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권-굵은 소금 (192/304)

굵은 소금

용던

2% 부족할 때

작은 선물

우리 집에 놀러 와

1조 달러

IT 닷컴 버블

10억? 10억!!

전용기

여행 계획

테러 대비

데자뷔

대면

처가댁

비행

겸손과 존재감 사이

그래핀

포상

의혹은 꼬리를 물고

단독 특집

소득에 걸맞는 소비

백화점 털어먹기

고쳐지지 않는 습관

이벤트

굵은 소금

“괜히 와서 욕만 먹고 갈 것 같으니 여기 주 사장님을 대신 보내셨겠지.”

“샤롯 그룹이 크게 실수했군요. 그래도 그렇지….”

“그, 그건 아닙니다.”

“주 사장님 입으로 인정해 달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난 그렇게 이해했고 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니 준비해 온 내용이나 풀어놓으십시오.”

주환득은 얼굴을 살짝 붉히고 말했다.

“그 부분은 확실히 오해라는 걸 먼저 말씀드립니다.”

“됐습니다. 그래서 홈플러스가 할인을 중단하면 무슨 혜택을 주시려고 했을까요?”

“가, 같은 가격으로 판매하더라도 홈플러스의 강점이 있으니 마트의 수익률은 상승할 겁니다. 그리고 현재 홈플러스가 입점한 지역의 10km 이내에는 샤롯 마트를 개점하지 않겠습니다. 불필요한 경쟁으로 서로 간 출혈을 감수하는 것보다 수익을 생각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전국에 마트를 확장하려면 서로가 선을 지켜야 합니다.”

수안은 주환득 사장의 말을 듣고 다시 배영성에게 말했다.

“이봐. 아무것도 안 내주고 그냥 할인 행사 접으라는 거잖아. 홈플러스는 이미 포기했다니까.”

“정말이군요. 그리고 포기보다는 공동의 적으로 삼는다는 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 아닙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 봐야 정황이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샤롯 그룹은 주환득 사장에게 변변한 무기 하나 없이 전장으로 내보낸 것이다. 그러니 남은 건 얻어맞는 결과밖에 없었다.

“이보세요. 주 사장님.”

“예, 예. 부회장님.”

“홈플러스는 이익이 없어도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습니다. 강운 그룹이란 말입니다.”

이익이 없어도 돈이 넘치는 강운 그룹이 마트 확장에 애를 먹겠는가. 이미 각 도시에 부지를 확보해 두었다. 군 단위까지 마트 건설 계획을 세워두고 자본금을 확충했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마트를 확장할 수 있었다.

“…….”

“할 말 끝났으면 이만 가셔도 좋겠습니다.”

축객령이 내려지자 배영성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주환득 사장 곁으로 갔다.

“이제 일어나시죠. 주 사장님.”

“무례하게 찾아왔음에도 만남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마지막 인사는 잊지 않았다.

“멀리 못 나갑니다. 샤롯 신 회장님께는 강운 그룹과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하셔도 좋겠습니다.”

“…….”

“뉴월드 마트라도 할인 행사 제지를 성공시키셔야 할 텐데…. 신 부회장님은 좋은 소식 있으실지 모르겠군요.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주환득 사장은 쫓겨나듯 샤롯 마트로 돌아가야 했다.

* * *

비슷한 시각.

샤롯 그룹 신희태 부회장은 뉴월드 유통 그룹 강지수 회장과 정지훈 전무를 만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강 회장님.”

“반갑습니다.”

“정 전무님도 더 헌앙해졌군요.”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이런 아들이 회사에서 버티고 있으니 회장님은 든든하시겠습니다.”

“별말씀을요. 앉으세요.”

잠시 가벼운 대화로 시간을 보낸 신희태는 천천히 본론을 꺼내 들었다.

“홈플러스의 성장세가 너무 급작스럽습니다. 할인 행사를 하더라도 정도를 지켜야 하는데 기한도 없이 진행하는 데다가 가격도 너무 심각하게 내렸어요. 이러다가 마트 사업을 영위하는 모든 기업이 직격탄을 맞게 생겼습니다.”

“이미 직격탄은 맞았죠. 홈플러스는 조금 심했어요.”

강지수 회장이 동조하자 신희태는 작은 미소를 보였다.

‘다행히 대화가 잘 통하겠어.’

“해서 마트 사업을 영위하는 우리끼리라도 공동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미 다른 기업과는 얘기가 진행되고 있답니다.”

아직 진행된 것은 없지만, 뉴월드가 동참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호오. 그래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우선 우리 샤롯 그룹은 샤롯 제과에서 생산하는 제과나 음료를 홈플러스에 제공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샤롯 무역을 통해 수입하는 물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마트에서 매입하는 거래 업체들에 홈플러스에 물품을 공급하지 않도록 공동 대응을 진행하려 합니다. 홈플러스를 제외한 모든 마트가 요청한다면 업체들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뉴월드 유통의 공급 중단은 상당히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죠.”

이것이 샤롯 그룹의 무기였다. 오로지 홈플러스를 향한 공격만 준비하고 있었으니 주환득 사장이 무슨 혜택을 준비하고 수안을 만나러 가겠는가. 주환득이 수안에게 말했던 내용도 스스로 준비한 것이지 총수 일가에서 듣고 간 것이 아니었다.

“말려 죽이자? 홈플러스는 강수 제과에서 생산하는 공산품만 판매할 수 있게 되고 남은 것은 강점인 신선 식품과 육류 정도가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홈플러스의 반격도 예상에 넣어 두셨을까요?”

“…….”

오로지 공격만을 계획하고 성공한다고 가정했기에 반격까지는 예상하지 않았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을까.

신희태가 부회장 타이틀을 달고 활동한 것은 2년 남짓. 아직 경영자로서의 마인드가 무르익을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다 샤롯 회장을 아버지로 두고 있었으니 자신의 공격에 반격을 예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강운의 반격….’

“신 부회장님도 이 부분을 생각하셨겠죠.”

‘…어라?’

“그래요. 샤롯에 제과와 음료 사업부가 있듯이 강운에도 제과와 음료 계열사가 있어요. 강수 제과는 해태제과까지 먹어 치우고 성장한 거대한 기업이죠. 만약 강운에서 모든 마트에 제품 공급을 중단하면 인기 제과와 음료를 사기 위해 무조건 홈플러스로 간다는 선택지가 나올 수 있습니다. 아주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어요.”

“……!”

‘같은 방식으로 강운 그룹이 반격한다면….’

강지수 회장의 말대로 강수 제과와 음료 전부가 마트에서 판매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강운 무역이 관리하는 모든 상품을 홈플러스가 독점 판매하게 될 것이다. 강수 제과의 상품은 샤롯 제과를 포함해 다른 제과업계를 누르고 판매량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거기다 강운 무역이 대체상품을 수입해서 판매한다면 국내 업체의 공급 중단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어.’

“신 부회장님의 대안을 들어 보고 싶군요.”

“…….”

당장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침 강지수 회장이 대안을 언급해 주지 않았다면 곤란할 뻔했다.

“아마도 신 부회장님은 일본 샤롯을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거다!’

신희태는 강지수 회장의 말에 얼른 맞장구를 쳤다.

“그, 그렇지요. 일본에서 고급스러운 과자와 음료를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대항할 수 있습니다. 강운 무역의 공산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서 생산하는 공산품은 질적으로 국산과 차원이 다릅니다. 공급은 샤롯에 맡겨 주십시오.”

“흐음….”

강지수 회장은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신 부회장님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뉴월드는 공동 대응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거의 다 넘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도출되었다.

“이번 할인 행사는 홈플러스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강운 그룹 강운모 회장님의 지시로 시작되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강지수는 수안에게 들었던 그대로 말했다. 아들이 수안에게 다녀와서 상황을 설명한 다음 직접 통화하며 뒷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 할인 행사는 정부에 미리 알리고 진행하는 사안이라고 하더군요.”

‘정부? 사기업의 할인 행사에 왜 정부가….’

“강운모 회장님이 IMF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국민에게 작은 혜택이라도 나누고자 기획한 행사라고 합니다. 정부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요. 거기다 홈플러스는 강운 그룹의 자본이 뒤에서 받쳐 줍니다. 일정 손해도 감수할 수 있어요.”

뉴월드가 홈플러스의 행사와 발을 맞추는 이유도 이어서 나왔다.

“좋은 일이니 뉴월드도 동참하겠다고 알렸습니다. 게다가 사사로이 제 오라비가 아닙니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뉴월드는 강운의 홈플러스와 자본이 다르지 않습니까. 손해는 어떻게 만회하시려고요?”

겨우 계열 분리에 성공해 놓고 다시 강운 그룹의 자본을 받으면 독립적인 경영 환경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다.

강지수 회장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할인 행사는 정부와 대통령에게 좋은 일이지만 정부에서 혜택을 줄 일은 없었어요. 결국 점유율이 올라가며 이득을 볼 테니까 홈플러스에도 나쁜 일이 아니죠.”

신희태는 뻔한 얘기를 왜 하나 하는 표정이다. 강지수 회장은 표정을 관리하며 이어서 말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죠. 누군가 정부가 좋아하는 그 행사를 막으려고 기업 카르텔을 구성해 물품 공급 중단, 해외 물품 수입을 전면적으로 실행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정부가 철퇴를 내리지 않을까요?”

“……!!”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대통령과 정권의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기특한 행사에 재를 뿌린다면, 각종 제재가 가해질 수 있었다.

“이익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당사의 손해는 우선 감수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바짝 몸을 낮춰야 해요. 현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많이 남았답니다.”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강지수 회장이 떠먹여 주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한 신희태 부회장이다.

“강 회장님.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강운 그룹 총수가 지시해 정부까지 등에 업고 실행하는 행사라면 말릴 방법도 없고 대응할 방법도 없었다. 그저 발을 맞춰 따라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이번에 마트 사업을 접을 뻔했군.’

말라죽느냐 당장 죽느냐의 차이였다. 공격하면 정부의 철퇴를 맞아 당장 사업을 접어야 했고 같이 따라가면 결국 손실만 보다가 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그럼 앞으로 무슨 수를 써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신희태의 상념이 이어지기도 전에 강지수 회장의 말이 들려온다.

“다른 마트와 연합 전선을 만드셨다니 조심스럽게 대응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

연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샤롯과 뉴월드가 그 시작이 될 거라 착각했을 뿐.

“말씀을 새겨듣지요. 오늘 정보 감사했습니다.”

신희태 부회장을 배웅하고 집무실로 돌아오던 강지수 회장이 비서에게 말했다.

“최 비서.”

“예. 회장님.”

“밖에 굵은 소금이라도 좀 뿌려.”

“…예.”

곁에 있던 지훈이 강 회장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려 입을 열었다.

“샤롯도 오래 못 가겠습니다.”

“신 회장님은 저런 멍청한 놈을 아들이라는 이유로 부회장까지 올려줬다니?”

무턱대고 공격만 생각했음을 뻔히 짐작하고 일부러 방향성을 제시한 강지수 회장이다. 오늘 대화의 흐름은 온전히 강지수 회장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생각을 좀 하면서 살아야 할 거 아니야?”

“그렇죠. 감히 강운 그룹에 대항할 생각을 하면서 뉴월드로 찾아온 것부터가 생각이 짧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계열을 분리했어도 일부 지분은 강운 그룹에서 갖고 있다. 완벽하게 독립된 계열사가 아니라 범 강운 그룹이다. 강운 그룹에 위기가 닥쳐오면 발 벗고 뛰어들 각오도 있었다. 가족의 끈은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는 법이다.

“넌 어디 가서 저런 허술한 마인드로 사람 만나지 마. 앞뒤 다 파악하고 완벽하게 준비해서 대처하란 말이야. 그리고 수안이는 특히 더 조심하고. 걔가 어디 보통 사람이니?”

“…그래도 저는 잘해 줍니다.”

“그래도 친척이라고 챙겨 주는 거지. 걔는 어떻게 된 애가 인성까지 좋아? 어디 모자란 구석을 찾을 수가 없어.”

홈플러스로 생긴 오해도 다 풀었고, 프리미엄 아울렛 사업 건을 양보한 것으로 좋은 감정도 한껏 올라와 있었다.

“너! 수안이 선물로 뭐 해 줄지는 생각해 봤어?”

“아직….”

“넌 무슨 생각으로 지금까지 안 찾아 놓고 뭉개고 있었어? 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