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보고
수안은 이방효와 차진호 사장을 통해 러시아 모라토리엄과 관련한 실적에 관해서 보고받기로 했다. 첫 타자는 이방효가 아니라 일본의 차진호 사장이다. 이번 롱텀 사태에 이방효만 움직인 것이 아니다. 차진호는 일본에서 따로 움직여 거대한 일본계 은행에 관련 보험을 사들였다. 이미 미국에서도 판매된 상품이기에 일본 은행은 주저 없이 관련 보험 개설, 판매해 줬다. 아주 고마운 일본 은행이다.
-회장님. 일본 금융가에서 회수한 보험금을 보고드립니다.
“차 사장은 여전히 목소리가 좋아. 누가 들으면 영화배우라고 생각하겠어.”
굵고 청량한 차진호의 목소리는 전문 성우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이 목소리로 일본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자랑한다고 했다.
차진호는 여전히 싱글. 일본의 밤 문화에 빠져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일본에서도 상당한 보험 상품을 매입했다며?”
-예. 미국과 달리 배수가 조금 더 높았습니다. 다만, 금액 자체는 크지 않아 수령할 보험금은 약 800억 달러 이내로 추산됩니다.
모든 은행을 합해서 800억 달러였다. 미국에 비해서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금액이 크지 않다고 할 일은 아니다.
-당장 회수할 수가 없어 대부분 10년 대출로 전환했습니다. 실제로 수령 완료한 보험금은 약 50억 달러 수준입니다. 회수 자금이 너무 적어서 회장님께 보고할 면목이 없습니다.
차진호는 이래서 규모가 크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앞으로가 중요해. 잘했어. 그리고 도쿄 전력에 대한 접근은 계속 진행 중이지?”
-돈과 여자로 다 녹여 버렸습니다. 덕분에 후쿠시마 핵 발전소에 축대벽을 쌓는 부분은 그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거 다행이다. 내가 그 핵 발전소가 나오는 끔찍한 꿈을 꿨다니까. 바닷물이 벽을 넘어서 들어와서 핵 발전소를 망가트리는 꿈인데 말이지….”
이방효와 차진호에게는 배영성과 같은 수준의 정보 공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차진호 사장은 수안의 개인적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서 후쿠시마 발전소에 축대벽을 쌓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번 더 들으면 백 번은 아니고 마흔 번은 되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많이 얘기했나? 어쨌든!! 차 사장은 그것만 제대로 막아도 할 일 다 한 거야. 축대벽은 공사 완료 시점까지 확인해서 사진 찍어 와. 몇 미터까지 올렸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돈 없으면 우리 돈을 써서라도 축대 높이 올리라고 해. 그래야 내가 악몽을 안 꿀 것 같아.”
-그것뿐이 아니지 않습니까. 주변에 바다 인근 마을에도 축대벽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아차! 내가 그랬지.”
지진 해일 피해로 대다수가 사망할 주변 마을도 보호하고 싶었기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 부분은 지자체 및 마을 사람들과 협의해서 진행하겠습니다. 이번에 50억 달러가 생겨서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모시는 회장의 기이한 부탁이지만, 그리 큰 지출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좋아. 조만간에 일본에 놀러 갈게.”
-언제든 와 주십시오. 회장님만 기다리겠습니다.
“밤 문화는 아니다. 알지?”
-저는 회장님이 그 재미도 없이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정말 좋은 곳을 아는데 말입니다.
“…아내가 그 소리 들었다간 차 사장은 그날로 모가지야.”
-…조심하겠습니다. 회장님.
“진짜로 조심하자. 수고.”
* * *
다음은 이방효 사장이 보고할 참이다.
수안은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이방효에게 얼른 전화했다.
-BE 인베스트먼트에 근무하는 전설의 투자자 이방효 전화 받았습니다.
“…뭐야?”
-생색내도 될 정도로 많이 벌었거든요. 흐흐흐.
“큭. 군자라고 감정을 감출 필요는 없어. 즐길 때는 즐기고 기쁠 때는 기뻐해야 하는 법이지.”
-오늘의 성공은 모두 회장님 덕분입니다. 하하하.
“됐고 얼마나 벌었는지 들어 보자.”
-골드만삭스에서 560억 달러. 560억 달러 중에 60억 달러를 먼저 받고 나머지는 10년 만기 대출로 전환했습니다. 골드만삭스 프랭크 회장은 새뮤얼 CEO를 경질한다고 합니다.
“그 양반 성질머리 더럽기로 유명하지. 다음.”
이제 고작 한 곳만 나왔을 뿐이다.
-모건 스탠리 800억 달러. 모건 스탠리 잭 회장도 마커스 CEO의 경질을 앞두고 있습니다. 대표에 대한 소송까지 진행한다고 합니다. 300억 달러를 받았고, 나머지 500억 달러는 10년간 50억 달러 분할상환으로 돌렸습니다. 이자율은 공통적으로 11%입니다.
“굿. 마커스 그 새끼는 인상이 더럽더라. 눈깔이 맘에 안 들었어.”
-JP모건은 그나마 회장님 말씀을 듣고 위기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금융권에 같은 상품을 판매하도록 해서 자신들의 위험을 분산했습니다. 총 960억 달러 중에 500억 달러를 상환하고 460억 달러의 채무를 남겼습니다. 여기도 10년간 매년 50억 달러를 상환하게 됩니다.
“푸흐흐. 위기를 대비하면 뭐 하나? 제일 많이 사 놓고선.”
-그러게, 말입니다. 덕분에 앞으로 10년간, BE 인베스트먼트는 영업 안 해도 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BE 인베스트먼트가 일하지 않아도 골드만삭스, 모건 스탠리, JP모건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서 가져다줄 것이다.
“미국 연방 준비 제도(FRB)에선 뭐래?”
-프랭크 재무부 부장관이 다급하게 연락을 줬습니다. 조만간 소집할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에 대한 구제 금융책을 내놓고, 은행들이 각출해야 할 거야.”
-다른 은행은 별로 여력은 없을 겁니다. 아직 보고드리지 않은 보험 상품이 또 있습니다.
“또 있어?”
-기타 은행에서 총 550억 달러, 런던에서도 합계 670억 달러의 이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차진호 사장이 일본에서 거둔 800억 달러와 더하면 이번 거래 규모는 4,340억 달러입니다.
“…휴우.”
엄청나다고 하기에도 큰 금액이다.
“이번엔 덩치가 너무 크네.”
-실제로 이번에 입금된 자금은 고작 1천억 달러를 조금 넘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대출로 전환했기 때문에 외부에 판매한 보험 상품을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BE 인베스트먼트의 숫자도 마이너스를 보일 것 같습니다.
유령 회사에 판매한 파생 상품은 온전한 증빙 서류를 보관하고 있었다. 이를 모두 지급했다고 반영하면 미국의 BE 인베스트먼트는 상당한 출혈을 각오해야 한다.
“제로섬으로 맞춰 놔.”
-예. 저희도 나머지는 이자를 계산해 연장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메릴린치와 모건 스탠리, 리먼 브라더스에 공매도를 걸어 큰 수익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를 활용하면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사태는 미국 금융 시장에도 파문을 던지고 있었고, 수안의 예측을 통해 이를 계산한 이방효가 금융 기관들의 공매도에 투자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사이에 공매도까지 착실하게 챙기셨어?”
-뻔히 보이는데 안 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소로스의 퀀텀 펀드와 함께하던 타이거 펀드도 최근 달러 폭락으로 인해 막대한 투자 손실을 봤다고 한다. 덕분에 제2의 롱텀 캐피털 신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아차! 소로스 그 사람은 괜찮다고 하던가?”
예전에 소로스가 롱텀에 투자하지 않도록 조언을 부탁했었다.
-푸흐흐. 직접 찾아왔었습니다. 회장님이 그 얼굴을 보셔야 했는데 말입니다.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죠.
“왜? 설마 롱텀에 그대로 투자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
당시 15억 달러를 손해 보고 드러켄밀러와 거리가 벌어졌던 소로스다. 소로스가 아니라 드러켄밀러의 선택으로 롱텀에 투자했기에 사이가 멀어졌었다.
-그건 아닙니다. 제가 극구 말려서 LTCM에서 손을 뗐습니다. 이번에 찾아와서는 도대체 어떻게 그걸 예측했느냐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큭. 러시아에 일반적인 대응을 기대하면 항상 뒤통수를 맞게 되어 있어.”
-소로스 그 친구가 드러켄밀러와 사이가 나빠지는 것도 감수하고 투자에 발을 뺐는데, 이번 러시아 모라토리엄 이후 확실하게 꼬리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너무 과격하다니까.”
-이번 일로 사이가 좋아졌다니 다행이지요.
“아! 그리고 미국 연방 준비 제도(FRB)에 가기 전에 10억 달러 이상을 준비해. 구제 금융에 생색은 내야지.”
-그 정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번에 우리 BE가 번 돈의 일부일 뿐입니다.
* * *
골드만삭스 프랭크 골드만 회장은 어둠 속에서 이를 갈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이번 일을 기획한 새뮤얼이 창백한 얼굴로 앞에 서 있었다.
“감히…. 네가 감히 골드만삭스에 비수를 꽂아? 내가 BE의 동양인에게 사정하게 만들다니!”
“회, 회장님! 저는 단기 보험의 큰 수익을 예상하고…. 회장님께 보고도 올렸습니다! 그땐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프랭크 회장이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남자들이 새뮤얼을 끌고 나갔다.
“프랭크 회장님! 내 잘못이 아닙니다! 롱텀의 박사들이 위험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탓이란 말입니다! 또한 회사의 전문가들도 위험하지 않은 상품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새뮤얼의 말도 거짓은 아니지. 하지만! 골드만삭스에 너 같은 놈은 필요 없어.’
문이 닫히고 나서야 프랭크 회장은 최종 지시를 내렸다.
“깔끔하게 처리해. 내 분이 풀리도록.”
“예. 회장님. 신변을 비관한 자살로 처리하겠습니다. 그의 자산을 회수하고 나서 작업을 끝내겠습니다.”
“당연하지.”
며칠 뒤 새뮤얼 CEO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했다. 유서에는 매일 밤 막대한 손해를 회사에 자초한 죄책감으로 악몽에 시달렸다고 적혀 있었다. 차명으로 관리하던 새뮤얼의 자산은 모두 회수되었고, 남은 자산마저 자신이 근무하던 골드만삭스의 손실을 보전하는 데 사용해 달라고 유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골드만삭스의 깔끔한 마무리(?)에 비해 모건 스탠리의 마무리는 상당히 지저분하게 진행되어왔다. 마커스 CEO와 소송전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마커스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막을 수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롱텀 캐피털의 파산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기에 마커스의 주장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소송을 하는 게 아니었어.’
모건 스탠리의 잭 피에타 회장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소송을 후회하고 있었다.
재판은 오래 계속될 것이고, 이렇게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는 새뮤얼처럼 처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랭크 회장에게 방법을 물어봐야겠군.’
* * *
새뮤얼의 일이 알려지기 전에 BE 인베스트먼트에서 왔다는 사람 하나가 마커스를 찾았다.
“뭡니까?”
“BE 인베스트먼트에서 왔습니다. 아서 마틴입니다.”
“…….”
자신을 대표 자리에서 경질시킨 주요 원인이 BE 인베스트먼트에 있었지만, 지금 말썽을 부리면 재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참아야 했다.
“어제 골드만삭스 새뮤얼 전 대표가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
“당신도 위험에 처할까 봐 내가 찾아왔습니다. 법원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시고 외부에 함부로 모습을 보이지 마십시오. 당신이 사는 세상이 좀 위험해졌습니다.”
“…새뮤얼이 진짜로 자살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마커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의 비밀스러운 자산은 죽기 전 어디론가 옮겨졌고, 자신 명의로 된 유산은 골드만삭스에 상속한다고 유언을 남겼어요. 당신도 새뮤얼이 그런 식으로 삶을 마무리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다. 마커스는 새뮤얼을 잘 알고 있다. 자신 만큼이나 욕심이 많은 종자다. 지금까지 벌어온 돈을 회사에 유산으로 남겨 줄 만큼 책임감이 강하지 않은 놈이라는 것도 분명했다.