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음 차례? (164/304)

다음 차례?

“무슨 얘기가 끝나? 너 오빠랑 무슨 얘길 했는데?”

“수용이 너 요즘 오빠 회사에 붙어 있더니 친해진 모양이다?”

수진과 수현의 동시 질문에도 수용은 여유롭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수진 누나 결혼 선물하는 차에 우리도 집 한 채씩 마련하라는 형님 특명이야.”

“특명?”

“집? 결혼 선물로 집 사라고 오빠가 준 돈이구나?”

수진의 손이 다시 테이블 위 통장으로 향하자 수현이 손등을 쳐서 방어했다.

“아얏!”

“언니는 좀 가만있어 봐. 수용이 너. 제대로 설명해 봐. 50억으로 무슨 집을 사? 너무 많잖아.”

30억을 준다고 하다가 결국 50억으로 선택한 수안이다. 배영성이 2억으로 120억을 만든 것처럼 수안은 자신의 자투리 돈 10억을 600억 넘게 불렸다. 추가로 아내 명의로 진행한 6억은 360억으로 불어났다. 그래서 여유롭게 동생들 계좌로 각각 50억을 입금한 것이다.

“별일 아냐. 요즘 집 시세가 많이 빠져서 기회가 좋잖아. 이럴 때 사 두면 나중에 큰돈 안 나가도 되니까 미리 선물하는 거지.”

“50억은 큰돈 아니니?”

“몇 년만 지나도 100억은 우습지. 지금이니까 이 가격에 서울 중심가 고급 주택을 사고도 돈이 남는 거야.”

“오….”

“오….”

“솔직히 난 고급 주택이 아니라 아파트에 투자하고 싶어. 개인 주택은 아무래도 거래가 힘들어서 가격 변동이 거의 없거든. 아파트는 지금 사 두면 앞으로 두고두고 가격이 오른다고 예상해. 누나들도 적당한 고급 주택으로 고르고 나머지는 아파트에 투자해 둬.”

사삭.

수진의 손이 번개보다 빠르게 통장을 회수했다.

“오빠 선물이니까 그냥 받으라 이거지? 상준 씨에겐 내가 잘 말할게.”

“언니!”

“큰누나 뭐라고 하지 마. 형이 얼마나 우리를 예뻐하면 이렇게 돈으로 표현하겠어? 작은누나도 알지? 형이 우리 얼마나 챙겨 주는지.”

“알지….”

오빠가 언니 모르게 자신을 얼마나 예뻐했던가. 수진이가 동생 예뻐하는 거 알면 샘을 낼지도 모른다며 안 보이는 장소에서 수현을 귀여워해 줬다. 어려서부터 오빠를 듬직하게 생각했고, 나중엔 오빠와 비슷한 남자와 결혼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눈만 높아졌지.’

덕분에 어지간한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오빠의 반만큼 되는 놈이 없었다.

수현은 떠오르는 엉뚱한 상념을 털어 버리고 대화에 집중했다.

“그래도 네가 말렸어야지. 안 그래도 일전에 아버지가 오빠한테 뭐라 하셨잖아.”

“형을 누가 말려? 아버지도 두 손 드셨어. 허락도 이미 받은 모양이야.”

“…하여튼.”

“그러니까 누나들은 나만 믿고 기다려 봐. 내가 좋은 매물 물어 올 테니까.”

수현도 오빠의 사랑이 담긴 통장을 다시 손에 들었다.

수용은 걸려온 전화를 받고 말했다.

“호랭이 납셨네.”

-뭐야. 너 내 얘기했어?

“딩동댕.”

-어쭈?

“누나들하고 같이 있음. 돈 잘 받았어. 고마워 형.”

-에헤이. 그런 일로 뭘 또 모이고 그래?

“이렇게 우리끼리 모여야 상의를 하지. 내가 좋은 집 알아봐 주기로 했어.”

-모일 거면 나한테 얘길 했어야지. 요즘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든데.

“형 바쁜데 우리까지 보탤 순 없잖아. 나중엔 꼭 얘기할게.”

수진은 어느새 수용 주변으로 와서 휴대 전화에 대고 말했다.

“오빠. 고마워~ 좋은 집 살 테니까 놀러 와.”

-큭. 수용아. 알았다고 전해다오.

“형이 알았대.”

“호호.”

수현도 앉은 자리에서 말했다.

“수용아. 나도 대신 전해 줘. 고맙다고.”

“작은누나도 고맙다네.”

-그래. 그래. 애만 아니어도 그리로 가는데 말이야. 어쨌든, 잠깐 통화되냐?

“응. 괜찮아. 얘기도 거의 끝난 참이라.”

-나도 집 좀 알아봐 줘.

“뭐?!!! 형이?”

형이 집을 알아봐 달라고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큰누나를 비롯해 자신들은 그럴 수 있다. 집에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은 다르다. 아버지를 이어 회사를 물려받을 형은 언제까지고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 거로 생각했었다.

-아아. 착각하지 말자. 내가 독립한다는 말은 아니니까.

“깜짝이야. 놀랐잖아!”

-얼마 전에 아버지가 처가에 와 보시고 한마디 하셨다. 동생들 집 사 줄 정신은 있으면서 처가댁은 왜 저대로 두냐고 말이야.

영수의 소란으로 결국 사돈댁에 발을 들인 강운모 회장이다. 나름 넓고 괜찮은 집이지만, 강운 그룹 회장의 눈에 차겠는가. 집에선 얘기하지 않았지만, 밖에서 수안에게 잔소리를 늘어놨다.

아버지 기준에 맞출 정도로 널찍하고 큰 집이 필요했다.

“아휴. 형이 먼저 챙겼어야지. 형수님 일인데 형이 안 챙기면 누가 챙겨?”

-나라고 안 했겠냐? 예전에 몇 번 말씀드렸는데 싫다고 하셨단 말이지.

아현이 미리부터 당부했기에 수안의 호의를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댁의 큰 저택에 적응한 아현은 살던 집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고 언제고 집을 옮겨 줘야지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강권에 아내의 허락이 더해져 집을 바꿀 수 있게 됐다.

이번 BE 보험 상품 정산으로 아내에게 자금이 마련되었기에 자금의 출처는 수안이 아니라 아내 아현의 자금을 원천으로 진행한다. 주택은 아내 명의로 사게 될 것이다.

“됐고. 내가 제대로 된 한강 뷰 주택을 찾아볼게. 최대한 크고 고급스러운 집으로.”

-콜! 내가 바라는 집이 바로 그거야!

“예산은?”

-예산을 뭐 하러 신경 써? 설마 내 재산 넘어가는 집이 있겠냐? 네 형수 명의로 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큭. 괜히 물었네.”

수용은 수안과 전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가려고?”

“형이 이사할 집 알아봐 달라고 해서 가 봐야 해.”

“뭐?!”

“진짜?!”

“형이 이사 간다는 게 아니라, 형수님 집. 그러니까 사돈댁 이사 갈 집을 찾아 달라고 했어.”

“아~”

“아~”

“이거만 해결하고 바로 큰누나 집 알아볼게. 미리 리스트 보내둘 테니까 거기서 골라봐.”

“오오~ 빠릿한데?”

“큭. 이제 나도 직장인이거든요?”

수용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수진과 수현이 남았다. 둘만 남자 수현은 언니에게 평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결혼한다니까 좋아?”

“좋지. 그럼.”

“하아.”

“넌 왜 연애를 안 해? 인기도 많았잖아.”

수진과 달리 예쁘장한 수현은 따르는 남자가 많았다.

“다들 비실비실하고…. 실속이 없어서.”

“요즘 그런 애들 많지.”

수안을 기준으로 삼으니 눈에 차는 남자가 있을 리 없었다.

“적당하게 건장하고 얼굴도 적당한 수준이면 되고, 생각하는 수준이나 머리도 적당하면 되는데 말이야. 왜 그런 남자가 없냐고?”

그 적당함의 기준도 오빠 수안으로 정해 두고 있었다. 오빠처럼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자여야 했고, 오빠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남자였으면 했다.

“맞아. 적당한 사람이 최고지.”

수진은 동생에게 자신의 일화를 말해 줬다.

“오빠 아니었으면 나도 이상한 사람들하고 맞선 볼 뻔했지 뭐니.”

“이상한 사람?”

수현은 언니 수진에게 맞선 과정에 있었던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섹스 중독자와 몰래 살림남, 숨겨진 자식을 가진 맞선남의 비밀에 관한 내용이다.

“어머. 어머! 뭐 그런 놈들이 다 있어?”

“그러니까. 걔들 겉보기엔 멀쩡하잖아. 그런데 뒤로 완전 호박씨 까고 있었다는 거 아니니. 오빠가 미리 파악하지 않았으면 난 깜빡 속았을걸?”

“정말 엄두도 안 난다.”

“너도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오빠한테 얼른 부탁해.”

“뭘?”

“뭐긴. 네 신랑감 찾아 달라고 하라고.”

“…….”

“너도 오빠가 찾아주면 왠지 믿음직할 것 같지 않아?”

“그렇긴 하지….”

수현도 일찍부터 오빠에게 맡길 생각이긴 했다. 그래도 세상을 살면서 남자를 만나지 않을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연애도 쉽지 않았을 뿐이다.

“나도 상준 씨 그렇게 만났잖아. 맞선인데도 뭔가 운명 같았다니까.”

“…오빠 요즘 바쁘지 않나?”

강운 그룹 부회장에 본인 회사 회장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근래 기화 자동차 사장으로 일하며 회사에 매달려 있다. 게다가 둘째까지 태어나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오빠는 처가댁에 들어가냐….’

오빠가 처가댁으로 가고 나서 집 안이 텅 빈 기분이었다. 매일 환하게 웃으며 안기던 조카가 사라져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정원이 보고 싶다….’

“오빠가 우리 부탁을 싫어할 사람이니? 오히려 네가 찾아가면 좋아할걸?”

“그렇지….”

평소 오빠는 무슨 부탁이든 잘 들어줬다. 타이타닉 주인공들을 초빙할 때도 힘들긴 했지만, 결국은 부탁을 들어줬다. 하물며 여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고르는 일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미루지 않을 것 같았다. 언니에게 했던 것처럼 열과 성을 다해 찾아 줄 것이다.

“그래도 좀 나중에 부탁할래. 우선은 언니 결혼하고 잘 사는지 확인하고.”

“뭐! 내가 못살기라도 할 것 같아서?”

“큭. 농담이야. 오빠 바쁜 일 좀 지나고 얘기하려고. 게다가 조만간 언니가 결혼하는데 괜히 나까지 집안 부산하게 만들 필요 없잖아.”

“그건 그렇지.”

* * *

수현은 철석같이 수진에게 말했지만, 다음 날 사돈댁을 찾아갔다.

“어? 네가 여기 왜 있어?”

수안은 퇴근 후 집에 들어갔다가 딸 나현을 안고 있는 수현을 만났다.

“정원이랑 나현이 보고 싶어서 왔지. 나현이는 왜 이렇게 예뻐? 벌써 미모가 남달라.”

수현은 조카들이 보고 싶어서 어색함을 감수하고 사돈댁에 온 것이다.

“아가씨도 아기 낳으면 깜찍하고 예쁠걸요?”

아현의 말을 수안이 받았다.

“그리고 내 새끼는 더 예쁜 법이야. 넌 애들을 예뻐해서 좋은 엄마가 될 거야.”

“님을 봐야….”

결혼할 남자도 없는데 자신이 낳을 아기는 너무 먼 얘기다.

“님은 내가 찾아주마.”

“워워. 참아. 오빠. 아직 수진 언니 시집도 안 갔거든?”

“뭐 어때? 지금부터 찾아봐야 남들이 채가기 전에 괜찮은 놈을 고르지.”

“…그, 그래?”

“간발의 차이로 괜찮은 놈을 누가 물어 가면 아깝잖아. 세상에 널린 게 남자지만, 괜찮은 놈 찾기는 쉽지 않더라고.”

이번에 수진이 결혼 상대를 찾으면서 여실히 느꼈다.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았으며 병신과 진상도 같은 비율로 많았다. 그중에 보석 같은 존재를 찾아야 하는 일이니 미리부터 꼼꼼하게 찾아봐야 했다.

“오빠 바쁘니까 그렇지. 나중에 하자.”

“푸흣. 설마 내가 발로 뛰면서 찾겠냐? 최학주 사장이 비서실 동원해서 다 찾아오고 배영성 사장이 물어물어 리스트 챙겨와. 난 최종 검토하고 손가락으로 지시만 하는데 뭐가 힘들겠어?”

“그럼…. 미리 찾아볼까?”

“내가 꼼꼼하게 검토해 보고 적당한 후보를 추려 놓을게.”

“딱 오빠만큼만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

“…….”

아현은 수현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아가씨 눈이 너무 높은데…. 이런 남자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다고.’

“수현아. 고작 나 같은 놈으로 되겠어? 내가 더 괜찮은 놈을 찾아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여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죠.’

남편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난 올케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니까. 난 어쩌다가 오빠랑 같은 배에서 태어났는지 몰라.”

“에헤이. 적당히 하자. 좋은 놈 골라준다니까.”

“히히. 알았어. 천천히 찾아줘. 언니 결혼은 끝나고 만나 볼 테니까.”

수현은 불편한 사돈댁에서 한참이나 조카들 얼굴을 보고 돌아갔다.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조카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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