미국 정부의 욕심이 너무 큽니다.

“25%에 4천억 달러를 받기로 했어.”

-……!!!

“너무 저렴하지? 흐흐흐.”

-후우. 그럼 BE의 기업 가치가 1조 6천억 달러로 책정되었다는 뜻이군요. 엄청난 금액입니다.

“원래는 3천억 달러였는데 기업 가치 그대로 내줄 수는 없잖아. 1천억 달러 올렸어.”

-잘 받으셨습니다. 어차피 넘겨줄 거라면 최대한 많이 받아 내야죠.

이렇게 높은 가격으로 거래를 해 둬야 나중에 IPO를 진행할 때 주가를 높일 수 있었다. 게다가 미국 정부의 공신력이 더해진 금액이다. 앞으로 BE의 기업 가치는 1조 6천억 이하로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5년 안에 1천억 달러 이상을 배당하기로 약속하긴 했지만, 어렵지 않을 거야. 평소대로 배당을 지급해도 그 정도는 충분할걸?”

프랭크에겐 상승기의 주식 시장에서 돈을 쓸어 담을 것처럼 말했지만, 진정한 수익은 공매도로 실현될 것이다. 미국과 독일, 한국의 주식 시장에서 발생할 IT 버블 패닉은 곧 BE 인베스트먼트의 이익이었다.

-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IT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면 1천억 달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올해에 1천억 달러를 우선 배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부 인사가 이사회 일원으로 들어오게 되겠지만, BE의 경영에 손대진 않을 거야. 그리고….”

프랭크가 추가 보상으로 제안한 내용도 이방효에게 전해졌다. 이방효는 미국 법인의 지분 취득 제한이 풀린다는 것과 세금을 감면해 준다는 부분에서 특히 만족했다.

-하하하. 프랭크 장관이 상당히 힘을 쓴 모양입니다. 25% 지분이 전혀 아깝지 않네요.

“빚만 늘었지 뭐. 나중에 로버트만큼 갚아 줘야 해.”

-틈틈이 제가 챙기겠습니다.

“벤자민이 또 열일하겠어.”

나중에 보답한다고 했지만, 감사 인사는 그때그때 해 줘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먹이를 물고 오지 않겠습니까.

“맞아. 당장 그만둘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잖아. 미리미리 약을 먹여 둬야지.”

프랭크는 이방효와 수안에게 가마우지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

-덕분에 제약사 인수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겠습니다.

“그 부분은 IT 버블로 전반적으로 장이 내려가고 나서 진행하는 거야. 너무 급하게 움직이지 마. 그때가 되면 여유 자금도 넉넉해질 테니까.”

훗날 시작될 전염병의 예방을 위함이다. 백신의 탄생은 이방효의 손에 달려 있었다.

-예. 회장님.

이방효는 수안이 바이오 산업에 미래를 걸었다고 판단했지만, 실제 바이오 기업이 주식 시장에서 주목을 받기도 하니 절반은 맞춘 셈이다.

“아. 그리고 애플 주식 매각 말이야.”

-예. 조만간 매각 절차가 진행됩니다.

이번에 애플 주식을 매각하고 닷컴 버블이 소강상태에 돌입하면 다시 매입하기로 했었다. 매입 시기는 연말로 정해져 있었다.

“애플에 우선권을 주기로 하지. 투자자로서 예의는 지켜야지.”

예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폭탄을 선물하고자 함이다.

-애플에선 오히려 반기겠습니다.

“…….”

애플의 반응은 둘의 예상대로였다. 많은 지분을 들고 있었던 BE가 스스로 지분을 반납한다는 정보에 온갖 자금을 끌어와 지분을 인수했다.

BE의 지분 매각도 닷컴 버블이 시작되기 전에 얼른 처리해야 했다.

2000년 2월. 미국 BE 인베스트먼트의 지분 25%를 미국 정부에 넘기고 4천억 달러를 손에 쥔 수안은 BE에서 특별하게 출시한 신규 펀드에 모든 돈을 분산해 넣어 버렸다. 4천억 달러는 수백 개의 펀드로 분산해 들어갔다.

-이건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금액의 규모가 너무 컸다.

“일부는 이번 공매도에 추가하고 나머지는 금과 국가 채권에 분산해. 그리고 내년 초부터는 국제 유가에 투자해 줘. 2008년 7월까지 유가는 상승 곡선을 그릴 거야.”

-어디까지 상승하게 될까요.

“2008년 중반엔 배럴당 140달러까지 오를 거라 예상해. 금값은 2005년까지 온스당 500달러를 우습게 넘어갈 거고.”

-힉!

현재는 배럴당 20달러에서 30달러 사이를 오가는 국제유가였다. 앞으로 7배가 오른다면 매해 100%에 가까운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4천억 달러를 2조 8천억 달러로 불릴 수는 없겠으나, 1조 달러까지는 확실하게 벌어들일 수 있었다.

“중국이 떠오르기 시작했어. 대세 상승은 막지 못해.”

중국발 원유 수요가 폭증하며 국제 유가는 널뛰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거액의 자금을 움직이려면 유가만큼 좋은 것이 없죠.

“엑슨모빌이나 쉐브론과의 관계도 돈독하게 유지하자고.”

-물론입니다.

유가가 그렇게 뛰어오른다면 메이저 정유 업계 슈퍼메이저의 주가도 덩달아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거기다 수안이 기억하고 있는 새로운 원유 매장지 개발을 위해서도 슈퍼메이저와의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럼 이번에도 수고해 줘.”

-제 기쁨입니다. 이 재미 때문에 BE 인베스트먼트를 그만둘 수 없을 지경이죠.

“어허. 그만둔다는 소리 하지 마. 나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하하하. 농담입니다.

“뭐 필요한 거 없어? 섬이나 별장은 어때?”

-정말 농담입니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이미 위기를 예측한 사람들에겐 위기가 아니라 기회였다.

* * *

3월 10일 사상 최고 지수를 기록한 한국 증시는 이후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묻지 마 투기장으로 변했던 코스닥 시장의 상황은 암울했다. 최근까지 다수의 벤처 기업은 높은 주가를 이용해 주식을 찍어내고 투자자의 돈으로 새로운 회사를 인수했었다. 다시 주가가 오르면 액면 분할을 통해 주식을 다시 저렴하게 보이도록 만들었고, 무상 증자를 통해 주가를 내려앉혔다. 그래도 기업 이름에 닷컴이나 인터넷이 들어가면 다시 상한가를 기록하곤 했다.

불과 두 달 전에 코스닥 사상 최대 폭등이라는 기사가 나왔는데 이젠 누구도 기대감을 갖지 않는다. 지금은 도대체 이 하락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를 염려하고 있었다. 그런 시장에 돈을 넣어 둔 기관과 개인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작년부터 코스닥 주가조작 사건의 전면 조사가 시작되어 비리 상당수가 확보된 상황이다. 부실 벤처 기업이 코스닥시장에 등록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밝혀지고 있었고 관계 공무원에 금품을 제공한 사실도 드러나고 있었다. 특히 코스닥 시장은 자본금과 거래량, 거래 액수가 적어 주가 조작이 판을 쳤다. 조작이 난무하는 코스닥 시장에 믿음을 갖고 기다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벤처 열풍을 타고 코스닥에 상장한 더블 스타의 한컴도 수십 배가 넘는 상승을 보여 줬지만, 지금은 바닥으로 직행하는 중이다. 다움도 네이보도 IT 열풍에 편승해 코스닥 시장에 안착했지만, 대세 하락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한컴과 다움, 네이보가 수익 모델이 존재하는 희귀(?) 벤처 기업이라는 점이다. 다른 벤처 IT 기업들은 변변한 수익 모델도 존재하지 않아 수백 배가 올랐다가 바닥을 향해 자유낙하를 시작하고 있었다. 매년 적자만 기록하는 벤처 기업에 투자할 사람은 이제 없었다.

고통스러운 버블 붕괴의 신호탄이 시작된 4월 17일 이후는 대세 하락장이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뒤늦게 각국의 중앙 은행에선 거품 진화에 뛰어들었지만 패닉 장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FRB(Federal Reserve Bank: 미국 연방 준비 제도)에서 기준금리를 5% 올린 것을 시작으로 향후 1년간 6.5%까지 인상하게 되고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5.25%까지 올리지만, 반 토막 이하로 떨어지는 지수를 잡을 수 없었다.

“으하하하.”

하지만 하락장을 보며 웃는 사람도 있었다.

“잘도 떨어지는군. 올해 인센티브도 충분히 확보했어.”

“다들 상승장에 베팅할 때 우리만 하락장에 베팅했잖아. 도대체 우리 회사 CEO는 어떻게 된 사람이야?”

이들이 집행한 공매도는 모두 이방효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게 중요해? 우리가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월 스트리트의 다른 회사들은 죽어나고 있는데 말이지. 흐흐흐.”

다들 곡소리가 나는데 BE의 각 지점만 큰 수익을 보고 있었다.

한국에서 판매한 YⅡK 2호 펀드도 큰 수익률을 보여 주고 있었다.

* * *

주식에 돈을 넣었다가 쪽박을 찬 사람도 많았지만, 요즘 펀드에 가입한 사람들도 손실을 본 펀드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증권사에 연락해 욕을 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수안의 지시로 펀드에 가입했던 박성호도 마찬가지였다. 박성호는 참고 참다가 펀드 가입 6개월 만에 BE 한국 지점에 연락했다. 지금까지는 오히려 너무 걱정이 커서 연락하지 못했지만, 바닥을 치는 주가를 보고 있자니 더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퍼센트라고요?”

-펀드 가입하고 6개월이 지난 현재 펀드 수익률은 약 350%입니다.

“사, 삼백오십프로?”

-중도 해지하시면 최저 보장 수익률 50%만 지급됩니다. 해지하시겠습니까?

성호는 아찔한 제안에 버럭 소리쳤다.

“중도 해지라니! 그냥 두세요!”

-훗. 농담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고객님. 좋은 기회를 잡으셨어요.

“350%라니….”

-사실 저도 가입했습니다.

“우아! 그쪽도? 저도 축하드립니다.”

-고객님처럼 많은 돈을 넣지는 못했어요. 아쉽게도….

박성호는 수안의 강권에 지금까지 주식으로 불린 자금 전부를 펀드에 넣어뒀다. 거금 7천만 원이다. 350%의 수익이 났다면 원금을 포함 3억이 넘는 돈이 펀드에 들어 있다는 말이었다.

“저런.”

-다른 안내가 필요하실까요?

“아닙니다. 수익률 안내 감사했습니다.”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BE 인베스트먼트 콜센터 최소라였습니다.

전화를 내려놓은 박성호는 마른세수하며 정신을 차렸다.

“푸하. 수익률이 350%…. 미쳤어.”

외부에 판매한 펀드는 오히려 수익률이 낮은 편이다. 일부는 주식과 채권에 분산했기 때문이다. 일부 공매도에 들어간 자금만으로 총 수익률 350%를 달성한 것이다. 내부 자금으로 운영하는 BE 인베스트먼트의 고위험 펀드 중 하나는 800%에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 * *

스티브는 속절없이 떨어지는 애플의 주가를 눈뜨고 지켜봐야 했지만, 다시 반등하는 주식에 안심했다.

“젠장. 그래도 반등이 시작되니 다행이네.”

회광반조와 같은 반등일 뿐이다.

2000년 8월에 고점을 찍고 12월 말에는 고점의 25%까지 하락할 예정이다.

반 토막도 아닌 1/4토막. BE에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린 다른 기업들과 달라!”

착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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