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이!
“그래도 적당한 수준이지. 포상으론 5%를 책정하셨으니까….”
“네?”
돈으로 정해진 줄 알았다. 그래서 금액이 얼마인지 들으려 기다리고 있었는데, 퍼센트라는 단위가 나와 일순 이해하기 어려웠다.
“5%라고 하셨습니까? 5%의 기준은 뭘 말씀하시는 건지….”
“뭐긴 뭐야? 지금까지 자네 덕에 기생충 같은 놈들에게서 회수한 50억을 말하는 거지.”
강운 그룹 발명 포상은 5%로 정해져 있었다. 50억의 5%는 2억 5천에 이른다.
“50억의 5%요? 그럼…. 2억 5천?”
“역시 영수 씨는 영업팀이라 계산이 빠르네.”
“자, 잠깐만요. 어떻게 계산이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까? 분명 회사로 돌아가야 할 돈을 찾아 준 것에 불과하고 저는 제보받은 일을 사장님께 말씀드린 것이 전부입니다. 그 정도로 포상을 받을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보자에게 그런 포상을 할 수는 없는 일이야. 그랬다간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아. 서로 제보하느라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겠지.”
“그야….”
“하지만 자네는 달라. 포상을 받는다고 다시 포상을 위해 일을 만들어 낼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비밀이 지켜지기도 쉽지. 자네가 받은 포상금은 자네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할 거야. 그러니 부서에도 함구하도록.”
“…….”
“부서에서 팀장 이하 팀원들이 다 자네를 좋게 봐주고 도와주고 있다 들었어. 정 마음에 걸리면 식사 대접이라도 해.”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불합리 제보가 엄청난 돈으로 돌아왔다.
‘…이거. 뭔데?’
제보로 이사와 부장들이 갈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충분히 자신의 제보가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부장님 이하 팀원들의 충고가 있었기에 사장에게 보고하는 건은 최소한의 사실확인을 거치며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자칫 무고한 직원을 코너로 몰아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내에 작은 것에 불과할 자신의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권력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매제를 통해 전해진 자신의 작은 권력. 이제는 여기에 돈을 더해야 했다.
‘천만 원도 아니고 2억 5천이라니….’
포상이라는 말에 최대로 생각해 천만 원을 예상했었다. 그래서 농담처럼 내 덕이라고 말하며 포상금을 편히 받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데요?”
“많기는 뭐가 많아? 부회장님 한 달 급여도 안 되는데.”
“…….”
여기서 부회장님 급여가 왜 나온단 말인가. 매제가 얼마를 받건 영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다.
“헐.”
“영수 씨랑 술 먹으면 큰일 난다며? 부회장님이 괜히 그 돈으로 술사라는 엉뚱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어려운 술자리까지 막아 준 매제였다.
“…제가 술이 좀 약하긴 합니다.”
“우리가 괜히 밖에서 만나 봐야 말이나 많아지겠지…. 우린 회사에서 공적으로만 보기로 하자고.”
“예. 사장님.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조만간 금액 확정해서 쏜다. 물론 세금은 떼고 나갈 거야. 나중에 세금 내느라 허리가 휠 수도 있거든. 세금으로 1억은 떼인다고 각오해.”
“부,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수는 얼떨떨한 기분 그대로 사장실에서 나왔다.
“안녕하세….”
이젠 매일 봐서 익숙할 지경인 여비서의 인사도 무시하고 지나갔다.
‘…썩을. 이젠 투명인간 취급이네.’
영수가 로열 패밀리의 일원임이 알려지고 나서 김 사장의 여비서는 영수에게 꾸준하게 자신을 어필하고 있었지만, 영수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회사에선 일만 하기에도 벅차다.
‘세금 떼면 1억이라 치고…. 이걸로 뭐 하지?’
지금 영수의 머리에는 억 단위 돈으로 가득해서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었을 뿐이다.
“아! 여동생하고 상의해 봐야겠다.”
매제가 이미 결정했지만, 여동생과 상의는 해 봐야 했다.
* * *
“뭐? 수안씨가 오빠 돈을 챙겨 줘?”
-난 생각도 안 했는데 좀 많이 챙겨 주긴 했어. 2억이 넘어. 세금을 떼고 나면 1억 조금 넘겠지만, 그래도 큰돈이지.
“…알았어. 내가 얘기해 볼게. 우선 어디 쓰지 말고 잘 갖고 있어. 오빠.”
-…돌려줘야 하나? 그게 맞겠지?
“…….”
아현은 고작 1억으로 이러는 것도 아니다 싶었다.
“아니야. 오빠. 오빠 쓰고 싶은 대로 써. 돌려줄 필요는 없겠다.”
돌려주려면 자신이 돌려줘도 된다.
-그래? 알았어. 다행이다.
“그리고 집 이사가 코 앞인데 왜 안 온 거야? 하루 연차 내고 오라니까.”
-내가 회사 일이 좀 바빠야지. 집은 괜찮아?
아직 거대한 집의 위용을 보지 못한 영수다.
“적당해.”
-적당하다니 다행이네. 뭐든 적당한 게 최고야.
“그리고 기존 집은 오빠에게 준다고 하셨어. 나중에 오빠 결혼하면 신혼집 하라고.”
집을 두 채나 갖고 있을 필요가 없어 한 채는 영수 명의로 변경하고 세대를 분리하기로 했다. 어차피 나중에 결혼하고 분가도 생각하고 있을 테니, 미리 집을 주기로 한 것이다.
-오오!
“집 생겼다고 좋아하기 전에 오빠는 애인부터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럴 시간이 어딨어? 이제 회사에서 자리 잡는 중인데.
“그래도 잘 찾아봐. 둘째 시누이는 계속 맞선 보는데도 쉽게 고르기 힘든가 보더라고.”
-그 집안은 사는 세상이 다르잖아. 난 알콩달콩 연애하면서 결혼할 사람 만날 거야.
“…행운을 빌어. 오빠.”
-야! 내가 못 만날 것 같아?
“나 바빠서 이만. 촬영 중에 잠깐 나왔거든. 나중에 얘기해 오빠.”
-야! 너 제대로 말 안 해?
아현은 얼른 전화를 끊었다.
“차라리 맞선을 보시든가….”
아현은 소심한 오빠가 연애하기는 쉽지 않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빠에게 돈을 줘?”
집에 가서 남편과 할 얘기가 생겼다.
“매니저님! 다음 촬영 시작합니다. 배우 준비시켜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임 배우님. 이제 촬영 시간입니다.”
“알았어요. 박 매니저님.”
지금은 촬영에 전념해야 했다. 조선 시대 내의녀 복식을 차려입은 아현은 배역과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촬영장 가까이에 가자 감초 역할의 선배 배우가 촬영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홍춘이.”
“왜, 왜 이러십니까.”
“아무 말 말게. 사람 죽겠네. 아무 말 말어.”
“아이구. 어머머. 왜 이러십니까. 이러지 마십시오. 남들이 볼까 무섭습니다.”
와락 상대 배우를 껴안는 선배의 모습이 너무나 해학적이다.
“컷! 좋아! 아주 좋았습니다!”
컷 사인이 떨어지고 나서야 아현은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풉.”
신스틸러가 따로 없었다.
이미 동의보감 허준의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었고, 덕분에 타사 경쟁 드라마의 시청률은 3%에도 못 미치는 기록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대로만 가자. 이대로만.’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아현에게 함부로 하는 방송국 직원들도 없었다. 아현이 누구의 아내인지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수안이 따로 지시했는지 더블 엔터에서 전방위적인 지원이 촬영장에 쏟아진다. 때가 되면 맛있는 밥이 배달되고, 종종 커피까지 배달되어 온다. 촬영장의 작은 배역을 맡은 배우들도 이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아현 덕분에 가능했기에 배우들 사이에서도 아현의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아현은 콧대를 세우지 않고 선배 배우들을 대우했다. 덕분에 주연급 배우들도 아현을 배려했고 연기에 대해서 조언해 주길 주저하지 않았다. 아현에겐 꿈같은 촬영 현장이었다.
이것이 조만간 시청률 60%를 넘어설 역대급 드라마의 촬영장이다.
해외에 나가서는 8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하는 이번 드라마는 아현의 커리어에 길이 남을 예정이다.
“어이쿠. 홍춘이! 예진 아씨가 다 봤어!”
“그만 해요. 아현 씨~ 다음 촬영이네~”
“네에. 저도 한 컷으로 끝내보겠습니다~”
“하하. 그래~”
* * *
수안은 집에 돌아와 아내가 없는 집에서 허전함과 아쉬움을 달래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원이는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나현이 목욕시키고 나면 같이 목욕하자.”
“응. 아빠.”
아이를 돌봐주는 아주머니들이 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들 목욕만큼은 부부가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오늘은 아내가 없으니 수안이 도맡아 시켜야 한다.
아기 티를 벗지 못한 나현이는 따스한 물에서 물장구를 치며 수안을 곤란하게 했다.
“워워. 나현아 물에 오래 있으면 감기 걸린다니까.”
“꺄아~”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후다닥 목욕을 시키며, 그 와중에 혹시라도 아기가 넘어져 다치지 않도록 긴장했다.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며 끝을 볼 때까지 계속 긴장을 유지해야 했다.
“나현이 끝.”
나현이는 목욕을 마치고 뽀송뽀송하게 변했지만, 수안은 홀딱 젖어 버렸다.
나현이 목욕을 마치면 매번 이렇게 되곤 했다.
“오늘도 결국 다 젖었네.”
어머니에게 나현이를 맡기고 아들과 목욕을 시작했다. 탕에 물을 받아 목욕하는 걸 좋아하는 정원이를 위해 뜨끈하게 물을 받고 먼저 탕에 들어갔다.
“으허. 시원하다.”
시원하다는 말에 후다닥 탕에 들어갔던 정원이는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아뜨뜨!”
“푸흐흐.”
“아빠 거짓말쟁이! 맨날 시원하다고 거짓말해.”
“하하하.”
매번 당하는 아들이 너무 귀엽다.
발가락 끝부터 조금씩 뜨거운 물에 적응하던 정원도 뜨거운 탕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따뜻하다~ 아.”
“흐흐. 시원한 느낌은 없어?”
“하나도 안 시원해!”
“너도 나중에 아빠만큼 크면 시원하다고 할걸?”
“아니야. 뜨거운 건 뜨거운 거고 시원한 건 시원한 거지.”
“푸흐흐. 아들 일루 와. 오늘 때 밀자.”
“으윽. 아픈데.”
“살살 해 줄게.”
“진짜로 살살해야 해.”
수안에겐 이런 시간이 행복이었다. 아들이 조그만 손으로 등을 밀어 주는 감각은 행복을 가슴 가득 채워줬다.
“아빠 등은 너무 넓어! 끝이 없잖아.”
“하하하. 더 세게 밀어 봐.”
늦은 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옆에 누워 있을 때 아현이 들어왔다.
딸깍.
“음…. 왔어?”
“깼어요? 계속 더 자요.”
“괜찮아. 아직 난 잠들 시간이 아니라 그냥 옆에 누워 있었어.”
수안은 이불을 다시 덮어 주고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촬영하느라 수고 많았어. 여보.”
“당신도 애들 돌보느라 수고했어요.”
“당신도 얼른 쉬어. 또 금방 나가야 하잖아.”
촬영이 끝나고 집에 들어왔다고 해서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연예인의 시간과 직장인의 시간은 전혀 다르다. 낮이고 밤이고 촬영은 시도 때도 없이 시작된다.
“그러게. 너무 긴 드라마를 골랐나 봐요. 내년까지 계속 이럴 텐데….”
“그래도 당신이 즐겁잖아. 그거면 됐지.”
“당신이 지지해 줘서 이렇게 다시 복귀했어요.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수안이 아니었다면 강운 그룹 며느리인 아현이 어떻게 배우로 복귀했겠는가. 아버지를 기어코 설득시켜 아내의 연예계 복귀를 밀어붙인 수안이다.
“아까 어머니께 들었는데 아버지도 당신 나오는 드라마 즐겨 보신다고 하더라. 앞으로 푹 빠져서 보실 것 같아.”
“어머. 그래요?”
“나중엔 자랑하고 다니실 수도 있지.”
“에이. 설마.”
부부는 못 나눈 대화를 나눴고 아현은 오빠와의 일이 떠올랐다.
“여보. 오빠한테 돈은 왜 줬어요?”
“돈? 아~ 포상금? 원래 줘야 하는 거야.”
“원래? 당신이 줬다고 하던데요?”
“에이. 김 사장이 알아서 하려다가 나한테 의견을 물은 정도야. 원래 회사 규정에 있는 일이라 거기까지만 허락했어. 설마 내가 형님한테 일부러 더 주겠어? 그랬다간 괜히 잡음만 생기지.”
“그래요? 억 단위로 주는데도 그게 규정이라고요?”
그런 규정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형님은 적은 편이야. 포상 많이 받는 직원은 수십억 단위로 받는다고.”
실제로 연구 개발팀에서 새로운 발명을 성공시키고 받은 사례가 있었다.
“우아. 그랬구나.”
“나중에 형님도 회사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가 있으면 그만큼 받을 수 있어. 그때도 정해진 규정대로 지급할 생각이니까 잘 기억해 둬.”
“괜히 당신이 더 챙겨 준 줄 알고 걱정했어요.”
“그리고 내가 좀 챙겨 주면 어때? 집안 단속한다고 너무 열 올리지 마. 형님이 그럴 분도 아니고 아버님, 어머님도 그럴 분들이 아니시잖아.”
“미리미리 단속해야 나중에 문제가 안 생겨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막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