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집 구경 (183/304)

새집 구경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진 않으시죠? 두 거대 금융사는 문제가 참 많으니까요.”

“예전이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프랭크 회장이 죽고 잭 회장까지 저렇게 된 지금은 가능하지.”

잭 피에타 회장이 멀쩡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1급 살인죄가 확정되고 살해된 피해자의 가족들이 소송을 시작하면 모건 스탠리는 끝도 없이 시달리게 된다. 모건 스탠리의 평판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미국에서 은행 영업을 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어딘가에 흡수 합병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그나마 다행이다. 모든 일의 중심인 프랭크 골드만 회장이 이미 사망했기에 회사에까지 영향이 미치기 쉽지 않았다. 골드만삭스가 모건 스탠리를 흡수하기도 쉽고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자신이 회장 자리를 차지하는 일도 쉬워진다.

“BE 인베스트먼트는 미국 최대 은행의 회장이 될 로버트를 물밑에서 지원하겠습니다. 골드만삭스 이사회는 이미 대부분 회유했고 남은 것은 모건 스탠리입니다.”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벌써 골드만삭스에서 일을 진행했군. 좋아. 좋아.”

“스티븐 회장님은 가볍게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분 입에서 나오는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질 겁니다.”

“난 스티븐 회장을 100% 신뢰하고 있다네.”

“다행이군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로버트 회장님.”

“큭. 너무 급하지 않은가?”

“미리미리 익숙해져야죠. 미국 최대 금융 그룹의 회장이 되실 분이니까요.”

“생각만으로 즐겁군. 하하하.”

이방효는 방금 생각났다는 듯이 갈색 봉투 하나를 꺼냈다.

“아! 이걸 드린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뭔가?”

“스티븐 회장님이 드리는 선물입니다. 언제나 로버트 회장님을 각별하게 생각하시니까요.”

로버트는 갈색 봉투를 열어 슬쩍 내용물을 확인했다.

해외 어딘가에서 개설되었을 계좌였다. 일부러 자세하게 확인하지 않았다.

‘스티븐 회장은 항상 날 놀라게 만들지.’

이방효 앞에서 놀라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훗. 뭘 또 이런 걸 준비하고 그러나.”

이번 일에 자신의 역할이 지대했기에 호의를 받아도 된다는 의식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프랭크 골드만 회장 자택에 직접 사용하던 샷건이 많았습니다. 로버트 회장님도 클레이 사격을 즐기신다고 하니 전부 가져가시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프랭크 회장의 명품 샷건 컬렉션을 내가 가져도 된다고?”

로버트는 프랭크 회장이 얼마나 많은 컬렉션을 모아뒀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집에는 한 정에 수억 원을 호가하는 명품 총기들이 가득했다.

“스티븐 회장님께는 필요 없는 물건이니까요. 대신 저도 하나만 남겨 주십시오. 앞으로 배워 볼 생각이거든요.”

“하하하! 물론이지. 명품으로 남겨 주겠네. 스티븐 회장의 샷건도 남겨둬야겠군. 나중에 같이 클레이 사격이나 하러 가세. 재미있을 거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

1999년 4월 26일. 예전 수안이 경고했던 CIH 컴퓨터 바이러스가 전 세계 수많은 PC를 파괴했다.

“이거 왜 이래?”

“너도? 야 나두!”

관공서와 회사, 가정에서 사용하던 수많은 컴퓨터가 먹통이 되었다.

단단한 방비를 자랑하던 기업들도 다르지 않았다.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던 회사까지 당했다.

국내 포털사이트에서는 일명 체르노빌 바이러스로 불리는 CIH 바이러스에 관해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CIH 바이러스가 26일 작동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CIH 바이러스는 PC 중에서 운영체계(OS)로 윈도 95/98을 사용하는 컴퓨터에 피해를 입히는 컴퓨터 바이러스로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발생일에 작동하기 때문에 ‘체르노빌 바이러스’로도 알려져 있다.

CIH 바이러스는 PC에 감염되면 스스로 자신을 퍼뜨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일단 작동하면 하드디스크를 지워 버리고 컴퓨터를 작동하는 기본 입출력 시스템(BIOS)를 파괴, 컴퓨터를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

…중략….

CIH 바이러스의 피해를 막으려면 CIH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치료할 수 있는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이용해 미리 자신의 PC를 검사해야 하며 CIH 바이러스가 발생하는 26일 이전에 컴퓨터 날짜를 조정하는 것도 임시방편이 될 수 있다.

현재 더블 스타 산하의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업체인 안랩에서 나온 V3를 설치한 컴퓨터는 정상적으로 사용 가능하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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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도 김현성 사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 받았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곳에서는 대부분 문제가 터졌고, 복구 문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전화가 너무 많이 들어옵니다. V3 주문 전화가 대부분입니다.”

이번 바이러스는 국내 백신인 V3의 우수성이 해외에 널리 알려지도록 만들었다. 시중의 바이러스 백신 중에서 V3가 가장 완벽하게 이번 바이러스를 막아냈기 때문이다.

해외 반응은 익히 예상했던 일이라 국내 문제를 다시 물었다.

“우리 쪽 피해는 없지?”

“미리 알고 대비했으니 문제는 생길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계열사 대부분이 SJ 컴퓨터로부터 납품받은 PC를 사용했습니다.”

최근 SJ 컴퓨터에서 판매하던 컴퓨터는 메인보드에 바이오스 변조 방지 기술을 적용해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 V3를 의무적으로 PC에 깔아 두는 강운 그룹 계열사와 더블 스타 계열사, BE 인베스트먼트 쪽은 피해가 전무합니다.”

오직 SJ 컴퓨터에 들어가는 메인보드만 바이오스 두 개를 넣는다. 두 개가 모두 죽지 않는 이상 컴퓨터가 구동되지 않을 일은 없었다. V3를 깔지 않아도 컴퓨터가 먹통이 되지 않도록 대비한 것이다. 또한 V3에 CIH 바이러스를 미리 찾아내 제거하도록 프로그래밍했으니 중간에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효과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국내 피해는 상당수 줄일 수 있었다. 일부 V3를 사용하지 않았던 PC들은 바이러스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어야 했지만, 해외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정부 부처에서도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V3 덕분에 관공서 피해가 줄었다는 치하와 아직 V3를 도입하지 않은 지방에도 모두 납품을 진행해 달라고 했습니다. SJ 컴퓨터도 다시 우상향 판매 그래프를 그릴 것으로 예측합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안 사장에게 국내 관공서 납품할 서류 준비하고 해외 진출에도 신경 쓰라고 전해 줘. SJ 컴퓨터 장 사장은 관련 내용 홍보에 꼭 넣으라고 해. 오직 SJ PC만 바이오스가 두 개! 이렇게 확실하게 어필을 해 줘야 알아준단 말이야.”

“예. 회장님.”

* * *

세기말이 도래하며 세계 경제가 주목하는 분야는 바로 인터넷이었다.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소통이 가능해지고 대중화되자 많은 이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CIH 바이러스처럼 컴퓨터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방증이었다.

올해부터는 투자 기업만이 아니라 개인들도 IT 종목에 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연속으로 상한가를 치는 회사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아무런 정보 없이 IT 관련주에 투자해도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사실 IT 종목은 95년부터 차근차근 상승하고 있었다. 다만 남은 1년은 눈을 감은 채 미친 듯이 달릴 뿐이다. IT나 NET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식을 매입했고 수십 배씩 차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버블이라고 부른다.

그 상승이 언젠가 끝을 고한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예측할 수 있지만, 정확한 시점을 예측하는 사람은 수안이 유일했다.

IT 버블(닷컴 버블)이 터지기까지 1년.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득을 볼 것인가가 문제다. 버블이 터지면 개인과 기관은 피를 보겠지만 수안의 회사는 그때부터 진짜 수익 구간이 온다.

‘뻔히 미래가 보이는데 공매도를 안 칠 수 없잖아.’

버블의 꼭짓점에서 공매도를 실행하면 이후 몇 배의 수익이 생길지 짐작도 어렵다.

수안은 김현성, 배영성과 함께 현재 BE 인베스트먼트에서 진행 중인 닷컴 투자를 주제로 논의하며 더 완벽하게 세계 금융 시장을 털어먹을 계획을 완성해갔다.

* * *

수용은 새로운 집에 도착해 웃으며 뒤로 돌았다. 형이 부탁한 사돈댁의 새로운 집이다. 수안의 지시대로 아현의 이름으로 명의가 이전되어 있었다.

본래 수용은 누나들보다 더 이르게 사돈댁의 집을 구해 주려고 했지만, 아버지와 형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덕분에 먼저 결혼을 앞둔 수진의 집을 구해 줄 수 있었고, 수현의 집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사돈댁 집은 쉽게 구할 수 없었는데, 얼마 전에서야 매물이 나왔다.

게다가 나올 때는 한꺼번에 나오는지 성북구 성북동과 성동구 옥수동, 중구 장충동, 강남 역삼동, 용산구 한남동 등에서 여러 매물이 나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중 수용이 선택한 주택은 용산구 한남동이다. 향후 발전 가능성으로 보면 역삼동을 생각해야 했지만, 형의 지시 사항을 충족할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규모도 가장 크고 남향집에 3층에서 보이는 한강 조망을 생각하면 서울에서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찾기 힘들 터였다.

“최종 매입가는 60억. 아주 저렴하게 잡았습니다. 전체 면적은 2,000㎡에 주거용 건물은 두 개 동이 있습니다. 거주할 집과 별채로 나뉘어 있으니 별채는 손님들이 왔을 때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주차는 지하 주차장에 7대 정도 넣을 수 있으며 지상에는….”

“도련님. 너무 과하지 않을지….”

아현은 촬영을 시작한 드라마로 바빴지만, 이번에 구입한 새로운 집을 가족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에 빠질 수 없었다. 이 집은 자신의 집이기도 했다.

“회장님 지시 사항이라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형수님.”

“아…. 음…. 그럼 어쩔 수 없죠.”

아현은 받아들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아현의 뒤에 서 있는 부모님은 달랐다. 새로운 집의 위용에 눌려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현아. 잠깐 나 좀 보자.”

“사돈총각.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습니까?”

수용은 웃으며 얼마든지 기다리겠다고 말했고, 두 사람은 딸의 팔을 잡아끌었다.

“야. 저런 집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

어머니 말에 아현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어떡해. 벌써 샀다잖아. 게다가 시아버지가 사라고 했다는데….”

“저 큰집을 누가 청소해? 마당의 잔디와 정원수 누가 관리할 건데? ”

내부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밖에서 본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들어가 확인하지 않아도 내부가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존 집의 세 배는 되는 것 같았다. 거기다 파란 잔디가 올라오는 마당과 이름도 모르는 정원수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그야….”

앞으론 사람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서초동 시댁에서 집안일을 할 아주머니들 여럿을 고용하고 따로 그들을 관리할 사람까지 고용하는 것처럼 관리해 줄 사람들이 필수적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 큰집을 관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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