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준필 (158/304)

장준필

수안은 장세진의 보고를 들으며 위협이 성큼 다가왔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어차피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미국인에게 국내법을 적용할 순 있지만, 외교 문제로 비화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그를 구속할 수는 없었었습니다.”

충분히 이해한다.

“법으로 처리해도 어차피 벌금이나 내고 끝났겠죠.”

“현실이 그렇습니다.”

“총기를 소지했던 자의 인적 사항은 파악해 놨습니까?”

“물론입니다.”

“그자의 신상을 보내 주십시오. 미국에서 과거 이력을 파악해 보겠습니다.”

한국에서 할 일은 한국에서 하고 미국에서 할 일은 미국에서 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수안은 장세진에게 받은 드레이크의 신상을 미국의 아서에게 발송했다.

* * *

클락슨은 아서와 함께 자신의 경호 업체 직원들을 확인하던 차에 아서가 메일을 받아 출력한 인적 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이 왜….”

“아는 놈이야? 자네와 같은 특수 부대 출신인가?”

아서는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웃으며 다가왔다.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둔 녀석이야. 회사에 들어온 지도 얼마 안 돼서 리스트에도 없었을 텐데…. 어디서 찾았어?”

클락슨의 말에 아서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퇴직 시점은 마커스가 죽은 다음?”

“…맞아.”

일이 틀어져서 회사를 떠난 몇 명 중의 하나였다.

“찾았군. 바로 녀석이 마커스의 경호 상황을 외부에 흘렸어. 일부러 틈을 만들기도 했겠지.”

클락슨도 아서와 같은 생각이다.

“이 녀석이 한국으로 갔다고?”

“그래. 거기서 총기를 입수해 일을 꾸미려다가 잡혔다고 해. 스티븐 회장을 노렸겠지.”

“거긴 총기 소지 자체가 불법이니까.”

“마커스를 죽인 놈들은 미국에서나 힘을 발휘해. 한국은 스티븐 회장의 안방이야. 정부 기관이 스티븐 회장을 돕고 있다고 하니 쉽지 않을 거야.”

“큭. 거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왜. 가려고 했나?”

“여차하면 가서 스티븐 회장을 보호하려고 했네.”

클락슨도 새뮤얼과 마커스 다음이 누군지 뻔히 알고 있었다.

“풋. 자네는 BE의 직원도 아니잖나. 스티븐에게 충성심도 없을 텐데?”

“스티븐 회장은 이유 없이 마음이 가는 사람이야.”

아서는 가까이 다가선 클락슨 옆으로 한걸음 떨어지면서 말했다.

“…자네 취향을 몰랐군. 물론 개인의 성적 취향을 존중하지만, 난 보수적인 타입이라는 걸 미리 밝히겠네.”

빠직.

“이봐! 나도 보수적인 사람이야!”

“아니면 됐지 소릴 지르고 그래? 자네 직원 중에 드레이크와 어울렸던 놈들이나 더 생각해 봐. 한 놈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다 걸러내고 BE의 품에 안기라고.”

“안기긴 뭘 안겨?!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할 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왜 그렇게 민감해?”

클락슨은 콧김을 내뿜으며 드레이크와 자주 어울렸던 직원들을 추리기 시작했다. 이번 경호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 회사를 나간 놈들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어 분리가 어렵지 않았다.

* * *

영국의 한 사격장에서 누군가 클레이 사격을 하고 있었다.

슈슉.

원반 두 장이 좌우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타앙. 타앙.

날아오른 원반은 산탄총에 의해 시원하게 분쇄되어 사라졌다.

슈슉. 타앙. 타앙.

한참을 이어 가던 클레이 사격이 끝을 고했다. 방금까지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린 사람은 고급스러운 베레타 수평쌍대 산탄총을 거치대에 조심스럽게 올려놨다. 거치대에는 방금까지 사용한 산탄총 말고도 여러 정의 산탄총이 걸려 있었다. 하나 같이 수억 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산탄총이다.

몸을 돌려서 보이는 얼굴은 바로 골드만삭스의 프랭크 골드만 회장. 그는 귀마개를 벗고 뒤에 시립한 사람을 향해 물었다.

“결과는.”

“이번 일은….”

드레이크에 내린 미션은 실패로 끝나 버렸다. 미국에서 이방효를 노렸던 일도 쉽지 않다고 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던 프랭크 골드만이 천천히 몸을 돌려 보고한 사람을 노려봤다.

“기껏 보낸 놈은 경찰에 잡혀서 미국으로 쫓겨나고…. 미국에서 진행하는 작업은 방비가 단단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걸 보고라고 하는 건가?”

방금까지 날린 스트레스가 배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일전에도 그랬지만, 스티븐 회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방비가 끝나 있었습니다. 게다가 스티븐 회장이 머무는 곳은 한국, 스티븐 회장의 영역입니다. 이번에 입국한 드레이크가 자신을 조사한 인물이 평범한 경찰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정부 요원으로 보인다고….”

“…….”

자신이 미국 정부에 힘을 발휘한다면 상대는 한국을 틀어쥐고 정부 기관까지 움직이는 인물이다. 국가 간 격차가 있더라도 권력의 집중도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한국 지사의 직원에도 관찰자들이 따라붙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선 활동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칼슨.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어. 우리 직원들이 어렵다면 한국 내에 있는 범죄자들에게 청부를 넣으면 되잖아!”

“하지만 흔적을 남길 여지가 있어서….”

프랭크 회장은 분에 차서 손을 산탄총 가까이 가져가고 있었다.

“지, 진행하겠습니다. 타국을 경유하면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아. 제대로 처리해.”

“예. 회장님.”

* * *

더블 스타 로비에서 기이한 방문자가 도착했다.

누군가에겐 안타까운 일의 시작이다.

“내가 강 회장님을 만나야 한다니까!”

“약속이 없으면 만나실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딱 봐도 껄렁해 보이는 젊은 남자가 로비에서 데스크 업무를 보는 여직원과 실랑이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 겪은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강수안 회장님을 만나겠다고 찾아온 이들이 한둘이겠는가. 이젠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도 이골이 났다.

“씨발. 정말 중요한 일이란 말이야. 직접 뵙고 이 편지만 전해 드리면 되는데….”

“맡기고 가시죠.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썅! 그럴 거면 내가 왜 이러고 있겠어?”

“그럼 약속 잡고 다시 오시면 되겠네요.”

“약속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이러고 있지!! 썅년아!”

데스트 여직원은 더는 참지 못하고 버튼을 눌렀다. 일정 수준 이상의 난동을 부리면 보안 요원들이 출동해 처리해 준다.

가까이 있던 보안 요원들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사이에 국정원 파견 직원인 홍정욱이 끼어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여기 이분이 회장님을 뵙겠다고 소란을 피우셨어요.”

여직원은 구세주를 만났다는 듯이 일러바쳤다.

“당신이 상사인가? 잘됐네. 내가 강 회장님 좀 보자는데 여기 썅년이 안 들여보내 주잖아!”

홍정욱은 주변 보안 요원들에게 눈짓했고, 보안 요원들이 소란을 일으킨 남자 곁으로 가서 팔짱을 끼웠다.

“이거 안 놔!! 뒈질래?”

“…….”

홍정욱은 그냥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었지만, 욕설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저런 놈들은 뭔가 켕기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보안실로.”

“예!”

“놔! 놔 이 새끼들아!!”

.

.

.

“이름.”

“…….”

남자가 아무리 용을 써도 보안 요원들의 손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결국은 보안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아 홍정욱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름.”

“…여기 무슨 경찰서야? 아니면 네가 짭새라도 되냐? 선량한 대한민국 국민을 이렇게 막 잡아 가둬도 돼? 일개 회사에서 이래도 되냐고?! 내가 경찰서로 가서 다 고발할 거야 새끼들아!”

남자의 말에 홍정욱이 자신의 재킷을 들춰 항상 소지하던 권총을 슬쩍 보여 줬다.

“……!”

“이름. 지금 말 안 하면 곧장 빵으로 보내 줄게.”

“장준필. 만25세. 현 거주지 서울 금천구 독산동 러브 원룸 204호입니다. 직업은 무직입니다!”

“…….”

생각보다 상황 판단이 빠른 놈이다.

“여기 왜 왔어?”

“…….”

“경찰 불러서 인계할 테니까 그냥 빵으로 가 새끼야.”

“크, 큰일이 생겨서 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큰일? 뭔데?”

“그게… 강 회장님께 직접 알려 드려야 하는데….”

홍정욱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남자는 얼른 말을 이었다.

“펴, 편지를 전해 드리면 됩니다!”

“편지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알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말해 봐.”

“말하면 안 되는데….”

홍정욱의 엉덩이가 다시 들썩거렸다.

“아, 아. 합니다. 지금 막 하려고 했다니까요.”

그때부터 남자의 입에서 나온 얘기들은 정말 중요한 정보였다. 소란을 피운 남자를 그냥 밖으로 내쳤다면 알아내지 못했을 정보다.

“젠장.”

홍정욱은 무전기를 통해 얼른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당장 독극물 검사 장비 가지고 보안실로 내려와. 테러 위협이다.”

-오케이.

“품에 있는 편지 바닥에 내려놔.”

“큰형님이 절대로 품에서 떼지 말라고 했는데…. 직접 전해 주라고….”

“내려놔 새끼야!”

장준필은 기겁해서 품에 있던 편지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놨다. 잠시 후 홍정욱이 말했던 장비를 들고 온 다른 국정원 직원이 방독 마스크에 장갑을 착용했다.

“편지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어. 그래도 지금까지 저 녀석이 품에 안고 있었는데 문제없는 걸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나머지는 내게 맡겨.”

방독면의 남자가 가방을 열어 핀셋 두 개를 꺼내 들고 편지에 다가갔다.

핀셋은 양손에 하나씩. 조심스럽게 편지의 옆구리를 뜯어내기 시작한다.

“지금까진 이상 무.”

혼잣말하며 계속해서 편지를 개봉한 남자는 핀셋을 다시 가방에 넣고 다른 검사 장비를 꺼냈다. 특수 용액에 적신 면봉을 가져가 편지에 문지르고 돌아오길 몇 번. 남자는 허리를 펴고 돌아와 방독면을 벗었다.

“독극물 검사 결과 이상 없음.”

동료의 말에 홍정욱은 편지를 바닥에서 주워 읽기 시작했다. 편지에는 장준필이 얘기했던 포괄적인 내용이 더욱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이 녀석은 버리는 패였어.’

편지에는 구구절절 변명이 적혀 있었다. 자신들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오히려 정보를 제공할 뿐이라고 한다.

“장준필.”

“옙!”

“조직에서 얼마 받았는지 알아?”

“그건 저도 잘….”

“선금으로 10억.”

“힉!”

“그거 받고 날랐는데 아직도 형님 타령할 거야? 넌 여기서 죽어도 상관없다는 뜻인데? 돈은 한 푼이라도 받았냐?”

“썅! 나한테는 말도 안 하고! 개 같은 새끼들!”

* * *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골드만삭스에서 출발한 의뢰는 일본 조직을 거쳐 연결된 한국의 작은 조직에 전달되었다.

작은 조직은 일본에서 마약을 들여와 유통하고 있었고, 조만간 일본 자금으로 사채업을 시작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조직의 우두머리는 국내 살인 청부를 받고 싶지 않았지만, 사업적인 이유로 의뢰를 거절하지 못했다.

‘좃 같아도 해야지 어쩌겠어. 썅.’

그리고 문제는 의뢰 대상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서 생겼다. 의뢰 대상이 국가의 대표 스포츠 스타이자 가장 큰 기업의 맏아들 강수안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건 못한다. 때려 죽어도 못해.’

“경훈아.”

“예. 형님.”

작은 조직이지만 두목도 있고 부두목도 있었다.

“우리 이거 들고 튀자.”

“네?”

“이거 선금만 수억이야. 5년만 잠수 타면 되지 않겠냐?”

“일본 애들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걔들 성격 지랄 같은 거 형님도 알지 않습니까. 하지만 강수안이면 안 하는 편이 낫긴 합니다. 국가 영웅을 죽이는 놈이 되느니….”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별거 아닌 놈이면 쉬웠을지 모른다. 조금 유명한 사람이라도 어렵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수안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국가의 영웅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스포츠 스타이고 국내에서 원톱을 달리는 기업의 후계자였다. 잘돼도 나라의 역적이고 실패하면 그냥 사형이다.

“…이대로 강운 그룹에 정보를 물어 가면 알아서 정리하지 않겠냐?”

“……!”

“강운 그룹은 우리한테 의뢰한 일본 조직하고 그 뒤에 있는 놈하고 전부 다 찾아내서 처리해 줄 거야. 괜히 국내 최고 기업이겠어?”

“역시! 형님은 잔머리가 잘 돌아갑니다!”

“잔머리가 아니라 그냥 머리가 좋다고 해라. 기분이 살짝 나쁠라고 하네?”

“…죄송합니다. 형님. 그런데 강운에는 어떻게 전해 줘야 합니까?”

“…….”

“글 쪼가리만 가져가면 안 믿지 않을까요? 무조건 믿게 해야 일본 애들을 강운 그룹이 박살을 내죠.”

“사람을 보내면 되지.”

“…그럼 잡히잖습니까.”

해외에서 한국의 영웅 강수안을 죽이라는 살인 청부를 받았다는 내용인데 당연히 경찰에 잡혀 들어가고 남는다.

“막내 시키자. 어차피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잖아.”

“…막내가 딱입니다. 저는 짐 싸겠습니다.”

“네가 왜 짐을 싸? 넌 이번 상황에 관해서 썰 풀어야지. 새꺄.”

“…형님이 다 들었잖습니까.”

“너 예전에 공부 잘했다며?”

학교에 다닐 때 반에서 중간 등수까지 했다며 자랑했던 부두목이다.

“그게 언제 일인데요.”

“네가 알아서 정리해서 잘 써 봐. 일본 애들 이름 다 적어 놓고 연락처도 싹 다 불어 버려. 그럴싸하게 우리 핫바지 파가 얼마나 정의로운 조직인지도 잘 꾸며 놓고.”

“형님.”

“쓰읍. 그럼 내가 하리?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여? 네가 편지 배달하고 준필이 새끼한테 편지 쓰라고 할까?”

“…씁니다. 막 볼펜 찾으러 가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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