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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응

밖으로 나온 수안은 바로 차에 타지 않고 최장호를 찾았다.

“예. 회장님.”

“여기 보안 상황은.”

“총 경호 인력 35명.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주변에 접근하는 차량을 확인하고 근방 고지대를 시간마다 순찰합니다.”

아내와 자식들, 처가 식구들을 지키기 위해 대대적으로 경호 인원을 증가시켰다.

“다섯 추가해서 40명 맞춰. 장인 장모님이 밖에 나가실 일이 있으면 따라붙어야 하잖아.”

“예.”

교대 인원까지 생각하면 기백의 인원이다. 덕분에 새로 시작한 보안 사업부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 * *

수안은 기화 자동차 본사로 가지 않고 강운 그룹 본사로 향했다.

-회장님. 강 부회장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수안은 간단하게 몸수색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강화된 보안 업무로 인하여 수안 본인도 검색대를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안은 당연하다는 듯이 몸수색에 응하고 있었다. 이래야 다른 직원들도 몸수색에 예외를 두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장님.”

“언제까지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데?”

강운모 회장 본인은 귀찮은 몸수색에서 예외에 해당했지만, 강 회장이 만나는 사람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통에 상당히 귀찮았다.

“향후 2년입니다. 그 전에 일을 마무리하면 이르게 보안 수준을 낮출 수 있지만, 아직은 안 됩니다.”

단호한 수안의 말에 강운모 회장도 두 손을 들었다.

“도대체 누가 암살자를 보내는 거야?”

“둘 중 하나로 추측됩니다만, 더 가능성이 있는 쪽은 골드만삭스 프랭크 회장입니다. 이번에 국정원에서 일본 야쿠자를 정리하면 확실한 단서가 나올 것 같습니다.”

국정원 요원들이 일본으로 향했고, 여기에 BE 인베스트먼트 차진호 사장이 지원하고 있다.

일본 정권까지 로비하는 BE 인베스트먼트가 국정원과 함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았다.

“…일도 바빠 죽겠는데 별 등신 같은 것들이 설치고 지랄이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돈 몇 푼 던져 주고 끝내면 안 되나?”

“버릇됩니다. 이런 놈들은 처음부터 밟아 버려야 다음에 같은 놈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여튼. 네 녀석 독한 것도 알아줘야지.”

이것으로 골드만삭스와 모건 스탠리에 관한 대화는 끝이다. BE라는 거대한 금융사를 소유하고 있으니 이젠 골드만삭스와 모건 스탠리도 눈 아래로 보인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다.

“기사 보셨습니까? 신문에 나온 대현 자동차 칼럼 말입니다.”

“봤지. 지분 인수에 관해서 상의하러 왔어?”

강운 그룹과 BE 인베스트먼트 사이에 이면계약이 있었다.

강운 그룹이 기화 자동차를 경영하는 중에 대현 자동차를 누르고 업계 1위로 올라서면 지분 20%를 양도한다는 내용이다. 강운 그룹에서 지금까지 모은 기화 자동차 지분이 10%를 넘어서고 있으니 이 20%를 양수하면 3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며 기화 자동차 최대 주주로 올라선다. 즉, 기화 자동차가 강운 자동차 산하로 편입되어 국산 차량으로 분류된다는 뜻이다.

“예. 관련 공시가 나가면 쏙 들어갈 말입니다.”

“올해 실적을 통해 결정될 일을 벌써 공개할 수는 없어. 게다가 이면 계약이잖아.”

“…계약 사항을 공개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BE가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BE의 총수가 눈앞에 서 있는 아들이다. BE가 문제 삼을 일은 없다고 해도 좋았다.

“이거 공개되면 국민이 결집할지도 모르는데? 기화 자동차 안 그래도 불티나게 팔리는데 감당할 수 있겠어?”

기화 자동차가 대현 자동차를 누르면 국산으로 변신한다는 내용이다. 애국심을 결집해야 할 대상이 대현 자동차에서 기화 자동차로 변하는 것도 순식간이다.

“어쩌겠습니까. 감당해야죠. 국민에게 외제 차라는 인식을 남기는 것보다 낫습니다.”

“생산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만들고 싶어도 일손이 없잖아?”

“퇴직자들 불러오겠습니다.”

“큭. 결국 그놈들이야?”

기화 자동차 본사와 공장을 오가며 시위를 이어 가는 기화 자동차 퇴직 근로자들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그들만의 외로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고, 국민의 관심도 멀어졌다.

“정직원으로 데려오진 않을 겁니다. 외주 업체와 마찬가지로 따로 법인을 세우고 들이려고요.”

“녀석들은 그것도 감지덕지하겠어.”

다시 일거리를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물론 금액은 기존 외주 업체와 다르게 네고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똑같이 같은 돈을 주고 쓸 순 없죠.”

“너 앉은 자리는 풀도 안 날 것 같다.”

그만큼 독하다는 뜻이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럼 강운 그룹에서 보도 자료 내는 것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콜.”

“이번에도 부탁드립니다.”

“또 내가 나가?”

“회장님의 존재를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시킬 순 없습니다.”

강운모 회장도 대계에 동참하기로 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더블 스타에서 진행 중인 일도 강운 그룹으로 넘길 생각입니다. 타인을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한 사람들을 포상하는 의인상이 있습니다. 이 부분도 회장님의 업적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더블 스타는 언제 그런 일까지 하고 있었어?”

“또한 해외 역사서 편찬에 지원하는 사업이 있는데 이 사업도 회장님이 지시해서 진행하는 것으로 바꾸고 강운 그룹으로 이전할 생각입니다.”

“역사서? 그건 대선하고 무슨 상관인데?”

“중국이 허튼짓 못 하도록 미리부터 진행하는 작업입니다. 나중에 대선에 오르셨을 때 밝히면 상당한 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넌 대체 어디까지 준비를 해 뒀어?”

아들의 준비성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짐작하기도 힘들다.

“회장님이 봉황의 자리에 오르기 직전까지 계속 일을 만들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최고 통수권자가 되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좋아. 그렇다 치고. 대선으로 가기 전에 당에 소속이 되어야 할 것 아냐. 넌 내가 어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

현재 대권을 잡은 민국당,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전통의 통합신당.

둘 중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지금은 민국당으로 가셔서 재벌 이미지 탈피를 노리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상황이 바뀔 수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결정해야 합니다.”

김대준 이후로 나올 민국당의 잠룡까지 생각하면 민국당이 맞다. 하지만 그 이후 이현창이 집권해서 얼마나 좋은 정책을 펼치느냐가 관건이다. 만약 이현창이 예전 다른 통합신당 대통령들처럼 민심에 반하는 정책, 즉 기업과 기득권을 위한 정책을 펼치면 볼 것도 없이 민국당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이현창이 민심을 확보하는 정책으로 나간다면 통합신당을 고려해야 했다.

“어디든 선택하면 갈 수 있으니 당장 선택하지 않아도 되겠지.”

지금도 강운모 회장이 간다고 하면 두 정당 모두가 반길 것이다.

‘예측도 아니고 현실이지.’

누구보다 많은 정치 자금을 헌납하는 강운 그룹이다. 정치인 대부분이 강운 그룹의 돈맛을 알고 있었다. 강운의 법인 카드를 쓰는 정치인도 있었고, 타인 명의 법인으로 혜택을 보는 정치인도 있다. 시시때때로 품에 안겨 주는 돈도 돈이지만, 정치인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 고위직과 유지하는 친분도 무시할 수 없다. 강운 그룹 회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의 정치 생명이 달린 것이다.

검찰 권력으로 그들의 치부를 가려주는 것까지는 계산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예. 어디로 가든 대권에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창당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정 회장 꼴 나려고 작정했어? 내가 뭐 하러 창당을 해?”

기존 정치인들과 다르다며 창당을 해도 표심이 단번에 돌아서지 않는다. 무조건 기존 정당으로 들어가 고착화한 정당 표심을 끌어안아야 했다.

이걸로 향후 대선에 관한 대화도 끝이다.

“앉아 봐. 이제 집안 얘기 좀 하자.”

“예. 아버지.”

지금까지 반듯이 서서 보고하던 수안이 소파로 가서 편히 앉았다.

“내년 봄에 수진이 결혼시킬까 싶다.”

수진은 상준과 함께 집에 다녀갔다. 아버지에게 인사하고 반듯한 이미지를 보여 준 덕분에 아버지도 조그맣게 만족을 표하셨다.

“내년이면 수진이 나이 27이니 딱 좋습니다.”

“그래도 남편감이 너무 어려서 걱정이야.”

이제 막 회사생활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사회를 많이 겪어 보지 못한 어린 티가 났다.

조금 더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사람. 저랑 동갑입니다만.”

“……!”

강운모 회장은 그제야 박상준의 나이가 수안과 같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랬나? 왜 그렇게 녀석이 어리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네.”

“제 탓이죠. 뭐.”

일찌감치 회사를 경영했고 지금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국제 금융사를 지배하는 총수다.

강운모 회장이 아들을 자신과 동급으로 놓고 있었기에 나이를 잊은 것이다.

“제 나이 27에 둘째까지 얻지 않았습니까. 같은 나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우시죠.”

“그랬던 모양이야.”

아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고 아들, 딸을 자식으로 두고 있다.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인 상준이 어려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아. 그리고….”

수진은 집에 와서 차마 독립하겠다는 말을 뱉지 못하고 수안에게 떠넘겼다. 아버지에게 대신 말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뭔데?”

“수진이 끼고 사실 생각이세요?”

“결혼시키고?”

“수진이만 생각하면 데리고 사셔도 되는데, 남의 집 아들을 데릴사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싶어서요.”

“아니면 어쩌려고?”

“둘이 살 집이나 하나 사 주려고요.”

“뭐? 수진이 집을 사줘?”

“요즘 싸게 좋은 집들이 많이 나와서요. 겸사겸사 수현이랑 수용이 집도 미리 사 주고 결혼선물 끝내려고요.”

“…이제 네가 어디까지 챙겨 줄지 기대되는 참이다. 진짜 관짝까지 짜줄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네?”

농담을 빙자해 수안의 오지랖을 비꼬는 강운모 회장이다.

“에이. 아버지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것까진 보시면 안 되죠.”

“뭐 인마?”

“푸흐흐.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가면 그런 불효가 또 어디 있습니까. 물론 아버지도 오래 살고 동생들도 오래오래 살아야죠.”

“허…!”

강운모 회장이 나중에 대선으로 가도 되겠다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런 아들의 오지랖 때문이다. 자신이 없어도 동생들을 잘 챙기고 가족을 제 몸같이 생각하니 회장직을 물려주더라도 걱정이 없었다. 여기에 자신을 닮은 경영 스타일은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끔찍하게 가족을 아끼는 아들을 보면 지금이라도 회장직을 내려놓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잘났다. 인마.”

“말 나온 김에 아버지 건강 검진 한번 받을까요?”

“지난달에 받았어! 뭐 하러 또 받아?”

“그래요? 별거 없으시죠?”

“신체 나이는 40대라고 하더라.”

“구웃! 아주 좋네요. 하하하.”

웃고 있는 수안에게 강운모 회장은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애는 언제 집에 데려올 거야? 정원이 얼굴 잊어버리겠어! 게다가 나현이는 태어나고 몇 번 못 봤잖아?”

“아직 애 엄마 산후 조리 안 끝났습니다. 며칠만 더 있으면….”

요즘 아버지의 최고 불만이 바로 이것이다. 정붙이고 살던 정원이를 못 보는 것도 서운했고, 손녀딸이 태어났음에도 몇 번 얼굴을 비추지 않아 이것도 무척 불만이다.

“내가 가? 오늘 사돈댁에 갈까?”

“…….”

아버지가 처가댁으로 오시면 처가 식구들이 얼마나 불편할까 싶다.

특히 아내의 오빠인 영수 형님은 바짝 얼어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 강운 그룹 산하 계열사로 입사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기에 강운모 회장은 하늘 같은 존재였다. 자신의 여동생이 부회장의 아내라고 해도 영수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다.

수안도 별다른 혜택을 주지 않았고, 영수도 바라지 않았기에 영수가 일하는 계열사는 영수가 아현의 오빠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제가 사진 보여 드릴게요.”

수안이 사진으로 퉁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사진으로 되냐?! 정원이랑 나현이 직접 보고 싶다고!”

“…집 앞으로 잠깐 오시면 데리고 나와서 보여 드릴게요. 산모가 찬 바람 쐬면 안 된다고요.”

수안은 이후 아버지와 오랜 시간 담소를 나누고 집무실에서 나왔다.

다음 방문지는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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