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 반격, 인수전
대현 자동차 정영수 회장은 회심의 일격을 무산시키는 강운모 회장의 발표를 뉴스로 지켜봐야 했다.
-…당사와 BE 인베스트먼트는 사전 협약을 진행했습니다. 당사의 경영으로 기화 자동차 판매량이 국내 1위를 달성하면 BE 인베스트먼트가 가진 지분 중 20%를 강운 그룹으로 양도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미 기화 자동차 판매는 국내시장 1위에 다가서고 있으니 20%의 지분 양도는 기정사실이라고 여겨집니다. 여기에 당사가 주식 시장에서 매입한 15%의 지분을 더하면 총 35%의 기화 자동차 지분을 소유한 제1 대주주로 올라서게 됩니다. 강운 그룹은 BE 인베스트먼트에 양해를 구하고 이번 옵션 계약을 공개합니다.
“젠장….”
BE 인베스트먼트의 소유주가 누군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준비까지 해 두었을 줄은 몰랐다.
BE 인베스트먼트를 함부로 밝히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내놓은 일격이었는데 말짱 꽝이다.
삐익.
-예. 회장님.
“홍보이사 들어오라고 해.”
정영수 회장은 매번 깨지는 홍보이사를 불러 다음 공격을 진행했다.
증권가의 카더라 통신인 지라시가 유포되었고, 지라시는 기화 자동차에서 출시한 K-5를 겨냥하고 있었다.
[K사 신차에 중대 결함 발견.]
[K사 신차결함을 알리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관계자들.]
[G사 회장. 결함 소식에 대로.]
[K사 사장. 난감한 상황에 처해. B사 지분 양도 불투명?]
누가 봐도 기화 자동차를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G사 회장은 바로 강운 그룹 강운모 회장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 * *
수안은 기화 자동차 홍보부장을 통해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굉장히 악의적인 내용입니다. 출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차에 무슨 문제가 있었겠습니까.”
“실제로 문제가 생긴 사례는 몇 건이나 있습니까.”
“…모든 차량이 완벽하게 출시되면 좋겠지만, 일부 차량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 문제 부품 교체 후 재출고하는 방향으로 진행해 문제를 해결해 왔습니다.”
“휴우. 정 회장이 상당히 지저분하게 플레이하네요.”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보이고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대현이다.
품질 문제라면 대현 자동차를 어떻게 따라가겠는가. 엔진에 결함이 있어도 관련 정부 부처를 통해 무마시키는 데 이골이 난 대현 자동차다. 지금 나온 지라시의 기화 자동차를 칭하는 K를 대현으로 바꾸면 딱 맞는 말이다.
“저희도 지라시로 대응하겠습니다. 대현 자동차가 숨겨온 일들을 끄집어내면 알아서 부풀어 오를 겁니다.”
수안은 대현 자동차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진흙탕 싸움으로 가면 소비자에게 피로감만 줍니다. 차량을 산 본인이 구매 후기 작성하면 7년, 9만km로 무상 보증 수리 기간을 늘려 준다고 하세요.”
현재 K-5의 무상 보증 수리 기간은 대현 자동차 모델과 같았지만, 이를 크게 늘려 품질의 자신감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 K-5는 엔진 계통을 포함해 차량 부품에서도 문제 생길 일이 없어요. 비용이 부담스럽진 않을 겁니다.”
기화 자동차가 쓰러지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온 협력사들이다. 수안의 품질관리 지침도 있었지만, 협력사에서 자체적으로 품질을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다.
납품처의 갑질이 사라졌고 불합리한 관행을 타파했다. 협력사에 남은 경쟁력은 품질 수준밖에 없었다. 협력사에서 1차, 2차 품질관리를 받은 부품은 다시 기화 자동차로 들어와 3차, 4차 품질 검사를 진행하니 문제가 생기기도 어렵다.
“예. 사장님. 저도 우리 K-5를 믿습니다. 보증 수리 기간 연장 이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 * *
K-5에 관한 지라시는 수안의 보증 기간 연장 이벤트가 아니라 현실의 벽을 먼저 마주해야 했다.
“도대체 어디서 어떤 차에 문제가 생겼다는 거야?”
지라시를 보고 K-5 차량을 살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지라시와 같은 케이스를 확인할 수 없었다. 기사도 한 줄 나오지 않았다. 사실이라면 뭐라도 튀어나와야 했다.
“그러게. 부장님도 아무런 이상 없다고 하고 내 친구도 차가 너무 예뻐서 아침마다 놀란다고 하는데….”
“이거 대현에서 수작 부린 거 아닐까? 딱 봐도 그렇잖아. K-5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내용이 지라시로 돌겠어?”
“다움이랑 네이보에 올라온 구매 후기 봤어? 기화 자동차 사이트에 올라온 구매 후기 몇 개가 포털사이트로 옮겨왔는데, 칭찬 일색이야. ”
“고민을 끝낼 때가 됐어. 우리가 기화 자동차를 사면 기화 차가 우리나라 기업이 된다잖아.”
“너 K-3랑 K-7 기다려 본다고 안 했어?”
“K-3는 나보다 젊은 애들이 어울릴 것 같더라고. K-7이 좋긴 한데 나한테는 무리야.”
K-3는 디자인도 좋고 연비도 좋았지만, 연령대가 맞지 않아 제외했다. K-7은 무척 갖고 싶지만, K-5와는 상당한 가격 차이가 있었다.
“K-5가 딱 적당하긴 하지. K-7은 이사 정도나 되야 탈 차지.”
“그럼 나중에 나온다는 K-9은?”
“그건 사장이 타는 차 아니야?”
“K-9은 아직 디자인도 안 나왔는데 어떻게 알아?”
“딱 보면 몰라? K-3는 젊은 가수들이 광고로 나왔고, K-5는 강수안 부회장이 나왔잖아. 그리고 K-7은….”
“강 회장과 강 부회장이 동시에 출연했지.”
차는 희미하게 실루엣만 보였지만,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K-7이 5와 9의 중간이란 말이야. 그럼 K-9은 당연히 강 회장 혼자 나오지 않겠어?”
“오~”
“회장님에게 어울리는 차. 이렇게 대강 추측해 보면 K-9은 오너를 위한 차라는 걸 알 수 있지.”
“오오~”
소비자들에겐 이번 지라시 사태가 오히려 기화 자동차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번지고 있었다. 주변에서 비슷한 문제라도 발견했어야 하는데,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라시로 인해 기화 자동차에 관한 주제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입소문이 더해져 간다.
회사들이 밀집한 지역 식당에서 심심치 않게 K-5를 주제로 대화를 하는 직장인들을 볼 수 있었다. 미친 디자인이라는 평가부터 완벽한 품질을 논하는 대화도 있었다. 무엇보다 K-5에 관해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일찍 차를 인도받은 K-5 소유자들이다. 주변의 부러움 가득한 눈빛에 자부심을 느끼고 침을 튀겨가며 차 자랑을 해 댔다.
* * *
“역시 품질은 통하기 마련입니다. 사장님.”
“…그러니까 뭐 하러 그런 짓을 해서 일을 키우는지 모르겠다니까.”
지라시로 촉발된 자동차 품질 이슈는 국토교통부를 통해 실제 사례와 비율을 확인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가 신문에 보이고 있었다. 오래된 모델부터 최근 모델까지 비율이 표시되어 있다.
오래된 모델은 사람들의 관심이 아닐 터였다.
최근 선보인 대현 자동차의 그랜저 XG와 기화 자동차의 K-5가 주요 관심 대상이다.
“이렇게 차이가 벌어졌는데, 무슨 배짱으로 그런 짓을 하는지….”
대현 자동차는 오래 준비해 예쁜 차를 뽑았지만, 많은 문제를 품고 있었다. 도어 실링 불량으로 인한 누수부터 미션 문제, 엔진 누유를 포함해 자질구레한 잔고장이 많았다. 특히 하체 부식이 생기는 일까지 있었다. 불과 몇 개월 된 차량에서 부식이 발생했다면 큰 문제다.
자잘한 문제를 포함하면 총 판매 차량의 5%가 넘는 차량에 품질 이슈가 있었다고 한다.
반면 K-5의 경우 0.1% 미만의 작은 품질 이슈가 있었을 뿐이고, 그마저도 바로바로 대응해서 문제를 보완했다는 결과가 국토교통부 자료에 나와 있었다.
“이번 발표 덕분에 올해 출시할 K-3와 K-7도 예약을 받아 달라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예약? 나쁘지 않지.”
해가 지나 1999년이다.
K-3와 K-7이 출격을 앞두고 있었다. 두 차종은 생산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다.
“관련 예약 시스템 구상해 보세요.”
“예! 사장님.”
수안은 대현 자동차의 2차 공격이 이번 국토교통부 발표로 끝장난 것을 확신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운 그룹에 볼일이 있었다.
수안이 밖으로 나오자 비서가 회의 중에 걸려온 전화에 관해 말했다.
“사장님. 회의 중에 대현 자동차 정 회장님이 전화 주셨습니다.”
“또 전화 오면 나 급한 볼일 때문에 나갔다고 해요. 전화는 나중에 걸죠.”
“예. 사장님.”
정영수 회장이 왜 자신을 찾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날 왜 건드리시냐고.’
국토교통부에서 이번 품질 이슈 현황을 기습 발표한 배경에는 수안이 있었다. 정영수 회장이 손을 쓰기 전에 급하게 기획하고 실행으로 옮긴 것이다. 덕분에 대현 자동차가 국토교통부에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해 버렸다.
수안은 이미 눌러 버린 대현 자동차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다음 먹잇감을 위해 강운 그룹으로 왔다.
“대운 자동차가 이제 법정 관리를 끝내고 입찰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바로 대운 자동차를 먹기 위해서다.
“이번 입찰에선 해외 자동차 메이커에서 두 곳 이상 참여, 국내에선 삼디 자동차가 빠지고 기화 자동차와 대현 자동차가 참여할 것으로….”
수안은 이번 입찰의 중추를 맡은 이사가 대운 자동차 입찰 정보를 발표하는 중간에 끼어들었다.
“거기서 대현도 빼세요. 대현은 경쟁 상대가 아닙니다.”
“부회장님. 대현 자동차가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참여는 하는데 들러리로 확정입니다. 정택주 명예회장과 정영수 회장에게 확답받은 일입니다.”
“오오~”
경영진의 놀람을 뒤로하고 발표가 이어진다.
“그럼 우리 입찰 경쟁 상대로는 해외 포드사와 GM이 있습니다. GM의 경우 처음부터 대운 자동차와 합작해서 성장했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50 : 50 비율의 공동 출자로 시작한 대운 자동차는 GM 계열사로 성장한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대운 그룹에서 모든 지분을 GM으로부터 인수한 다음이기에 지분으로 인한 이득은 없었다.
“해외 매각에 대한 반발로 노사 분규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존 대운 자동차 법인은 청산하고 대형 버스 부문과 대형 트럭, 승용차를 분리 매각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계속하세요.”
“강운은 대형 트럭과 승용차 부문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미 1톤 트럭은 기화 자동차에서 점유하고 있으니 나머지 대형 트럭 분야를 차지한다면 상용 자동차 시장을 쉽게 차지할 수 있습니다. 승용차 분야는 대운에서 진행하고 있던 모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부분을 강운에서 연속 진행하면 이번 K-5의 성공적인 출시처럼 반전을 노릴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K-5는 그만큼 사전 준비를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지 기존 개발 차량으로 이와 같은 결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디자인이 영….’
특히 대운 특유의 삼분할 그릴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자신이 예전 대운 자동차 하청 업체에서 일했음에도 대운 자동차는 예쁘다고 평가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K-5의 디자인을 맛본 소비자들에게 대운 자동차의 디자인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대운 자동차를 인수한다는 부분까지는 좋지만, 기존에 개발 진행 중이던 차량을 강운이 판다고 딱히 좋은 성과를 보일 것 같진 않군요. 최 이사님이 생각해 보십시오. 기화 자동차 K-5를 보다가 대운 자동차 레간자를 보시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아….”
‘K-5가 디자인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았지.’
“…정말 못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거리를 지나다가 다른 차들 사이에 있는 K-5를 본 적이 있었다. K-5 주변의 모든 차들이 오징어로 보이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